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한테 투자 받기

엔젤 투자를 유치하고 있는 어떤 젊은 친구랑 밥을 먹는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
“배 대표님, 실은 저희 아버님께서 대기업 CEO입니다. 할아버지는 이름만 들으면 아는 K씨고요. 전부터 부모님께서 3억 정도 종잣돈을 대주시겠다고 하는데, 영 껄끄럽더라고요. 나중에 잘못되면 아버님 보기도 미안하고요. 도리가 아니라 거절했습니다.”

나는 밥먹다가 젓가락을 책상에 던지면서,
“야 이 새끼야! 너희 아버님 돈은 잘못되면 미안하고 우리 돈은 잘못돼도 괜찮다는 말이냐!” 라고 버럭 한마디 해줬다.

가족의 돈으로 사업을 하는거에 대한 독자분들의 생각은? 한국과 미국을 막론하고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대로 가족의 돈으로 사업을 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완전히 반대다. 초기 펀딩을 유치할 시점에는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이 제품이 없다. 단순한 아이디어 또는 아주 early alpha 버전만 가지고 있을텐데 이걸 가지고 기관 투자자한테 투자를 받는다는건 정말 힘들다. 과거에 성공적으로 exit한 경험이 없거나 지금 잘나가는 제품이 없으면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한테 투자를 받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 시점에 유일하게 나를 믿어주고 제품이나 아이디어 보다 ‘나’라는 사람에 투자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다. 즉, 가족 또는 친구들이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투자받으면 좋다. 내 천사들은 항상 주위에 있고 나를 잘 안다. 막말로 사업하다 망해도 내가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감옥 갈 일은 (거의) 없다. 또한, 가족한테 투자를 받았다는 사실이 향 후 기관 투자자들한테 아주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다. 창업가 자신의 돈, 땀, 피, 노력 그리고 창업가 가족의 돈까지 스타트업에 쏟아 부었다면 정말로 이 창업가는 완전이 올인하고 있구나 라는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있다. 내가 하려는 서비스도 유행을 탄다. 언제 유행이 끝날지 모르니, 돈을 주겠다면 아는 사람 돈은 무조건 받아서 빨리 시작해야 한다. 도리 어쩌고는 핑계다. 그런 창업가는 자신이 없는 것이다.

가족이 투자를 하겠다면 고맙게 생각하고 맘 바뀌기 전에 빨리 받아라. 그리고 그 돈을 가지고 죽을 힘을 다해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성공해라. 성공해서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면 된다.

From ‘스타트업 바이블2: 계명 17 – 가족이 투자하겠다면 축복이다, 받아라

한국의 tech 기자들은 어디에?

스페인의 청년 실업률은 56%다. 스페인 청년 2명 중 1명은 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한국의 청년실업도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현재 구직 중인 한국의 취업희망생들에게 내가 추천해 주고 싶은 유망 업종이 하나 있다. 바로 tech 전문 기자/편집자이다. 최근 들어 내가 매일같이 느끼고 있는 게 바로 한국에는 전문성을 가진 tech 기자가 없다는 점이다 (혹시 내가 몰라서 그럴지도 모르니 만약에 있다면 이름이랑 연락처를 좀 알려주세요).

우리는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Tech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전자신문이나 디지털타임스와 같은 IT 전문 신문 (내가 보기에 전문성은 별로 없지만), 조/중/동 메이저 신문의 IT 취재팀들 그리고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이 있는 블로터, 비석세스 (공시: Strong Ventures는 비석세스의 투자사이다), 벤처스퀘어, 플래텀과 같은 tech 블로그들이 매일같이 수십 개 ~ 수백 개의 tech 관련 기사들을 만들어서 발행한다. 문제는 이 많은 기사 중 정말 시간을 내서 읽을만한 기사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주로 미국의 tech 기사들을 먼저 읽고 한국의 매체를 접한다. 대부분 전날 미국의 기사들을 재탕한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미국의 매체)에 의하면….”으로 대부분 기사가 시작된다..

왜 한국에는 제대로 된 tech 기사들을 찾을 수가 없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제대로 된 tech 기자들이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tech 기자들이 없고, 이들이 쓰는 제대로 된 tech 기사들이 없는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1. 대부분의 기자는 한 분야만 파고들지 않는다. 대부분 2~3년을 주기로 한 기자가 문화부/정치부/사회부/IT부 등 뺑뺑이 돌려진다. 한 분야를 제대로 알려면 최소 5년에서 10년이라는 기간이 필요한데 이렇게 단기간 뺑뺑이를 돌면 아주 얄팍한 지식만 쌓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진정성이 있고 통찰력이 있는 기사가 나올 수 있을까.

