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ndersAtWork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

easypam살아가면서, 또는 일하면서 필요한 여러가지 중요한 스킬이 있다. 이 중 가장 중요하지만 극소수만이 보유한게 ‘커뮤니케이션’ 스킬인거 같다. 우리 투자사 대표님들에게 가장 강조하는것 중 하나가 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지만, 실은 나도 잘 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 할 수는 없다. 우리 투자사 대표들 중에는 커뮤니케이션을 정말 잘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가끔씩은 내가 왜 저런 사람들한테 투자를 했을까 후회하게 만들 정도로 소통을 못 하는 분들도 있다.

커뮤니케이션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건 ‘상황이 좋지 않을때의’ 커뮤니케이션이다. 회사가 잘 되고 있으면 모두 다 행복하기 때문에 정보의 전달과 소통이 조금 부진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숫자가 좋으면 모든게 용서가 되고 용납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 그리고 스타트업들은 좋지 않을 때가 훨씬 많다 – 상황이 좋지 않을때에는 가능하면 높은 레벨의 커뮤니케이션 수준을 유지하는게 필요하다.

솔직히 말해서 스타트업이 잘 안 되기 시작하면 그 끝은 좀 빤하다. 돈도 없고, 자원도 없는 작은 회사가 불리해지면 회복하는게 쉽지 않다. 그리고 많은 회사에 투자를 해봤고, 여러가지 상황을 경험해본 현명한 투자자라면 이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안다. 어쩌면, 대표이사보다 투자자는 이 회사의 끝이 어떻게 될지 잘 알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어차피 벤처의 성공확률은 매우 낮고, 투자는 확률게임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회사들은 3년 – 5년 안으로 망하는게 – 물론, 그렇게 안 되게 모두 열심히 하겠지만 – 현실이다.

전에도 한 번 포스팅을 한 적이 있는데, 나는 우리가 투자한 창업가 중 실패했지만 또 창업을 하면 무조건 다시 투자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굉장히 성공했지만 또 창업을 해도 절대로 다시 투자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커뮤니케이션이 핵심이다. 사업의 성공 여부를 떠나서 소통을 잘 하는 창업가들한테는 믿음이 간다. 상황이 좋지 않을때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데, 이럴때는 그냥 다 포기하고 세상과 담을 쌓고 싶을때가 있다. 하지만, 현명한 창업가들은 이럴수록 회사를 믿고 투자한 투자자들과 활발하게 소통을 한다. 현황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공유하고 해결책을 같이 찾아가려는 노력을 하면 창업가와 투자자 사이에는 – 쉽게 말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 – 신뢰와 존중이 생기는데, 이렇게 쌓인 감정은 비즈니스가 실패해도 평생 가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창업가들한테는 다시 투자할 의향이 항상 있다. 우리도 우리를 믿는 좋은 분들이 우리 펀드에 출자한 돈을 가지고 투자하기 때문에 이 소중한 돈이 우리가 믿는 좋은 분들한테 투자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업을 잘 하고 돈을 잘 벌어도 소통이 안되고 투명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창업가들이랑은 다시는 같이 일하고 싶지 않다는게 내 지론이다.
참 안타까운건 투자를 하기 전에는 잘 모른다. 투자를 한 후에만 알 수 있기 때문에 우리도 이런 실수를 가끔씩 한다.

얼마전에 나는 우리 투자사 텀블벅에서 진행된 ‘이지팸‘이라는 크라우드펀딩 캠페인을 후원했다. 스팸을 써는게 상당히 불편하고, 나중에 설겆이 하는건 더 불편한데,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스팸 커팅 도구를 만드는 캠페인이었다. 인기가 많을 줄 알았는데 목표금액 700만원 중 50% 밖에 못 모으고 실패했다. 비록 캠페인은 실패했지만 이 프로젝트 오너는 후원자분들한테 진심이 담긴 소통을 정기적으로, 그리고 적시에 했다. 얼굴도 모르는 분이지만 나는 이 분이 다음에 창업을 해서 나한테 투자 받으로 온다면 굉장히 긍정적으로 검토할 의향이 있다. 생각했던거 만큼 왜 후원이 없는지, 처음에 세웠던 가설이 왜 틀렸는지, 그걸 고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굉장히 자세히 후원자들한테 설명하는 모습에서 창업가가 투자자들에게 투명하고 명확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을 봤기 때문이다.

