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ndersAtWork

유명도 무명의 시절이 있었다

얼마전에 ‘동상이몽’ 이라는 프로그램에서 15년 동안 무명가수 생활을 하고 있는 김현미라는 가수의 이야기를 봤다. 나도 이 일을 하면서 정말 힘들게 사는 창업가들을 많이 보지만 이 가수분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무대에서 노래하는게 너무나 즐겁고, 노래 하는게 자기 팔자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김현미씨 한테는 박수를 보낸다. 이 분은 건강이 썩 좋지 않지만 무대 위에 올라가서 노래만 부르면 아픈것도 다 잊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하시는데, 노래 부를때 표정을 보니 정말 너무 행복한 표정이었다. 김현미씨가 이애란씨 처럼 성공할 수 있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스타가 탄생했다고 할 것이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우리는 잘 안다. 하루아침에 대박나는 건 이 세상에 없다. 복권도 꾸준히 구매하고 간절히 원할 때 당첨되는 걸 나는 주변에서 봤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이다. 갑자기 우리가 모르는 회사가 대박나면 우리는 그 회사랑 사장은 운이 좋다고 부러워들 하지만, 실제로는 위에서 말한 김현미씨와 같이 아픔, 고통, 그리고 서러움을 참으면서 자기 갈 길을 걸어왔던 오랜 무명의 시절이 있을 것이다. 성공은 그 준비 기간이 매우 길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그 준비 기간 동안 수 백만가지 이유 때문에 망하지만, 잘 참고 운이 조금만 바쳐줘서 파도를 잘 타면 유명해 질 수 있다.

내일은 프라이머 8기 데모데이이다. 20개의 스타트업이 800명이라는 어마무시한 청중 앞에서 5분씩 피칭을 하는 아주 중요한 행사이다. 이들 모두 지금은 김현미씨와 같은 무명의 스타트업들이다. 아직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등 따시고 배부른 길을 스스로 버리고 본인들이 믿는 길을 외롭게 가고 있는 (대부분)젊은 친구들이다. 하지만 나는 이 회사들과 지난 몇 개월 동안 같이 일하고 교류하면서 이들의 가능성을 직접 느끼고 봤다. 외롭고 서러운 무명의 시절을 잘 극복해서 모두 다 유명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이다. 이 세상에는 이런 소중한 인생을 마치 여러 번 사는 것처럼 낭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대충 살고, 남이 내 운명을 결정하게 하고, 그리고 “어떻게 잘 되겠지”를 꿈 꾸면서 그냥 그렇게 살다가 죽을 사람들이다. 이런 분들 한테는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 그들을 보면서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라고 하루에도 여러 번 다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 아주 가까운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이 없다. 지금은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이지만 – 그리고 딱히 누가 이들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램 때문에 열심히 사는 건 절대로 아니다. 그냥,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즐겁게, 힘들게, 그리고 치열하게 사는 젊은 친구들이다 – 언젠가는 이들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고, 오랜 기간 동안 잘 준비하고 훈련을 했다면 이들은 성공해서 유명해 질 것이다.

내일 모두 데모데이에서 good luck.

그 누구의 길도 아닌. My way.

