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포트폴리오 회사의 70% 정도에 스트롱이 첫 번째 기관 투자를 했다. 그만큼 일찍 투자하는 걸 선호한다. 그리고 이렇게 첫 번째 기관 투자하는 회사의 절반 이상에 우리가 단독 투자한 거로 알고 있다(정확한 계산은 아직 안 해봤다). 일찍 투자하는 걸 우린 선호하지만, 이렇게 투자하면 굳이 다른 공동 투자자와 같이하는 것 보단, 혼자 단독 투자하는 걸 더 선호한다. 투자의 효율성과 속도를 위해 클럽딜 자체를 별로 안 좋아하고, 맘에 드는 회사가 있으면 굳이 다른 곳과 같이 투자하면서 보험?을 확보하는 게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항상 단독 투자하는 건 아니다. 투자하고 싶은 회사를 만났는데, 이미 이 회사가 우리보다 먼저 다른 투자자와 이야기하고 있었거나, 아니면 회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다른 투자자랑 같이 투자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공동 투자할 때도 우린 가장 크게 투자해서 우리가 리드하는 걸 선호한다. 정해진 방법은 없지만, 여러 명의 VC가 같이 투자할 때는 주로 가장 많은 금액을 투자하는 리드 투자자가 계약 조건을 결정하고, 계약서 또한 리드 투자자의 계약서를 다른 투자자들이 그대로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물론, 각 투자사마다의 방법과 원칙이 다르기 때문에 남의 계약서를 그대로 사용하는 게 힘들 수 있어서, 대세에는 지장 없는 수준에서 사소한 내용을 수정하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 이건 생각해보면 꽤 상식적이다. 여러 명의 투자자가 참여하지만, 같은 라운드에서 발행되는 같은 종류의 주식이 다른 성격을 갖는다는 건 일반적이진 않다.

하지만, 리드 투자자보다 훨씬 적은 금액을 투자하고, 심지어는 투자가 거의 마무리된 시점에 막차로 들어와서 투자하면서, 굵직한 계약 내용을 리드 투자자와 굳이 다르게 가져가는 경우를 나는 상당히 많이 봤다. 그것도 가장 먼저 총대를 메고, 가장 큰 금액을 투자하는 리드 투자자보다 본인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끝까지 고집하는 경우도 본 적이 많다. 실은, 이건 피투자사 대표가 투자 협의하는 과정에서 알아서 교통정리를 잘 해줘야지 모든 과정이 수월하게 진행되는데, 돈을 받는 대표 입장에서는 이렇게 잘 못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주로 리드 굳이 다른 조건을 고집하는 다른 투자자와 이야기해서 정리해야 한다.

10억 라운드에 1억도 투자하지 않는 공동 투자자에게 굳이 다른 조건을 고집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 “우린 원래 이런 조건으로 투자해야 합니다.”라는 1차원적인 대답을 듣는다. 여기에다가 “우리도 원래 이렇게 투자합니다.”라고 대답하면, 이건 그냥 서로 싸우자는 거라서 어쨌든 상대방을 잘 설득해서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런걸 설득하다 보면, 뭐 대단한 거라고 굳이 이런 것까지 리드 투자자가 해야 하냐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특히, 내가 사람이 아니라 벽과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는.

내가 항상 강조하지만, “원래 그런 건” 이 세상에 없다. 세상은 계속 변하고, 이에 따라서 모든 게 변해야 한다. 대기업, 공공기관 또는 금융기관이라서 몇 가지 원칙이 있다는 건 이해하지만, 과거에는 통하던 방식이 현재에도 통하라는 법은 없다. 이게 현실이라면, 현실에 맞춰서 스스로를 바꿔야 한다. 수십 년 동안 해 왔던 방식을 못 바꿀 정도로 변화의 의지가 없는 경직된 조직이라면, 그냥 이 스타트업 게임에서 빠지면 된다. 실은 굳이 본인들이 빠지지 않아도, 언젠가는 밀려나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