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김혼비 작가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라는 에세이를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성인이 된 후 운동과는 담을 쌓고 있던 여성 작가분이 축구의 재미를 알게 되면서 여성 축구팀 선수가 되는 과정을 작가님 특유의 맛깔스러운 글솜씨로 쓴 책이다. 여성 축구에 대한 책이지만, 하나의 성장 일기이기도 하고, 남녀 차별과 같이 생각해 봐야 할 사회적인 문제도 제기되고, 그냥 우리 주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나는 상당히 공감하면서 읽었다.
실은 내가 더욱 재미있게 읽었던 이유가 또 있다. 우리 집에 김혼비 작가만큼 축구에 단단히 진심인 여성이 한 분 있기 때문이다. 나의 16년 차 와이프는 약 1년 반 전에 축구를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미니 축구인 풋살이다. 어느 날 ‘골때리는 그녀들’이라는 프로를 둘이 재미있게 보고 있었는데, 원래 운동을 잘하는 친구라서, 본인도 제대로 풋살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며칠 내내 하더니 동네 풋살장에 등록해서 레슨을 시작했다.
이 책을 보면 작가님도 첫 축구 연습 모임 가기 전날에 계속 갈까 말까를 고민했고, 괜히 가서 다치거나, 혼자 웃음거리만 되는 게 아닌가 등, 오만가지 걱정을 했다는데, 와이프 또한 비슷한 행동을 보였다. 자신 있게 풋살 레슨 등록까진 좋았는데, 막상 가려니까 여러 가지 걱정이 되는 것 같았다. 너무 나이 많다고 뭐라 하는 게 아니냐, 다쳐서 뼈가 부러지면 어떻게 하냐, 혼자만 낙오되는 게 아니냐, 등등. 어쨌든 오만가지 고민을 하면서 첫 레슨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표정이 상당히 밝은 걸 보고, 재미있었고 앞으로 몇 번은 더 하겠다는 생각을 혼자 했다.
이후 계속 정기적으로 풋살 레슨에 갔다. 솔직히, 몇 번 하다가 나는 그만 가거나 아니면 띄엄띄엄 할 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단체 그룹 레슨은 심화된 개인 레슨으로 이어졌고, 이후에 같은 레슨생끼리 연습 경기로 이어졌다. 그리고 몇 달 후부턴 우리가 투자한 소셜 풋살 플랫폼 플랩풋볼을 통한 모르는 사람들과의 랜덤 경기로 확장됐다. 요새 이 친구는 일주일에 최소 3번은 풋살 하고 있고, 많이 할 땐 5번까지 한다. 한 번 할 때 2시간 동안 6경기를 뛰니까, 이제 곧 50살이 될 작은 체구의 여성이 하기엔 쉽지 않지만, 내가 봤을 땐 오히려 체력이 갈수록 좋아지는 것 같다.
풋살 레슨과 시합이 끝난 후 매번 나에게 본인의 좋았던 플레이를 동영상으로 보여주면서 그때그때의 심정을 설명해 주고, 어떤 기술을 사용했는지, 다른 동료들과의 호흡은 어땠는지를, 굉장히 자세히 설명해 주는데, 그때마다 항상 두 가지에 놀란다. 첫 번째는 갈수록 향상되는 기술과 실력이다. 1년 전까지만 해도 공 하나 제대로 차지 못 했던 친군데, 이젠 웬만한 고급 기술을 다 익혔고, 생각을 하면서 이런 기술을 구사하는 게 아니라 몸이 그냥 반응하고 있다는 게 그대로 영상에서 느껴진다. 실은, 그동안 정말 열심히 레슨받고 경기했지만, 이 정도까지 풋살을 잘 할진 몰랐다. 그리고 두 번째로 놀라는 건, 시간이 지날수록 식지 않는 풋살에 대한 열정이다. 우린 16년을 같이 살고 있지만, 이 친구가 이렇게 운동에 진심이었던 적이 언제였을까, 아니, 그냥 뭔가에 이렇게 열정이 있던 적이 있었던가를 생각하게 할 정도로 공, 구장, 팀워크, 그리고 풋살에 대한 사랑이 정말 대단하다. 여성 풋살 시합은 주로 밤늦은 시간에 우리 집에서 꽤 먼 구장에서 열리는데, 이 시합을 찾아다닐 정도면 대단한 열정과 사랑이다.