사진 2016. 1. 9. 오후 5 04 54작년부터 John과 나는 권도균 대표님이 설립한 국내 최초의 악셀러레이터인 프라이머의 파트너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우린 본격적으로 8기 부터 조인했는데, 얼마 전에 9기 모집이 끝났다. 9기에는 586명이 참가를 했고, 이들이 135개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서 지원했다. 내 주위에는 더 이상 한국에는 투자할 회사가 없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고, 젊은 친구들의 창업 열기가 시들었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프라이머 9기 지원한 분들을 보면 오히려 한국의 창업 현실은 이와 반대로 매우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이 중 20개 정도의 팀들은 프라이머 9기로 선발되겠지만, 대부분은 선발되지 못 할 것이다. 선발되지 못 한 분들에게 내가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전혀 신경쓰지 말고 하고 싶은 일, 그리고 하던 일 계속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프라이머 같은 악셀러레이터에 지원하기 위해서 많은 준비를 하고, 많은 밤을 세웠던 건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불합격 통보를 받으면 정말 김 빠지고 실망이 크다는 것 또한 잘 안다. 어떤 팀들은 불합격이 창업의 끝이라고 생각하고 그동안 꿈꾸던 비즈니스를 접고, 힘들게 만든 팀을 해체하고, 창업 자체도 그만둔다. 나는 이들이 남의 길이 아닌 자신들의 길을 가라고 해주고 싶다. 물론, 프라이머에 합격하면 당연히 좋다. 투자도 받고, 프라이머 파트너들의 적극적인 도움도 받고, 다른 프라이머 동기/선배 회사들과 교류하면서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귀한 기회가 주어진다. 그렇지만 악셀러레이터가 창업의 종착점은 아니다. 이는 그냥 창업의 과정에서 거쳐가는 수많은 과정 중 하나이다. 되면 좋지만, 안 되도 좋다. 중요한 건 창업가와 팀이 시작한 걸 끝까지 믿고 밀어 붙이는 것이다. 남한테 보여주기 위한게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 이런게 악셀러레이터 지원 뿐이겠나. 투자도 마찬가지이다. 스타트업의 목표는 투자를 받는게 아니다. 돈이 떨어져서 투자를 받으면 하고 싶은걸 조금 더 하고, 사업 초기에 세운 가설들을 조금 더 테스트 해볼 수 있는 여유가 약간 더 생기는 것이다.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다. 투자를 많이 받은 회사가 성공한 회사는 절대로 아니다. 투자를 못 받아도 그만이다. 그냥 내가 원래 가던 길을 계속 가면 된다.

아직 성공했다고는 말 할 수 없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온오프믹스, 스타일쉐어, 그리고 마이리얼트립 모두 프라이머 회사들인데 2010년도에 선발된 1기 회사들이다. 이 회사들이 현재 위치까지 오기에는 5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고, 미안하지만 아직 한참 멀었다. 그만큼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게 비즈니스이다. 창업은 남들과 경쟁하는 경진대회가 아니고, 창업가들은 연예인이 아니다. 남한테 보여주기 위한 길을 가는게 아니라 나만의 길을 가는 것이다.

프라이머 9기 스타트업 뿐만 아니라 모든 스타트업들이 너무 조바심 갖지 말고, 좀 길게 보고 자신만의 my way를 갔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두 회사의 이야기 – part.2(한인텔)

이 전 포스팅의 두 번째 이야기다. 테이크톡스를 운영하던 오현석씨와 김태호씨, 이 두 분 다 아주 맘에 들었다. 둘 다 좋은 엔지니어들이고, 성품도 너무 훌륭했다. 그리고 가진것도 없고, 경험도 없었지만 북미 시장에 도전하는 자세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한때는 우리가 테이크톡스에 투자할까 검토를 했는데 이 와중에 비즈니스를 접고 둘이 각자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김태호 대표는 LA로 와서 레코미오를 창업했고 우리는 이 회사에 투자했다. 오현석 대표는 이전에 본인이 창업해서 이미 잘 운영되고 있던 한인텔로 돌아가서 여행 비즈니스에 집중하기로 결심을 했다. 그래서 우리는 한인텔에도 투자를 했다. 워낙 탄탄한 비즈니스라서 한인텔은 레코미오 만큼은 힘들진 않았지만 중간 중간에 당연히 여러번의 고비도 있었다. 그리고 2014년 말에 옐로모바일의 여행부문 자회사 옐로트래블에 인수되었다. 현재 오현석 대표는 옐로트래블이 인수한 우리펜션, 한인텔, 플레이윙즈, 자리 4개사를 편입한 옐로트래블랩스의 대표이사로 한국 최고의 여행 서비스를 개발하고 제공하고 있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외대 컴공과 선후배 사이인 오현석 대표의 한인텔과 김태호 대표의 레코미오에 스트롱이 모두 투자를 했고, 이 두 회사가 2014년 말에 나란히 일주일 간격으로 좋은 회사들에 인수가 되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연의 일치이며, 타이밍과 운의 공이 매우 컸다. 하지만, 역시 이 재미있는 시나리오의 핵심에는 우리가 항상 강조하는 ‘사람’이 있었다. 제품도 중요하고, 계획도 중요하고, 회사도 중요하고, 모두 중요하다. 그렇지만 이 모든게 ‘사람’이 없으면 다 소용없다. 우리는 좋은 사람들한테 투자를 했고 이들을 끝까지 믿었다. 예상치 못했던 장애물도 많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위, 아래 왔다갔다 하는 롤러코스터의 연속인 2년 이었지만 ‘사람한테 투자해라’는 정말로 절대불변의 진리라는걸 몸소 경험했다(이 두개의 exit 이후에 나는 한국외대 공대 출신 창업가들이라면 굉장히 적극적으로 만나려고 노력했다).

