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ndersAtWork

뛸 수 있는 기회

경험이 쌓일수록 사물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한다고 하는데, 나 한테도 투자자로서 최근 몇 년 동안 이런 변화가 생기고 있는거 같다. 다행히도 나쁜쪽 보다는 좋은 쪽으로의 변화다. 처음 투자라는 업무를 시작할때 내 목표는 딱 하나였다 – 좋은 회사 투자해서 무조건 돈을 많이 벌자. 뭐, 그렇다고 지금은 돈을 벌고 싶지 않다는 건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수익을 만들어서 우리 펀드 출자자들도 많이 벌고, 나도 많이 벌어야 한다. 하지만, 조금은 변한게 있다면 바로 창업팀과 스타트업을 단순히 돈으로 보지 않고, 뭔가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작은 힘’ 으로 보게되고, 이런 긍정적인 변화에 내가 동참하고 공헌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우리가 하는 투자라는 시각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만, 그렇지 못하고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한국 온지 이제 한 달이 조금 넘었는데 한국은 특히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상황들이 많이 발생하고, 약자들한테는 한없이 가혹하고 강자들한테는 한없이 유리한 그런 불공평한 나라라는 생각을 요새 많이 하게 된다.

어떤 운 좋은 친구들은 100미터 인생을 80미터 지점에서 시작하고, 어떤 이들은 50미터 지점에서 시작한다.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0미터 지점에서, 운이 좋지 않은 친구들은 출발선 보다 한참 더 뒤인 -20미터 지점에서 인생을 시작한다. 안타깝게도 이 인생의 출발점을 내가 선택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인생을 어느 지점에서 출발하든, 최소 한 번 뛸 수 있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제공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남들보다 뒤에서 출발하는 이런 창업가들을 나는 매일 만난다. 실수로 인해서 불리한 시작을 하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 본인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그냥 처음부터 출발이 뒤쳐진 능력있고 한없이 정직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과연 80미터에서 출발하는 다른 팀을 이길 수 있을까? 그건 나도 모른다. 이길수도 있고, 형편없이 질 수도 있다. 하지만, 뛰어서 경쟁할 수 있는 기회가 최소 한 번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새들어 나는 우리가 제공하는 작은 시드투자가 바로 이 ‘뛸 수 있는 기회’ 라는 생각을 한다. 좋은 기술과 실행력을 가지고 있는 팀이 다른 건 몰라도 돈이 없어서 아예 시작을 못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분들이 우리 투자금을 가지고 열심히 뛰어서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부모, 자율적 사고, 스타트업, 그리고 록키

몇 일 전에 EBS에서 방영하고 있는 ‘시험’ 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이게 6부작짜리 프로인데 나는 그 중 2개만 봤다. 나도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대학입시 시험을 봤지만(93학번이니까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였다), 나는 경험하지 않았던 고등학생들에 대한 여러가지 사실들을 새로 알게 되었다.

한국 고등학생 절 반 이상 – 이보다 더 높을 수도 있다 – 인생의 목표가 아직도 ‘대학진학’이라는 거에 솔직히 좀 놀랐다. 내가 고3 이었던 1992년도에도 이와 비슷했는데 20년도 더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게 좀 의외였다. 세상이 바뀌었고, 할 수 있는 일들도 많아졌고, 다양한 가능성과 기회가 생겼고, 지금 학부형인 부모님들도 우리 부모님들과는 달리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셔서, 학생이나 학부모나 세상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18년 동안 인생의 유일한 목표가 대학교 가는거면, 그 이후에는 이 젊은 친구들은 무엇을 위해서 살까? 그렇게 힘들게 대학교 들어가면 뭐가 크게 달라질거라고 기대를 하는거 같은데 오히려 이때부터 인생은 더 힘들어 지는데….험한 세상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걱정되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이보다 더 아쉽고 안타까웠던 건 바로 부모님들의 태도였다. 다른 학교, 다른 성적 수준, 다른 진학 진로의 고3 수험생 5명을 집중 취재했는데 이 중 그 어떤 부모도 자식을 격려하거나 자율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가이드를 해주는 분이 없었다. 모의고사를 못 보면 못 봤다고 화를 내고, 잘 보면 왜 한,두 문제 틀렸냐고 화를 내는 이런 부모님들이 과연 애들의 미래에 대해서 진심으로, 장기적으로 고민하시는건지 잘 모르겠다. 부모님이라면 오히려 남들 시선 의식하지 말고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격려를 해줘야 하는데, 항상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남들과 비교하면서 “옆 집 누구는 이번에 몇 점 받았고, 어디 갔더라. 개네 엄마 너무 부러워” 라는 말을 하는게 내가 보기엔 참 한심했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후에 “부모님이 반대하셔서 창업을 못 할거 같습니다” 라고 하는 친구들이 이제는 조금 더 이해가 갔다. 인생의 20년을 이런 분위기에서, 이런 부모님들과 함께 살았으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텐데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걸 나는 그동안 “왜 저렇게 자립심들이 없을까?” 라면서 고민했던거 같다.

