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건강한 편이고, 건강 관리도 잘하는 편이라서 지금까지 큰 병은 없었다. 올해 나이의 앞자리가 5로 바뀌면서 건강 관리를 조금 더 잘하고 체계적으로 하기 위한 일환으로 최근 몇 년 동안의 건강 검진 결과를 다 펼쳐놓고 중요한 수치들의 변화를 트래킹하고, 이 수치들과 다른 수치들, 그리고 내 몸의 실제 상태를 비교해 보기 시작했다.

실은 몇 년 전만 해도 이렇게 하는 건 어려웠다. 일단 모든 수치들을 한 번에 정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만만치 않았지만, 각 항목이 뭘 의미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하나씩 검색을 해야 했다. 의사들에게 물어보면 더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지금까지 내가 경험했던 의사들은 환자를 돈으로만 봐서 자세한 설명도 안 해주고, 그 특유의 권위 의식이 싫어서 별로 말을 섞고 싶지가 않았다. 실은, 내가 최근에 가장 관심을 갖는 게, 인체라는 복합적인 유기체의 수많은 기관과 기능 간의 상관관계인데 이런 질문을 의사들에게 하면 대부분 뭘 그런 것까지 알려고 하냐면서 무시하거나, 그건 나랑 상관없으니 알 필요 없다고 일축해 버린다. 예를 들면, 담배도 안 피고 운동도 규칙적으로 하는데, 갑자기 혈압이 오르면, 상황에 따라서 어떤 수치들을 확인해 봐야 하는지,,,뭐 이런 것들이다.

하지만, ChatGPT가 등장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이제 내 건강 data에 대해서 궁금한 질문을 마음껏 할 수 있고, 과거의 다른 의료 기관에서 받았던 다양한 수치를 한 번에 대량으로 입력하면 꽤 정확한 분석과 설명을 인간 의사의 거만함이나 권위 의식 없이 들을 수 있다. 이제 나는 과거 15년 이상의 건강검진 기록을 그냥 사진 찍어 올리면서, AI에게 내 40대와 50대 건강 상태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고, 내가 주의 깊게 관찰하는 특정 기관들의 수치에 대해서 비교해달라고 한다. 그리고 그동안 매우 궁금했지만, 위에서 말 한 여러 가지 이유로 병원에서 못 물어봤던 것들을 정말 많이 물어보고, 이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잘 공부하고, 또 그 답변에 대해 더 많은 질문을 하고 있다.

챗GPT가 인간 의사보다 좋은 점은 일단 병원과 의사에 대해서 agnostic 하다는 점이다. 이미 한 병원에서 혈액 검사를 광범위하게 해서 결과가 있는데, 다른 병원에 가면 항상 검사를 새로 한다. 다른 병원의 검사 결과를 못 믿어서인지, 아니면 그냥 병원 매출을 늘리기 위한 방법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게 항상 불만이었다. 엑스레이 검사도 다른 병원에서 찍은 걸 가져가면 제대로 안 보고 항상 다시 찍자고 하는 걸 경험했는데, AI는 그냥 이 모든 데이터를 입력만 하면 모든 것을 기계가 분석한다. 결과의 포맷이 다른 것도 상관없다. 잘 아시겠지만, AI는 모든 걸 알아서 엑셀로 정리까지 해 준다.

전문가의 함정을 최대한 배제할 수 있다는 것도 인공지능의 장점 중 하나다. 인체는 정말 복잡한 유기체이다. 모든 기관과 기능이 상상 이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간 전문의는 간에 대해서는 잘 알겠지만, 다른 장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특히 다른 장기들이 간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본인들이 직접 임상해 보지 않았고, 관련 논문을 읽지 않았다면, 다른 인체의 변화와 간이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 제한된 지식만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의사들이 본인의 전문 분야가 아닌 분야의 수치의 변화에는 큰 관심도 없고, 특히 나같이 상대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면 그냥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AI는 이 분야에서 아주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모든 가능한 시나리오를 제시해 줄 수 있고, 엄청난 양의 논문과 데이터를 소화하면서 다양한 원인과 의견을 제공해 준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세상에서 가장 큰 종합병원이다.

또 한 가지는, 챗GPT는 기억력이 매우 좋다는 점이다. 이미 내 건강에 대한 지식과 데이터가 상당히 많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뭐라도 하나 물어보면, 인간 의사들같이 과거 차트 대충 보면서 건성으로 답변하지 않고 아주 자세히 건강 데이터, 과거 병력, 증상 등을 모두 다 비교 분석하면서 답변을 해준다.

그런데도, 기계는 아직도 기계일 뿐이다. 챗GPT는 의사를 대체 할 수도 없고, 실은 치명적인 실수도 정말 많이 하는 불완전하고 환각으로 가득 찬 기계이다. 결국 제대로 된 최종 진단, 처방, 그리고 불안한 환자의 마음을 안심시킬 수 있는 제대로 된 휴먼 터치는 결국 인간 의사에게서만 나올 수 있다. 내가 아무리 챗GPT를 사랑해도, 결국 몸이 아프면 의사 선생님에게 올 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AI로 인해 환자와 의사의 관계가 – 특히, 항상 불리했던 환자의 입장에서 – 향상됐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의사를 보기 전에 우린 챗GPT에 모든 궁금한 점들을 물어볼 수 있고, 이에 대한 꽤 완성도 높은 답변을 얻을 수 있다. 의사를 만나서 이걸 확인만 하면 되고, 훨씬 더 체계적인 질문과 대화를 할 수 있다. 내 경험상, AI를 통해서 충분히 학습하고 준비된 질문으로 무장한 환자들에겐 권위 의식으로 가득 찬 의사들도 함부로 대하진 못하고, 오히려 그들도 이런 환자들과의 수준 높은 대화를 즐기는 것 같다.

앞으로 AI가 어느 수준까지 발전하고, 인간 의사들의 수준이 어디까지 떨어질지 모르겠지만, 여기에 큰 시장이 존재한다. 의학 vertical AI 시장도 매우 클 것이고, 환자의 건강을 정말로 신경 써주는 제대로 된 휴먼 의사에 대한 수요 또한 더 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