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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바이블 – Chapter 9.4 <결론, 그리고 내가 배운점들>

자, 이제 <스타트업 바이블> 마지막 챕터의 마지막 장이다. 솔직히 이 외에도 많은 내용이 있는데 너무 길고, 그리고 나도 글로 생각을 정리하려면 시간이 좀 걸려서 여기서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절망, 걱정, 슬픔, 기쁨 (가끔), 감동 등의 감정이 롤러코스터와도 같이 요동쳤던 2009년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지만, 우리는 2009년 중반까지도 별다른 탈출구를 찾고 있지 못하였다. 오전 8시부터 밤 8시까지 내 머릿속은 온통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활주로를 연장할 수 있을까?”와 “어디서 몇십억 빌릴 때가 없을까?”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고, 불안하고 초조하게 나날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미친 짓이었는데, 언젠가 나는 스탠포드 대학 동문 주소록을 A부터 Z까지 훑으면서 언론에서 우리가 접하고 들어본 스탠포드 출신 유명인사와 부자들의 연락처를 적어 놓은 다음에 하나씩 연락을 시도해봤다.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은 대부분 비서 연락처를 적어놓거나 연락처를 아예 적어놓지 않는데 여기저기 연락을 시도하는 와중에 나는 스탠포드 MBA 출신인 나이키 창업자이자 회장인 Phil Knight의 개인 핸드폰 번호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얻었는지는 물어보지 말아라 ㅎㅎ. 번호를 얻은 거만으로도 책 한 권 분량의 내용이 나온다). 아무리 얼굴에 철판을 깔고 영업을 해왔던 나였지만 나이키 회장한테 직접 전화를 한다는 게 매우 부담스러웠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몇 번이나 연습을 한 후에 나는 전화를 걸었다:

Phil Knight (PK): 여보세요?
배기홍 (KB): 안녕하세요. 나이트 회장님이신가요?
PK: (귀찮은 어투로) 네, 맞습니다. 누구시죠?
KB: 안녕하세요. 저는 스탠포드 동문인 배기홍이라고 합니다……. 중략…
PK: 네, 안녕하세요. What can I do for you?
KB: 정신 나간 소리 같지만, 우리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있습니다. 2백만 불만 투자하시면 5년 후에 5배 이상의 수익률을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PK: (껄껄껄 웃으면서) Son, you have some balls! (얘야, 너 참 용감하구나!). 너한테 돈을 주지는 못하지만, 너 이름은 반드시 기억해 두마. 이름이 뭐라고?
KB: Kihong Bae. 그런데 저는 제 이름을 기억하는 거보다 돈이 필요합니다. 회장님도 회사를 운영하시는 마당에 제 입장과 심정을 충분히 잘 이해하시리라 생각됩니다.
PK: 미안하지만 지금 바쁘고, 말했듯이 돈을 줄 수는 없다. I will remember your name though. Call me some other time and let me know how you are doing.

*몇 년 뒤에 나는 필 나이트 회장한테 다시 한번 전화를 해볼 거다. 정말로 내 이름을 기억하는지.

위와 같은 전화를 나는 다양한 스탠포드 출신의 유명인사들한테 해봤지만, 당연히 매번 뺀찌를 먹었다. 이런 전화를 받고 투자를 하면 오히려 그게 미친놈이지…. 하지만, 하늘도 뮤직쉐이크를 불쌍히 여기셨는지 2009년 12월에 정말 기적과도 같이 우리는 18억이라는 투자 유치에 성공하였다. 물론, 하루아침에 투자가 성사된 거는 아니었다. 무려 9개월의 투자유치 노력과 기다림의 결과였다. 2010년 1월 실제로 돈이 통장에 입금된 거를 확인하고 나는 내 친구이자 직장 동료인 철이와 포옹을 하였다.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남자들 간의 뜨겁고 힘찬 포옹이었다. 그리고 둘 다 별 말 없이 한참 그러고 있었다. 뭐라도 크게 celebrate를 해야 할 거 같았지만, 솔직히 그동안 돈이 없어서 우리가 해야 하지만 못한 일들이 산더미 같았기에 다시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전화를 붙잡고 열심히 sales call들을 시작하였다. We were back in business.

