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ndersAtWork

불쌍하지만 부러운

우리가 2번째 펀드에서 투자를 시작한 지가 이제 약 1년 3개월 정도가 되었는데, 지금까지 45개 정도의 회사에 투자했다. 며칠 전에 나도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는 프라이머 10기 대상 첫 번째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자료를 조금 정리하면서 계산을 해보니, 우리가 투자한 회사의 절반 정도가 프라이머 출신 한국과 미국의 스타트업이었다. 프라이머와 초기에 같이 투자한 회사들도 있지만, 주로 후속 투자를 스트롱이 많이 했는데, 프라이머 회사들과 꽤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고, 이 중 몇 회사들과는 정기적으로 교류함으로써 발생한 결과인 거 같다. 물론, 대부분 회사의 진행 상황에 대해서는 만족하고 있다.

나도 이제는 실제 스타트업 운영에서 손을 뗀 지가 7년이 되어가고 있다. 많은 회사와 만나면서 시장, 방향, 운영에 대해 질문을 하고 시장이나 방향에 대해서는 내 의견을 자신 있게 표현하지만, ‘운영’에 대해서는 나는 내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스타트업의 dynamic 한 운영에 대해서는 나보다는 대표이사님이 훨씬 더 잘 알기 때문이다. 1년 365일, 하루 24시간 고객에 대해서만 고민하는 대표보다 나 같은 뜨내기가 이 비즈니스에 대해서 잘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투자하는 초기 기업들과 같이 일하는 게 즐겁고 재미있다. 새로운 분야에서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는 스타트업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가까운 곳에서 자세히 보고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프라이머 10기 약 20개 스타트업이 참석한 워크숍에서 창업가들을 보고 ‘불쌍하다’와 ‘부럽다’라는 두 가지 감정이 교체하는 걸 느꼈다. 프라이머 투자와 acceleration을 통해서 이제 막 힘차게 시작하는 분들을 보고 불쌍하다고 느꼈던 이유는 이제 그 힘든 전쟁터에 입문해서 고생할게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모든 창업자분들이 단단히 각오하고 시작하겠지만, 내가 뮤직쉐이크를 하면서 느꼈던 건 회사를 시작해서 운영하면서 느끼는 스트레스와 힘듦은 내 예상보다 5배~10배 정도였다. 이분들의 머릿속에서는 분명히, “엄청 힘들겠지만, 나는 잘 하기 때문에 우리 회사는 잘 될 거야.”라는 생각을 할 것이지만, 이 회사 중 90%는 5년 후에는 어쩌면 죽는 게 냉혹한 현실이기 때문에 모두 단단히 육체적/정신적으로 중무장을 해야 한다. 하여튼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불쌍해 보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분들이 너무 부러웠다. 일단 나 같은 투자자는 할 수 없는 진정한 변화를 창업가들은 만들 수 있다. 대기업에서 일하거나, 남의 밑에서 일을 하면 내가 하는 일이 내가 원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별로 없다. 하지만 내 사업을 하면 내가 하는 일이 내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도록 100% 모든 노력과 자원을 투자할 수 있다. 내가 뭔가를 직접 만들어서 원하는 결과를 만들고 싶어도 나는 직접 하지 못하지만, 창업가들은 할 수 있다. 이게 너무 부러웠다.

또 한가지는, 성공은 힘들고 확률적으로 낮지만, 성공하면 이분들은 돈을 엄청 벌 수 있다. 나 같은 투자자들은 좋은 회사에 투자해도 엄청난 대박이 아니면 – 그리고 한국은 exit 시장이 미국만큼 크진 않기 때문에 이런 초대박이 나오기란 쉽지 않다 – 큰돈을 벌수가 없다. 나도 투자를 시작할 때는 좋은 회사에 많이 투자해서 개인적으로도 돈을 좀 벌어보자는 기대를 했지만, 현실적으로 벤처산업에서 정말 큰돈을 벌 수 있는 분들은 창업팀밖에 없다. 연초에 올린 “부자의 대열에 끼기“라는 포스팅에서 언급했지만, 조 원대의 재산을 축적해서 정말로 부자의 대열에 끼고 싶다면 기술 창업을 통한 성공이 가장 빠르고 유일한 방법이다. 참고로, 삼성전자 사장을 10년 동안 하면서 150억 연봉을 그동안 한 푼도 안 쓰고 다 저축을 해도 1,500억 원밖에 못 모은다. 1조 원의 7분의 1 이다.