2. 물리적인 거리 문제도 있다. 기사의 생명은 originality와 희소성인데 이런 내용의 기사를 쓰려면 정보력이 매우 중요하다. Tech의 메카인 실리콘 밸리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서울에서 이런 정보력을 확보하는 건 매우 힘들다. 하지만, 그나마 Facebook이나 Twitter와 같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열심히 노력하면 거의 실시간으로 정보력 확보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3. 영어를 잘 못한다. 창업가들한테도 영어는 골칫거리지만, tech 기자라면 영어는 더욱 중요하다. 위 2번 포인트에서 말했듯이 tech의 메카인 실리콘 밸리의 모든 소식은 영어인데 영어를 잘 못 하면 이해를 못 할뿐더러 오번역을 하기가 너무 쉽다. 외주 번역을 맡기면 그만큼 시간이 낭비되고 originality 또한 희석된다. (추가됨: 2014년 9월 13일)

4. 기자들이 게으르고 생각이 없다. 이게 가장 심각한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진득하게 앉아서 생각한 후에 자신만의 생각과 객관적인 data를 바탕으로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들을 써야 하는데 그냥 외국 기사들을 베끼는 데에만 집착하다 보니 수준 낮은 글들만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는 여러 tech 매체 중 TechCrunch를 가장 즐겨 읽고 좋아하는데 – AOL에 인수된 후에 quality가 많이 떨어졌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 대기업이나 정부의 눈치는 신경 쓰지 않는 기자들의 대담함과 진지하게 생각하고 data를 분석할 수 있는 통찰력이 맘에 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같은 내용에 대해서 (e.g. Facebook의 주가 하락) 미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신문 중 하나인 Wall Street Journal의 기사를 비교해서 읽어봐도 TechCrunch의 내용이 훨씬 더 깊은 통찰력과 조사/연구가 뒷받침되어 있는 거 같다.

이런 이야기를 한국의 기자분들이나 미디어에 하면 모두 다 위에서 내가 말했던 이유나 다른 변명을 한다. 본인들도 실리콘 밸리에 있고, TechCrunch의 기자들과 같은 대우와 권위를 가질 수 있다면 높은 수준의 기사를 쓸 수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10년 이상 기자 생활을 하신 분들이 TechCrunch의 대학생 인턴 (19살)보다도 통찰력이 없고 형편없는 글들을 쓸까…

나도 글을 꽤 많이 쓰는 편이다. 물론 나는 직접 tech 업계에서 일하고 있고, 많은 정보를 현지에서 접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적합한 타이밍에 적절한 글들을 많이 쓴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기자’라는 명함을 가지고 글 쓰는 걸 밥벌이로 하는 분들이 취미로 글을 쓰는 나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기사를 쓰는 건 정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왜 그럴까?” , “다른 회사/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 ,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은?”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 하지도 않고 고민도 하지 않으니까 좋은 글보다는 인터뷰만 여기저기에 실리게 되는 것이다. 인터뷰가 나쁘다는 건 절대로 아니다. 하지만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거는 답변이 아니라 질문들인데 뭘 알아야지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지. “어떻게 회사를 시작하셨나요?” 뭐 이런 류의 식상한 질문으로 만들어진 인물 인터뷰는 솔직히 이제 질린다..

2012년 9월 4일 Mashable에 “Gangnam Style! The Anatomy of a Viral Sensation [INFOGRAPHIC]“이라는 기사를 Sam Laird라는 미국 기자가 썼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기반으로, 1. 다른 유투브 뮤직비디오와 비교 2. 한국이라는 나라 3. 강남이라는 지역 4. 싸이에 대해서 아주 간단하고 재미있게 비교한 내용이다. 그런데 이 기사를 미국 기자가 썼어야 했을까? 싸이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한국의 tech 기자들은 왜 이런 재미있고 통찰력 있는 비교 분석을 하지 못했을까?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모든 정보와 data는 그냥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그런 흔한 숫자들이다.
‘싸이 요새 잘나간다.’라는 생각만 하지 이런 식으로 분석을 해볼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다. 관심도 없고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바이블 2 – Kindle Edition

지난 몇 일 동안 많은 분들이 ‘스타트업 바이블 2’를 iTunes Bookstore에서 찾을 수 없다고 항의/문의가 들어왔다. 실은 iTunes에서 스타트업 바이블 2를 당분간 내렸다.
아이북스를 시작으로 국내/외 주요 온라인 서점에서 전자책 판매를 시작했고 그동안 요구맹 출판사와 같이 아주 자세히 판매실적을 모니터링을 해왔는데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특히 스타트업 바이블 1권 종이책의 실적과 비교했을때 전자책 판매 실적은 정말 형편 없었다 (약 1/10 수준). 정확한 원인은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내가 단기적으로 내린 결론은 1. 아직 한국의 전자책 시장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2. iTunes가 아직 한국에서 오픈되지 않았다, 정도인거 같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조금 더 자세히 쓰겠다.

