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만 해도 매달 마지막 포스팅은 디지털 자산에 대한 내 생각에 관해서 썼는데, 이 분야가 너무나 빨리 변하고 있고, 우리가 이 분야에만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VC가 아니라서, 이젠 캣치업 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다. 매일 전 세계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읽고, 공부하고, 자세히 분석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올해는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있진 않고, 가끔 기사를 통해서 공부하고, 이 분야의 회사들을 만나면 간접적으로 최신 트렌드, 기술, 제품, 창업가들에 대한 소식을 듣고 학습하고 있다.

그래도 요새 가장 관심을 갖고 보는 분야가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이다. 2016년에 이더리움을 접했을 때 DAO라는 말을 처음 들었고, 꽤 재미있는 컨셉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게 7년 후인 지금 이렇게 난리가 날 줄은 몰랐다. 최근에 나름 여러 의견을 듣고, 참여도 좀 해보고, 시간 날 때마다 이 새로운 커뮤니티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는데, 내 개인적인 의견, 느낌, 경험이지만, 나는 DAO에 대해서는 아직도 갸우뚱이다. 비트코인을 처음 접했을 때도 실은 잘 이해는 못 했지만, 굉장히 긍정적인 믿음이 있었고, 이더리움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솔직히 이더리움을 최초의 DAO라고 보는 의견도 있지만, 지금 업계에서 흥분하고 있는 DAO에 대해서는 나는 아직은 좀 부정적이다. DAO가 정말로 메인스트림 커뮤니티/organization이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도 많고, 시간도 상당히 많이 걸릴 것 같다.

일단 DAO라는 약자 자체가 난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봤을 때 현재 DAO는 D(Decentralized)도 없고, A(Autonomous)도 없다. 단지, O(Organization)만 있을 뿐이다. DAO가 약속하는 건,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미리 약속된 프로토콜을 기반으로 완전히 투명하고, 완전히 탈중앙화된, 조직의 안건에 대해서 모두 다 투표권을 갖게 되는 가장 이상적인 조직이다. 말은 너무 좋다. D와 A는 그 어디에 갖다 붙여도 쿨해 보이고, 민주적이고, 모두가 바라던 그런 이상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만들어진 DAO를 보면, 조직의 많은 권한이 오히려 불투명하게 중앙화 되어 있고, 모두 다 결정권이 있는 것 같지만, 결정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구조가 안 만들어져 있어서 자율성 또한 부족한 것 같다. 실은, 내가 봤던 많은 DAO는 그냥 주식회사나 유한회사를 제대로 설립해서 투자받는 복잡한 프로세스를 우회하기 위해서 만들어졌고, 그러면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돈을 받고, 소수의 멤버가 본인들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아직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존재하는 형태의 조직이 아니라서, 투자금을 날리거나, 사기를 당해도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게 현실이다.

(나도 조금 보유하고 있는) 요새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ApeCoinDAO만 보더라도, D와 A는 없고, O만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정확한 수치는 확인을 못 했지만, 내가 알기론 BAYC NFT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한테도 ApeCoin이 배포됐지만, 모기업인 Yuga Labs와 Yuga Labs의 창업자들에게 많은 코인이 배포됐고, a16z와 같은 ‘파트너’들에게도 많은 코인이 배포됐는데, 잘 알다시피 a16z는 Yuga Labs의 투자자이다.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ApeCoinDAO는 decentralized가 아니라 오히려 centralized에 가깝고, 뭔가 이벤트가 있을 때 투표도 on chain에서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autonomous의 성질 또한 매우 약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고 모든 DAO를 싸잡아서 비방하는 건 아니다. 어떤 DAO는 잘 설계됐고, 거버넌스와 코디네이션 또한 잘 되어 있지만, 극소수인 것 같다. 한 번도 안 만나봐서 본질적인 신뢰가 구축되지 않은 다수로부터 펀딩받기엔, DAO는 아주 쉽고 효과적인 커뮤니티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남의 돈을 투자받으면, 그 뒤에 따라오는 여러 가지 책임, 권리, 거버넌스, 운영 등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데, 이게 빠진 것 같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어떤 지인과 했는데, 대뜸 이분이 나한테 하는 말이, “그런데 Sequoia와 a16z와 같은 엄청난 VC들이 DAO를 지지하고 여기에 투자하는데, 네가 이 사람들보다 똑똑해? 투자를 더 잘해? 니가 뭔데 DAO가 이상하다고 해?” 였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들이 우리보다 훨씬 더 큰 펀드를 운용하면서, 어마한 투자를 하고 있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내가 투자를 이들보다 못하거나, 멍청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냥 이건 욕심, 두려움, 잡음, 그리고 시장의 흥분을 배제하고, 아주 냉철하고 냉정하게 생각을 해보면, DAO라는 유행어 때문에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우리가 모두 진정으로 원하는 DAO가 만들어지기 위해선 생태계 많은 분들의 단결, 노력과 협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