내가 만나는 많은 창업가들이 고민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가격’이다.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서 무형의 자산을 판매하는 비즈니스나, 소비재를 만들어서 고객에게 직접 판매하는 비즈니스나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한다. 가격을 책정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고, MBA 가면, 이 주제만 다루는 과목이 여러 개 있을 정도로 복잡하지만, 기본적인 정책은 바로 그 제품을 만들고 판매하는데 들어가는 비용보다 높게 가격을 책정하는 것이다. 이 차이가 클수록 더 많이 팔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판매 가격을 비용보다 무작정 높일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경쟁 때문이다. 유일하게 우리만 제공하고, 우리 아니면 절대로 만들지 못하는 제품을 판매한다면, 독점이기 때문에 가격을 마음대로 책정할 수 있지만, 우리 주변에 이런 비즈니스는 거의 없다. 올리브영 같은 가게에 가면 마스크팩 종류가 수십, 수백가지가 있는데, 대부분 가격은 1,000원 ~ 2,000원 이다. 비슷한 제품이기 때문에, 우리만 가격을 높이면 아무도 안 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장 당 10,000원 하는 마스크팩도 시장에서는 볼 수 있는데, 굉장히 비싸고 탁월한 효과가 있는 재료를 사용하거나, SK-II와 같은 고급 화장품 회사에서 만들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는 제품의 품질이 좋기 때문에 더 비싸게 판매하고, 후자의 경우는 브랜드파워로 더 비싸게 판매하는 경우다(좋은 브랜드가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소프트웨어도 이와 크게 다르진 않을 거 같다. 마이크로소프트같이 독점적인 위치에 있으면, 솔직히 부르는 게 값이고, 특히 윈도우스나 오피스가 필요한 기업의 입장에서는 생산성을 더 높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값이 정말 터무니없이 비싸지만 않다면 구매를 할 수밖에 없다. 물론, 최근에 Windows 외의 다른 좋은 품질의 OS도 많이 등장했고, 오피스를 대체할만한 무료 사무용 소프트웨어도 많이 등장했다. 하지만, 그래도 마이크로소프트라는 브랜드 때문인지, 아직도 기업에서는 오피스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아직도 PC와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제품을 애용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품질면에서도 아직 마이크로소프트가 월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제 갓 시작하는 스타트업은 브랜드는 없기 때문에, 우리가 판매하는 제품이 고객한테 얼만큼의 가치를 제공하는지를 기반으로 가격을 책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와 비슷한 분야의 회사가 제공하는 비슷한 제품의 가격 또한 고려해야 한다. 만약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라면, 제조업보다 제조원가의 장점은 있기 때문에 – 소프트웨어는 한 카피 만드는거랑 백만 카피 만드는거랑 제조원가는 비슷하다. 요새는 웹으로 뿌리는 SaaS라서 더욱더 그렇다. 즉, 한계비용이 제로라는 장점이 존재한다 – 조금 더 가격을 하향 조정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그래서 내가 아는 대부분의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은 복잡한 계산을 통해서 가격을 산정하기보단, 일단 우리와 비슷한 외국계와 국산 소프트웨어 회사의 가격 정책과 거의 같게 가거나, 이들보다 조금 더 저렴하게 책정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실은, 이 방법이 가장 쉽고, 판매할 때도 편하다. “우린 우리 경쟁사 A 사보다 더 저렴합니다”가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투자사들도 이런 방법을 자주 사용한다.
뭐, 이렇게 하는 것도 좋지만, 나는 그래도 가격을 책정할 때 우리 소프트웨어가 고객한테 제공할 수 있는 가치를 원화로 한 번 산정해보는 연습을 해보면 좋다고 생각한다. 가령, 업무를 자동화해주는 B2B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이라면, 우리 소프트웨어를 기업이 도입하면 일 년에 얼마 정도의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는지 계산해 보고, 이 비용을 12로 나눈 금액을 매달 기업에 과금해 볼 수 있다. 만약에 콜센터를 자동화 해주는 소프트웨어를 특정 기업이 사용해서, 콜센터 직원 수를 10명에서 5명으로 줄일 수 있고, 콜센터 직원 한 명의 연봉이 5,000만 원이라면, 우리 소프트웨어는 한 해에 2.5억 원의 인건비를 절감해준다. 매달 약 2,100만 원을 절감해줄 수 있고, 이 회사 사장님한테 우리 소프트웨어 월 사용료를 2,100만 원 과금할 수 있다.
실은 위의 시나리오는 좀 이상적이긴 하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이런 논리가 통하겠지만, 아직 B2B 소프트웨어를 돈을 내고 사용한다는 개념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한국 같은 곳에서는 1년에 2.5억 원 절감 효과가 명확해도, 이 정도 금액을 소프트웨어 사용료로 지급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장님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기본적으로 이런 논리로 고객을 설득하고, 결국 좀 깎더라도 일단 이 금액에서 네고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달에 2,100만 원을 절감해주는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면서, 월 20만 원을 과금하는 건 정말 멍청하고, 매출을 스스로 차 버리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물론, 말도 안 되게 낮은 가격으로 소프트웨어를 제공해도 회사는 망하지 않는다. 위에서 말 한대로 한계비용이 거의 제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가격을 낮게 책정해서 엄청나게 많은 기업을 고객으로 만들어서 규모의 비즈니스를 하겠다는 회사도 있다. 나도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위에서 내가 말 한대로, 우리가 제공하는 소프트웨어가 고객에게 확실한 가치를 제공하고, 그 가치가 우리 경쟁사가 제공할 수 있는 가치보다 명확하게 월등한 고급 가치라면, 가격을 굳이 낮추지 않더라도 고객은 기꺼이 돈을 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제대로 된 가격을 받으면서 볼륨까지 만들 수 있다면, 우리는 정말 좋은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가격을 내리지 않으면, 고객이 구매하지 않는, 그런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있다면, 우리가 고객한테 제공하는 가치가 높지 않고, 우리 제품 가격 대비 그 가치가 낮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다면 가격을 인하해야 하지만, 명확하게 정량화할 수 있는 가치가 존재한다면, 오히려 가격을 인상하는 것도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Jongwon Han
안녕하세요, 배기홍 대표님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오늘 글은 저희 HBSmith가 특별히 더 명심하겠습니다 =b
Kihong Bae
HBSmith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