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shake

PLAY like Nexon

사진 2016. 1. 19. 오전 7 48 48이 분야에서 일하면 얼마전에 출간된 신기주 기자의 ‘플레이’ 라는 책을 읽어 본 분들이 꽤 있을 것 같다. 한국을 대표하는 유니콘 회사 중 하나이자, ‘freemium’ 또는 ‘free to play’ 라는 개념을 게임에 세계 최초로 적용한 게임회사 넥슨의 이야기를 상당히 재미있게 쓴 책이다. 실은 나는 거의 4년 전부터 종이책을 읽지 않고 있었는데, 얼마전 부터 다시 종이책과 전자책을 병행하면서 읽기 시작했고 한국 돌아와서 완독한 첫 종이책이 플레이다.

이건 서평이 아니라서 책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쓰지는 않겠다. 궁금하신 분들은 일독을 권한다. 아마도 나한테 이 책이 더 흥미로웠던 이유는 아직도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이 꽤 많이 등장했고,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흥미롭게 관찰하던 회사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는 2008년 – 2012년 뮤직쉐이크 시절, 넥슨아메리카 사무실 안에서 작은 방을 얻어서 일을 했었고 본사는 아니지만 넥슨 미국 지사를 통해서 넥슨에 대해서 많은걸 보고 배웠다. 책에 등장하는 몇 인물들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분들인데 이렇게 치열하게 도전하면서 일을 하셨고, 이렇게 훌륭하신 분들인지는 책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지금 창업을 하셨거나 창업을 고려하시는 분들은 읽으면 느끼는게 많을거 같고, 스스로의 현 주소 및 앞으로의 방향을 재정비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나는 창업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분들이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이 분들한테는 꽤 큰 감동과 인생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시각을 충분히 제공해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타고난 사업가나 창업가들이 존재하는건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창업가들은 만들어 진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들 중 살면서 어느 시점에 인생의 방향을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는 사건을 통해서 창업을 결심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 같은 경우 스탠포드 대학원에서 Khosla Ventures의 비노드 코슬라의 강연을 들은게 내 커리어 인생을 바꾸게 한 계기가 되었다. 나는 ‘플레이’가 많은 젊은이들에게 이런 계기를 제공하는 책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이들이 인생을 조금은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봤으면 한다. 그리고 창업을 해서 수 조원의 돈을 벌고 유니콘 기업을 만들었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부자지도를 부를 대물림 받은 재벌들이 아닌 자수성가한 창업가들로 채워줬으면 한다.

플레이에는 맘에 드는 문구들이 많이 있는데,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김정주도, 정상원도, 송재경도, 서민도, 일이 이렇게 풀릴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직 20대였던 공학도들이 국가 인프라 전략을 앞서 읽고 시장의 흐름을 예측한 다음 거기에 걸맞은 상품을 먼저 준비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환란을 예측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들은 그저 남들보다 더 무모했고, 누군가 미래를 만들어주길 기다리는 대신 미래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 했을 뿐이다. 도전했고, 실패했다. 행운이 따라줬고, 불행도 따라왔다. 그리고 부활했다.”

작은 시작, 성장, 큰 그리움

34304_455758011000_414918_n한국와서 좋은 점은 우리가 투자한 회사들을 직접, 더 자주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있는 곳으로 대표이사님들을 오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우리가 투자한 팀들은 어떤 사무실에서 어떤 분위기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 매우 궁금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항상 사무실을 직접 방문하려고 노력한다.

간혹 “사무실이 너무 누추해서요” 라면서 굳이 밖에서 만나려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래도 나는 사무실 방문을 고집한다. 솔직히 말해서 사무실이 누추하긴 누추하다. 대부분 허름한 건물의 작은 방에서 대여섯명의 젊은 친구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래도 나는 이런 분위기가 너무 좋다. 그리고 이 분들한테 항상 말한다.