‘두 회사의 이야기’ part.1과 part.2는 실은 회사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것도 아주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두 분은 어쩌면 수 년 후에 다시 창업에 도전할지도 모른다. 그때까지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다면 둘이서 뭘 하든 그냥 무조건 투자하겠다.

두 회사의 이야기 – part.1(Recomio)

*이 포스팅은 얼마 전에 김태호씨가 블로그에 올린 글 ‘미국에서의 창업, 그 3년의 짧은 기록들‘을 보고 영감을 받아 올린다

2012년 비글로벌 – 당시에는 beLAUNCH 였다 – 최종 피칭 스타트업 20개 중 TakeTalks 라는 스타트업이 있었다. 뉴욕에 본사를 두었지만, 창업자들은 한국인들이었고 영어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한국인들과 미국 원어민 선생들을 동영상으로 연결해 주는 서비스였다. 당시 발표는 이 회사의 엔지니어 김태호씨와 사장 오현석씨가 했다. 둘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선후배 사이였고, 오현석씨는 한인텔의 창업자/대표이기도 했는데, 잠시 한인텔을 떠나서 테이크톡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두 분 한테서 긍정적인 인상과 에너지를 받았고 계속 연락을 하면서 지냈다.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안타깝게도 테익톡스는 활주로를 박차고 하늘로 나는데 실패했고 오현석 대표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한인텔 비즈니스에 집중하기로 결심을 했다. 그러면서 김태호씨가 free agent가 되었는데, 그의 개발 능력을 대략 알고 있었던 John과 나는 태호씨를 LA로 초청했다. 한 번 와서 LA 분위기도 보고, 가족들과 살기에 좋은 곳인지 확인해 보라는 차원에서, 당시 우리도 없는 살림에 비행기 표를 보내줬다(실은 American Airlines로 부터 협찬받은 마일리지를 활용했다).

태호씨가 봤을때도 따뜻한 천사의 도시 LA가 나쁘지 않았고, LA에서 다시 창업을 하라고 우리도 계속 설득을 했다. Strong이 많이는 투자하지 못 하지만 기본 시드머니를 제공하고 사무실도 제공할테니 일단 무조건 LA로 와서 뭐를 개발할지는 그때 정하자고 계속 설득을 했고, 몇 주 후에 태호씨와 와이프 지연씨, 그리고 두 애기들 이렇게 4 가족의 LA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게 2012년도 말이었을 것이다. 태호씨에게는 모든게 낯설었지만, 오자마자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우리는 회사 설립, 취업 비자, 아파트 계약, 중고차 구입 등 ‘개발’과 관련되지 않은 나머지 부분들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지원사격을 했다. 당시 태호씨가 하고 싶었던 분야는 추천, 개인화, 빅데이터 였고 우리는 회사이름을 Recom.io라고 지었다. 김태호 대표가 기술력은 뛰어났지만, 영어나 기획 그리고 비즈니스 스킬을 보강하기 위해서 내 어릴적 친구이자 뮤직쉐이크 동료였던 서철씨가 co-founder로 조인을 했다.

솔직히 그 이후 2년 간 레코미오의 스타트업 생활을 요약하자면 ‘투쟁’ 과 ‘살기위한 처절한 몸부림’ 이라고 하는게 맞을거 같다. 자세한 내용은 김태호 대표의 블로그를 참고하면 되지만 결론적으로 2년 동안 4개의 제품을 출시했지만 시장의 선풍적인 인기를 얻는데에는 모두 실패했다. 1년 조금 지나서 회사는 돈이 떨어졌지만, 추가 투자를 받기에는 수치가 뒷받침 해주지 못했다. 그 이후 김태호와 서철은 거의 1년을 무보수로 일했다. 서철씨는 미혼이라서 김태호씨보다는 상황이 조금은 더 나았지만, 주말마다 결혼식 같은 행사에서 피아노를 연주해주고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서철씨는 피아노 전공자이다). 하지만, 처자식이 있는 김태호씨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의 블로그에서 발췌한 이 내용이 당시의 상황을 요약해 준다.

