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어떤 회사의 자료를 검토했는데, 자료만 봐도 우리가 투자하고 싶은 회사가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고, 굳이 서로의 시간을 낭비할 필요 없이 미팅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이러이러한 이유로 우린 더 이상 검토를 하지 않겠다고 거절을 했다. 나야 워낙 거절을 많이 하고, VC는 주로 Yes보단 No를 더 많이 하는 직업이라서 관련해서 더 이상 큰 고민을 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 회사의 대표에게 답변이 왔다. 다른 투자자는 만나도 아무런 피드백이 없고, 거절은 안 하지만 그냥 빙빙 돌려서 말하거나 대충 뭉그적거리는데, 그냥 확실하게 관심 없어서 안 만나겠다고 거절해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본인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해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솔직히 이런 이메일도 자주 받기 때문에 이분이 정말로 고마워서 답변을 한 건지, 아니면 감정이 상한 걸 돌려 말 한 건진 잘 모르겠다(그리고 솔직히 그런 것까지 생각하고 고민하면 난 이 일을 못 한다). 하지만, 아주 투명하고, 솔직하고, 빠른 커뮤니케이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이분이 진심이었다고 믿고 싶다.

현대인은 정말 바쁘다. 그리고 혼자서 수백 가지 일을 처리해야 하는 창업가들은 바쁜 사람 중에 제일 바쁜 사람들이다. 나는 이렇게 바쁜 사람들에게 우리 같은 투자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투자해서 한배를 타는 것이지만, 투자하지 못 하면, 최소한 이렇게 솔직하고 빨리 거절을 해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야지 이들도 move on하고 다른 투자자와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Yes도 아니고, No도 아닌, 애매한 상태로 이 관계를 계속 유지하면, 투자자로서는 큰 손해를 보지 않지만, 창업가로서는 이게 희망고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린 아니다 싶으면, 가급적이면 빨리 답변을 하면서 최대한 자세한 피드백을 주려고 노력한다. “최대한 자세히”라고 말하는 이유는, 가끔 우리 내부의 생각을 완전히 투명하게 공유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인데, 그래도 공유할 수 있을 정도의 내용을 솔직하게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우리와는 2시간 정도 미팅했고, 투자자는 2시간을 사용했지만, 이 미팅을 위한 준비 과정까지 합치면 창업가는 10시간 정도의 시간을 썼을 것이기 때문에, 이 시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솔직함과 신속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끔, 이렇게 빨리, 그리고 솔직하게 거절을 하면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역반응이 오는 경우도 있다. 너무 빨리 답변을 준 것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야기도 안 하고 그냥 귀찮아서 거절한 게 아니냐는 불평을 하는 분들도 있었고,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이렇게 직설적인 피드백을 주면서 자신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냐 하면서 서운해하신 분들도 있다.

혹시 나/우리한테 이런 부분 때문에 서운하거나 빡친 분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사과하고, 그런 의도는 전혀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어쨌든, 투자거절의사는 표현 안 하는 것보단 확실하게 해주는 게 더 좋고, 이왕 해주려면, 최대한 빨리 알려주는 게 가장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