“이 사무실, 주위 환경, 가구들, 친밀함, 모두 잘 기억하세요. 그리고 이 순간을 즐기세요. 나중에 성공해서 더 큰 곳으로 이사가면 이 장소와 이 때가 가장 그리울 겁니다.”

진심이다. 내 직업 인생에서 가장 그리운 시점은 2008년 LA에서 뮤직쉐이크 북미사무소를 시작할때다. 넥슨에서 투자를 받은 우리는 비용절감을 위해서 넥슨아메리카의 작은 방 하나에서 시작했다. 뮤직쉐이크 founder 윤형식 사장님과 같이 낡은 밴을 몰고 이케아가서 산 책상과 의자를 오후 내내 조립하고, 그래도 뭔가 우리만의 사무실이 생겼다는 뿌듯함에 밤 늦게까지 ‘아라도’ 라는 코리아타운 일식집에서 술을 엄청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작은 사무실에서 우리 4명은 마치 세상을 다 삼킬 기세로 정말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일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그때보다 지금 내 삶은 조금은 더 편해졌다. 하지만 아직도 당시 그 분위기와 사무실, 그리고 그 시절이 매우 그립다. 단순히 ‘좋아함’을 넘어, 진심으로 내가 하는 일을 ‘사랑’ 했었기 때문이다.

우리 투자사를 포함해서 몇 몇 스타트업들을 방문하면 2008년 뮤직쉐이크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중에 이들이 잘 되어서 더 크고 쾌적한 환경에서 근무할 때, 이 작은 공간과 시작이 그리워 질 정도로 열심히 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Merry Christmas everyone.

기업문화에 대해서

대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기업문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회사의 올바른 성장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좋은 기업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경영학 학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나도 좋은 기업문화를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들고, 그 기업문화가 전사적으로 퍼지고 뼛속까지 파고들려면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리는지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알고만 있었는데 최근에 직접 체험하고 느낀 점들이 있어서 몇 자 적어본다.

에너지 드링크로 유명한 Red Bull의 북미 본사가 LA에 있는데 얼마 전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시간이 좀 남아서 난 근처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하나 사서 마시면서 Red Bull 입구로 들어갔다. 일단 리셉션에서 check-in을 하는데 리셉셔니스트가 나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보면서,

리셉셔니스트: 지금 도대체 뭘 마시고 있나요?
나: 커피 먹고 있는데…왜요? 어차피 (레드불과) 같은 카페인 아닌가요?
리셉셔니스트: Oh my god…그런 쓰레기를 마시다니…

뭔가 좀 찜찜한 기분으로 로비에 있는 소파에 앉아서 미팅 상대를 기다렸다…커피를 마시면서. 그런데 로비를 왔다 갔다 하는 모든 레드불 직원이 지나가면서 나랑 내 손의 스타벅스를 번갈아 보면서 좋지 않은 표정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지나갔다. 아무리 얼굴에 철판을 깐 나이지만 이 정도 되니까 이 회사의 분위기 파악이 되면서 스타벅스를 들고 있는 손이 좀 민망해져서 커피를 그냥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러자마자 리셉셔니스트가 갑자기 차가운 레드불 한 캔을 가지고 왔다. “이런 게 바로 진짜 음료수죠.”라고 매우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솔직히 난 레드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의 박카스를 더 좋아하면 좋아했지……하지만, 레드불에서의 불쾌/유쾌했던 이 경험은 ‘기업문화’에 대한 아주 강한 이미지를 내 머리에 각인시켜 줬다. 솔직히 ‘리셉셔니스트’라는 포지션은 일반적으로 아주 low level의 포지션이다. 내가 아는 다른 회사의 모든 리셉셔니스트들은 회사에 대한 애사심은 전혀 없다. 대부분 회사가 뭘 하는지 잘 알지도 못한다. 그냥 리셉션에 앉아서 미소를 지으면서 손님 안내하고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하면 되는 그런 포지션이다. 그리고 언제나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이라는 게 회사의 생각이자 본인들의 생각이기도 하다.

