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를 막론하고, 수요와 공급을 매칭하는 마켓플레이스를 운영하는 창업가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탈중개화’ 현상이다. 우리 같은 투자자도 이 탈중개화 현상으로 마켓플레이스 비즈니스를 공격하고, 이걸 앞으로 어떻게 방어할 것인지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라고 대표이사를 닦달한다. 영어로는 disintermediation이라고 하는 탈중개화 현상의 정의는 ‘재화와 용역의 유통에서 기존에 이용하던 경로를 탈피하는 현상’인데, 금융업계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이다. 스타트업 분야에서는 주로 중개서비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많이 언급되는데, 우리가 투자한 여러 스타트업도 이 현상 때문에 골치 아파한다.
기본적으로, 유료 플랫폼에서 수요와 공급이 최초로 매칭되면, 그 이후에 이 플랫폼 밖에서 거래가 이루어지는 탈중개화 현상은 막을 수가 없다. 나도 우리가 투자한 회사의 서비스를 엄청 많이 사용하는 편인데, 투자자보다는 그냥 고객의 입장에서, “왜 내가 굳이 이 플랫폼에 수수료를 내고 용역을 공급받을까? 용역 제공하는 분의 연락처도 얻을 수 있는데, 수수료 안 내고 직접 연락하면 되는데…”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런데도 수수료 기반의 마켓플레이스를 운영하는 대표의 입장에서는, 가능하면 우리 플랫폼 밖에서 거래가 일어나는걸 방지해야 한다. 그래야지만, 비즈니스가 잘 성장하고, 돈을 더 벌 수 있다. 참 힘든 과제이지만, 탈중개화 현상을 최소화하거나, 그 속도를 늦출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우리 투자사들은 하고 있다.
일단, 당연한 현상이고, 절대로 막을 수 없으므로, 그냥 신경 쓰지 않는 회사들이 있다. 플랫폼에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고, 더 싸게 거래를 하고 싶어 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라는 걸 인정하는 이런 회사들은 수요와 공급의 초기 매칭에만 집중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하고, 고객이 플랫폼을 이탈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신규 고객을 획득하는데 가장 많은 투자를 한다. 이 방법을 선택하면, 흔히 말하는 CAC와 LTV 계산을 정말 꼼꼼하고 정확하게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돈을 버는 속도보다 쓰는 속도가 더 빨라지므로, 결국엔 unit economics가 잘 맞지 않는다.
위와는 완전히 반대의 전략을 취하는 회사도 있다. 반드시 플랫폼을 사용해야만 하는 장치를 장착해놓는 서비스들이 있는데, 나는 이 방식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에어비앤비의 경우, 남한테 빌려준 집이나 기물이 파손되면, 최대 1백만 달러까지 보상해주는 강력한 보험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수수료를 지급하기 싫은 손님이 집주인한테 직거래하자고 제안하면, 집주인은 오히려 그냥 에어비앤비에서 결제하라고 한다. 반려동물을 위한 에어비앤비인 Rover도 비슷한 보험을 제공한다.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기본적으로 최대 3백만 달러까지 보상을 해주는 보험이다. (남한테 맡긴) 내 개가 다치거나, 내 개가 남의 개를 다치게 하거나, 혹은 내 개가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이 모든 돌발상황에 적용될 수 있다. 이런 좋은 장치를 제공하니, 나도 미국에서 우리 마일로를 펫시터한테 맡길 때, 더 싸게 직거래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수수료를 지급하면서 로버 플랫폼을 이용했다. 물론, 한국에서도 이게 가능하게 하려면, 미국같이 좋은 보험 상품들이 있어야 한다.
마켓플레이스를 제공하지만, 탈중개화 현상에 영향을 받지 않는 비즈니스모델을 도입하는 회사도 있다. 우리 투자사 숨고가 그 대표적인 사례인데, 숨고는 수수료 기반의 비즈니스모델이 아닌, lead generation 기반으로 돈을 벌고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숨고에서 MMA 강사를 찾아서 시간당 10만 원을 지급하고 주짓수 개인 집중강습을 받으면, 이 수업료 10만 원은 100% 다 MMA 강사가 가져간다. 숨고는 수수료를 챙기지 않는다. 대신, 강사들이 학생들한테 견적을 보낼 때 돈을 지급하는 비즈니스모델을 선택했다.
마지막으로, 우버와 같이 진정한 ‘온디맨드’ 비즈니스를 추구하는 플랫폼들은 탈중개화 현상에 그나마 영향을 덜 받을 수 있다. 우버는 택시 ‘사전 예약’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다. 오로지, 지금, 당장, 내가 특정 장소로 이동해야 할 때, 바로 택시를 잡을 수 있는 온디맨드 기능만 제공한다. 이런 진정한 온디맨드 서비스의 특징은, 예약제 서비스와는 달리, 고객의 변심을 막을 수 있고, 항상 플랫폼 속에 고객을 가두어 둘 수 있다. 그리고 택시기사와 고객의 관계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와는 많이 다르므로, A에서 B 지점까지 나를 데려다주기만 하면, 그 누가 택시를 운전해도 상관이 없으므로, 굳이 플랫폼을 벗어나서 거래하지 않아도 되는 특성이 있다.
이 외에도 탈중개화를 방지할 방법이 있을 거 같은데, 다른 분들의 의견도 궁금하다.
익명
(벌써 7년 전 글이네요. 7년째 중개하며 저대로 정리한 생각을 남깁니다.)