어쨌든 프라이머 10기 모든 회사들에 행운을 빌고, 앞으로 3개월 동안 나도 많이 배우길 기대한다.

김영철의 슈퍼파월 도서관

개그맨 김영철 씨를 모르는 분들은 거의 없다. ‘나 혼자 산다’를 비롯, 여러 가지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동 중인데, 웃기고 재치도 있지만 나는 김영철 씨 하면 ‘책’ 과 ‘영어’ 이미지가 떠오른다. 한 번도 해외에서 거주하지 않았지만 웬만한 유학생 수준의 유창한 영어 실력을 구사하고, 책을 통해서 습득한 고급 지식을 방송을 통해서 자랑하는 김영철 씨를 보면서 나는 기획사에서 저런 인텔리 이미지로 가라고 시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개인적으로 김영철 씨를 만났고, 이후에 몇 번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실제로 영어를 정말 잘하고, 책을 상당히 많이 읽는 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참 재미있는 사실은, 김영철 씨가 우리가 투자한 책 관련 스타트업 2개와 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추천해서 배달해주는 서비스 ‘플라이북’의 고객이자 공유도서관 ‘국민도서관‘에서 현재 개인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오늘은 이 개인도서관에 관해서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국민도서관 장웅 대표님과 셀레브리티 마케팅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도 ‘책’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연예인들과 뭔가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그런데 단순히 연예인이 우리가 판매하는 제품을 홍보해주는 그런 1차원적인 그림이 아니라 조금은 더 큰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고, 책을 많이 읽는 유명인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김영철 씨가 떠올랐고, 같이 식사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안 그래도 김영철 씨 집에 책이 많은데 보관할 공간이 모자라서 도서관에 기증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때 장웅 대표가 제안한 게 바로 ‘셀레브리티 도서관’이다. 김영철 씨가 국민도서관에 책을 키핑하고, 팬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개그맨과 소셜 공간에서 관계를 이어나가는 개념이다. 김영철 씨는 일차적으로 책 328권을 국민도서관에서 키핑하고 있으며, 전 세계 최초로 ‘슈퍼파워 라이브러리‘라는 개인 도서관을 운영하는 셀레브리티가 되었다. 김영철 씨의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 일정 금액이 적립되며 김영철 씨와 팬의 이름으로 전액 기부될 예정이다. 또한, 책을 빌리는 팬들에게 책과 관련된 소식을 보내 팬들과 소통할 수 있다.

슈퍼파워 라이브러리가 공개된 지 아직 며칠 안 되었지만, 영철씨 팬들의 반응은 상당히 좋다. 독서를 생활화하는 연예인과 유명인들이 자신의 책꽂이를 공개하고 공유하며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는 첫 사례가 탄생했는데, 앞으로 다른 셀레브리티들도 동참하면 좋겠다.