그런데 레드불의 리셉셔니스트는 타사의 드링크를 마시고 있는 손님한테 감히 시비를 걸면서까지 자기 회사의 제품을 홍보하고 권했다. 그냥 회사에서 시킨 게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애사심 때문이었다. 미팅 내내 레드불은 회사의 대표이사부터 말단 리셉셔니스트까지 ‘Red Bull’이 전 직원의 핏속에 흐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단한 하드코어 기업문화다.

애플도 레드불 만만치 않은 기업문화가 있다. 스티브 잡스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전사적으로 ‘디자인’ 우선주의 문화가 팽배해 있다. 애플 제품을 배달하는 물류창고에 가보면 작업자들이 애플의 사과 로고가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하도록 박스를 트럭에 차곡차곡 싣는다고 한다. 어느 날 애플 본사의 한 중역이 그 이유를 물어보니 트럭 기사가 하는 말이 트럭을 열었을 때 애플 로고가 모두 잘 정렬된 거를 보면 고객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고 그걸 볼 때마다 너무 행복하고 자랑스럽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건데 정말 대단하고 약간 무섭기까지 한 애플의 기업문화이다.

가끔 난 생각한다. 레드불과 애플과 같은 회사와 경쟁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이런 기업문화를 이기려면 그 경쟁사들은 얼마나 더 탄탄하고 잘 정립된 문화가 필요할까?

<이미지 출처 = Viralscape>

제시카 알바와 ‘벤처 정신’

이번 주에 열린 TechCrunch Disrupt 2012 행사에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할리우드 여배우 제시카 알바가 스피커 중 한명으로 참석했다. 배우로써가 아니라 LA 기반의 연쇄 창업가 Brian Lee와 The Honest Company를 공동창업한 창업가로 ‘당당하게’ 행사에 초대받은 것이다. 사회자가 그녀에게 스타트업을 하면서 배운 점에 대해서 물어봤다. 나는 그냥 “너무너무 재미있다” 정도의 흔해빠진 답변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녀의 답변은 의외로 간단했다. 하지만 그 표정과 목소리에는 진정성이 있었다.

스타트업은 너무 너무 너무 힘들어요. 정말로.

세상의 모든걸 가진 제시카 알바도 할리우드에서 많은 고생을 하고 지금 스타덤의 자리에 올랐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녀는 어렸을적 폐렴과 합병증 때문에 학교보다 병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연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그녀도 성공하기 전에는 무명의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분명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스타트업이 힘들다고 했다. 이 말을 할때 나는 제시카 알바의 표정과 눈을 잘 봤다. Bullshit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스타트업 하는 사람들은 다 안다. 이게 정말 쉬운게 아니라는걸. 인생의 모든걸 바쳐도 안될 확률이 더 큰, 어쩌면 처음부터 지는 싸움이라는 걸. 어렵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그냥 대충 하는 사람들이다. 벤처정신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벤처 정신’은 정확히 뭘까? 전에 내가 벤처 정신으로 똘똘 무장한 일본인 아카이와씨에 대한 재미있는 글을 하나 쓴 적이 있는데, 아마도 그냥 힘든 상황에서 굳은 각오로 남들의 따가운 시선과 비난을 받으면서도 목표를 추구하는 정신일 것이다. 스타트업을 하다보면 누구나 다 한번 정도는 벤처정신으로 밀어붙인 경험이 있을것이다. 없다면 오히려 이상한거다.