이 분이 프로젝트 종료를 한시간여 남기고 후원자들에게 보낸 “프로젝트 기간 종료를 앞두고” 라는 글을 그대로 붙여본다. 이런 인간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할 줄 아는 분이라면 사업이 실패해도 함께 하고 싶다.

안녕하세요 후원자여러분.

프로젝트 종료를 한시간여 남기고 이렇게 글을 씁니다. 결국 프로젝트는 후원목표금액의 50%를 모집하는데 그쳐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후원자 수는 223명, 타 프로젝트와 비교해봤을 때 실패한 경우로 보기엔 후원자 수가 너무 많지만(황당하네요.) 어찌됐던 설정한 목표에 미달했으니 아쉽게도 제품을 받아보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업데이트에서 제품을 개선하고 그 사실을 알려드릴 것을 약속했지만 제품의 개선과 마케팅 전략 실행을 진행해본 바,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그래서 텀블벅측에 프로젝트 조기종료를 요청할까 생각해봤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후원금액 증가추이를 파악하기 위해 일부러 남겨두었고 꽤 의미있는 경험과 데이터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재밌는 사실은 전체 후원금액의 60% 정도가 단 6일만에 모였다는 점을 들 수 있겠네요. 전체 후원자수는 223명인데 이중 40여명이 하루만에 모였을 때도 있습니다.

이런 일은 첫번째론 텀블벅측에서 프로젝트를 페이스북에 노출시켰을 때 발생했고 두번째 폭발적 증가는 텀블벅에서 광고메일을 돌렸을 때였습니다. 제품의 품질도 중요하지만 마케팅과 홍보가 이렇게 중요한 줄은 미처 몰랐네요. 두차례의 외부 공개로 각각 3일씩 그 파급효과가 지속되었고 50일의 프로젝트 진행기간중 단 6일만에 60~70%의 후원자가 집중된 것은 꽤나 의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더불어 외부 공개 이후 후원자가 공유와 공유를 거치며 후원자수 증가의 선순환에 진입하지 못하고 감소후 정체하게 된 점도 곰곰히 생각해 봤습니다. 저의 생각으론 아마 이 제품이 가진 여러 문제점 때문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시제품 단계의 미완성 제품인데다가 프로젝트 페이지가 너무 복잡하고 자세해서 주의를 분산시키고, 더불어 두번에 걸친 절단방식 때문에 이에 거부감을 가진 분들이 많았기 때문으로 보여집니다. 그래서 외부 공개 당시엔 ‘스팸을 썰어먹기 너무 힘들다’라는 것에 아주 강하게 공감하시는 분들 위주로 후원이 이루어졌고 스팸썰기에 대한 편의성 측면에서 애매하게 생각하시는 분들, 혹은 그다지 크게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는 분들에게 매력적으로 작용하지 못하다보니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스팸을 썰어먹는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분들에게조차 ‘아 이제품을 사용하면 더 편리해지겠군’이라고 생각하게 하거나 ‘가격도 싼데 그냥 사서 써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면 제품이 큰 공감을 받고 후원자수 증가가 공유를 거듭하며 선순환 했을텐데 그렇게 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합니다.

그래서 결국 내려진 결론은 이렇습니다. 제품의 상품성을 더 다듬고, 시제품이 아니라 완제품을 제시해야 하며, 가격은 더 싸게 하고, 마케팅 전략을 초기부터 체계적으로 실행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하나 하나 만만한게 없는 사안이네요.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할땐 준비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는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엉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반의 성공(?)을 한 점은 그만큼 스팸을 편하게 썰어먹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다는 증거겠지요. 이 프로젝트로 저희 제품에 대한 문제점을 명확히 알 수 있었지만 더 중요한 교훈은 스팸썰기에 대한 수요가 분명 가볍진 않았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제품을 쉽게 포기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반드시 지금보다 더 훌륭한 제품으로, 더 저렴하게 후원자 여러분을 찾아갈 것입니다. 또한 지금 이 순간까지 후원을 지속해주신 223명께는 추후 프로젝트를 통해 특별한 보답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니나히와 이지팸은 반드시 다시 돌아옵니다. 우선은 이지팸 말고 상대적으로 수익을 얻기 좋은 제품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자금을 모을 생각입니다. 차기 프로젝트는 완성품을 제시할 것이며 상당부분 진행이 완료되었습니다. 저희 니나히를 계속 지켜봐 주십시요. 그리고 이지팸의 부활을 기다려주십시요.

