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만난 창업가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유니콘은 아니지만, 꽤 좋은 스타트업을 만들어 가고 있는 분이고, 무엇보다도 이 어려운 시기에 수익이 발생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잘 만들어서, VC 투자를 받은 지 3년이 넘었는데도 회사 통장에는 30개월 이상의 런웨이가 있었다. 모든 창업가들이 만들고 싶어 하는 그런 모습의 회사이고, 모든 투자자들이 투자하고 싶어 하는 그런 모습의 회사라고 생각했다.

현금은 충분히 확보해 놓았고, 매달 돈을 벌고 있기 때문에 특별하게 큰 투자를 하거나 갑자기 사업의 위기가 오지 않으면 계속 현금 보유량이 늘어갈 게 거의 확실한 사업이지만, 우리가 아는 주변의 유니콘 스타트업같이 매달 두 자릿수 성장을 하거나, 혁신적인 사업이라서 언론에서 자주 비치거나, 누구나 다 아는 그런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섹시한 회사라서 모든 개발자들과 PO들이 가고 싶어 하는 그런 회사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 같은 투자자들은 겉만 화려하고 속은 빈 깡통 회사들보다 오히려 이렇게 겉은 덜 화려하지만, 속이 꽉 찬 회사들이 제대로 된 사업이라는 걸 잘 알고 있고, 특히 요새같이 쉽지 않은 시절에는 이런 회사들을 좋아하는 투자자들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이 회사의 대표는 투자를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이분한테 좋은 조건에 투자하겠다는 좋은 VC가 있으면 고려해 보겠지만, 현금이 충분히 있고 사업도 잘되고 있는데, 굳이 이 안 좋은 시장에 나가서 우리에게 불리한 조건으로 투자받는 게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다고 조언했다. 대규모 투자를 지금 받아서 특별하게 하고 싶은 게 있냐고 물어보니까 그런 것도 없었고, 큰 자본이 필요한 물리적인 공장 같은 게 필요한 사업도 아닌데, 그냥 사업에 신경 쓰지 투자에 신경 쓰는 이유를 물어봤다.

실은, 회사는 돈이 필요 없고, 앞으로도 큰 투자가 필요하지 않고, 큰 투자가 필요해도 계속 돈을 벌면서 자체적으로 충당할 수 있는데, 같이 일하고 있는 동료 직원들의 사기를 위해서 투자를 받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얼마 전에 이 대표이사가 직원들과 1대1 면담을 했는데, 경영진이 아닌 다른 많은 직원들이 회사에 대한 다음과 같은 걱정과 불만을 표현했다고 한다.

“우리 회사는 잘 되고 있는건가요? 우린 투자도 못 받는 것 같고, 네이버 검색해 보면 회사에 대한 기사도 없는데 다른 스타트업에 뒤처지는 게 아닌가요?”
“제 친한 친구가 토스에서 일하는데, 얼마 전에 몇천억 투자를 받았데요. 그리고 스톡옵션도 받았는데, 우린 잘 성장하고 있는 건가요?”
“주변에 좋은 분이 있어서 우리 회사에 오라고 했는데, 검색해 봤는데 최근의 투자받은 소식도 없고, 특별한 기사도 없어서 망설이더라고요. 혹시 조인하자마자 현금 떨어져서 회사 어려워지는 게 아니냐고…”

이 면담 이후 대표는 생각이 매우 많아졌고, 나도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생각해 보니 이분이 왜 계속 투자에 대해 고민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일반 직원분들은 회사의 모든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이 없으니 이런 생각을 당연히 할 수도 있고, 한국같이 남들이 나를 정의하는 사회에서는 내가 다니는 회사가 언론에 자주 언급되고, 투자를 얼마큼 받았는지가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중요할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야, 너희 회사 이번에 500억 원 투자받았다면서? 와, 대박 부럽네!” 이런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한테 너무나 듣고 싶어 하는 그 직원의 내면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돈을 잘 버는 양질의 스타트업의 대표이사가 사업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직원들의 사기를 위해서 불필요한 펀딩에 불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이렇게 낭비해야 하는 현실이 씁쓸해졌다. 뭐, 이 또한 대표이사의 숙명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