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가들이 투자자와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받는 단골 질문 중 하나가 바로 “네이버가 이거 하면 어떻게 되나요?” , “카카오도 비슷한 제품을 만들고 있다고 하던데요?” , “구글이 똑같은 제품을 만들면 우린 그냥 망하는 게 아닌가요?”와 같은 대형 경쟁사들과 관련된 질문이다. 실은, 당연히 누구나 다 물어볼 수 있는 뻔한 질문이고, 이에 대한 정답은 없다. 실은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은 뭔가 정답을 원하는 게 아니라, 창업가들이 그래도 대기업이나 경쟁사들에 대해서 고민을 해봤는지, 대형 경쟁사에 대해서 어떤 논리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이런 걸 물어볼 확률이 더 높다.

그런데 요새 내가 느끼는, 창업가들이 더 신경을 써야 하는 경쟁은, 대기업에서 우릴 따라 하는 게 아니라, 대기업이나 큰 스타트업에서 일을 잘하는 분들이 나와서 우리와 비슷한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것이다. 당근마켓, 쿠팡, 배민, 마켓컬리 같은 회사에서 엄청난 성장을 경험했고, 본인들이 직접 그 성장에 기여를 했고, 이런 경험을 기반으로 퇴사해서 우리랑 경쟁하는 제품을 만들면, 그땐 우린 어떻게 할 것인가? 참고로, 우리 투자사 당근마켓 초기 멤버들은 카카오에서 로컬/동네 관련 서비스를 만들었던 분들이고, 우리 투자사 세탁특공대의 경쟁사인 런드리고의 초기 멤버분들도 배달의민족 출신이라서 비대면 이커머스와 물류에 대한 경험이 많은 분들이다.

이렇게 이미 엄청난 경험을 했고, 그리고 이미 시장에 출시된 제품이나 서비스를 철저히 벤치마킹한 후에, 더 빠르고, 더 싸고, 더 좋은 경쟁 제품을 이분들이 만드는 게, 그냥 일반 대기업이 우리 제품을 카피하는 것 보단 훨씬 더 무서운 상황과 결과를 야기한다.

나는 우리 투자사가 기존 플레이어를 카피해서 창업한 공격적인 사례도 경험해봤고, 반대로 다른 경쟁사들이 우리 투자사를 카피해서 창업한 방어적인 사례도 경험해봤다.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는 그때마다 다르지만, 일단, 위에서 말한 대로 빨리 성장한 스타트업에서 엄청난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을 무기로, 시장은 크지만, 아직 시장의 그렇다 할 선두 주자가 없거나, 또는 선두 주자가 있지만, 본인들이 봤을 때 잘 못 하고 있을 때, 이들이 경쟁제품을 만든다고 해서 기존 플레이어보다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겉으로 보면 쉬워 보이지만, 막상 직접 해보면, 이게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기존 플레이어는 이미 눈에 보이지 않는 미묘한 경험을 많이 해서, 이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상당히 무서운 진입장벽을 이미 만들었기 때문이다(다만, 직접 해보기 전까진 잘 모른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회사에서 엄청난 성장을 경험했다고 해서 창업하고 더 빠르고, 더 싸고,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실은, 내가 경험한 건 항상 그 반대였다. 하지만, 이들이 갖는 큰 장점은, 이런 성장 경험은 주로 VC들에게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와서 더 좋은 조건에 더 큰 펀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렇게 펀딩을 잘 받아서 돈이 많으면, 더 좋은 사람을 채용할 수 있고, 아주 좋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계속 실험하다 보면, 결국엔 더 좋은 제품이 만들어질 수 있는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여기에다 선발 주자가 이미 한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후발 주자의 특권이 적용되면, 엄청난 제품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펀딩 -> 채용 -> 삽질 -> 또 삽질 -> 펀딩 -> 채용 -> 더 많은 삽질 x 10 -> 엄청난 제품의 탄생, 이런 주기는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리는데, 이 시간이 선발주자의 기회의 창이 될 수 있다. 후발주자가 이 과정을 거치는 동안 선발 주자는 이 기회의 창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미친 듯이 제품을 잘 만들고, 미친 듯이 성장하고, 미친 듯이 전진해야 한다. 이걸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경쟁사들이 더 많은 펀딩을 받고, 더 좋은 사람을 채용하는 걸 넋을 놓고 보고만 있다가는, 이런 기회의 창이 닫히면서 완전히 도태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기회의 창을 잘 활용하면서 경쟁할 수 있다면, 시장 자체를 같이 키울 수 있고, 결국엔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엄청난 서비스를 만드는 것도 나는 많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