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레이징하는 창업가들이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건 바로 현실과 이상을 철저히 구분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일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당연히 창업가들을 만나는 건데, 이 중 당장 투자유치를 하지 않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 현재 펀드레이징 중이고, 스트롱에게 투자받기를 희망하는 창업가들이다. 우리도 워낙 많은 회사를 검토하고 투자 유치가 급한 회사들에 검토의 우선순위를 할당하면서 일을 쳐내기 때문에 항상 하는 질문 중 하나가 펀드레이징 타임라인이다. 즉, 이번 투자유치가 얼마나 급한가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가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회사인데, 현금이 아슬아슬해서 금방 런웨이가 끝나는 상황이면 우선순위를 높게 하고 검토한다. 또한, 다른 VC와도 이야기하고 있고, 몇몇 투자자들과의 대화가 깊게 진행되고 있다면, 이런 회사들도 우린 우선순위를 높게 하고 검토한다. 느낌이 좋은 창업가인데, 우리의 바쁜 상황 때문에 느리게 검토했다가 다른 VC에게 투자를 받고 라운드가 마무리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요새 아주 자주 느끼는 건, 상당히 많은 창업가들이 VC들의 의향에 대해서 착각하고, 현실을 똑바로 못 보고 본인들이 바라는 이상대로 생각하고 믿는다는 점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면, 몇 달 전에 한 회사를 만났는데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 창업가에게 펀드레이징 타임라인에 대해서 물어보니, “최근에 XYZ 벤처스가 커밋했고, 3주 안으로 마무리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라고 해서 우리도 현재 검토하고 있는 다른 딜들을 일단 보류하고 이 딜을 먼저 검토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 창업가는 다른 VC들과 미팅하면서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던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위에서 말 한 커밋했다는 투자사의 담당자를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커밋은 커녕, 딜 검토를 진행할지 말지 결정도 안 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3주 안에 마무리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는지 물어보니, 상당히 황당해하면서, 그건 그 VC의 일반적인 투자 프로세스에 관해 이야기한 건데, 대표이사가 철저하게 본인이 이해하고 싶은 데로 받아들인 것 같다고 했다.
또 한가지 예는, 창업가는 그 투자 라운드에 여러 명의 VC가 커밋해서 이미 마무리 됐다고 하면서 스트롱이 들어 올 수 있는 룸이 없다고 하는데, 막상 커밋했다고 하는 VC들과 확인해 보면 몇 번 가볍게 미팅만 했지, 투자 한다고 커밋 한 적은 전혀 없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역시 룸이 안 남았다고 우리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던 창업가는 한 달 후에 다시 연락와서 펀드레이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했다.
왜 이런 일이 있을까?
창업가들이 현실을 제대로 보지 않고, 본인들이 믿고 싶고, 보고 싶은 이상만 봐서 그렇다. 그리고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VC들을 잘 못 읽어서인 것 같다. VC들도 사람이라서 모두 다 성향, 인상, 태도, 어법, 표정 등이 다르고, 한 사람을 읽는 것도 어려운데, 이렇게 다양한 사람을 읽는다는 건 정말 어렵다. 두 사람이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같은 말을 해도, 이들이 의도하는 건 완전히 반대인 경우도 있다. 특히, VC는 소위 말하는 어장 관리를 해야 하는 업종이라서 가끔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투자하겠다는 건지, 안 하겠다는 건지, 나도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들이 명확하게 이야기해도 창업가는 다르게 이해하는 경우도 많다. 내가 다수의 VC가 한 회사의 피칭을 듣는 자리에 참석했는데, 한 투자자가 이 회사에 특별한 애정을 보이면서, “우리는 10억까진 할 수 있고, 리드도 할 수 있다. 당장 내부에서 작업을 시작해 보겠다.”라는 말을 했다. 나도 아주 명확하게 들었다. 그런데 같은 창업가가 다른 자리에서 그 투자자가 10억을 커밋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 나는 봤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이 창업가는 정말로 그때 들은 말이 회사에 10억을 투자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했다고 한다. 어쩜 이렇게 현실을 제대로 못 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VC들을 잘 읽어서 현실과 이상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텀싯이다. 아무리 투자자들이 당신의 회사에 투자하고 싶다고 하고, 투자하겠다고 하고, 내부 투심에서 무조건 통과시키겠다고 해도, 텀싯을 주지 않으면, 그 VC는 투자하지 않는 거다. 이게 현실이다. 이미 커밋한 VC가 있다고 하는 창업가들에게 내가 항상 텀싯을 받았는지 물어보는데, 돌아오는 답변은 대부분 비슷하다. “아직 텀싯은 안 받았는데, 구두로 확실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 “원래 이 VC는 텀싯 없이 투자한다고 합니다.” 등의 답변인데, 이런 투자자들이 투자하는 걸 난 보지 못했다.
간절하게 펀드레이징 하는 건 좋은 자세이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은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길게 쓰셨지만 결국 두가지 포인트인거 같네요.