나는 와이프가 체력이 허락할 때까지 계속 이렇게 열심히 풋살을 할 수 있길 응원한다. 여러 가지 면에서 긍정적인 요소들이 많다. 일단 눈에 띌 정도로 체력이 좋아졌다. 원래 우리 부부가 체력이 후진 편은 아닌데, 정성적, 정량적으로 더 좋아졌다. 주로 같이 뛰는 팀원들이 20대~30대가 많은데, 이 친구들보다 훨씬 더 체력이 좋다. 그리고 다양한 연령, 다양한 배경, 다양한 직업의 여성들과 팀워크를 맞추고, 몸을 부딪치고, 땀을 흘리면서 공을 차다 보면 굉장히 끈끈한 팀워크와 동료 의식이 생기고, 더불어 사회성도 좋아진다. 한 축구 선생님이 와이프의 나이를 듣자 깜짝 놀라면서 “우리 엄마랑 동갑이네요.”라고 했는데, 이렇게 한참 어린 친구들과도 아주 잘 어울릴 정도로 만나는 사람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여러 가지 면에서 다양성을 한층 더 잘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냥 뭔가에 이렇게 열정과 에너지를 투입하면서, 건강하게 몸을 움직이는 사람과 한집에서 같이 산다는 게 난 참 즐겁다.
그렇다고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가장 큰 단점은 부상이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정말 조심해야 한다. 아무리 성격이 젠틀한 사람이라도 공을 서로 뺏고 빼앗기다 보면 몸이 부딪히게 마련이고, 나이가 있을수록 여러 가지 부상을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풋살도 돈을 쓰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실력이 좋아질수록 장비도 비싼 걸 선호하고, 플랩풋볼도 2시간 뛰는데 만 원이지만, 이걸 한 달에 20번씩 하면 꽤 비싼 운동이 된다. 내가 해외 출장 가면, 이제 와이프는 나에게 스포츠용품 가게에 들러서 온갖 공식 유니폼이나 축구 양말을 사달라고 하는데, 이 또한 가격이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계속 응원해 주고 싶고, 계속 격려해 주고 싶다. 우아하고 호쾌한 풋살을 계속하길 바란다.
박세희 (Park Sehee)
이 책도 골때녀도 다 정말 좋아합니다. 스포츠는 정말 최고입니다!!!
Kihong Bae
고맙습니다 🙂
Seonhwa Shin
대표님~ 바쁜 일정중에 딕스에 들르셨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네요^^ 저도 멀리서 응원하겠습니다~ ! 40대 중반에 가까워지니 하루하루 체력이 떨어지는게 느껴지는게 자극받고 열심히 체력관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Kihong Bae
아 네, 맞아요 ㅎ. 그래서 딕스에 들렸습니다 🙂 코멘트 고맙습니다 이사님!
Younghwa Kang
안녕하세요, 기홍님. 스타트업바이블을 열심히 눈팅하는 스타트업 인간입니다 ㅎㅎ 마인드셋 세팅에 너무 도움되는 글이 많아서 매번 재밌게 읽고 팀 슬랙에도 공유하고 있어요. 제가 요새 푹 빠져있는 여자 풋살 글이 올라오니 반가운 마음에 댓글을 안 달수가 없었네요!
저는 풋살에 빠져산지 이제 4개월차예요. 사이드 프로젝트로 해외축구 뉴스 앱을 만들다가 같이 하는 팀원이 “영화님 축구앱 만들려면 축구 해야돼!” 해서 얼레벌레 시작하게 됐어요. 첫 그룹 수업 들으러 갈때 긴장됐던 마음이 아직도 생각나요. 긴장해서 친구랑 같이 끊었는데 친구가 안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더 긴장되고 하지말까 그냥 갈까 백번은 고민하다가 풋살장에 갔던 마음이 생생하네요. 시작하고나서는 축구 좋아하는 남자 동료들한테 계속 알려달라고 하고 귀찮게 하면서 주에 2~3일은 축구를 하고 있어서 더 반가웠어요. 풋살을 너무 잘하고 싶어서 러닝과 다른 운동도 시작했구요… 저는 오래 다닌 회사를 퇴사하고 새로운 도전을 준비중인데 일하는 시간 외에는 운동만 하고있어서 이쯤되면 창업하려고 퇴사한게 아닌 운동하려고 퇴사한게 아닌지 심각하게 의심되는 상태랍니다 ㅎㅎ 아직도 기본기가 부족한 초보이지만 잘하고 싶은 마음에 시간이 더해지면 저를 멀리까지 데려다 줄 것을 믿으면서 열심히 하고 있네요.
참고로 저는 당근에서 동네 풋살팀을 구하는 글을 보고 조인해서 토요일 저녁마다 하고있는데요. (방배, 사당쪽인데 저희 팀도 더 모집중이긴 합니다) 풋살 할 사람 모임 구하는 게 당근에도 많다는 꿀팁 전해드리면 도움되실 것 같아서 남겨둡니다.
언젠가 같이 사시는 분과 플랩 매치에서 뵐 수 있길 바라면서 열심히 실력 닦아보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Kihong Bae
영화님 안녕하세요. 우선, 제가 그냥 취미로 쓰는 포스팅에 대해서 좋은 말씀 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도움이 많이 된다니 뿌듯합니다 🙂
풋살 4개월 차면, 정말 재미있을 타이밍인것 같네요. 아무쪼록 부상없이, 건강하게, 아주 오랫동안 풋살을 즐기시길! 당근마켓 꿀팁 고맙습니다. 이미 와이프도 당근마켓을 잘 활용하고 있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우아하고 호쾌한 하루 되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