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내용은 100% 주인장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나는 한국 회사들과 일을 많이 한다. 주로 작은 스타트업들이랑 많이 어울리지만, 삼성, LG와 같은 대기업들 또는 tech 대기업들과도 많은 교류가 있다. 한국 회사들의 전통적인 직위는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등 이러한 수직적인 구조로 구성되어 있는데 몇 년 전부터 사내호칭을 조금 더 수평화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이제는 별도의 직위 없이 ‘기홍님’ 또는 전사적으로 영문 이름을 도입해 ‘Albert님’ 뭐 이런 식으로 호칭제도를 변경하는 회사들이 보인다. 그런데 솔직히 나한테는 이런 ‘~님’ 또는 한국 토종을 영어 이름으로 부르는 게 너무나도 어색하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는 나이와 연차가 너무나 중요한 문화/사회적 요소이기 때문에 아무리 호칭을 이렇게 바꿔도 부하가 상사를 대하는 태도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보스한테 ‘기홍님’이라고 하면 이 수평적인 호칭과 보스에 대한 전통적인 수직적인 태도와 관념이 충돌을 일으켜 혼란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어떤 취지인지는 잘 알겠다. 한국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영어 이름을 사용하면 미국 사회와 미국 회사의 자유롭고 수평적인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인 거 같다. 또한, 외국과 비즈니스를 많이 하는 경우 외국인들이 발음하기 쉽게 이름을 영문으로 바꾼다는 취지도 있는 거 같다. 그래도 나는 좀 우습다. 생각해봐라….영어 거의 못하는 한국 사람 둘이서 서로를 영어 이름으로 부르면서 한국어로 대화를 하는 게 좀 웃기지 않나? 그리고 무슨 가족오락관도 아니고 회사의 미래를 위해서 매출을 만들고 수익을 극대화 해야 하는 상사나 동료랑 ‘~님’ 하면서 대화하면 오히려 좀 어색 할 거 같다. 그렇게 수평적인 조직을 원한다면 오히려 ‘~님’을 아예 없애고 그냥 서로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건 불가능하다. 나보다 나이가 많고 회사에서 계급이 높은 분의 이름을 막 부를 수는 없다.
이 외에도 우리나라에는 참으로 어려운 호칭들이 많다. 연구기관에서는 ‘선임’ ‘책임’ ‘주임’ 등의 호칭들이 존재한다. 연구기관에서 나온 분들이랑 일을 하는데 그 사람을 한번 부를 때마다 ‘배기홍 책임연구원님’ 이라고 해야한다. 일 시작하기도 전에 호칭 부르다가 에너지를 다 낭비하는 느낌?
실은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명함을 보면 한국보다 더 많은 직위가 막 존재한다. 회사마다 – 특히 벤처기업은 – 자기 직위를 마음대로 만드는 회사들도 있다. Chief Fun Officer, Chief Revenue Officer, VP of Partner Entertainment 등 재미있는 직위들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상관없다. 미국은 모든 사람을 직위가 아닌 그 사람의 실제 이름으로 부르기 때문이다. John, Kihong, Albert 이렇게 부르지 ‘Chief Revenue Officer Kihong’ 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한국은 다르다. 이름으로 사람들을 부를 수가 없으므로 뭔가 붙여야 하는데 현재 한국의 호칭제도는 비효율적이고 어색한 거 같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그냥 전통적인 대리>과장>차장>부장>이사 직위를 선호한다. 두 단어이기 때문에 발음하기도 쉽고 어느 정도 표준화되어 있는 호칭들이기 때문에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장 심플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항상 이런 생각을 하는데 다른 분들은 현재 몸담은 조직의 직위와 호칭 제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익명
저는 어쩌다보니 상대방을 ‘~님’ 내지는 ‘별명’으로 호칭하는 회사를 주로 다녔는데요. 말씀하신대로 기업문화도 크게 보면 한국이라는 커다란 카테고리에 속해있는 하위문화일 수밖에 없어 호칭을 변경하다고 해서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수직적 관계를 타파하지는 못 합니다.
그러나 글쓰신 분의 의견에 100% 동의하기 힘듭니다. 수평적 호칭이 수직적 관계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니까 무의미하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저의 경우를 살펴보면 수평적 호칭은 분명히 효과가 있습니다. 특히 나이 많으신 분이나 타부서의 처음 보는 사람과 협업을 할 때 나이/직책/경력에 따른 자기검열효과가 많이 감소되었습니다. 제가 대리인데 처음 보는 사람이 나이도 저보다 많고 직급도 과장이라면 만나는 순간부터 발언권이 불균형하게 되는 상황이 존재하더라고요. ‘저 사람이 경험도 많고 직급도 높으니까 나보다 많이 알겠지’ 이런 생각을 은연 중에 하게되더라고요.
이런 호칭문화가 더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직급체계 자체가 단순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원>대리>과장>부장 이렇게 직급이 전통적으로 나눠져 있는데 호칭만 다르게 하는건 효과가 반감될 수 밖에 없겠죠. 만약 사원>팀장>본부장>이사진 이런 식으로 단순화 된다면, 호칭문화를 통해서 최소한 같은 직급 내에서의 수평적 문화는 어느 정도 실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위의 두 가지를 모두 한다고 해도 실제로 실행하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기는 합니다. 실제로 수평문화를 선호하거나 더 효율적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생각보다는 많지 않은 것을 느꼈거든요. 명확히 나눠진 직급과 직급에 의한 권한과 책임이 분명한 조직문화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 아직은 한국에 많은 것 같습니다. 이것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지만 수평문화를 정말로 원하는지가 호칭문화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본 전제라고 봅니다.
Kihong Bae
네, 자세한 설명과 답변 공유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잘 읽어보고 저도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니 말씀하신 부분도 수긍이 가네요. 그래도 저는 같은 한국사람들끼리 ‘~님’ 하는게 참 어색하게 느껴져서요^^
생산적인 피드백 고맙습니다!
익명
개인적으로 oo대리님, ooo님, 찰리~와 같은 호칭문화를 모두 경험해보았는데 기업의 의도처럼 잘 정착이 되기도 어려울 뿐더러 당연히 원하는 것처럼 수평적인 관계가 형성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직급제도로 부르는 것이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가 어색하지 않은 것같네요. 사실 수평적인 시선이 필요할때는 의견을 수용하는 자세에 있어서지. . . 모두 친구가 되자는건 아니니까요
익명
우리도 ~님 으로 부르라는데..당근 어색하지..호칭만 그렇게 할 뿐, 직급에 따른 상명하달 관계는 여전하다는..그래서 큰 의미없다는…
익명
기홍아..나다..승직.. ㅋㅋ 어낭니머스가 되었네..ㅋㅋ
Kihong Bae
ㅋㅋ 그려. 난 그냥 누구를 ‘~님’ 이라고 부르는게 닭살 돋아서리…
신병혁
우리회사는 연구개발쪽 인력직급이 사원>선임>책임>수석 으로 되어있어서 나 같은 경우는 ”신 책임” 또는 “신 책임님”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고 “신 책임연구원님”이라고 불린 경우는 거의 없는데, 정말 처음 보는 업체에서 오신 분들이 가끔 그렇게 부르는 경우도 있긴 하지. ㅎㅎ
사실 개인적으로는 끝의 “님” 호칭도 빼버리고 싶음. 하지만 , 상대방이 기분 나빠할까봐 공식메일에는 “책임님”이라 쓰고, 부를때는 눈치봐가며 “책임”이라 부르는 편~
Kihong Bae
참 복잡하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