안 될 것 같은데…

미국을 떠난 지 거의 9개월 만에 LA 본사 KOLABS에 왔다. 비행기 타는 걸 워낙 싫어해서 웬만하면 자주 안 오려고 했는데, 오랜만에 와보니까 LA 날씨와 캘리포니아의 여유 있는 삶이 참 좋다는 생각을 새삼 다시 하게 되었다. 미국을 떠나면서 내 파트너 John과 스트롱의 일을 분담하기로 했는데 내가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면서 한국에 있는 투자사들과 투자자들을 담당하고, John이 미국 투자사들과 투자자들을 담당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미국의 투자사들과 연락을 완전히 두절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물리적으로 미국에 있는 파트너가 미국 회사들과 일을 하는 게 맞기 때문에 나는 상대적으로 한국 회사들과 더욱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우리 미국 본사 규모는 약 150평이다. 공간이 꽤 크기 때문에 이 안에는 우리 투자사뿐만 아니라 한인들이 창업한 LA 기반 스타트업들이 같이 일을 하고 있다. 이 중 하나이자 우리의 자랑스러운 투자사가 한국 과자를 월정액제로(=subscription) 배송해 주는 이커머스 스타트업 스낵피버이다. 오랜만에 스낵피버 팀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하면서 이 회사가 단기간 안에 달성한 성장 때문에 깜짝 놀랐다. 내가 9개월 전 LA를 떠날 때만 해도 스낵피버의 월 매출은 1~2천만 원 정도였다. 우리가 투자했지만, 실은 “한국 과자를 미국 사람들이 사 먹을까?” , “먹어도 얼마큼 먹을까?”라는 의구심을 나는 항상 갖고 있었기 때문에 한 달에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 참고로 스낵피버 고객의 90%는 미국인이다. 교포들도 아니고 완전 미국인들 – 2천만 원 어치의 한국 과자를 판매하는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게 한계라고 생각도 가끔은 했다.

그런데 이 “잘 안 될 것 같은데….” 라는 내 편견을 이 팀은 보기 좋게 깨줬다. 정확한 수치는 공개할 수는 없지만, 이 추세로 간다면 앞으로 2~3년 후에 스낵피버가 한국 과자를 년간 50억 원 이상 판매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LA 코리아타운에서 바퀴벌레같이 시작한 이 작은 스타트업이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만드는 과자를 전 세계를 대상으로 50억 원 어치 팔 수 있을까? 많은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할 것이다. 실은 농심이나 롯데 미주 지사장들도 깜짝 놀란다. 본인들이 한국 과자 분야에서는 전문가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전문가들도 못 하고 있고 – 실은 해보지도 않았겠지만 – 그러므로 안 될 거로 생각하지만, 여기에는 엄청난 기회가 존재했던 것이다.

비슷한 스토리를 가진 유니콘 회사가 얼마 전에 LA에서 탄생했다. 저가의 남성 면도날을 월정액제로 판매하는 Dollar Shave Club이 그 주인공이다. 2011년도 창업한 LA의 스타트업이고, 창업 초기부터 알고 있던 회사지만 싸구려 면도날 파는 회사가 팔아봤자 얼마만큼 팔까 라는 생각을 많은 사람이 했다. 이 회사가 5년 만에 다국적 기업 유니레버에 1조 원에 최근에 인수되었다. 이 역시 “잘 안 될 것 같은데….” 라는 편견을 버릴 수 있게 해준 좋은 예다.

투자자인 나도 의심을 하고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한 비즈니스가 이렇게 잘 되는 걸 보면 나도 많은 걸 배운다. 아무리 안 될 것 같은 사업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 남들이 아무리 안 된다고 해도, 내가 굳게 믿고, 그 믿음을 꾸준히 실행하면, 안 될 것 같은 것도 된다. 이번에도 많이 배웠고, 우리 투자사들한테 항상 많이 배운다.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

easypam살아가면서, 또는 일하면서 필요한 여러가지 중요한 스킬이 있다. 이 중 가장 중요하지만 극소수만이 보유한게 ‘커뮤니케이션’ 스킬인거 같다. 우리 투자사 대표님들에게 가장 강조하는것 중 하나가 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지만, 실은 나도 잘 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 할 수는 없다. 우리 투자사 대표들 중에는 커뮤니케이션을 정말 잘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가끔씩은 내가 왜 저런 사람들한테 투자를 했을까 후회하게 만들 정도로 소통을 못 하는 분들도 있다.

커뮤니케이션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건 ‘상황이 좋지 않을때의’ 커뮤니케이션이다. 회사가 잘 되고 있으면 모두 다 행복하기 때문에 정보의 전달과 소통이 조금 부진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숫자가 좋으면 모든게 용서가 되고 용납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 그리고 스타트업들은 좋지 않을 때가 훨씬 많다 – 상황이 좋지 않을때에는 가능하면 높은 레벨의 커뮤니케이션 수준을 유지하는게 필요하다.

