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부터 9월까지 Kik이라는 메신저 서비스는 Kin이라는 코인을 ICO를 통해서 판매했고, 미국과 해외 투자자로부터 약 1,200억 원 규모의 투자유치를 했다. 암호화폐에 대해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면, 이 시기부터 암호화폐 시장이 미친 듯이 가열됐고, 수많은 사람과 회사가 합법적으로, 또는 불법적으로 ICO를 통해서 엄청난 투자를 받았다. 그런데 Kin 코인이 다른 ICO랑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면, ICO만을 위해서 갑자기 없는 법인과 재단을 만들고, 실체가 없는 프로젝트를 판매한 게 아니라, 거의 10년 동안 꽤 성공적인 메신저 제품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던 스타트업이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메신저 플랫폼 생태계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Kin이라는 자체 코인을 발행했다는 점이다. 특히 Kik은 이미 USV랑 Spark Capital과 같은 좋은 VC로부터 1,5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한 스타트업이었다.
그런데 미증권거래위원회(SEC)가 올해 6월 Kik의 ICO가 불법이었고, 투자자를 기만했다면서, Kik을 상대로 증권법위반 소송을 냈다. 내가 얼마 전에 한 변호사가 이 고소장에 꽤 자세하게 본인의 생각과 코멘트를 달아 놓은 걸 읽어 볼 기회가 있었는데, 상당히 흥미로웠다. 혹시 관심 있는 분이라면, 여기서 전부 다 읽어볼 수 있다. 49장짜리 고소장이지만, 핵심 내용은 단순하다. Kin은 유틸리티 토큰이 아니라 시큐리티 토큰이며, 투자자를 모집할 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ICO는 불법이라는 내용이다. 일반적으로 미증권법에 따르면, 불특정 다수한테 투자를 받으려면, 회사의 상황과 앞으로 이 투자금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서 매우 투명하게 투자자한테 공유를 해야 하는데, Kik은 말도 안 되는 백서로 – 그것도, 대부분 지키지 못할 거짓말로 가득한 – 돈을 1,000억 원 이상 모집했으며, 심지어는 Kin 코인으로 투자자들은 돈을 엄청나게 벌 수 있을 것이라는 허황한 약속까지 했다는, 뭐 그런 내용이다. 그리고 애초부터 이 돈으로 Kin 생태계를 만들 생각이 없었고, 원래 하던 메신저 서비스의 사용자 수와 매출이 계속 하락하자, 최후의 발악으로 그냥 ICO를 해서 제대로 된 정보가 없는 투자자의 돈을 모집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그동안 수집한 여러 가지 증거를 고소장에 나열했다. 마치 한 편의 하버드 MBA 케이스 스터디를 읽는 것과 같았다.
SEC한테 고소를 당하자, 가만히 있지 않고 이 소송에 법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Kik은 Defend Crypto 라는 사이트를 만들어서 암호화폐로 기부를 받기 시작했고, 현재 약 20억 원의 후원을 받았다. 뭐, 나는 이 사건의 당사자도 아니고, Kin을 구매하지도 않아서 정확한 건 잘 모르겠지만, 이 고소장을 읽어보면, Kin ICO는 사기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긴 한다. 하지만, 이렇게 따지면 어떤 ICO가 제대로 된 ICO일까 하는 생각 또한 해본다.
실은 Kik보다 더 큰 메신저 플랫폼이 ICO를 통해서 더 크게 펀드레이징을 한 사례도 있는데, 바로 텔레그램의 ICO다. Gram이라는 코인을 통해서 자그마치 2조 원이라는 투자금을 받았는데, Kik이랑 비슷하게 텔레그램도 정확히 이 돈으로 뭘 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거 같다. 이번 사건의 결과에 더욱더 관심이 가는 이유는, 바로 Kin이 유틸리티가 아니라 증권형 토큰으로 판명이 나고, Kik이 재판에서 패한다면, 그동안 진행됐던 수많은 ICO에도 지대한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도 말도 안 되는 ICO가 너무나 많았는데, 이 결과가 한국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좀 궁금하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