시련을 겪으면 그만큼 성숙해지고 인생을 다양한 각도로 볼 수 있는 노하우가 생긴다고 인생 선배들과 우리의 선조들이 말씀했는데, 솔직히 이후에 나한테 특별한 노하우가 생겼는지 아니면 정말 그렇게 많이 성숙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대신 개인적으로 – both professionally and personally – 느끼고 배운 점들은 몇 가지가 있다:

1. 가족의 고마움 (여자들은 생각보다 강하다) –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2009년 2월부터 12월까지, 11개월 동안 회사에서 집으로 단 한 푼의 월급을 가져오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무급으로 일을 해보신 분들은 이게 말보다 쉽지 않다는 걸 잘 알 것이다. 특히, LA같이 물가가 비싼 동네에서 가족을 부양하면서 11개월을 벌이가 전혀 없이 산다는건…그리고 나는 이 사실을 와이프한테 어떻게 알려야 할지 많이 고민하였다. 와이프는 나랑은 다르게 지금까지 부족함 없는 환경에서 자랐기에 더더욱 나는 충격을 주기가 싫었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부자가 가난하게 사는 거처럼 힘든 건 없다고.
그런데 막상 사실을 말하자 와이프의 반응은 뜻밖에 담담했다. 오히려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 나를 “곧 투자받겠지. 뭐, 그렇다고 우리가 굶어 죽겠어.”라면서 옆에서 계속 다독거려줬다. 여자들이 보기보다는 강하다는 걸 알았지만, 이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던 11개월이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은 지현이한테 나는 평생 빚을 졌고, 앞으로 평생 그걸 몇 배로 갚을 것이다 (샤넬 백?).

2. 친구들의 고마움 – “어려울 때 옆에 있어 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라는 너무나 당연한 격언을 나는 2009년도를 살면서 절실히 경험하였다. 솔직히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동안 나랑 친한 척하고, 내 주위를 맴돌던 많은 거짓된 놈들은 하나둘씩 나를 떠났다. 그렇다고 내가 돈을 빌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곤란한 부탁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들은 언제부턴가 내 전화를 회피하기 시작하였으며 어느 순간부터는 완전히 연락이 끊겨버렸다. 하지만, 어려울 때일수록 내 옆에서 나를 토닥거려주면서 믿음과 긍정의 힘을 나한테 불어 넣어준 친구들을 나는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친구들이여 – 그대들한테도 나는 큰 빚을 졌고,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3. 육체적 건강 – “운동이 보약이다“이라는 블로그 포스팅에서도 썼는데, 스타트업이 잘 안 돌아가면 그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함은 아무리 강한 창업가들이라도 어느 정도 damage를 입을 수밖에 없다.
이때 중요한 게 바로 육체적인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다. 건강한 육체는 건강한 정신으로 이어지며 정신적으로 힘들수록 복싱과 같은 규칙적이고 격렬한 운동을 하는 걸 나는 권장한다.

4. 리더쉽의 중요성 – 아무리 작고 수평적인 스타트업이라도 직원들은 사장단의 영향을 받으며 사장단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어렵고 힘들어도 리더쉽 team은 절대로 패닉하지 말고 평상심을 유지해야 한다. 자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뮤직쉐이크가 2009년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큰 이유는 바로 포기하지 않았던 사장님과 경영진들의 뚝심이었다. 상황이 절박해도 나는 한 번도 우리 회사가 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그 어떤 내색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5. 얼굴에 철판을 깔아라 – 남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돈 달라고 구걸하는 걸 쪽팔려 하지 말아라. 회사가 망하면 이보다 더 쪽팔린다.

6. 열심히 해도 잘 안된다 –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다 보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들을 많이 들을 수 있다.
-“내일 시험인데 열심히 했으니까 잘 되겠지.”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으니까 계약이 성사되겠지.”
개소리다. 열심히 해서 모든 게 다 잘되면 우리 주위에 백만장자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열심히 공부했으면 다 서울대 갔게? 솔직히 내 주위에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즉, 열심히 하고 기도만 하면 모든 게 다 잘 풀리는 건 동화책에서나 있을법한 이야기이다. 열심히 하는 건 기본이고, 잘 해야 한다.

