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말까지 프라이머 20기 선발 인터뷰/미팅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기수에는 서류지원 이후 50개 이상의 회사를 후보로 뽑았고, 이 중 10개 정도의 회사를 3주 동안 선발하는 일정으로 진행된다. 매번 할 때마다 느끼는 건, 굉장히 힘들다는 점이다. 다 좋은 창업가이고, 다 좋은 비즈니스인데, 이 중 20%만 선발하는 것도 힘들지만, 일단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분들과 만나야 하는 것 자체가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다. 나도 바빠서 주 중에는 주로 밤 9시 이후에 미팅하고 있고, 주말은 가급적이면 쉬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주말에도 미팅하고 있는데, 나도 쉽지 않지만, 미팅하는 창업가들도 힘들 것이다. 다시 한번 밤늦게, 그리고 주말에 시간 내주셔서 나랑 미팅한 창업가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달하고 싶다.

매번 힘들지만, 매번 큰 보람을 느끼기 때문에 이렇게 강행군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이번 기수도 너무나 다양한 분야에서,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로 사업을 하는 분들도 있었고, 너무나 뻔한 아이디어라서 “또 이런 사업이야?”라고 갸우뚱하면서 만났지만, 막상 이야기해보면 너무 잘하는 분들이 많았다. 엘리트 길만을 걸어온 전형적인 엄친아 창업가, 유학파 창업가,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스텔스’ 창업가, 어릴 적부터 사업을 해왔던 분들, 집안이 망해서 어쩔 수 없이 창업을 선택한 분들 등, 너무나 다양했다. 이 중 대부분이 떨어지겠지만, 프라이머 선발되고 투자 받는 게 사업의 목표가 아니기에, 모두 다 마음속으로는 응원한다.

스트롱도 초기에 투자하지만, 프라이머는 우리보다 더 앞 단계에 투자하기 때문에 1년에 두 번씩 여러 명의 창업가를 짧은 기간 안에 만나보면 시대의 흐름과 트렌드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요샌 어떤 서비스와 제품이 시장에서 유행하고 있고, 앞으로는 어떤 사업이 커질지 계속 스스로 상상해볼 수 있는 좋은 재료를 프라이머 인터뷰는 나에게 제공해준다.

각 회사와 45분 정도의 짧은 미팅을 하는데, 마지막에 내가 항상 물어보는 게 프라이머 지원 동기이다. 다양한 답변을 들을 수 있는데, 대부분의 창업가 분들이 프라이머의 코칭때문에 지원했다고 한다. 내가 이 분들에게 말씀드리는 건, 우리는 그냥 옆에서 응원하고 보조를 맞춰주는 역할을 하는 거지, 사업의 길을 보여줄 순 없다고 한다. 그동안 수 많은 사업과 창업가를 봤기 때문에, 각자 파트너의 경험과 시각을 바탕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해줄 순 있지만, 프라이머 선발되면 안 되던 사업이 갑자기 잘 되는 걸 바라면 완전히 틀리게 알고 있다는 조언을 여러 번 해 준 적이 있다.

악셀러레이터 선발, 또는 굉장히 유명한 VC로부터의 투자 유치, 이런 건 모두 사업에 있어서 부수적인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업의 본질은 시장이 좋아하는 제품을 만들어서 돈을 버는 것이다. 조언, 코칭, 투자는 이걸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재료이지, 본질이 될 순 없다. 결국 메인은 창업가가 알아서 만들어 가는 것이고, 이건 아무리 경험 많은 투자자나 멘토도 대신 해 줄 수 없다. 내가 항상 하는 말이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결국, 사업 자체가 좋아서 하는 거지, 투자를 받고, 어떤 투자자한테 인정받기 위해서 이 지저분하고 힘든 길을 가는 건 아니지 않냐.

어제도 밤 11시에 줌 미팅을 끝내면서, 아직 한국의 벤처 정신은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으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