첫째는 결국 투자 계약서 도장을 찍기전까지 투자가 확정된 것이 아니다. 이부분은 투자사에서 투자 진행 상황에 대한 문서를 에시당초 요청하면 될 일인 거 같습니다. 글에도 작성하셨듯이 투자 검토 기간 내 텀싯이라도…
둘째는 이미 다른 투자사에 투자를 받은 기업들이 이어지는 후속 투자도 받을 확률이 높다.
투자를 받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이 있기에 당장 몇달 뒤를 예측할 수 없는 스타트업의 입장에서는 자금이 급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거의 대부분일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미 투자를 확정적으로 받은 스타트업에게 후속 투자를 하려는 투자사의 손실 회피 성향도 큰 이유인 거 같다고 생각됩니다.
투자가 진행되는 동안 미팅을 하다보면 결국 각자의 동상이몽에 빠지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시간이 돈인 스타트업의 입장에서도 헛된 시간을 낭비해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칼럼이었습니다.
한 투자자가 이 회사에 특별한 애정을 보이면서, “우리는 10억까진 할 수 있고, 리드도 할 수 있다. 당장 내부에서 작업을 시작해 보겠다.”라는 말을 했다. 나도 아주 명확하게 들었다. 그런데 같은 창업가가 다른 자리에서 그 투자자가 10억을 커멋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 나는 봤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이 창업가는 정말로 그때 들은 말이 회사에 10억을 투자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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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저렇게 말씀을 하셨다면, 저도 투자를 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해석했을 것 같아요…(창업자)
그래서 정말 VC도 창업자도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가 봅니다. 그리고 텀싯 받기 전엔, 도장찍기전엔 어찌될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네, 둘 다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합니다. 말씀하신대로 투자를 하겠다는 강한 의지는 분명히 있지만, 그렇다고 이게 투자로 이어질 확률은 반반이예요. 하지만, 이 경우에는 확실히 창업가 분이 잘 못 해석한 겁니다.
VC가 여러 번 만나는 건 분명 관심의 표현이다.
하지만 그만큼 아직 해소되지 않은 리스크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그 미팅은 텀싯을 받기 위한 ‘과정’일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확약은 아니다.
반대로, 진짜 확신이 있는 VC는 한 번의 미팅으로도 텀싯을 제시한다.
결국, VC의 진심은 말이 아니라, ‘얼마나 빠르게 텀싯을 주느냐’에 달려 있다.
“관심=미팅 횟수”로 드러나고, “진심=텀싯 속도”로 드러난다.
빠르게 움직이는 VC는 이미 마음을 정한 VC다.
잘 정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한 번의 미팅으로 텀싯을 주는 VC는 요샌 거의 없습니다 🙁
한 투자자가 이 회사에 특별한 애정을 보이면서, “우리는 10억까진 할 수 있고, 리드도 할 수 있다. 당장 내부에서 작업을 시작해 보겠다.”라는 말을 했다. 나도 아주 명확하게 들었다. 그런데 같은 창업가가 다른 자리에서 그 투자자가 10억을 커멋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 나는 봤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이 창업가는 정말로 그때 들은 말이 회사에 10억을 투자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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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 부분을 글로만 읽으면 창업가보단 투자자의 커뮤니케이션이 더 나빴던 것 같아서,
(창업가가 그렇게 이해할만하다고 생각해서) 잘 이해가 안 되어서.. 어떤 뜻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스타트업 다니고 있는 개인입니다.
제가 글을 읽으면서 이해하기로는
– 우리는 (최대) 10억까진 투자 할 수 있고,
– (다른 투자사들이 리드로 투자하지 않았더라도,) 리드로 투자할 수 있다.
– 당장 내부에서 작업을 시작해 보겠다 (시작은 하지만 결과 확정은 아직 안됨.)
즉, 실제로는 10억 이하로 투자할 수 있고, 작업을 시작하지만 내부 의사결정에 따라 진행이 좌절될 수 도 있어서
“이 회사에 10억을 투자한다.” 라는 뜻으로 해석하기엔 약간의 비약이 있는게 아닐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제가 이해한게 맞는지 모르겠네요
뭐, 누가 더 나빴냐는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투자자는 투자하고 싶은 강한 의지가 있었고, 그렇게 말을 한 건데요, 여러명의 파트너와 의사결정권자들이 있는 회사에서 한 명의 투자자의 강한 의지가 항상 실제 투자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한 투자자가 이 회사에 특별한 애정을 보이면서, “우리는 10억까진 할 수 있고, 리드도 할 수 있다. 당장 내부에서 작업을 시작해 보겠다.”라는 말을 했다. 나도 아주 명확하게 들었다. 그런데 같은 창업가가 다른 자리에서 그 투자자가 10억을 커멋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 나는 봤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이 창업가는 정말로 그때 들은 말이 회사에 10억을 투자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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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거절의 멘트였나요? ㅎㅎㅎㅎ 이런게 거절멘트라면 그 멘트한 투자사사 더 나쁜 사람 같은데요.. 상대한테 헛된꿈을 주고.. 본인은 좋은사람 이미지 챙기고.. 근데 거절이라…. 흠..
거절의 멘트는 아닙니다. 아마도 투자자는 하고 싶었겠지요. 하지만, 회사 안에서 이 하고자 하는 의지만으로는 – 특히, 투자자가 높은 파트너가 아니라면 – 꼭 투자가 되는 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