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거에도 “자기 개밥 먹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이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은 이 용어를 잘 알 텐데,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이 말의 의미는 내가 만든 제품을 내가 직접 사용해본다는 뜻이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거지만, 요새도 나는 자주 놀라는 게, 너무나 많은 대표이사가 본인이 만든 제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사용하지 않고, 어떤 기능이 있는지 잘 모르고, 나 같은 투자자가 간혹 창업가보다 그들의 제품을 더 많이 사용하고, 어떤 기능이 있고, 어떤 버그가 있는지 더 잘 알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런 창업가는 디테일이 살아있는 제품을 만드는 게 쉽지 않고, 디테일이 떨어지는 제품은 시장의 buy-in을 못 받기 때문에, 이런 제품과 회사는 절대로 성공할 수가 없다.
내가 요새도 자주 사용하는 예시인데,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이렇게 커지고 많은 사용자의 인정을 받는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회사의 대표들이 제품을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사용하면서 본인들이 만든 개밥을 먹기 때문이다. 마크 저커버그는 요새도 페이스북에서 살고 있다. 그러면서, 모든 기능을 다 사용해보면서 수시로 제품과 개발 팀에게 피드백을 준다. 잭 도시도 트위터를 항상 사용하면서 개밥을 열심히 먹는다. 며칠 전에 내가 포스팅했던 에어비앤비의 공동창업가이자 대표인 브라이언 체스키는 벌써 수년째 집 없이 에어비앤비를 통해서 집을 장기대여해서 살고 있다. 이 수준으로 창업가들이 자기가 만든 개밥을 직접 먹어봐야지만, 최고의 개밥을 만들 수 있는 건 불변의 진리인데, 너무나 많은 창업가들이 – 우리 스트롱 투자사 대표들 포함 – 이렇게 하지 않고 있다는 건 투자자로서 아주 아쉽다.
2월 초에 오랜만에 LA 출장 갔다가 우리 투자사 Polydrops 사무실을 방문했다. 이 회사는 미래지향적인 소형 캠핑트레일러를 만들어서 판매하는 스타트업이다. 미국에서 건축학을 공부한 한인 유학생 부부가 이 회사의 공동창업자들인데, 나는 이 팀이 개밥 먹는 걸 보고 엄청나게 감명받았다. 일단, 회사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부부가 워낙 캠핑을 좋아해서, 졸업 후 취업자리를 알아보기 전에, 몇 개월 동안 미국을 돌아다니면서 캠핑을 하기로 했고, 본인들이 건축을 공부했고, 미래형 주거 공간이라는 주제를 학교에서 공부하기도 했기 때문에, 캠핑트레일러를 직접 만들어서 캠핑 여행을 떠나보기로 했다. 그래서 나무와 스티로폼으로 직접 두 분이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의 트레일러를 만들어서 미국 횡단 여행을 떠났다. 3개월 이상 노마드 생활을 해봤는데, 직접 만든 트레일러가 꽤 쓸만하게 고장도 안 나고 잘 버텨줬고,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이 트레일러를 보는 사람마다 “디자인이 너무 예쁘다” , “어디서 살 수 있냐” , “얼마냐” 등의 질문을 수없이 했고, 두 분은 이걸로 사업을 해볼까 하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긴 도로여행을 끝내고 LA로 돌아와서, 트레일러를 크레이그스리스트에 올렸는데, 올리자마자 어떤 미국인이 이걸 사겠다고 했고, 바로 이 순간 Polydrops라는 사업을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이후는 고생길이었고, 지금도 엄청 고생하고 있지만, 우리는 운 좋게 이 팀을 초반에 만나서 투자했다. 실은, 여기까지도 꽤 인상 깊은 이야기이고, 본인들이 하는 사업을 이렇게 몸으로 직접 실행하는 팀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개밥을 먹는 분들인데, 이번 방문에서 내가 진짜 인상 깊게 느꼈던 점 몇 가지만 더 적어본다.
캠핑 트레일러로 시작했고, 현재 비즈니스는 이 트레일러를 주문제작으로 판매하는 거지만, 이 팀이 그리는 비전은 미래의 주거공간과 수단을 만드는 것이다. 현재 추세라면 밀레니얼들은 과거와 현재 세대같이 집을 사서 소유하는 개념에 열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비싼 집을 사진 않을 것이고, 한 지역에 있는 고용주와 고용 계약을 오랫동안 맺는 형태의 취업보단 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돌아다니면서 단기 취업을 하는 gig employment를 선호할 것이다. Polydrops가 만들고 있는 트레일러는 이런 새로운 세대를 위한 주거공간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LA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홈리스(homeless) 해결에 대한 답을 제공해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이 부부는 본인들이 그리는 미래를 그대로 한번 살아보기로 했다. 살던 아파트도 없애버렸고, 살림살이를 드라마틱하게 줄여서, 아예 작업실/사무실로 사용할 수 있는 창고형 건물을 임대해서, 트레일러와 창고에서 현재 거주하고 있다.
창고 위층에는 작은 부엌이 있는 방을 만들었고, 잠은 주로 여기서 자지만, 본인들이 만들고 있는 폴리드롭 트레일러에서도 잔다.
그리고, 본인들의 개밥을 얼마나 많이 먹는지를 보여주는 게 바로 이거다. 바로 이동식 야외 샤워 텐트다. 화장실만 있고, 샤워실이 없는 창고라서, 이 분들은 이 안에서 샤워를 하는데, “상당히 쓸만하다”라고 한다.
이렇게 뼛속까지 본인들이 하는 일을 믿고, 개밥을 열심히 먹는 창업가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이 정도면 개밥을 먹는 게 아니라 완전히 핥아먹는 수준이다. 미팅 후 호텔로 돌아오면서 내내 생각했는데, 이런 팀에 투자해서 정말 자랑스러웠다.
자기가 어떤 제품을 만드는지 A 부터 Z까지 모르는 사람들이 무슨 사업을 하겠단 말인가? Amen to 개밥먹기.
HB
유익한 내용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