실리콘 밸리에서 요즘 잘나가는 Airbnb 또한 벤처 정신이 느껴지는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일화로 유명하다. 2008년 오바마를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는 민주당 전당대회가 콜로라도의 덴버에서 열렸다. 몇만명에서 수십만명까지 모이는 행사여서 주위 숙박시설은 턱없이 부족했고 수천에서 수만명이 숙소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했다. 여기서 에어비앤비의 진가가 발휘되면서 엄청나게 많은 트래픽이 에어비엔비로 몰리기 시작했다. 행복한 고민이었지만 이들은 폭발하는 트랙픽을 감당하느라 서버도 늘리고 회선 속도도 늘리느라 수입보다 지출이 훨씬 많이 발생했다. 창업팀은 신용카드 네 개를 한도까지 털었고 물론 개인 저축도 다 올인했다.
하지만 그래도 모자랐고 이 기발한 청년들은 그때 기지를 발휘했다. 민주당원에게 잠자리도 팔았는데 다른건 왜 못 팔랴. 오바마 대통령 후보 얼굴 그림이 그려진 시리얼을 아침으로 팔기로 했다. 물론, 그림과 포장 디자인은 자체적으로 해결했다.

일반 시리얼을 1,000상자 사서 500개는 오바마 그림이 그려진 상자로, 나머지는 매케인 (공화당 후보) 그림이 그려진 상자로 재포장했죠. 원래 3 달러정도 하는 걸 40 달러에 팔았는데 오바마 시리얼은 동났어요. 당분간 에어비앤비를 운영할 자금을 모았죠. 매케인 시리얼은 많이 남았는데, 식사비용을 아끼려고 저희가 다 먹었어요.

에어비앤비는 시리얼 판매로 3만 달러를 벌었고 곧 Y Combinator한테 투자를 받았다. 그리고 지금은 1조원 이상의 밸류에이션을 받는 슈퍼 스타트업이 되었다.

스타트업 운영은 (정말 정말 정말) 어렵다. 그래서 보통 정신이 아닌 벤처 정신으로 자신을 무장해야 한다. 이렇게 죽기 살기로 노력해도 성공은 보장되지 않지만, 노력 없이는 성공도 없다. 에어비앤비 창업팀이 시리얼을 길거리에서 강매했다면, 우리는 못해도 이 정도는 해야한다.

나 또한 이런 경험을 여러번 했다. 배기홍의 벤처정신이 궁금하면 ‘스타트업 바이블 2: 31계명 – 벤처 근성은 기본이다‘를 참고하도록. 그리고 여러분들의 벤처정신 경험도 같이 공유해주면 좋겠다.

스타트업 바이블 – Chapter 9.4 <결론, 그리고 내가 배운점들>

자, 이제 <스타트업 바이블> 마지막 챕터의 마지막 장이다. 솔직히 이 외에도 많은 내용이 있는데 너무 길고, 그리고 나도 글로 생각을 정리하려면 시간이 좀 걸려서 여기서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절망, 걱정, 슬픔, 기쁨 (가끔), 감동 등의 감정이 롤러코스터와도 같이 요동쳤던 2009년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지만, 우리는 2009년 중반까지도 별다른 탈출구를 찾고 있지 못하였다. 오전 8시부터 밤 8시까지 내 머릿속은 온통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활주로를 연장할 수 있을까?”와 “어디서 몇십억 빌릴 때가 없을까?”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고, 불안하고 초조하게 나날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미친 짓이었는데, 언젠가 나는 스탠포드 대학 동문 주소록을 A부터 Z까지 훑으면서 언론에서 우리가 접하고 들어본 스탠포드 출신 유명인사와 부자들의 연락처를 적어 놓은 다음에 하나씩 연락을 시도해봤다.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은 대부분 비서 연락처를 적어놓거나 연락처를 아예 적어놓지 않는데 여기저기 연락을 시도하는 와중에 나는 스탠포드 MBA 출신인 나이키 창업자이자 회장인 Phil Knight의 개인 핸드폰 번호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얻었는지는 물어보지 말아라 ㅎㅎ. 번호를 얻은 거만으로도 책 한 권 분량의 내용이 나온다). 아무리 얼굴에 철판을 깔고 영업을 해왔던 나였지만 나이키 회장한테 직접 전화를 한다는 게 매우 부담스러웠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몇 번이나 연습을 한 후에 나는 전화를 걸었다:

Phil Knight (PK): 여보세요?
배기홍 (KB): 안녕하세요. 나이트 회장님이신가요?
PK: (귀찮은 어투로) 네, 맞습니다. 누구시죠?
KB: 안녕하세요. 저는 스탠포드 동문인 배기홍이라고 합니다……. 중략…
PK: 네, 안녕하세요. What can I do for you?
KB: 정신 나간 소리 같지만, 우리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있습니다. 2백만 불만 투자하시면 5년 후에 5배 이상의 수익률을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PK: (껄껄껄 웃으면서) Son, you have some balls! (얘야, 너 참 용감하구나!). 너한테 돈을 주지는 못하지만, 너 이름은 반드시 기억해 두마. 이름이 뭐라고?
KB: Kihong Bae. 그런데 저는 제 이름을 기억하는 거보다 돈이 필요합니다. 회장님도 회사를 운영하시는 마당에 제 입장과 심정을 충분히 잘 이해하시리라 생각됩니다.
PK: 미안하지만 지금 바쁘고, 말했듯이 돈을 줄 수는 없다. I will remember your name though. Call me some other time and let me know how you are doing.

*몇 년 뒤에 나는 필 나이트 회장한테 다시 한번 전화를 해볼 거다. 정말로 내 이름을 기억하는지.

위와 같은 전화를 나는 다양한 스탠포드 출신의 유명인사들한테 해봤지만, 당연히 매번 뺀찌를 먹었다. 이런 전화를 받고 투자를 하면 오히려 그게 미친놈이지…. 하지만, 하늘도 뮤직쉐이크를 불쌍히 여기셨는지 2009년 12월에 정말 기적과도 같이 우리는 18억이라는 투자 유치에 성공하였다. 물론, 하루아침에 투자가 성사된 거는 아니었다. 무려 9개월의 투자유치 노력과 기다림의 결과였다. 2010년 1월 실제로 돈이 통장에 입금된 거를 확인하고 나는 내 친구이자 직장 동료인 철이와 포옹을 하였다.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남자들 간의 뜨겁고 힘찬 포옹이었다. 그리고 둘 다 별 말 없이 한참 그러고 있었다. 뭐라도 크게 celebrate를 해야 할 거 같았지만, 솔직히 그동안 돈이 없어서 우리가 해야 하지만 못한 일들이 산더미 같았기에 다시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전화를 붙잡고 열심히 sales call들을 시작하였다. We were back in business.

시련을 겪으면 그만큼 성숙해지고 인생을 다양한 각도로 볼 수 있는 노하우가 생긴다고 인생 선배들과 우리의 선조들이 말씀했는데, 솔직히 이후에 나한테 특별한 노하우가 생겼는지 아니면 정말 그렇게 많이 성숙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대신 개인적으로 – both professionally and personally – 느끼고 배운 점들은 몇 가지가 있다:

1. 가족의 고마움 (여자들은 생각보다 강하다) –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2009년 2월부터 12월까지, 11개월 동안 회사에서 집으로 단 한 푼의 월급을 가져오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무급으로 일을 해보신 분들은 이게 말보다 쉽지 않다는 걸 잘 알 것이다. 특히, LA같이 물가가 비싼 동네에서 가족을 부양하면서 11개월을 벌이가 전혀 없이 산다는건…그리고 나는 이 사실을 와이프한테 어떻게 알려야 할지 많이 고민하였다. 와이프는 나랑은 다르게 지금까지 부족함 없는 환경에서 자랐기에 더더욱 나는 충격을 주기가 싫었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부자가 가난하게 사는 거처럼 힘든 건 없다고.
그런데 막상 사실을 말하자 와이프의 반응은 뜻밖에 담담했다. 오히려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 나를 “곧 투자받겠지. 뭐, 그렇다고 우리가 굶어 죽겠어.”라면서 옆에서 계속 다독거려줬다. 여자들이 보기보다는 강하다는 걸 알았지만, 이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던 11개월이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은 지현이한테 나는 평생 빚을 졌고, 앞으로 평생 그걸 몇 배로 갚을 것이다 (샤넬 백?).