[받아서 떼고 넘기거나 / 연결한 다음 돌려받거나] 중 후자의 방식으로 저는 운영하고 있습니다. 서비스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은 정형화-상품화 하기 어렵기 때문에, 논의-협상-계약 과정을 거치면서 종합적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다양하고 폭넓은 거래의 단계들을 모두 온라인환경으로 옮기기 보다는, 온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이뤄지도록 조율해 거래를 성사시키고, 거래발생에 기여한 중개자에게도 몫이 돌아오도록 흐름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흐름을 만들 수 있을지의 여부는 옳거나/그르거나, 타당하거나/허술하거나에 의해 절대적으로 결정되어 있다기보다는, 중개자를 통한 거래에 참여하는 주체들이 옳다고, 타당하다고 여기게 만드는 능력에 달려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옳다고, 타당하다고 여기게 만들려면 우선적으로 거래비용이 더 저렴해야 합니다. 탈중개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거래 방법보다 중개자를 통한 거래 방법이 저렴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단순한 거래 금액 뿐만 아니라, 물색과 평가에 들어가는 종합적인 정량적 노력과 시간, 거래의 안정성이나 제공받는 서비스의 결과물의 질적인 측면도 함께 포함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플랫폼을 이용하는 고객과 공급자에게 종합적인 비용이 더 저렴하다는 것을 납득시키는 것은 CX언어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단순히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보다, 그들이 받아들이는지가 더욱 중요하며, 그들의 받아들일지 말지의 문제는 인식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인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수료’라는 어휘를 버리고 ‘고객확보비용’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아무 일도 안한 사람에게 떼이는 돈”이라는 인식이 내포된 어휘를 쓰면서 수수료의 정당성을 입증하긴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같은 구조와 정책이라 하더라도 거래 참여자에 따라서 중개자의 몫이 크거나 작은지 다르게 계산됩니다. 공급자의 경우 잠재적 가치창출 가능성에 영향을 받는 것 같습니다. 성장 단계의 공급자에겐 미래수익을 얻어낼 수 있는 필수적 단계로 여겨지기에 수수료를 개의치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급자들이 거래에 참여할 때 돈, 성장, 재미, 취지와 같이 여러 동기를 가지고 참여하는지를 파악하고, 여러 동기를 가진 공급자는 수요자에게도 큰 부가가치를 제공하며 서비스 만족도 또한 높아…. (후략)
Kihong Bae
생생하고 구체적인 시장에서의 경험과 피드백 자세히 공유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굉장히 많이 고민하시고, fine tuning 하신 흔적이 잘 보이네요.
염승헌
우버를 자전거만큼 편하게 타고다녔던 유저로서의 기억을 되짚어보면… 실시간성보다도 언제든지 문제가 생기면 묻고 따지지 않고 친절하게 대응을 해줬던 CS가 가장 인상이 깊습니다. 책임소재를 떠나서 드라이버와 라이더가 서로를 못찾고 어느 한쪽이 억울해지는 경우가 생기는데 드라이버쪽은 잘 모르겠습니다만은 라이더들이 CS를 통해 케이스를 이야기하면 무조건 해당 요금을 크레딧으로 리턴해줬었고 경우에 따라 캐시로 리턴받던적도 있었던것 같네요. O2O 플랫폼에서 가장 컨트롤이 안되는게 오프라인에서의 실제상황들일텐데 이걸 최대한 머리아프지 않은 방법으로 처리해줬다는게 유저로써 가장 좋았던것 같습니다 ^^
박병종
탈중개화는 우버 에어비앤비와 숨고, 재구매율 낮은 사람에게 패널티 주는 것은 다른 상황인 것 같습니다. 1차 매칭과 그 이후 리텐션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숨고나 재구매율 낮은 사람 패널티는 1차 매칭에서조차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바이패스 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고. 우버나 에어비앤비는 1차는 물론 리텐션에서의 바이패스까지 고려한 방식이네요. 한국에서는 배달의민족이 포인트와 쿠폰으로 이를 달성하고 있고. 직방도 숨고와 비슷하게 광고 노출에 과금을 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카닥은 승객주문을 받는 것 자체에 건당 과금을 한다네요. 콜버스는 1차 매칭시의 이탈은 잘 막아내고 있으나 리텐션 이탈 해결책을 찾고 있습니다. 혹시 아이디어 있으시면 페메로 알려주세요^^
Uber
일부만 노출되는 기능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버에도 예약 기능이 있습니다. 🙂
고현수
호텔스닷컴이 10박 시 1박 무료 숙박을 제공하는 것처럼 포인트나 쿠폰을 지급해서 플랫폼에 가두는 방법도 있는 것 같네요.
Kihong Bae
호텔스닷컴의 경우, 조금은 다른게요…예약플랫폼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호텔/모텔들도 많아서요…호텔스닷컴이 아니면 다른 옵션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Sangmin Shim
저라면 사용자의 재구매 비율이 낮아지는 공급자의 노출 빈도를 낮추는 방법으로 플랫폼에 계속 남아있길 원하는 마음을 이용할 것 같아요. 개발자 마인드네요..;
Kihong Bae
그런데, 이렇게 하면, 마켓플레이스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supply side의 양이 줄어들 수도 있을거 같아요. 공급자의 노출 빈도가 줄어들면, 이 공급자한테 가는 비즈니스가 줄어들고, 그렇게 되면 플랫폼을 탈퇴할 확률도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익명
재구매 비율이 높은 공급자는 오히려 플랫폼을 이탈할 가능성이 더 높아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