7.실패를 쪽팔려하지 마라 – 실패는 수치스러운 게 아니다. 한국에서는 사업에 실패하면 집을 날리고 마누라가 도망간다고 하지만 최소한 실리콘 밸리에서는 실패는 오히려 주위의 다른 entrepreneur들의 존경과 동경심을 받는 영광의 훈장과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실패에도 명예로운 실패와 불명예스러운 실패는 있다. 사업도 스타트업도 결국에는 숫자와 돈으로 하는 게임이라는 걸 명심해라. 게임에서 지면, 항상 그다음 게임이 있다는 거와 함께. 한번 지면, 다시 일어나서 다음 게임을 준비하면 된다.

자, 여기까지가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이다. 2009년도는 뮤직쉐이크뿐만 아니라 이 블로그를 읽으시는 모든 분들한테 힘들었던 한 해였을 것이다. 운이 따르지 않아서 사업이 망한 분들도 있을 것이고, 나와 같이 운 좋게 살아남은 분들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거는 우리 모두가 많은 걸 느꼈고, 배웠고 앞으로는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는 “결국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니까”라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은 정말 맞는 거 같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며 오늘이 어제보다 낫고, 내일이 오늘보다 낫게 만들 수 있는 건 우리 개개인의 마음가짐이다. Success is really a mind game.

스타트업 바이블 – Chapter 9.3 <전직원의 영업 - 뭐라도 팔아라>

회사가 만드는 제품을 팔 수 없다면, 그건 제품도 아니고 당신들이 하는건 비즈니스가 아니다. 단지 취미 생활일 뿐이다. Dallas Mavericks 농구팀의 억만장자 구단주 Mark Cuban은 “영업은 모든걸 해결한다.”라는 말을 버릇처럼 하곤했다. 그만큼 스타트업이 살아남으려면 영업만큼 중요한건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스타트업의 활주로가 6개월도 채 남지 않았을때만큼 영업이 중요한 시기는 없을것이다. 솔직히 상황이 이 지경까지 왔다면 3년치 계획이니 회사의 장기적인 전략같은건 필요가 없다. 곧 자금이 고갈되어 회사가 망할판에 장기적인 비전이나 전략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이때는 영업사원들뿐만이 아니라 스타트업의 전직원이 영업 전선에 뛰어들어서 자신들의 제품을 팔아야한다. 개발자, 마케팅, 회계, 경리 상관없다 –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전원 공격을 해야한다.

대기업이던 작은 스타트업이던간에 모든 회사는 장기적인 전략이 있을것이다. 회사가 나아가야할 궁극적인 목표를 결정하고, 모든 CEO들은 이러한 비전과 전략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여러가지의 단기적인 계획과 목표들을 수립하여 실행해 나아간다. 회사의 궁극적인 비전을 실현하거나 가까이 다가가는데에는 짧게는 수년, 길게는 평생이 걸릴지도 모른다. 빌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할때 회사의 비전을 “모든 가정에 PC를 한대씩 깔고, 이 PC들을 돌아가게 하는 소프트웨어를 제공”이라고 정하였고, 이 비전이 조금씩 실현되어가고는 있지만 솔직히 언제 완성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큰 비전을 완성하기 위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Windows, Office, Xbox 등등의 제품을 만들어서 consumer와 business 시장을 공략하면서 계속 현금을 창출하고 있다.
스타트업들도 전략적인 면을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마이크로소프트도 1975년도 창업 당시에는 스타트업이었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모든 스타트업들은 상당히 웅대하고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다. 그 어떤 창업가들도 “우리 회사는 그냥 대충 몇년 비즈니스하다가 접어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회사를 시작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회사는 몇년 뒤에 세상을 바꿀 제품을 만들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창업을 한다. 하지만, 스타트업들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원대한 비전과 전략이 실현될때까지 직원들의 월급과 비용을 충당할만큼 주머니가 깊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스타트업들이 원래 꿈꿔왔던 비전을 접고 당장 돈 벌 수 있는 단기적인 일거리에 focus를 맞추는걸 우리는 2009년도에 많이 볼 수 있었다.