후원해주신 223명 한분한분께 너무 감사합니다.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다음에 꼭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미지 출처 = 텀블벅 ‘이지팸’ 캠페인 페이지>

투자는 투자자한테, 검증은 시장한테

7월 하반기가 되면서 더 많은 초기 기업들을 만나고 있다. 좋은 스타트업들의 샘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건 상당히 좋은 현상이지만, 이 많은 회사 중 옥석을 가리는 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많이 만나면 만날수록 변별력과 판단력이 향상되는걸 느낄때도 있지만, 오히려 더 혼란스러울 때도 있으니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제 아이디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이게 가능성이 있을까요?” , “투자자들한테 제 아이디어를 검증받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만난 창업자들한테 – 특히 초기 스타트업들 – 꽤 많이 받은 질문들이다. 나는 한결같이 “우리 같은 투자자 한테는 투자를 받으시고요, 아이디어는 시장에서 직접 검증 받으세요.” 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이 분들한테 바로 또 물어본다. “대표님, 제가 이 아이디어가 별로인 거 같다고 하면 사업 접으실 건가요? 저한테 보여주기 위해서 창업하신 건가요?”

실은 나는 투자만 해서 현장감이 별로 없다. 우리는 남의 비즈니스에 투자하는 사람들이고, 제삼자의 입장에서 비즈니스를 검토하고 평가하기 때문에 현업을 잘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한테 본인이 하는 비즈니스에 대해 평가를 해달라고 하면, 과거의 경험이나 이와 비슷한 비즈니스들과 비교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역사가 말해주듯이, 투자자들의 감은 맞을 때보다는 틀릴 때가 더 많다. 아무리 유명한 VC라도 성공한 투자 한 건 대비 실패한 투자가 많게는 20건 이상 있다.

100년 이상의 투자 역사를 자랑하는 실리콘밸리의 명문 VC Bessemer Partners의 전설적인 투자자 데이비드 코완이 초기 시절의 구글에 눈길조차 주지 않은 다음 이야기는 이 분야에서 일하면 누구나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구글의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창업 초창기에 데이비드 코완의 친구 집 차고를 임대해서 사무실로 쓰고 있었다. 하루는 데이비드 코완이 친구 집에 놀러 왔고, 친구는 구글의 창업팀을 소개하려고 했다.

친구: 우리 집 차고에서 일하는 스탠퍼드 학생 두 명이 있는데 만나볼래? 검색 엔진 만든대.
코완: 학생? 검색 엔진?(1999년 당시 웹 검색 엔진의 왕은 알타비스타였다)
코완: 차고를 지나지 않고 이 집에서 가장 빨리 나가는 길은 어디지? (=나 집에 갈래)

만약 데이비드 코완같이 유명한 VC의 절망적인 말을 듣고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이게 아닌가벼” 라면서 구글을 포기하고 다른 사업을 했다면 우리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므로 투자자한테 내 아이디어를 검증 받는다는건 위험하고 어리석은 짓이다. 내 아이디어와 사업을 검증해 줄 수 있는 건 시장이다. 아무리 주위 사람들이 현실성이 없고 가망이 없다고 해도 고객이 있고 시장이 사용하는 제품이라면 이건 훌륭한 비즈니스이니, 내 아이디어를 검증받고 싶다면 빨리 뭐라도 만들어서 시장에서 테스트를 해보라고 권장하고 싶다.