솔직히 말해서 스타트업이 잘 안 되기 시작하면 그 끝은 좀 빤하다. 돈도 없고, 자원도 없는 작은 회사가 불리해지면 회복하는게 쉽지 않다. 그리고 많은 회사에 투자를 해봤고, 여러가지 상황을 경험해본 현명한 투자자라면 이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안다. 어쩌면, 대표이사보다 투자자는 이 회사의 끝이 어떻게 될지 잘 알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어차피 벤처의 성공확률은 매우 낮고, 투자는 확률게임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회사들은 3년 – 5년 안으로 망하는게 – 물론, 그렇게 안 되게 모두 열심히 하겠지만 – 현실이다.

전에도 한 번 포스팅을 한 적이 있는데, 나는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 중 실패했지만 또 창업을 하면 무조건 다시 투자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굉장히 성공했지만 또 창업을 해도 절대로 다시 투자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커뮤니케이션이 핵심이다. 사업의 성공 여부를 떠나서 소통을 잘 하는 창업가들한테는 믿음이 간다. 상황이 좋지 않을때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데, 이럴때는 그냥 다 포기하고 세상과 담을 쌓고 싶을때가 있다. 하지만, 현명한 창업가들은 이럴수록 회사를 믿고 투자한 투자자들과 활발하게 소통을 한다. 현황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공유하고 해결책을 같이 찾아가려는 노력을 하면 창업가와 투자자 사이에는 – 쉽게 말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 – 신뢰와 존중이 생기는데, 이렇게 쌓인 감정은 비즈니스가 실패해도 평생 가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창업가들한테는 다시 투자할 의향이 항상 있다. 우리도 우리를 믿는 좋은 분들이 우리 펀드에 출자한 돈을 가지고 투자하기 때문에 이 소중한 돈이 우리가 믿는 좋은 분들한테 투자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업을 잘 하고 돈을 잘 벌어도 소통이 안되고 투명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창업가들이랑은 다시는 같이 일하고 싶지 않다는게 내 지론이다.
참 안타까운건 투자를 하기 전에는 잘 모른다. 투자를 한 후에만 알 수 있기 때문에 우리도 이런 실수를 가끔씩 한다.

얼마전에 나는 우리 투자사 텀블벅에서 진행된 ‘이지팸‘이라는 크라우드펀딩 캠페인을 후원했다. 스팸을 써는게 상당히 불편하고, 나중에 설겆이 하는건 더 불편한데,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스팸 커팅 도구를 만드는 캠페인이었다. 인기가 많을 줄 알았는데 목표금액 700만원 중 50% 밖에 못 모으고 실패했다. 비록 캠페인은 실패했지만 이 프로젝트 오너는 후원자분들한테 진심이 담긴 소통을 정기적으로, 그리고 적시에 했다. 얼굴도 모르는 분이지만 나는 이 분이 다음에 창업을 해서 나한테 투자 받으로 온다면 굉장히 긍정적으로 검토할 의향이 있다. 생각했던거 만큼 왜 후원이 없는지, 처음에 세웠던 가설이 왜 틀렸는지, 그걸 고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굉장히 자세히 후원자들한테 설명하는 모습에서 창업가가 투자자들에게 투명하고 명확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을 봤기 때문이다.

이 분이 프로젝트 종료를 한시간여 남기고 후원자들에게 보낸 “프로젝트 기간 종료를 앞두고” 라는 글을 그대로 붙여본다. 이런 인간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할 줄 아는 분이라면 사업이 실패해도 함께 하고 싶다.

안녕하세요 후원자여러분.