활주로가 6개월 남은 이 시점에서는 유감스럽게도 회사의 비전, 장기적인 전략 그리고 스타트업 창업 당시의 비즈니스 모델은 전혀 의미가 없다. 이 모든걸 버리고 무조건 지금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영업활동에 전직원의 혼과 정신이 집중되어야한다. 옷을 파는 회사인데 옷이 잘 팔리지 않고 활주로가 6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면 옷감을 팔던지, 옷 사진을 팔던지, 뭐라도 단기적으로 돈을 회사에 벌어줄 수 있는걸 해서 조금이라도 회사의 생명을 연장시켜야한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저들이 곡을 만들어서 돈을 내고 MP3를 구매하게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우리의 비용을 충당할 정도로 잘 돌아가지 않아서 어떻게 하면 당장 돈을 벌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하였고, 자연스럽게 떠오른 아이디어가 바로 유저들이 만들어서 뮤직쉐이크에 올린 10만개 가까이 되는 곡들을 CD로 구워서 파는것이었다. 하지만 CD를 만들어서 인터넷에서 팔 수 있는 인프라가 우리한테는 갖추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회사 근처에 있는 초/중학교 앞에서 직접 학생들을 대상으로 CD를 팔아보기로 결정하였다. 이때부터 회사가 아닌 근처의 초/중학교로 출근하기 시작하였다. 학생들 등하교 시간에 큰 박스에 CD를 꽉꽉 담아서 매우 싼 값에 코묻은 돈이라도 벌어 조금이라도 회사를 연명시키려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결과는 당연히 좋지 않았다. CD가 잘 팔리지도 않았지만, 한 학교에서 1시간 이상 서있으면 항상 누군가는 신고를 해서 경찰한테 쫓긴적이 여러번 있엇다. 내가 못 배운 멕시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술이 없는 사람도 아니고…그때 생각만 하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지금까지 뮤직쉐이크에서 일하면서 “그냥 여기서 그만할까.”라는 생각을 딱 한번 한적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이렇게 LA 경찰들한테 불법이민자 취급받으면서 고생할때였다.

여기서 전달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스타트업의 현금 보유량이 바닥나고, 그렇다고 수십억짜리 계약이 성사되거나 갑자기 비즈니스가 확 뜰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현실을 빨리 인정하고 전직원은 영업모드로 전환을 해야한다는거다. 회사의 기존 전략이나 비즈니스 모델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뭐라도 팔아서 당장 현금을 계속 창출하는게 중요하다. 마치 물이 2/3정도 차올라서 가라앉고 있는 배에서 가장 중요한거는 모든 선원과 승객이 물을 배 밖으로 퍼 내는거지, 배가 목적지 쪽으로 잘 가고 있는지 아니면 적당한 속도를 유지하고 있는지는 크게 상관없는 상황과 비슷한거다.

Musicshake Re-loaded

2007년 7월 20일, 갓 결혼한 새 신랑이었던 나는 와이프와 함께 필라델피아 공항에 도착하였다. 정말로 가고 싶었던 Harvard Business School은 떨어졌지만 그래도 MBA 명성으로 따지면 더 유명한 워튼 스쿨은 다행히도 붙어서 2년 동안 MBA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위해서 큰 기대를 가지고 미국으로 왔다 (첫 수업을 들은 후 이 기대는 실망으로 바로 바뀌었다). 하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월가에서 돈을 만지는거 보다는 ‘벤처’에 대한 미련이 항상 남아있었고 어떻게 보면 동부에 있으면서도 내 눈과 귀는 계속 서부의 실리콘 밸리쪽을 바라보면서 좋은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학교를 다니면서 동시에 나는 어릴적 죽마고우인 John Nahm과 국제 브로커 전문 회사인 Oceans International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한국 벤처기업들의 해외 투자 유치를 도와주면서 커미션을 챙겨먹는 비즈니스를 병행하고 있었다.