물론 투자자 중에는 수년 또는 많게는 수십 년 동안 수천 개의 비즈니스를 검토한 분들도 있다. 그리고 이들의 조언을 완전히 무시하는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경험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도 성공적인 투자 보다는 실패한 투자가 더 많을 것이다. 이게 바로 VC라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실은 나한테 굉장히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은 후, 사업을 완전히 포기한 창업가도 있다. 그런데 이 분은 아마도 애초부터 자신이 없어서 투자자의 말을 듣고 소신을 접었을 것이다. 그리고 본인의 확신 없음을 내가 인정해줘서 안도했을지도 모른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라는 말이 있다. 투자는 투자자에게, 검증은 시장에서 받아라.

새로운 게임

89-chang나랑 친한 분들은 잘 알 텐데, 나는 테니스를 매우 좋아한다. 실은 어릴 적 내 꿈은 테니스 선수였다(아직도 꿈은 가지고 있다). 테니스가 전통적으로 강한 스페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어릴 적부터 테니스 훈련을 체계적으로 받았지만, 어느 순간 키가 더 크지 않아서 이제는 취미로만 치고 있다. 얼마 전에 끝난 메이저 대회 중 하나인 프랑스 오픈을 보면서 느낀 점들이 있어서 몇 자 적어본다.

과거에 마이클 창이라는 중국계 미국 테니스 선수가 있었다. 175cm 라는 단신이었지만 1989년도 프랑스 오픈을 17살의 나이에 우승한 위대한 챔피언이다. 이 선수는 솔직히 그렇다 할 무기가 없었다. 단신이기 때문에 폭발적인 서브도 없었고, 포핸드와 백핸드도 특별하게 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좋은 체력과 빠른 발이 있었고 머리가 좋아서 테니스를 영리하게 쳤다. 서양인들에 비해서 체격 조건이 뒤처진 나 같은 동양인들은 마이클 창을 보면서 큰 용기를 얻었다. 키가 작고 파워풀한 스윙이 없어도 끈질기고 발 빠르게 공을 치다 보면 이길 수 있다는걸 그가 증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테니스 게임과 선수들은 계속 발전을 했다. 선수들의 체격 조건은 더 좋아졌고, 코트의 재질도 발전했고, 라켓과 공 같은 장비도 비약적인 발전을 해서 선수들은 자신들의 능력과 체력을 극대화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이클 창은 이제 나이가 들어서 은퇴를 했지만, 그가 전성기 때의 실력 발휘를 한다고 해도 이제는 현재의 테니스에서는 더 이상 우승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하고 열심히 친다고 해도 테니스라는 게임 자체가 업그레이드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평균 신장, 체격, 그리고 체력적인 면에서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모든 선수들이 월등해졌다. 이런 새로운 판에서는 마이클 창과 같은 선수는 더 이상 경쟁 조차 할 수 없게 된다.

분야만 다르지만 스타트업도 마찬가지이다. 5년 전만 해도 ‘MVP’ 라는 보호막 아래에서 제품의 껍데기만 대충 만들고 기본적인 기능만 구현하면 매출도 조금 만들 수 있고 운 좋으면 투자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테니스의 게임이 비약적인 발전을 했듯이 스타트업과 창업자들의 수준은 그동안 엄청나게 업그레이드 되었다. 이제는 ‘MVP’ 라는 우산으로 제품의 불완전함을 정당화 할 수가 없다. 제품의 수준 자체가 높아졌고, 내가 최근에 본 MVP들은 왠만한 중견기업에서 만드는 제품에 비교해도 손상이 없을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물론 이런 수준높은 베타 제품들을 가능케 하는건 그동안 같이 비약적인 발전을 한 소프트웨어, API, 하드웨어 등이 있기 때문이다.