프로젝트 종료를 한시간여 남기고 이렇게 글을 씁니다. 결국 프로젝트는 후원목표금액의 50%를 모집하는데 그쳐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후원자 수는 223명, 타 프로젝트와 비교해봤을 때 실패한 경우로 보기엔 후원자 수가 너무 많지만(황당하네요.) 어찌됐던 설정한 목표에 미달했으니 아쉽게도 제품을 받아보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업데이트에서 제품을 개선하고 그 사실을 알려드릴 것을 약속했지만 제품의 개선과 마케팅 전략 실행을 진행해본 바,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그래서 텀블벅측에 프로젝트 조기종료를 요청할까 생각해봤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후원금액 증가추이를 파악하기 위해 일부러 남겨두었고 꽤 의미있는 경험과 데이터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재밌는 사실은 전체 후원금액의 60% 정도가 단 6일만에 모였다는 점을 들 수 있겠네요. 전체 후원자수는 223명인데 이중 40여명이 하루만에 모였을 때도 있습니다.

이런 일은 첫번째론 텀블벅측에서 프로젝트를 페이스북에 노출시켰을 때 발생했고 두번째 폭발적 증가는 텀블벅에서 광고메일을 돌렸을 때였습니다. 제품의 품질도 중요하지만 마케팅과 홍보가 이렇게 중요한 줄은 미처 몰랐네요. 두차례의 외부 공개로 각각 3일씩 그 파급효과가 지속되었고 50일의 프로젝트 진행기간중 단 6일만에 60~70%의 후원자가 집중된 것은 꽤나 의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더불어 외부 공개 이후 후원자가 공유와 공유를 거치며 후원자수 증가의 선순환에 진입하지 못하고 감소후 정체하게 된 점도 곰곰히 생각해 봤습니다. 저의 생각으론 아마 이 제품이 가진 여러 문제점 때문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시제품 단계의 미완성 제품인데다가 프로젝트 페이지가 너무 복잡하고 자세해서 주의를 분산시키고, 더불어 두번에 걸친 절단방식 때문에 이에 거부감을 가진 분들이 많았기 때문으로 보여집니다. 그래서 외부 공개 당시엔 ‘스팸을 썰어먹기 너무 힘들다’라는 것에 아주 강하게 공감하시는 분들 위주로 후원이 이루어졌고 스팸썰기에 대한 편의성 측면에서 애매하게 생각하시는 분들, 혹은 그다지 크게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는 분들에게 매력적으로 작용하지 못하다보니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스팸을 썰어먹는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분들에게조차 ‘아 이제품을 사용하면 더 편리해지겠군’이라고 생각하게 하거나 ‘가격도 싼데 그냥 사서 써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면 제품이 큰 공감을 받고 후원자수 증가가 공유를 거듭하며 선순환 했을텐데 그렇게 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합니다.

그래서 결국 내려진 결론은 이렇습니다. 제품의 상품성을 더 다듬고, 시제품이 아니라 완제품을 제시해야 하며, 가격은 더 싸게 하고, 마케팅 전략을 초기부터 체계적으로 실행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하나 하나 만만한게 없는 사안이네요.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할땐 준비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는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엉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반의 성공(?)을 한 점은 그만큼 스팸을 편하게 썰어먹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다는 증거겠지요. 이 프로젝트로 저희 제품에 대한 문제점을 명확히 알 수 있었지만 더 중요한 교훈은 스팸썰기에 대한 수요가 분명 가볍진 않았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제품을 쉽게 포기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반드시 지금보다 더 훌륭한 제품으로, 더 저렴하게 후원자 여러분을 찾아갈 것입니다. 또한 지금 이 순간까지 후원을 지속해주신 223명께는 추후 프로젝트를 통해 특별한 보답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니나히와 이지팸은 반드시 다시 돌아옵니다. 우선은 이지팸 말고 상대적으로 수익을 얻기 좋은 제품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자금을 모을 생각입니다. 차기 프로젝트는 완성품을 제시할 것이며 상당부분 진행이 완료되었습니다. 저희 니나히를 계속 지켜봐 주십시요. 그리고 이지팸의 부활을 기다려주십시요.

