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스타트업 바이블> 마지막 챕터의 마지막 장이다. 솔직히 이 외에도 많은 내용이 있는데 너무 길고, 그리고 나도 글로 생각을 정리하려면 시간이 좀 걸려서 여기서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절망, 걱정, 슬픔, 기쁨 (가끔), 감동 등의 감정이 롤러코스터와도 같이 요동쳤던 2009년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지만, 우리는 2009년 중반까지도 별다른 탈출구를 찾고 있지 못하였다. 오전 8시부터 밤 8시까지 내 머릿속은 온통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활주로를 연장할 수 있을까?”와 “어디서 몇십억 빌릴 때가 없을까?”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고, 불안하고 초조하게 나날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미친 짓이었는데, 언젠가 나는 스탠포드 대학 동문 주소록을 A부터 Z까지 훑으면서 언론에서 우리가 접하고 들어본 스탠포드 출신 유명인사와 부자들의 연락처를 적어 놓은 다음에 하나씩 연락을 시도해봤다.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은 대부분 비서 연락처를 적어놓거나 연락처를 아예 적어놓지 않는데 여기저기 연락을 시도하는 와중에 나는 스탠포드 MBA 출신인 나이키 창업자이자 회장인 Phil Knight의 개인 핸드폰 번호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얻었는지는 물어보지 말아라 ㅎㅎ. 번호를 얻은 거만으로도 책 한 권 분량의 내용이 나온다). 아무리 얼굴에 철판을 깔고 영업을 해왔던 나였지만 나이키 회장한테 직접 전화를 한다는 게 매우 부담스러웠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몇 번이나 연습을 한 후에 나는 전화를 걸었다:
Phil Knight (PK): 여보세요?
배기홍 (KB): 안녕하세요. 나이트 회장님이신가요?
PK: (귀찮은 어투로) 네, 맞습니다. 누구시죠?
KB: 안녕하세요. 저는 스탠포드 동문인 배기홍이라고 합니다……. 중략…
PK: 네, 안녕하세요. What can I do for you?
KB: 정신 나간 소리 같지만, 우리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있습니다. 2백만 불만 투자하시면 5년 후에 5배 이상의 수익률을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PK: (껄껄껄 웃으면서) Son, you have some balls! (얘야, 너 참 용감하구나!). 너한테 돈을 주지는 못하지만, 너 이름은 반드시 기억해 두마. 이름이 뭐라고?
KB: Kihong Bae. 그런데 저는 제 이름을 기억하는 거보다 돈이 필요합니다. 회장님도 회사를 운영하시는 마당에 제 입장과 심정을 충분히 잘 이해하시리라 생각됩니다.
PK: 미안하지만 지금 바쁘고, 말했듯이 돈을 줄 수는 없다. I will remember your name though. Call me some other time and let me know how you are doing.
*몇 년 뒤에 나는 필 나이트 회장한테 다시 한번 전화를 해볼 거다. 정말로 내 이름을 기억하는지.
위와 같은 전화를 나는 다양한 스탠포드 출신의 유명인사들한테 해봤지만, 당연히 매번 뺀찌를 먹었다. 이런 전화를 받고 투자를 하면 오히려 그게 미친놈이지…. 하지만, 하늘도 뮤직쉐이크를 불쌍히 여기셨는지 2009년 12월에 정말 기적과도 같이 우리는 18억이라는 투자 유치에 성공하였다. 물론, 하루아침에 투자가 성사된 거는 아니었다. 무려 9개월의 투자유치 노력과 기다림의 결과였다. 2010년 1월 실제로 돈이 통장에 입금된 거를 확인하고 나는 내 친구이자 직장 동료인 철이와 포옹을 하였다.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남자들 간의 뜨겁고 힘찬 포옹이었다. 그리고 둘 다 별 말 없이 한참 그러고 있었다. 뭐라도 크게 celebrate를 해야 할 거 같았지만, 솔직히 그동안 돈이 없어서 우리가 해야 하지만 못한 일들이 산더미 같았기에 다시 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전화를 붙잡고 열심히 sales call들을 시작하였다. We were back in business.
시련을 겪으면 그만큼 성숙해지고 인생을 다양한 각도로 볼 수 있는 노하우가 생긴다고 인생 선배들과 우리의 선조들이 말씀했는데, 솔직히 이후에 나한테 특별한 노하우가 생겼는지 아니면 정말 그렇게 많이 성숙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대신 개인적으로 – both professionally and personally – 느끼고 배운 점들은 몇 가지가 있다:
1. 가족의 고마움 (여자들은 생각보다 강하다) –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2009년 2월부터 12월까지, 11개월 동안 회사에서 집으로 단 한 푼의 월급을 가져오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무급으로 일을 해보신 분들은 이게 말보다 쉽지 않다는 걸 잘 알 것이다. 특히, LA같이 물가가 비싼 동네에서 가족을 부양하면서 11개월을 벌이가 전혀 없이 산다는건…그리고 나는 이 사실을 와이프한테 어떻게 알려야 할지 많이 고민하였다. 와이프는 나랑은 다르게 지금까지 부족함 없는 환경에서 자랐기에 더더욱 나는 충격을 주기가 싫었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부자가 가난하게 사는 거처럼 힘든 건 없다고.