“LA 생활을 돌아보면 일을 떠나 감정적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이 두 개 있다. 하나는 딜이 진행되는 동안 가족들을 먼저 한국으로 보내고 살던 집에서 짐을 빼 스토리지로 모두 옮겼는데 그 때 크지도 않은 집 구석구석에서 많은 수의 진통제 통들을 발견했다. 집사람이 집안에 소홀한 나 대신 타지에서 어린 아이 둘을 키우며 하루하루를 진통제로 버텨왔던 것이다. 나에게 티도 내지 않고.
하나는 좀 부끄럽긴 한데 우리 부부가 돈이 없어서 2년 간 옷도 못사고 살았는데 속옷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속옷 앞이 다 터져 나갔고 집사람은 뒤가 다 터져 나갔다. 당시 서로 이제 모든 팬티가 결국 찢어졌구나 하고 웃어넘겼지만 그 모습으로 아이를 안고 있는 집사람을 보며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며 살고 있는건지 내 자신이 싸이코패스 처럼 느껴졌었다. 진통제통과 찢어진 팬티. 그 강렬한 이미지.”

뭐, 돈 없는 스타트업들의 창업 이야기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일반인들은 평생 경험할 수 없는 개고생을 하는 면에서 보면 레코미오 또한 다른 고생하는 스타트업들과 비슷하다. 하지만, 미국에서 살아본 적도 없고, 영어도 유창하지 않은, 한국에서 교육받고 코딩 기술을 익힌 개발자 출신의 창업가가 미국에서 창업을 하면서 부딪히는 현실의 벽과 물가가 싸지 않은 캘리포니아에서 없는 살림으로 4 가족을 동시에 꾸려 나가야 하는 생활은 한국에서 창업해서 고생하는 회사들과는 확실하게 다르고,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나 또한 11개월 이상을 미국에서 무급으로 일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잘 알고 있다).

언젠가는 그 2년 동안의 에피소드들을 웃으면서 자세히 공개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레코미오는 결국 아슬아슬하게 벼랑 끝에 몰렸다. 옆에서 이 안타까운 상황을 지켜보던 우리가 먼저 이들에게 회사 문 닫고 일단 다른 곳에 취직하라고 제안했다. 서철, 김태호 실력 정도면 모두 실리콘밸리나 LA의 왠만한 스타트업이나 대기업에 취직해서 억대 연봉을 받는 건 솔직히 어려운 일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아뇨, 조금만 더 해보죠. 우리야 그냥 다른 곳에 취직하면 되지만 그래도 투자자분들(스트롱이 유일한 투자자)에게 최소한 투자금은 돌려드려야죠.” – 먹고 살 돈이 없어서 와이프와 두 애들을 한국으로 보내고, 스트롱벤처스 사무실에서 6개월 동안 먹고 자고 있던 김태호 대표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내가 이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꼈던 순간들이 많았는데, 이 때 나는 정말 이런 사람들과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사했다. 너무 보람찼다. 그리고 반드시 이 상황을 역전 시켜야 겠다는 다짐을 했다. 하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많지 않았다.

착하게 살고, 열심히 살고, 연예인처럼 자기 PR을 하지 않아도 능력이 있다면 하늘이 한 번은 도와 준다는 말이 정말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오랜만에 했다. 정확하게 3개월 후, 몇 몇 기업들이 레코미오 인수에 관심을 보였고 2014년 말에 레코미오는 아주 좋은 회사에 인수되었다. 스트롱벤처스한테는 첫번째 exit 이라는 훈장을 선물해준 너무나 고마운 인수였다. 이렇게 김태호, 서철은 LA의 생활을 정리하고 실리콘 밸리로 이사를 갔다. 둘 다 너무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새 보금자리에서 일하고 있고 나랑은 아직도 자주 연락하면서 지낸다. 큰 일을 할 친구들이다. 우리가 exit을 시킨것도 아니지만, 어쨋든 이런 좋은 팀을 초기에 알아보고, 투자하고, 같이 고생하면서 좋은 결실을 맺게 되어 즐거운 연말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모두 미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굴곡없는 성공 스토리 보다는 누군가 밑바닥에서 부터 성장하는 그런 growth story들을 더 좋아하고 공감을 한다. 이런 각도에서 봤을때 레코미오 이야기는 내가 아는 그 어떤 스토리 보다 극적이고 감동적이다. 어떻게 아냐고? 2년 동안의 그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들을 바로 옆에서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2년 밖에 안 되었지만, (워낙 빠르게 변하는 동네라서)기억을 조금씩 더듬으면서 이 글을 쓰다가 혼자서 웃고 울곤 했다. 힘들어서 지금 포기하고 싶지만, 조금 더 버티고 있는 창업가들한테 조금이나마 영감이 되었으면…

부자의 대열에 끼기

이 전 포스팅에서 한국과 미국의 부자들, 그리고 부의 창출과 대물림에 관해서 이야기 했는데, 꽤 많은 분이 공감해 주셨다. 많은 분이 재벌들이 지배하고 있는 한국의 경제와 미래에 대해서 걱정했고, 하루빨리 우리나라도 스스로 자수성가한 부자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를 표시했다.

