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국과 미국의 이커머스 회사에 투자를 꽤 많이 하고 있다.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한데, 에너지바, 자동차 바디킷, 화장품, 서핑 웻수트 등의 자체 제품과 브랜드를 만들어서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회사들도 있고, 쿠팡과 같이 남이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마켓플레이스/플랫폼 플레이를 하는 이커머스 회사도 있다.
겉으로 보면, 이 두 부류의 회사가 중간 유통 과정을 생략하고 고객에게 바로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전자상거래 회사이지만, 어느 정도의 규모가 생기면서 성장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점이 올 것이고, 그 순간이 오면, 조금은 다른 종류의 고민을 해야 한다.
일단 자체 브랜드로 제품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회사의 장점은 말 그대로 자체 브랜드가 있다는 점이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 플레이를 잘해서 고객의 머리에 남을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면, 굉장히 파워풀한 사업을 만들 수 있다. 사업의 규모가 어느 정도 커지면, 제품의 품질도 중요하지만, 마케팅이 매우 중요해지는데, 이때 강력한 브랜드는 핵폭탄급 무기가 될 수 있다. 고객의 신뢰를 받는 브랜드를 만들어 놓으면, 이후에 만드는 모든 제품을 판매하는 게 상당히 수월해지고, 마케팅 비용은 내려가고 효율은 올라간다. 그리고 이 브랜드 파워가 어느 정도 경지까지 올라가면, 웬만한 경쟁사가 등장해도 절대로 이길 수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자체 브랜드로만 물건을 만들어서 판매하면, 규모의 성장으로 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니, 엄청나게 오래 걸린다. 운 좋게 1,0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만들 수 있는 단일 제품을 만들지 않는 이상, 계속 다양한 SKU를 만들어야 하고, 자기 이름으로 된 브랜드이기 때문에 모든 제품을 직접 기획하고, 제조해야한다. 예를 들면, 자기 브랜드로 화장품을 만드는 이커머스 회사면, 성장을 위해서는 다양한 종류의 화장품을 지속해서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다 돈이고, 사업 초반에는 돈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가 없다. 그래서 자체 브랜드를 만드는 회사는 될만한 소수의 제품을 만들고, 판매하면서 견고한 브랜드를 만드는데 많은 노력을 한다. 조금씩 브랜딩은 되지만, 외형적인 매출 성장은 더디고, 여기서 많은 창업가들이 딜레마에 빠진다. 투자를 계속 받아야하는데, 이 정도 성장으로는 좋은 조건에 투자를 못 받기 때문이다.
남의 제품을 판매하는 플랫폼 회사들은 약간 다른 고민을 한다. 똑같은 화장품을 예를 들어보면, 시장에는 수백만 가지의 화장품 SKU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 제품들을 모두 플랫폼 안으로 입점시키면 된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제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단시간 내에 외형적인 성장이 가능하지만, 플랫폼의 비즈니스 모델은 수수료이기 때문에, 1,000억 원의 거래가 발생해도 회사에 떨어지는 실제 매출은 5% 미만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남의 제품을 가지고 하는 플랫폼 사업은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다. 나보다 더 돈이 많으면, 더 많은 남의 제품으로 사업을 할 수 있고, 더 많은 돈을 태워서 마케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플랫폼은 명확한 브랜드를 만드는 게 힘들다. 종합 상사같이 워낙 많은 제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머리에 남을만한 확고한 브랜딩을 하는 게 쉽지 않다.
이게 맞고, 저게 틀렸다고 이야기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비즈니스에는 정답은 없고, 그냥 그때그때 내부, 외부 상황에 맞춰서 유연한 전략을 기반으로 실행하면 된다. 하지만, 내 경험상, 자체 브랜드로 사업을 하는 창업가들은 어느 시점에서는 폭발적인 양적 확장을 해야 하는데, 계속 자기만의 강력한 브랜드로 이 성장을 만드는 건 쉽지 않다는 점을 깨달을 것이다. 계속 자체 브랜드를 고집할 것인지, 플랫폼 전략도 고려할 것인지, 많이들 고민한다. 반대로, 플랫폼 사업을 하는 창업가들은 어느 시점에서는 양적 확장만이 중요한 건 아니라는걸 깨달을 것이다. 마진율도 높고, 누구나 다 아는 그런 나만의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 것인지, 이 또한 많이들 고민한다.
물론, 잘 버티면서 이 순간에 좋은 결정을 한다면, 자체 브랜드만으로 엄청난 성장을 만들 수 있고, 플랫폼 자체가 너무 견고해져서, 이 자체가 강력한 브랜드가 될 수가 있다.
조재우
꼭 전자상거래뿐 아니라 저희같은 콘텐츠 플랫폼 스타트업들도 할수밖에 없는 고민인 것 같습니다 대표님.
자본이나 구조가 없는 스타트업은 진입장벽이 낮고 규모의 경제를 일으켜 효율성을 극한을 끌어올려야하는 종류의 사업을 하는게 너무 어려운일인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는 랏밴뮤를 대형마트가 아니라 일종의 편집샵이라 생각하고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마트처럼 수만가지 상품이 있지는 않고, 가격경쟁력이 크진 않지만 남다른 퀄리티의 상품과 안목을 갖추어 확고한 팬을 만들 수 있는 편집샵이요.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이런 형태의 사업은 성장속도가 더디고 히트상품을 연달아 만들어내야한다는 허들이 있는 것같아요. 어느쪽이든 각자의 고충과 풀어내야 할 숙제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ㅠㅠ
오늘 너무 제가 하고 있는 고민에 관한 글이어서 댓글 남겨봅니다 ㅎㅎ
+ 생각해보면 넷플릭스도 그렇고 유튜브도 그렇고 콘텐츠 플랫폼들은 자체 생산 + 유통을 함께하는 것이 트렌드인것 같습니다. 저희도 이런 복합적인 형태로 성장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 여러각도로 고민을 해보고 있습니다.
Kihong Bae
대표님 좋은 생각과 인사이트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랏밴뮤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