다만, 미비하지만 전자책 판매실적을 분석해보면 몇가지 재미있는 트렌드가 보이는데 바로 아마존의 강세이다. 한국에서 킨들이 보급되지 않았고, 아마존 코리아가 있는것도 아닌데 아마존에서 스타트업 바이블 2의 판매가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물론 리디북스나 예스24도 꾸준히 판매는 되고 있지만 아마존 만큼은 아니다). 그래서 몇개월 동안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당분간 iTunes에서 스타트업 바이블 2를 내리고 아마존을 통해서만 판매를 해보기로 했다.

여기서 구매할 수 있다: 스타트업 바이블 2 킨들 버전

외주의 종말

스타트업을 운영하다 보면 누구나 다 개발이나 디자인을 외주(outsourcing)해본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경험은 제각각 다르겠지만 대부분 좋지 않거나 결과물이 뭔가 모자란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나 또한 개발과 디자인을 외주한 경험이 많은데 사람을 찾지 못해서 매번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했던 만큼 결과 역시 상당히 좋지 않아서 이젠 절대로 외주를 하지 않는다. Strong Ventures는 핵심 개발과 디자인을 외주로 처리하는 회사에는 절대로 투자를 하지 않는다. 이걸 재해석하면 창업팀에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없으면 웬만하면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이런 회사들은 유료 고객을 유치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확률이 거의 제로이기 때문이다.

좋은 서비스를 만든다는건 정말 힘들다. 특히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수십가지 또는 수백가지 선택의 옵션을 가지고 있는 고객의 입맛에 맞는 서비스를 만드는 건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어렵다. 아마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분은 경험으로 이런 현실과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 변덕스러운 고객의 취향에 맞는 서비스는 어떻게 개발할까? 정답은 디자인 -> 개발 -> 테스팅 -> 디자인 -> 개발 -> 테스팅의 반복이다. 영어로 여러 가지 표현이 있겠지만 ‘product iteration’이 가장 적합한 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시장은 너무나 빠르게 바뀌기 때문에 어차피 우리가 고객의 취향을 100% 만족하게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완벽하게 준비해서 출시하는 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서비스를 launch 하는 과정 중에도 시장은 계속 바뀌고, 새로운 경쟁사가 출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머리에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를 빨리 디자인하고 개발해서 MVP(Minimum Viable Product)를 출시하는 게 중요하다. 진정한 제품개발은 바로 이 MVP를 출시 한 후에 시작된다(그런데 내가 아는 많은 회사는 제품을 일단 출시하면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한다).

출시 후에 고객의 반응을 잘 살펴봐라. 그리고 지속해서 테스팅을 해봐라. 가령, ‘구매’ 버튼을 화면의 우측 상단에 놓을지(A), 좌측 하단에 놓을지(B) 또는 화면 정중앙에 놓을지(C) 너무 고민하지 말아라. 랜덤으로 A, B, C 테스팅을 한 후에 가장 클릭과 구매율이 높은 위치를 선택해서 구현하면 된다. 버튼의 색은? 이 또한 테스팅을 통해서 유저들이 가장 많이 클릭하는 색깔을 선택하면 된다. 중요한 건 24시간 x 7일 계속 이런 테스팅을 통해서 시장에서 가장 잘 먹힐만한 제품으로 우리의 서비스와 기능들을 최적화하는 작업이다. 이게 서비스의 성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이런 빠른 테스팅을 – 내가 아는 몇몇 스타트업들은 하루에 이런 테스트를 5번 이상 한다 – 제대로 하려면 반드시 회사 내부에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단시간 내에 지속적인 product iteration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좋은 UI/UX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Pinterest의 grid design에 우린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별거 아닌 거 같지만, 핀터레스트 공동창업자 Evan Sharp는 이 최적화된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서 무려 50가지 버전의 그리드 디자인을 만들어서 실험했다고 한다. 그는 이런 끊임없는 테스팅을 통해서 사용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그리드 열의 너비, 색감, 사진을 나열하는 방법 등을 최적화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그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버전은 192픽셀의 고정 너비와 지속해서 변화하는 높이의 그리드형 UI이다.