그리고 많은 분이 스스로 질문을 했을 것이다 – 나 또한 그랬으니까. “어떻게 하면 나도 이 부자 리스트에 올라갈 수 있을까?”

대한민국 10대 부자 리스트에 끼고 싶으면 기본적으로 ‘조’ 단위의 재산을 보유해야 한다. “1조 원 밸류에이션” , “billion dollar company” , “유니콘” 등의 단어들을 우리는 워낙 여기저기서 많이 듣기 때문에 때론 ‘1조 원 돈이 얼마인지 실감이 안 날 때가 많다. 나도 전혀 감이 안 온다. 1조 원이라는 돈을 만져 본 적이 없으므로. 대한민국 10대 부자 대열에 끼고 싶으면 기본적으로 1조 원이 있어야 하는데, 1조 원은 얼마나 어마무시한 금액일까? 1조 원으로는 다음 물건들을 살 수 있다(작은 -> 큰 순서):

1/ 맥도날드 빅맥 2억 개(우리나라 국민이 모두 빅맥을 4개씩 먹을 수 있다)
2/ 아이폰 6 125만 개
3/ 포르쉐 911 2016년 모델 8,333개
4/ 강남의 50평짜리 아파트(평균가) 667개
what 1B can buy
1조 원의 위력은 엄청나다. 1조 원을 가진 부자는(=billionaire) 그냥 우리 주변의 알부자, 돈 많은 사람, 상가 몇 개 가지고 있는 친구 아버지랑은 차원이 다른 부자다. 즉, 갑부이다. 어떻게 1조 원을 벌어서 부자의 대열에 낄 수 있을까?
1억 연봉은 절대로 적은 게 아니다. 요샌 평균 연봉이 많이 올랐지만, 1억 원은 아직도 고액연봉이다. 그런데 1억 연봉을 받는다면, 그리고 한 푼도 안 쓰고 몽땅 다 저축을 해도 1만년을 일해야지 1조 원을 모을 수 있다.
100억 연봉을 받는다면, 그리고 한 푼도 안 쓰고 다 저축해도 100년을 일해야지 1조 원을 모을 수 있다.
즉,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월급쟁이로는 1조 원을 벌 수 없고, 10대 부자 대열에 절대로 낄 수 없다. 더러운 꼴 참고, 가족들한테 소홀히 하고, 죽도록 일하고, 술 엄청 먹고, 그리고 운이 억수로 좋아서 한국 최고의 기업 삼성전자의 사장이 되면 150억 원의 연봉을 받는다고 한다(출처: 더팩트). 경영을 잘해서 삼성전자 사장을 10년 동안 한다고 가정해보자. 150억 연봉을 10년 동안 한 푼도 안 쓰고 다 저축을 해도 1,500억 원이다. 1조 원의 7분의 1 이다.

1조 원을 벌고 싶다면, 그래서 부자의 대열에 끼고 싶다면, 그런데 우리 할아버지가 현대나 삼성을 만들지 않았다면? 유일한 방법은 창업이다. 창업을 통해서 기존에는 없던 가치를 만들고, 이로 인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해야지만 부자의 대열에 들어갈 수가 있다.

물론, 모든 걸 돈으로만 볼 수는 없다. 그리고 단지 돈만을 보고 창업하는 것도 그렇게 바람직한 건 아니다(하지만, 나는 “돈을 억수로 벌기 위해서 창업했습니다” 라고 하는 창업가들도 좋다. 이들한테는 ‘돈’이라는 게 긍정적인 자극제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나 사회를 이롭게 하려고 부를 창출하려면 억 단위가 아니라 조 단위의 부를 만들어야 하는데, 재벌가에서 태어나지 않은 보통수저/흙수저/스테인리스 수저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창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물론, 모두가 다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창업가라면 누구나 다 도전해 볼 수 있다. 누구나 다 1조 원을 꿈꾸고, 도전할 수 있다는 이 사실 자체가 멋지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