후원해주신 223명 한분한분께 너무 감사합니다.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다음에 꼭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미지 출처 = 텀블벅 ‘이지팸’ 캠페인 페이지>

투자는 투자자한테, 검증은 시장한테

7월 하반기가 되면서 더 많은 초기 기업들을 만나고 있다. 좋은 스타트업들의 샘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건 상당히 좋은 현상이지만, 이 많은 회사 중 옥석을 가리는 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많이 만나면 만날수록 변별력과 판단력이 향상되는걸 느낄때도 있지만, 오히려 더 혼란스러울 때도 있으니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제 아이디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이게 가능성이 있을까요?” , “투자자들한테 제 아이디어를 검증받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만난 창업자들한테 – 특히 초기 스타트업들 – 꽤 많이 받은 질문들이다. 나는 한결같이 “우리 같은 투자자 한테는 투자를 받으시고요, 아이디어는 시장에서 직접 검증 받으세요.” 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이 분들한테 바로 또 물어본다. “대표님, 제가 이 아이디어가 별로인 거 같다고 하면 사업 접으실 건가요? 저한테 보여주기 위해서 창업하신 건가요?”

실은 나는 투자만 해서 현장감이 별로 없다. 우리는 남의 비즈니스에 투자하는 사람들이고, 제삼자의 입장에서 비즈니스를 검토하고 평가하기 때문에 현업을 잘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한테 본인이 하는 비즈니스에 대해 평가를 해달라고 하면, 과거의 경험이나 이와 비슷한 비즈니스들과 비교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역사가 말해주듯이, 투자자들의 감은 맞을 때보다는 틀릴 때가 더 많다. 아무리 유명한 VC라도 성공한 투자 한 건 대비 실패한 투자가 많게는 20건 이상 있다.

100년 이상의 투자 역사를 자랑하는 실리콘밸리의 명문 VC Bessemer Partners의 전설적인 투자자 데이비드 코완이 초기 시절의 구글에 눈길조차 주지 않은 다음 이야기는 이 분야에서 일하면 누구나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구글의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창업 초창기에 데이비드 코완의 친구 집 차고를 임대해서 사무실로 쓰고 있었다. 하루는 데이비드 코완이 친구 집에 놀러 왔고, 친구는 구글의 창업팀을 소개하려고 했다.

친구: 우리 집 차고에서 일하는 스탠퍼드 학생 두 명이 있는데 만나볼래? 검색 엔진 만든대.
코완: 학생? 검색 엔진?(1999년 당시 웹 검색 엔진의 왕은 알타비스타였다)
코완: 차고를 지나지 않고 이 집에서 가장 빨리 나가는 길은 어디지? (=나 집에 갈래)

만약 데이비드 코완같이 유명한 VC의 절망적인 말을 듣고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이게 아닌가벼” 라면서 구글을 포기하고 다른 사업을 했다면 우리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므로 투자자한테 내 아이디어를 검증 받는다는건 위험하고 어리석은 짓이다. 내 아이디어와 사업을 검증해 줄 수 있는 건 시장이다. 아무리 주위 사람들이 현실성이 없고 가망이 없다고 해도 고객이 있고 시장이 사용하는 제품이라면 이건 훌륭한 비즈니스이니, 내 아이디어를 검증받고 싶다면 빨리 뭐라도 만들어서 시장에서 테스트를 해보라고 권장하고 싶다.

물론 투자자 중에는 수년 또는 많게는 수십 년 동안 수천 개의 비즈니스를 검토한 분들도 있다. 그리고 이들의 조언을 완전히 무시하는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경험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도 성공적인 투자 보다는 실패한 투자가 더 많을 것이다. 이게 바로 VC라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실은 나한테 굉장히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은 후, 사업을 완전히 포기한 창업가도 있다. 그런데 이 분은 아마도 애초부터 자신이 없어서 투자자의 말을 듣고 소신을 접었을 것이다. 그리고 본인의 확신 없음을 내가 인정해줘서 안도했을지도 모른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라는 말이 있다. 투자는 투자자에게, 검증은 시장에서 받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