뭐, 그렇다고 내가 교육 전문가도 아니고, 애도 없는데 부모들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도 없다. 하지만, 창업을 하는데 있어서 자립심과 자율적 사고는 굉장히 중요하고, 이런 습관은 교육과 가정을 통해서 만들어 지는게 맞는거 같다. 그리고 여기에는 부모님들의 역할이 지대하다. 언젠가 내가 Tumblr의 창업가 David Karp의 부모님에 대해 포스팅을 했는데, 다시 한번 읽고 느낀 점이 많았다.

Rocky 6에서 록키와 아들의 다음과 같은 장면이 있다. 나는 부모라면 자식들한테 이런 말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나라의 사회, 정치, 경제, 종교적 상황이 어찌되었던간에.

진주 찾기

지난 주에 동네 헬스클럽에서 밖을 보면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초등학교에 붙어 있는 문화체육센터라서 창밖에는 학교 야외 운동장이 보이고 마침 학생들이 단체로 잡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추운데 꼬마들이 즐겁게 노는게 보기 좋아서 운동하면서 계속 보고 있었는데, 운동장 한 쪽 끝에는 여자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그 외의 공간에는 남자들이 흩어져 있었다.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부르자 남자들은 도망다니고, 여자들은 이들을 잡기 위해서 열심히 뛰어다녔다. 나도 어릴때 이런 게임을 한게 기억이 났다. 체형들은 많이 바뀌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게 있다면, 가까이 있는 아무 남자가 아니라 평소에 흠모하던 남자를 여자들이 잡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멀리서봐도 키가 크고, 잘 생기고, 옷을 잘 입은 남자 아이를 잡으려고 10명 이상의 여자아이들이 운동장을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결국엔 그 아이는 잡혔고, 그 다음으로 잘생긴 남자아이가 잡히고, 뭐 이런 순으로 남자들은 다 잡혀갔다. 결국 모든 남자들은 잡혀서 운동장 밖으로 나갔고 한 명의 키도 작고, 외모도 보통인 아이가 남았다. 그런데 이 친구 상당히 빠르고 잽쌌다. 여자 15명 이상이 작은 운동장 안에서 이 친구를 마지막으로 잡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뛰었지만, 미꾸라지처럼 여기저기 잘 빠져다니면서 거의 5분 이상을 잡히지 않고 도망다니다가 결국엔 잡혀서 게임은 끝났다. 화려하지 않은 외모때문에 선택? 받지는 못 했지만, 이 친구가 그 중 가장 뛰어난 운동선수이자 날쌘돌이였던거다.