2. 친구들의 고마움 – “어려울 때 옆에 있어 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라는 너무나 당연한 격언을 나는 2009년도를 살면서 절실히 경험하였다. 솔직히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동안 나랑 친한 척하고, 내 주위를 맴돌던 많은 거짓된 놈들은 하나둘씩 나를 떠났다. 그렇다고 내가 돈을 빌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곤란한 부탁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들은 언제부턴가 내 전화를 회피하기 시작하였으며 어느 순간부터는 완전히 연락이 끊겨버렸다. 하지만, 어려울 때일수록 내 옆에서 나를 토닥거려주면서 믿음과 긍정의 힘을 나한테 불어 넣어준 친구들을 나는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친구들이여 – 그대들한테도 나는 큰 빚을 졌고,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3. 육체적 건강 – “운동이 보약이다“이라는 블로그 포스팅에서도 썼는데, 스타트업이 잘 안 돌아가면 그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함은 아무리 강한 창업가들이라도 어느 정도 damage를 입을 수밖에 없다.
이때 중요한 게 바로 육체적인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다. 건강한 육체는 건강한 정신으로 이어지며 정신적으로 힘들수록 복싱과 같은 규칙적이고 격렬한 운동을 하는 걸 나는 권장한다.

4. 리더쉽의 중요성 – 아무리 작고 수평적인 스타트업이라도 직원들은 사장단의 영향을 받으며 사장단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어렵고 힘들어도 리더쉽 team은 절대로 패닉하지 말고 평상심을 유지해야 한다. 자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뮤직쉐이크가 2009년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큰 이유는 바로 포기하지 않았던 사장님과 경영진들의 뚝심이었다. 상황이 절박해도 나는 한 번도 우리 회사가 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그 어떤 내색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5. 얼굴에 철판을 깔아라 – 남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돈 달라고 구걸하는 걸 쪽팔려 하지 말아라. 회사가 망하면 이보다 더 쪽팔린다.

6. 열심히 해도 잘 안된다 –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다 보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들을 많이 들을 수 있다.
-“내일 시험인데 열심히 했으니까 잘 되겠지.”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으니까 계약이 성사되겠지.”
개소리다. 열심히 해서 모든 게 다 잘되면 우리 주위에 백만장자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열심히 공부했으면 다 서울대 갔게? 솔직히 내 주위에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즉, 열심히 하고 기도만 하면 모든 게 다 잘 풀리는 건 동화책에서나 있을법한 이야기이다. 열심히 하는 건 기본이고, 잘 해야 한다.

7.실패를 쪽팔려하지 마라 – 실패는 수치스러운 게 아니다. 한국에서는 사업에 실패하면 집을 날리고 마누라가 도망간다고 하지만 최소한 실리콘 밸리에서는 실패는 오히려 주위의 다른 entrepreneur들의 존경과 동경심을 받는 영광의 훈장과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실패에도 명예로운 실패와 불명예스러운 실패는 있다. 사업도 스타트업도 결국에는 숫자와 돈으로 하는 게임이라는 걸 명심해라. 게임에서 지면, 항상 그다음 게임이 있다는 거와 함께. 한번 지면, 다시 일어나서 다음 게임을 준비하면 된다.

자, 여기까지가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이다. 2009년도는 뮤직쉐이크뿐만 아니라 이 블로그를 읽으시는 모든 분들한테 힘들었던 한 해였을 것이다. 운이 따르지 않아서 사업이 망한 분들도 있을 것이고, 나와 같이 운 좋게 살아남은 분들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거는 우리 모두가 많은 걸 느꼈고, 배웠고 앞으로는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는 “결국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니까”라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은 정말 맞는 거 같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며 오늘이 어제보다 낫고, 내일이 오늘보다 낫게 만들 수 있는 건 우리 개개인의 마음가짐이다. Success is really a mind ga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