갈수록 수준이 높아지는 창업팀들이 만든 완성도가 높은 제품들과 경쟁하려면 이들보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만큼 좋은 제품의 기준이 높아졌고, 유저확보와 매출발생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요새 시작하는 팀들은 더욱 더 고민하고, 더욱 더 잘 만들어서 완제품과도 비슷한 베타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해도 매일 매일 전세계에서 생성되는 수 천개의 새로운 제품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미지 출처 = http://www.princetennis.com/inside-prince/history/1989/>

세상에서 가장 큰 국민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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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에 콜드 이메일을 하나 받았다. 제목을 보니 ‘책’ 관련된 비즈니스인거 같아서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고 내용을 읽었는데 ‘국민도서관 책꽂이‘ 라는 회사에서 온 이메일이었다. 실은 지난 1년 동안 종이책에 대한 내 생각이 많이 바뀌었지만 당시만 해도 나는 종이책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종이책의 종말에 대해서는 내가 여러번 블로그를 통해서 글을 쓴 적이 있다.

책 관련 비즈니스는 내 관심사 밖이었지만, 국민도서관 장웅 대표님의 이메일에는 고민의 흔적과 진정성이 보였다. 그래서 투자와는 상관없이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청담사거리 스타벅스에서 한시간 정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시간 동안 내 생각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아니, 생각의 변화라기 보다는 국민도서과 관장님에 대한 존경이 이 시장에 대한 내 생각을 바꾸게 한거 같다. 이 분은 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분이었다.

우리도 그동안 많은 투자를 하면서 다양한 스타일의 창업자들을 만났다. 어떤 이들은 세상을 바꾸려고, 그리고 어떤 이들은 그냥 큰 돈을 벌고 싶어서 창업을 택했다. 사업의 목적에 나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지만, 본인들이 하는 비즈니스에 대해서 얼만큼의 애착이 있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장웅 대표님은 책을 좋아하고, 책과 독자들의 관계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회사에 투자를 했다(기존 투자자는 이덕준 대표님의 D3 주빌리와 개인들이 있었다.)

국민도서관은 이런저런 이유로 책 보관이 힘든 사람들과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마켓플레이스인데 단순히 중개의 개념이 아니라 컨트롤의 개념이 강한 소유형 마켓플레이스이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국민도서관은 남의 책을 소중히 키핑해주고, 키핑된 책들을 독자들에게 무료로 대여해주는 마켓플레이스이다. 이 과정에서 책을 전문적으로 보관해주고, 대여의 모든 과정에 직접 관여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P2P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사건들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이 집에 책 20-30권 정도는 소장하고 있을 것이다. 어떤 분들은 수 천권의 책을 소유하고 있을 것이다. 책장에 책이 있는걸 보면 마음이 뿌듯해지지만, 물리적인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하고, 이 차지하는 공간에 비해서 정신적인 만족감 외의 실용성이 너무 떨어진다는 단점이 존재한다(=책장에 있는 책들 죽을때까지 다시는 안 읽을 확률이 높다). 이런 분들을 위해서 저렴한 연회비를 내면 (200권까지:3만원 / 2,000권까지:9만원) 책들을 키핑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모든 회원은 등급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분들이 키핑한 모든 책을 왕복택배비 만으로 60일간 대여할 수 있다.
굳이 책을 키핑하지 않아도 국민도서관을 사용할 수 있다. 아마도 현재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책을 키핑하지 않을것이다. 동일하게 저렴한 연회비를 내면 1년 동안 무제한으로 국민도서관에 키핑된 도서들을 대여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60일의 대여기간이 있고, 대여한 책을 반납하면 또 대여를 할 수가 있다. 과거 DVD 시절의 넷플릭스 모델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공유경제라는 말을 우리는 남발하고 있다. 남의 것을 빌려쓰는 부분이 조금이라도 존재하면 우리는 무조건 공유경제로 포장을 하지만, 국민도서관은 공유경제를 제대로 실현하고 있는 전세계에서 유일한 모델이 아닐까 싶다. 집에 공간이 없지만 책을 버리기 싫은 ‘공급자’ 들에게는 저렴한 비용에 책을 키핑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책을 읽고는 싶지만 구매할 돈이 없거나, 구하기 힘든 책들을 지속적으로 읽고 싶어하는 ‘소비자’ 들에게는 저렴한 비용에 책을 대여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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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웅 대표님의 개인 소유 장서 2,000여권으로 시작해서 이제 곧 2살이 될 국민도서관 웹사이트가 며칠 전에 대대적인 업데이트를 푸쉬했다. 실은 같은 식구인 내가 봐도 기존 사이트의 사용도가 너무 후졌었는데 이제는 단순히 책을 키핑하고 대여할 수 있는 기본적인 기능 외에 여러가지 소셜 기능들이 추가되었다. 내가 대여해서 읽는 책의 문구 중 마음에 드는 부분을 저장 할 수 있는 “여기가 좋았어” 기능, 내가 키핑하고 있는 책을 읽는 분과 소통할 수 있는 기능들, 그리고 내 책을 다른 사람이 대여하면 나도 소정의 금전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기능들이 추가되었다. 완벽하게 구현되지는 않았지만 오직 책이라는 관심사를 기반으로 다른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성장 중이다.