내가 하는 업무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나는 창업자들의 번드르르한 외모와 화술만 보고 투자하고 있는건 아닐까? 창업가들을 아무리 많이 만나도 이 사람에 대해서 모든걸 알 수 없기 때문에 첫인상, 외모, 화술, 어쩔때는 영어실력 등을 보고 투자 결정을 – 특히 우리같이 초기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겉과 속이 동일한 사람들도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렇지 않은 경우를 나는 더 많이 봤다. 내 주위에는 말은 좀 어눌하고, 투자자들이 원하는 ‘정답’을 제공하지 않고, 옷도 잘 못 입지만 비즈니스는 정말 끝장나게 잘하는 분들이 더러 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창업 초기에는 그 누구의 시선도 받지 못 했고 투자도 못 받았다고 한다. “별로 스마트해보이지 않는다”가 그 이유였다고 한다.

이 업무를 하면 할 수록, 그리고 투자한 회사 중에 승자와 패자들이 명확히 구분되는 순간을 더욱 더 많이 경험할수록, 옥석을 가리고 흙에 파묻힌 진주를 찾는게 얼마나 어렵고 고도의 통찰력과 운이 필요한지 몸소 느끼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 프라이머와 긴밀히 협업하면서 super early 회사들을 엄청 많이 만나고 있는데, 경험없고 다듬어지지 않은 – 좋게 말하면 ‘닳고 닳지 않은’ – 젊은 창업가들 중 어떤 분들이 승자인지를 잘 판단하려면 더욱 더 노력하고 공부해야하는걸 많이 느끼고 있다.

솔직히 너무 많은 초창기 회사들을 만나다보면 피곤하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그냥 보이는거를 위주로 회사들을 판단하는 경향이 가끔 생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예에서와 같이 겉만 보다가 진주를 놓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리고 창업가들의 외모와 언변을 관통해서 볼 수 있는 통찰력을 키워야 한다.

비행기 엔진은 괜찮은가?

Aircraft,-Runway-1-626이 분야에서 일하면 ‘활주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우리같이 초기 회사에 그리 크지 않은 금액을 투자하는 투자자들이 걱정하는것 중 하나가 우리가 투자한 이후 그 다음의 의미있는 펀딩을 받기 전에 회사가 망하는 거다. 이런 불행한 사태는 크게 두가지 케이스로 분류할 수 있을거 같다. 첫번째는 회사가 비즈니스 감을 잡지 못 하고 헤매다가 초기 투자금을 다 소진하고, 발전이나 결과를 전혀 만들지 못하고 사업을 접는 경우다. 투자사가 이렇게 망하면 안타깝지만 특별히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비즈니스를 못해서 망한 매우 흔한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조금 안타까운 케이스인데, 비즈니스 방향은 잘 잡았고 숫자도 어느정도 나오지만, 그 다음 라운드에서 의미있는 투자를 받을 정도의 성장은 못하고, 이로 인해서 원하는 밸류에이션을 정당화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만약에 이 글을 읽는 대표이사님이 두번째 상황에 놓여 있다면 다음 투자를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성과를 낼 때까지 활주로를 연장시켜야 한다. 작은 브릿지펀딩을 받거나, 대출을 받거나, 주위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서 활주로를 최대한 확보 해야한다. 물론 쉽지 않다. 곧 돈이 떨어져서 추락하는 스타트업에 자금을 투입할 투자자를 단기간안에 찾는다는건 어렵기 때문이다. 해본 사람은 알텐데 생각만 해도 피가 바짝 바짝 마른다.

나도 이런 회사들을 많이 만난다. 초기 투자금을 1-2억원 정도 받고 시작은 했는데, 예상보다 더 많은 돈과 시간을 사용했고, 아직 갈 길은 먼데 자금이 바닥나서 대표이사들이 미친듯이 돈을 구하러 다니는 경우를 많이 봤다. 비즈니스는 다 다르지만, 이들의 스토리는 비슷하다. 정말 잘 할 수 있고, 한 6개월만 더 버티면 매출이나 유저 수를 급격하게 증가시켜서 제대로 된 Series A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들이 필요한 건 5명의 팀원들이 딱 6개월 정도 더 버틸 수 있는 활주로 자금이다.

