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벤처투자(KVIC)에서 매달 KVIC 마켓워치라는 유용한 저널을 발간한다. 한국벤처투자는 한국의 벤처캐피탈 역사와 처음부터 같이 했기 때문에, 그동안 많은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는데, 이런 정보를 민간과 공유하기 위해서 발간하는 저널이다. 마켓워치 6월 호 뒷부분에 ‘미국 벤처캐피탈의 역사 및 시사점’이라는 섹션이 있는데, 나도 이 분야에 종사하면서 개인적으로도 잘 몰랐던 내용이 많아서 꽤 재미있게 읽었다. 내용을 좀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처음부터 벤처캐피탈이란 용어가 사용되진 않았지만, 미국은 19세기 말부터 기술 혁신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고, 과학 기술 기반 회사들이 비즈니스에 필요한 새로운 제품과 생산 공정을 개발하기 위해서 내부 기업 부설 연구소에 투자하고, 외부 발명가한테도 투자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은행이 점점 위험을 회피하는 분위기라서 창업가는 공식적인 은행이나 금융기관으로부터 보단 주변 가족, 친구, 또는 성공한 기업인으로부터 초기 자금을 투자받았는데, 우리가 농담처럼 말하는 3F가(Friend, Family, Fool) 초기 모험 자본을 대주면서 시작됐다. 내가 몰랐던 사실은 GM이나 포드와 같은 대형 자동차 회사와 항공 회사조차 초기 자금은 그냥 개인들이 제공해줬다고 한다.
이렇게 비체계적으로 투자가 되다가 1929년 10월 뉴욕 주식거래소가 폭망하는 대공황을 시작으로 미국의 금융 시스템이 재편되었는데, 큰 틀로 보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류했고, 상업은행은 창업가에게 모험자본을 더는 제공할 수 없게 되면서 중소기업의 중요한 자금줄이 끊기게 됐다. 이 시기에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정부 차원에서 이뤄졌고, 벤처캐피탈이라는 용어는 이때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벤처캐피탈이 필요한 이유는 실험 단계에 있는 사업을 위해 공모로 증권을 발행해 자금을 모집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초기 사업에 대한 자금 조달은 위험에 익숙하고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며, 새로운 사업의 관리를 잘 할 수 있는 개인들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됐다.
현재의 LP-GP 구조의 벤처캐피탈 형태는 1950년대 말에 출현했다. 기존의 벤처캐피탈도 파트너십 구조로 만들어졌지만, 가족들의 자본으로만 이루어졌고, 주로 공모시장에서 자본을 조달했는데, 유명한 VC인 Tim Draper의 아버지 Bill Draper가 만든 DGA(Draper, Gaither and And 가족 외의 돈을 투자받을 수 있고, GP가 연간 운용보수와 배당 일부를 받을 수 있는 성공보수의 개념이 적용된 최초의 합자 조합(LP: Limited Partnership)의 벤처캐피탈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1950년도 이전에는 MIT가 있는 보스톤을 기반으로 동부에서 벤처캐피탈이 더 많이 생겼는데, DGA를 시작으로 캘리포니아로 그 축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DGA가 캘리포니아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게 된 논리는 당시만 해도 서부에는 중소기업에 체계적으로 자금을 대줄 수 있는 민간 투자 은행 그룹이 없었기 때문에, 서부의 벤처캐피탈은 중소기업과 상업은행들에 의해 큰 환영과 지원을 받으리라는 것이었는데, 이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서부 벤처캐피탈의 성공은 다른 투자자들이 샌프란시스코 지역으로 모이게 하는 큰 자극이 됐다.
1970년대에 와서는 LP와 GP 모두에게 큰 수익을 안겨 줄 수 있는 Limited Partnership 형태의 벤처캐피탈이 본격적으로 정착되면서 대형 펀드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더욱더 많은 VC가 생기고, 이들이 더욱더 많은 회사에 투자하면서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 회사의 지분을 청산하는 게 너무 어려워졌다. 대형 증권거래소는 아직도 소규모 스타트업을 환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작은 회사는 유동성이 낮은 장외시장에서 상장돼야 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1971년 나스닥 시장이 새롭게 열리면서 벤처캐피탈의 유동성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했다. 나는 나스닥이 벤처캐피탈 성장에 이렇게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걸 이걸 보고 알았다. 그러면서 실리콘밸리의 인터넷 혁명이 시작하면서 벤처캐피탈 산업은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했고, 그동안 시장의 up and down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면서 계속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고, 이런 흐름을 타면서 스트롱벤처스와 같은 VC도 생기게 된 것 같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미국이 정말 대단한 나라라는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 19세기 말부터 기술 중심의 스타트업에 자금을 지원할 방안에 대해서 고민한 그 시작점 자체가 다른 나라한테는 넘사벽이다. 그래서 중국이나 다른 나라가 아무리 노력하고 빨리 따라잡으려고 해도 이런 역사, 경험, 그리고 저력을 넘는다는 건 정말 어렵다고 생각한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기술 중심의 중소기업이 많이 생겨야 한다는 사실을 일찍 파악했고, 이 기업들에 돈을 제공하기 위해서 Limited Partnership이라는, 투자자와 투자받은 기업 모두가 성과를 공유할 수 있는 우수한 형태의 벤처캐피탈이라는 구조를 탄생시켰다는 건 미국이기에 가능했던 거 같다.
1938년 1월 13일 자 WSJ 사설은 벤처캐피탈을 “수익에 대한 보상이 확실하지 않은 투자”로 정의를 했다. 실은 지금까지 내가 들어봤던 벤처캐피탈의 그 어떤 정의보다 명쾌하고 정확한 개념인데, 81년이 지난 지금도 이 정의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수익에 대한 보상이 확실하지 않은 투자를 하는 나, 선후배, 그리고 동료 VC들이 참 자랑스럽고 왠지 든든하다는 생각마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