현재 국민도서관에 키핑되어 있는 책은 약 52,700여권인데 이는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다. 얼마전에 47억여원의 예산을 들여 완공한 도봉기적의도서관의 경우 장서수 17,000여권이며, 2013년에 공개된 서울시 구립공공도서관 운영현황에 따르면 국민도서관의 52,700여권이면 서울시 구립공공도서관과 비교하여 장서수로는 92개 도서관중 29위 정도이다. 재미난 사실은 이런 국민도서관은 얼마전까지만해도 장웅 대표님 혼자서 운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책을 사랑하고 운영에 강점이 있는 회사이다.

참고로 내가 쓴 책들 ‘스타트업 바이블’과 ‘스타트업 바이블 2’도 현재 국민도서관의 내 책꽂이에 키핑되어 있으니 아직 안 읽어보신 분들은 회원가입하고 마음껏 빌려 보시길.

자기만의 바둑 두기

stones_of_enlightenment_by_nooooooo87‘미생’은 수많은 명장면과 명언을 탄생시켰다.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바둑이 있다” 였다. 그렇게 안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가끔은 나를 찾아온 창업가들한테 이래라 저래라 훈수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이럴때마다 미생의 이 에피소드를 떠올린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바둑이 있고, 그 결과는 경기가 끝나봐야지 알 수 있는데 내가 뭘 안다고 훈수질을 하고 있을까.

창업가들을 보면 대부분 남들이 가지 않는 길들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남들이 하는대로 따라하지 않고 자기만의 바둑을 묵묵히 두는 사람들이다. 험하고 쉽지 않은 세상에서 자기만의 바둑을 둔다는거 자체로도 나는 이 분들한테 존경을 표시하고 싶다. 자기만의 바둑을 둔다는거…겉으로 보면 멋져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굉장히 배고프고, 힘들고, 약간 미친 짓이다. 남들이 하는대로 하면 되지 왜 입증되지도 않고 승리가 보장되지도 않은 자기만의 바둑을 두고 있는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것 자체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스스로 매우 답답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데 여기에 더 많은 불확실성, 스트레스 그리고 짜증을 더하는건 바로 다른 사람들의 훈수이다. 자기만의 바둑을 두면 엄청난 훈수와 지적을 받을 것이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 나를 믿는다고 생각했던 가족들, 업계 사장님들, 비즈니스 파트너들, 투자도 하지 않은 투자자들, 그리고 투자한 투자자들. 이 모든 사람들이 한 마디씩 훈수질을 할 것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나도 본의아니게 가끔 이런 훈수질을 한다.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것 같다. 나에 대해서는 항상 관대하지만 남에 대해서는 뭔가 지적을 해야지만 내가 더 똑똑하고 잘난 사람같이 느껴지는 인간의 본능 때문인거 같다.

자기만의 바둑을 두고 있는 사람들한테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훈수를 하겠지만, 낯 두껍게 그냥 다 무시하세요. 계속 자기만의 바둑을 두세요. 그리고 이기세요. 반드시 이겨서 내 바둑이 옳았고, 내 목소리가 가장 크다는걸 그동안 당신들을 믿지않고 훈수했던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보여주세요.

자기만의 바둑을 두다가 패배하는게 평생 남의 바둑만 두는 것 보다는 의미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http://jlel.deviantart.com/favourites/42010620/Go-Wei-Q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