마음같아서는 도와주고 싶다. 얼마나 절박한지 잘 알기 때문에.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대표이사가 아주 냉정하게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하는건 정말로 활주로가 너무 짦은건지, 아니면 활주로와는 상관없이 비행기 자체가 날지 못하는건지 이다. 엔진이 튼튼하고 비행기는 견고한데 이륙하기 위해서는 활주로가 조금 더 길어야 한다면, 이런 스토리를 팔 수는 있을 것이다(물론, 이 스토리를 믿어주는 투자자를 잘 찾아야 한다). 하지만, 내가 몰고 있는 비행기가 엔진도 형편없고, 기체결함 투성이인 고철덩어리라면(=팀도 경쟁력이 없고, 제품이 후졌다면) 아무리 활주로가 길어도 이륙하지 못하니 냉정하게 분석했을때 내가 처한 상황이 이렇다면, 극단적으로 팀을 교체하거나 제품을 개선해야 한다.

<이미지 출처 = http://www.ialtenergy.com/ozone-layer.html>

도전. 그 짜릿함과 감동.

사진 2015. 11. 20. 오후 3 23 48지난 주에 대전에 내려가서 몇 몇 스타트업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연구개발이 많이 활성화 된 지역이라서 그런지 제조, 특허, 그리고 하드웨어에 focus된 회사들이 많았다. 솔직히 내가 잘 알거나 많이 투자하는 분야가 아니라서 그런지 비즈니스 설명을 들어도 100% 이해할 수는 없었고 너무 어려운 내용이라서 조금은 지루하기도 했다. 그런데 내 눈길을 끄는 한 회사가 있었다. 아니, 회사가 아니라 대표이사님이 내 눈길을 끌었다고 하는게 맞다.

1953년 생. 올해 나이 63세. 나보다 20년을 더 많이 사신, 우리 아버지 같은 분이 무대에 올라와서 잔뜩 긴장하시면서 발표를 했다. 내가 전혀 모르는 분야인 ‘고온 압력 트랜스미터’를 국내에서 생산하겠다는 비즈니스였다. 회사나 대표님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지만, 화학공학 박사이시고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30년 넘게 연구원 생활을 하신 후 늦게 창업하신 분이다. 본인이 평생 공부하고 종사하던 분야에서 30년 동안 느끼신 점들이 있어서 창업을 결심했고 용감하게 그 ‘첫번째 발걸음‘ 을 내디딘 이 분의 발표를 들으면서 내내 뭔가 짠 했다.

솔직히 이 분의 자료나, 발표나, 자세는 내가 주로 만나는 젊고 세련된 청산유수 창업가들과는 많이 달랐다(여기서 내가 사용한 단어는 “달랐다” 이지, “떨어졌다”나 “모자랐다”가 아니라는 점). 하지만 마치 켄터키후라이드치킨을 65세의 나이에 창업한 샌더스씨를 만났다는 느낌을 나는 받았고, 이 분 한테 물어봤다.

“사장님, 연구원 생활 30년 하셨으면 이제 큰 걱정없이 노후를 편안하게 사실 수 있는데 굳이 지금 이걸 시작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그리고 왜 조금 더 일찍 시작하시지 않았나요?”

“제가 30년 이상 연구하면서 이 부품을 해외에서 비싼 가격에 수입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더 좋고 저렴한 제품을 만들 수 있구요, 이건 반드시 누군가 한국에서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저는 제가 그걸 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그리고 이걸 더 일찍 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천성이 엔지니어다 보니 연구가 너무 재미있어서 연구에 푹 빠져서 살다가 이렇게 뒤늦게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전에 내가 로켓을 만들어서 발사하는 중학생 정재협 학생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다. 정재협 학생과 이 나이드신 대표님의 이미지가 계속 머리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우리나라에 이런 분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우리 같은 사람이 이런 분들을 많이 도와줘야 한다는 다짐도 한번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살면서 ‘도전’ 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오늘처럼 이 단어가 짜릿하고 감동적일때가 있었을까? 63세의 창업과 도전. 솔직히 내가 전혀 모르는 분야지만 개인적으로라도 도와드리고 싶다.

오늘도 많이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꼭 그 꿈이 현실이 되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