디자인이랑 개발을 외주하면 과연 이런 빠른 product iteration이 가능할까? 돈 받은 만큼만 일하는 외주업체가 이런 거 신경이나 쓸까? 절대로 불가능하다. 특히 외국에 있는 외주업체라면 위에서 말한 A,B,C 테스팅 한 사이클 돌리는데 일주일이 넘게 걸린다. 그래서 디자인과 개발을 외주로 처리하는 스타트업에서 시장을 장악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게 힘들다는 것이다.

제품 개발을 외주로 처리하는 시대는 이제 끝났고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기업문화에 대해서

대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기업문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회사의 올바른 성장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좋은 기업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경영학 학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나도 좋은 기업문화를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들고, 그 기업문화가 전사적으로 퍼지고 뼛속까지 파고들려면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리는지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알고만 있었는데 최근에 직접 체험하고 느낀 점들이 있어서 몇 자 적어본다.

에너지 드링크로 유명한 Red Bull의 북미 본사가 LA에 있는데 얼마 전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시간이 좀 남아서 난 근처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하나 사서 마시면서 Red Bull 입구로 들어갔다. 일단 리셉션에서 check-in을 하는데 리셉셔니스트가 나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보면서,

리셉셔니스트: 지금 도대체 뭘 마시고 있나요?
나: 커피 먹고 있는데…왜요? 어차피 (레드불과) 같은 카페인 아닌가요?
리셉셔니스트: Oh my god…그런 쓰레기를 마시다니…

뭔가 좀 찜찜한 기분으로 로비에 있는 소파에 앉아서 미팅 상대를 기다렸다…커피를 마시면서. 그런데 로비를 왔다 갔다 하는 모든 레드불 직원이 지나가면서 나랑 내 손의 스타벅스를 번갈아 보면서 좋지 않은 표정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지나갔다. 아무리 얼굴에 철판을 깐 나이지만 이 정도 되니까 이 회사의 분위기 파악이 되면서 스타벅스를 들고 있는 손이 좀 민망해져서 커피를 그냥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러자마자 리셉셔니스트가 갑자기 차가운 레드불 한 캔을 가지고 왔다. “이런 게 바로 진짜 음료수죠.”라고 매우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솔직히 난 레드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의 박카스를 더 좋아하면 좋아했지……하지만, 레드불에서의 불쾌/유쾌했던 이 경험은 ‘기업문화’에 대한 아주 강한 이미지를 내 머리에 각인시켜 줬다. 솔직히 ‘리셉셔니스트’라는 포지션은 일반적으로 아주 low level의 포지션이다. 내가 아는 다른 회사의 모든 리셉셔니스트들은 회사에 대한 애사심은 전혀 없다. 대부분 회사가 뭘 하는지 잘 알지도 못한다. 그냥 리셉션에 앉아서 미소를 지으면서 손님 안내하고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하면 되는 그런 포지션이다. 그리고 언제나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이라는 게 회사의 생각이자 본인들의 생각이기도 하다.

그런데 레드불의 리셉셔니스트는 타사의 드링크를 마시고 있는 손님한테 감히 시비를 걸면서까지 자기 회사의 제품을 홍보하고 권했다. 그냥 회사에서 시킨 게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애사심 때문이었다. 미팅 내내 레드불은 회사의 대표이사부터 말단 리셉셔니스트까지 ‘Red Bull’이 전 직원의 핏속에 흐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단한 하드코어 기업문화다.

애플도 레드불 만만치 않은 기업문화가 있다. 스티브 잡스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전사적으로 ‘디자인’ 우선주의 문화가 팽배해 있다. 애플 제품을 배달하는 물류창고에 가보면 작업자들이 애플의 사과 로고가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하도록 박스를 트럭에 차곡차곡 싣는다고 한다. 어느 날 애플 본사의 한 중역이 그 이유를 물어보니 트럭 기사가 하는 말이 트럭을 열었을 때 애플 로고가 모두 잘 정렬된 거를 보면 고객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고 그걸 볼 때마다 너무 행복하고 자랑스럽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건데 정말 대단하고 약간 무섭기까지 한 애플의 기업문화이다.

가끔 난 생각한다. 레드불과 애플과 같은 회사와 경쟁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이런 기업문화를 이기려면 그 경쟁사들은 얼마나 더 탄탄하고 잘 정립된 문화가 필요할까?

<이미지 출처 = Viralsca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