그런데 막상 사실을 말하자 와이프의 반응은 뜻밖에 담담했다. 오히려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 나를 “곧 투자받겠지. 뭐, 그렇다고 우리가 굶어 죽겠어.”라면서 옆에서 계속 다독거려줬다. 여자들이 보기보다는 강하다는 걸 알았지만, 이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던 11개월이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은 지현이한테 나는 평생 빚을 졌고, 앞으로 평생 그걸 몇 배로 갚을 것이다 (샤넬 백?).
2. 친구들의 고마움 – “어려울 때 옆에 있어 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라는 너무나 당연한 격언을 나는 2009년도를 살면서 절실히 경험하였다. 솔직히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동안 나랑 친한 척하고, 내 주위를 맴돌던 많은 거짓된 놈들은 하나둘씩 나를 떠났다. 그렇다고 내가 돈을 빌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곤란한 부탁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들은 언제부턴가 내 전화를 회피하기 시작하였으며 어느 순간부터는 완전히 연락이 끊겨버렸다. 하지만, 어려울 때일수록 내 옆에서 나를 토닥거려주면서 믿음과 긍정의 힘을 나한테 불어 넣어준 친구들을 나는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친구들이여 – 그대들한테도 나는 큰 빚을 졌고,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3. 육체적 건강 – “운동이 보약이다“이라는 블로그 포스팅에서도 썼는데, 스타트업이 잘 안 돌아가면 그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함은 아무리 강한 창업가들이라도 어느 정도 damage를 입을 수밖에 없다.
이때 중요한 게 바로 육체적인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다. 건강한 육체는 건강한 정신으로 이어지며 정신적으로 힘들수록 복싱과 같은 규칙적이고 격렬한 운동을 하는 걸 나는 권장한다.
4. 리더쉽의 중요성 – 아무리 작고 수평적인 스타트업이라도 직원들은 사장단의 영향을 받으며 사장단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어렵고 힘들어도 리더쉽 team은 절대로 패닉하지 말고 평상심을 유지해야 한다. 자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뮤직쉐이크가 2009년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큰 이유는 바로 포기하지 않았던 사장님과 경영진들의 뚝심이었다. 상황이 절박해도 나는 한 번도 우리 회사가 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그 어떤 내색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5. 얼굴에 철판을 깔아라 – 남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돈 달라고 구걸하는 걸 쪽팔려 하지 말아라. 회사가 망하면 이보다 더 쪽팔린다.
6. 열심히 해도 잘 안된다 –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다 보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들을 많이 들을 수 있다.
-“내일 시험인데 열심히 했으니까 잘 되겠지.”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으니까 계약이 성사되겠지.”
개소리다. 열심히 해서 모든 게 다 잘되면 우리 주위에 백만장자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열심히 공부했으면 다 서울대 갔게? 솔직히 내 주위에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즉, 열심히 하고 기도만 하면 모든 게 다 잘 풀리는 건 동화책에서나 있을법한 이야기이다. 열심히 하는 건 기본이고, 잘 해야 한다.
7.실패를 쪽팔려하지 마라 – 실패는 수치스러운 게 아니다. 한국에서는 사업에 실패하면 집을 날리고 마누라가 도망간다고 하지만 최소한 실리콘 밸리에서는 실패는 오히려 주위의 다른 entrepreneur들의 존경과 동경심을 받는 영광의 훈장과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실패에도 명예로운 실패와 불명예스러운 실패는 있다. 사업도 스타트업도 결국에는 숫자와 돈으로 하는 게임이라는 걸 명심해라. 게임에서 지면, 항상 그다음 게임이 있다는 거와 함께. 한번 지면, 다시 일어나서 다음 게임을 준비하면 된다.
자, 여기까지가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이다. 2009년도는 뮤직쉐이크뿐만 아니라 이 블로그를 읽으시는 모든 분들한테 힘들었던 한 해였을 것이다. 운이 따르지 않아서 사업이 망한 분들도 있을 것이고, 나와 같이 운 좋게 살아남은 분들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거는 우리 모두가 많은 걸 느꼈고, 배웠고 앞으로는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는 “결국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니까”라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은 정말 맞는 거 같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며 오늘이 어제보다 낫고, 내일이 오늘보다 낫게 만들 수 있는 건 우리 개개인의 마음가짐이다. Success is really a mind ga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