MBA를 시작하기 몇개월 전인 4월에 나는 아는 형님으로부터 “뮤직쉐이크”라는 회사를 소개 받았다. 솔직히 그 당시에는 제품도 아직 없었던 한국의 벤처 기업이었는데 인터넷+음악+사용자제작 이라는 컨셉은 나한테 큰 호감과 매력을 주었다. 그 이후로 나는 뮤직쉐이크의 미국 funding을 도와주면서 인연을 맺기 시작하였다. 성공적인 funding을 성사시키면서 동시에 나는 뮤직쉐이크의 2007 TechCrunch40 행사 결승진출까지 얼떨결에 성사를 시킬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내 마음속의 벤처 bug가 서서히 나를 다시 괴롭히기 시작하면서 나는 30 동안의 나의 커리어 방황을 끝내면서 과감하게 학교를 때려치우고 뮤직쉐이크의 미국 사무실을 설립하고 운영하기로 결심하였다.

2007년 9월 18일, Blue 사장님과 나는 TechCrunch40 행사를 통해서 뮤직쉐이크를 화려하게 미국에서 launch하였다. 김연아 선수가 7분이라는 시간동안 자신의 모든것을 아이스링크에서 보여줘야했던거처럼 우리한테 주어진 시간은 8분이었다. 이 8분 동안 우리는 우리의 모든걸 실리콘 밸리와 전세계에 알려야 했으며 that’s exactly what we did. 몇십번이나 이 동영상을 보지만, 볼때마다 내가 과연 제정신이었을까 (저런 어이없는 스텝을 밟았을까)라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여러번 하게된다. 여기 그 동영상을 잠시 공유한다:




이 무대를 시작으로 나는 워튼 스쿨에 휴학계를 냈다. TechCrunch40 행사를 통해서 뮤직쉐이크의 미국 성공을 나 자신이 스스로 확신할 수 있었으며, 한국벤처를 미국에서 운영하는거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던 와이프 또한 이 발표를 통해서 설득할 수 있었다. 무대에서 바라보는 2,000명 이상의 청중 중 내 시선이 집중되어 있던 곳은 심사위원이었던 구글의 Marissa Mayer도 아니고 실리콘 밸리의 대부 Ron Conway도 아니었다. 바로 나랑 같이 이 행사에 참석한 와이프였다. 8분 동안의 신나는 발표가 진행되는 동안 와이프의 얼굴에 비쳤던 그 미소. 그 sweet한 미소는 바로 학교를 그만두고 뮤직쉐이크 운영을 허락한다는 승락이기도 하였다.

그로부터 2년반 후인 2010년 6월1일,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아직도 TechCrunch40을 통해서 일으켰던 센세이션만큼 큰 성공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이후로 하고 싶은것도 많았고 했어야하는 일들도 많았지만 돈도 없고 사람도 없고 이런저런 핑계로 많은 개발이 delay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뮤직쉐이크 US는 어느정도 상황이 좋아졌고 그동안 미루고 미루던 대대적인 웹사이트/웹서비스 개편을 할때가 온거 같다. 이를 위해서 미국 현지 개발팀 또한 많이 보강하였고 한국에서 엔지니어를 공수도 해왔다.
오늘부터 우리는 세상을 다시 한번 바꿀 큰 프로젝트를 kick off 하였다. 많은 시행착오를 할것이며, 많은 좌절과 실패를 몇개월 동안 경험할것이다. 그렇지만, 똑똑한 사람들과 열정적인 친구들과 같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런 쓸데없는 걱정과 두려움을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게 한다.

4개월 후에 완전히 바뀔 뮤직쉐이크 US 서비스를 기대하시라.

Musicshake for the iPhone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우리의 아이폰 앱 개발이 드디어 막바지에 다다랐다. Wishful thinking 이지만 3월 15일은 아이폰 앱 중 가장 기술적으로 진보되고 cool한 음악 창조 아이폰 앱을 우리는 App Store에서 만날 수 있을것이다.

