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로봇을 만드는 하드웨어 스타트업 몇 군데와 미팅을 했다. 어떤 회사는 모빌리티 분야의 자율주행 로봇을 만들고 있고, 어떤 회사는 재활의료용 로봇을 만들고 있고, 어떤 회사는 F&B 분야의 로봇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한 번도 엔지니어링 관련된 일을 한 적은 없지만, 기계공학을 공부해서 그런지, 로봇이랑 하드웨어 분야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항상 있다.

이분들의 공통 걱정거리가 있었다. 본인들이 엔지니어나 과학자 출신이라서, 어떻게든 연구 개발을 해서 제품은 만들 수 있는데, 이걸 판매하는데 모두 다 고전하고 있었다. 내가 봤을 때, 현재 만들고 있거나, 또는 이미 만든 제품은 꽤 괜찮고 우리의 생활에 어느 정도의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것 같은데, 꽤 오랜 세월 동안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가 적용되지 않고 주로 사람이 일을 하던 분야라서 그런지 갑자기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데에는 변화하기 싫어하는 인간 본연의 습성과 관성이 너무 크게 작용하고 있던 것 같다.

아니면, 어떤 잠재 고객사들은 이미 이 시장에서 오랜 기간 동안 시장을 점유하고 있던 기존 플레이어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새로운 스타트업이 만든 제품이 월등하고 좋더라도, 역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걸 두려워하고 꺼리는,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여기서도 그대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저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커서, 아무리 혁신적인 제품이 발명돼도 실제로 시장에서 도입되기까진 상당히 시간이 오래 걸린다.(그러니까, 도입되면 말이다. 대부분의 경우, 아무리 제품이 혁신적이어도 그냥 구닥다리 기존 제품을 사용하는 게 더 일반적이다.)

이런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 대부분은 새로운 기술과 제품이 시장에서 도입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언젠가는 우리 제품을 구매할 거라고 기대하면서 인내심을 갖고 계속 기다린다. 실은 맞는 전략이지만, 이렇게 하면 5년이 걸릴 수도 있고, 10년이 걸릴 수도 있다. 돈이 없는 스타트업에겐 매출 없이 버티기엔 너무나 긴 시간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 많은 창업가는 우리 제품을 직접 사용해서 본인들이 자신의 고객이 되는 선택을 한다.

미국에 Creator라는 로봇 식당이 있다. 원래 이 회사의 창업가는 햄버거를 만드는 로봇을 직접 만들었고, 이 로봇을 맥도날드나 버거킹과 같은 햄버거 프랜차이즈에 판매하려고 했는데, 위에서 말했던 여러 가지 이유로 기존 햄버거 식당이나 체인점에서의 도입까진 잘 이어지지 않았다. 대충 분위기를 보니, 이런 햄버거 체인점에 로봇을 실제로 판매하는 게 거의 불가능해 보였고, 판매로 이어지더라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결국, 이 로봇으로 햄버거 식당을 차려서, 본인의 하드웨어로 직접 개밥을 먹어보기로 하면서 Creator라는 로봇 햄버거 식당을 열게 됐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지만, 팬데믹 때문에 많은 식당이 문을 닫은 거로 알고 있다.

우리 투자사 중 레인지엑스라는 골프시뮬레이터를 만드는 스타트업이 있다. 첨단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이용해서 골프 스윙을 분석해주는 솔루션을 만드는 회사인데, 원래는 이 제품을 기존 실내 골프 연습장에 판매하려고 했다. 막상 시장에 나가보니 대부분의 실내 골프 연습장에는 이미 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외산과 국산 솔루션이 설치되어 있었고, 아무리 레인지엑스 제품이 더 좋고, 더 빠르고, 더 싸도, 이미 설치되어 있는 제품을 갈아엎는 건 시간이 너무 많이 필요한 작업이라서 위에서 말한 Creator와 같이 본인들이 직접 레인지엑스 이름으로 자사 제품이 설치된 실내 골프 연습장을 운영해보기로 했고, 현재는 여러 개의 매장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실제로 시장에 제품을 적용하면서 버그를 수정할 수 있었고, 골프 연습장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접 배울 수 있었다. 수년을 이렇게 직접 자사의 제품으로 골프 연습장을 운영하다 보니,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인지도가 생겼고, 이제 조금씩 다른 골프연습장에서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

물론, 이렇게 자신의 하드웨어를 개밥먹기 하는 게 항상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 제품만 만들어서 판매하면 되는 간단한 비즈니스모델이 아닌, 직접 식당이나 매장까지 운영해야 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그 난이도와 복잡도가 수배가 되기 때문에 새로운 사고방식, 시각, 그리고 인력이 필요하고 돈도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만든 좋은 하드웨어를 그 누구도 선뜻 구매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스스로의 고객이 되어서 본인이 만든 제품을 직접 개밥 먹기를 하는 방법도 고려해보길 권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