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매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게 대한민국 정부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부인할 수 없는 fact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도 모태펀드의 돈을 받았고, 내가 아는 대부분의 한국 VC는 금액은 차이 나지만, 정부의 출자를 받아서 이 돈을 민간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정부에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고, 우리 같은 민간 조직보단 느리고, 제약 사항이 있어서 명확한 한계가 있지만, 이렇게 스타트업 생태계를 위해서 노력하는 대통령과 그 밑에 있는 분들한테는 비난보단 감사와 격려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래도 항상 아쉬운 부분은 있는데, 내가 그동안 정부 관계자분들과 이야기하고, 같이 일하면서 항상 조언하고, 가끔은 화도 냈던 몇 가지 주제가 있었는데, 최근 수개월 동안 정부의 여러 부처에서 발표하고 시행한 많은 정책과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직은 갈 길도 멀고, 해야 할 일도 많다는 걸 느끼면서 몇 자 적어본다.
일하면서 누구한테나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역할과 분수를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가 스타트업 생태계와 함께 일 하면서, 항상 지켜야 하는 제1의 원칙이 있는데, 그건 바로 정부는 leader가 아니라 feeder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리더는 말 그대로 스타트업 생태계를 앞장서서 이끄는 사람/기관인데, 이 역할은 항상 현재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창업가 또는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맡아야 한다. 피더는 리더들이 생태계를 잘 운영할 수 있도록 옆에서 여러 가지 도움과 지원을 제공(=feed)해주는 사람이다. 주로 정부, 대학, 기관, 대기업 등이 이 피더 역할을 해야 한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벤처에 대한 의지가 매우 강한데, 한국에서 앞으로 몇 개의 유니콘을 만들겠다는 발표를 할 때마다 나는 정부가 피더가 아니라 리더를 자칭하면서, 분수를 잊어버리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정부는 리더가 절대로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리더들의 가장 큰 특징이자 필수조건은 ‘입으로 하는 리딩’이 아닌 ‘행동으로 하는 리딩’인데, 정부는 태생적으로 행동이나 실행과는 거리가 조금 멀 수밖에 없다.
몇 년 전보단 훨씬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정부에서 발표하는 창업 지원정책은 이 분야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보면 스타트업의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는 걸 느낀다. 담당자들이 스타트업에 대해서 너무 몰라서 발생하는 현상인데, 미안하지만, 이 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혀 발전이 없는 부분이다. 스타트업 경험을 못 한 정부 담당자들은 – 그리고 대부분 스타트업 경험이 없다 – 사업을 시작하고, 미친 듯이 정신적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스트레스를 참는다는 게 뭔지 잘 모른다. 책으로만 습득하고, 본질을 파악하지 못 하는 주변 지인을 통해서 들은 얕은 지식을 정책에 적용하려고 하니까 이런 일이 항상 발생한다. 이건 어떻게 개선의 여지가 별로 보이지 않는 부분이긴 하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이게 우리한테 가장 필요한 거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장기적인 꾸준함과 인내를 갖고 정책과 프로그램을 만들고 지킬 수 있는 배짱과 끈기를 가진 공무원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국가의 정책이란 것 자체가 긴 호흡을 갖지 못한다. 특히 한국은 더 그렇다. 5년짜리 단임제 대통령, 그리고 1년이 멀다 하고 자리가 바뀌는 정부 관료들의 숨은 절대로 긴 호흡을 가지지 못한다. 현실적으로 보면,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한 3개월 동안은 새로운 정부에 적응하는 기간이기 때문에 아무런 활동이 없다. 그다음 6~8개월 동안은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고, 담당자들이 바뀌고, 계획을 세우고, 정책을 만들고, 발표한다. 일단 이러면서 1년이 지나간다. 남은 4년 중 3년 동안 새로운 정책들이 부분적으로 실행되고, 마지막 1년은 또 그다음 정권 준비한다고 날아간다. 이런 현실이다 보니, 정부 관료들은 3년 동안 무조건 실적을 만들어야 하는데, 여기서 큰 착각이 발생하는 거 같다. 이 실적이라는 게 범국가적인 실적이 되어야 하는데, 정부 관료들은 “내 실적”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다. 이러다 보니, 담당자가 바뀌면, 이전의 정책과 프로그램이 아무리 잘 돌아가고 있어도, 백지화시키고 나만의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고 도입한다.
스타트업은 장기 마라톤이다.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길게는 2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데, 벤처를 위한 정책과 프로그램을 설계하려면, 이런 스타트업의 주기를 잘 이해하고 이 주기에 맞게 생각해야 한다. 실은, 정부에서 만든 정책 중 꽤 잘 만들었고, 잘 돌아가고 있는 것도 있다. 새 정권이 들어서고, 새 담당자가 오더라도, 자꾸 새로운 걸 하지 말고 그냥 원래 하던 거만 잘해도, 지금보단 훨씬 더 좋은 그림이 만들어질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