Musicshake for the iPhone – Making the World a Better Place, One Shake at a time

친구와 같이 일하는거에 대해서

요샌 정말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 오늘 아침이 월요일 같았는데 벌써 일주일이 후딱 지나가서 금요일 밤에 이렇게 집에서 편안하게 커피한잔 하면서 몇 자 적어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블로그를 보시는 분들이 더 많아진걸 요새 부쩍 느낀다. 처음에 이걸 시작한 의도는 MBA 생활 2년에 대한 생생한 소식을 전달하고, 나중에 가능하면 책을 한권 출판하는거 였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진로를 바꾸는 바람에 MBA는 고사하고 그냥 내 인생 자체와 이런저런 씨잘데기 없는 이야기 위주로 가끔씩 글을 남기는데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읽어 주시는 분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Personally 그리고 professionally 아무쪼록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몇일전에 회사에 직원 한명을 더 채용했다는 이야기는 내가 여기에도 쓴거 같다. Luke Seo (서철)이라는 친구인데 실은 나랑 25년지기 x알 친구이다. 철이랑 John Nahm이랑은 전부 다 같이 스페인에서 같이 자란 친구들이다. 이후 나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고, 둘은 미국으로 와서 한동안 뿔뿔히 흩어졌다가 이메일과 인터넷으로 다시 connect하였으며 어쩌다가 다덜 LA에서 살게 되었고, 우연히 IT 쪽으로 종사하게 되어서 이렇게 같은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우리야 당사자들이라서 그냥 그려러니 하고 살지만 이 사실을 주위 분들한테 말해주면 너무너무 신기하다고 한다. 철이 자랑을 조금만 더 하자면, 대학교에서는 음악 (피아노 전공)을 공부하였고 일은 IT쪽으로 해서 뮤직쉐이크랑은 너무나 완벽한 fit이다. 거기다가 아직은 뮤직쉐이크 미국 사무실 직원들은 한국에 있는 개발팀과 긴밀하게 communicate를 해야하기 때문에 영어는 당연히 해야하고 우리말도 유창하게 해야하는데 이렇게 모든 3박자 (음악/IT/언어)를 갖추고 있는 사람을 찾는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 full time으로 조인하기 전에 철이는 약 6개월 동안 part-time으로 뮤직쉐이크 일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사장님이나 한국 직원분들이 모두 만장일치로 철이를 full time으로 데려오자는데 동의하여서 아주 어렵게 일하던 직장에서 스카웃을 해온거다. 직책은 product manager (우리말로 하면 기획팀장 정도일거 같다)로써 시장에서 고객들이 요구하는 사항들을 제품으로 승화시키는 상당히 challenging한 포지션이다. 고객의 의도 및 시장의 트렌드를 잘 파악할 수있는 능력과, 이런 요구사항을 기술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engineering knowledge 및 마케팅/기술 용어를 두루두루 알고 있는 사람만이 뮤직쉐이크의 product manager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데 이게 바로 내 친구 서철이다.

우리말에 절대 친구랑 사업은 같이 하지 말라는 말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이 맞다고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나는 한술 더 떠서 사업은 무조건 친구랑 같이 하라고 권유를 하고 싶다. 사업, 특히 우리와 같이 doing more with less가 중요한 벤처기업에서는 동료들이 서로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을 가지고 일을 하는게 너무나 중요하고 실은 이것만 잘되면 그 어떤 회사들도 성공할 수 밖에 없다. 잘 모르는 사람을 채용하면, 이 사람을 내 친구로 만드는데 수개월의 시간이 걸린다. 솔직히, 같이 일하는 사람이 내 모든것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절대로 마음을 열고 일을 같이 못 한다. 이 시점이 되어야지만 진짜 business를 할 수 있는데 뭐하러 이런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면서 사업을 하는가? 그냥 처음부터 내가 잘알고 믿고 일할 수 있는 직장 동료를 채용하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텐데…그렇기 때문에 나는 비즈니스를 하시려는 모든 분들에게 “괜히 멀리서 찾지 말고, 친구와 같이 사업을 하세요. 그래야지만 사업 첫날부터 진정한 비즈니스를 할 수 있습니다.”라고 무조건 권유하고 싶다. 친구와 같이 고생하면서 땀흘리고, 나중에 기쁨을 같이 만끽하고, 운이 좋아서 같이 대박나서 다 잘되는거 만큼 행복한게 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친구랑 같이 사업하면 그 친구마져 잃는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믿지 말고 왠만하면 내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친구와 사업을 해라. 만약 같이 사업을 하다가 관계가 틀어져서 이제는 서로 원수가 되었다면 그 사람은 처음부터 친구가 이니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