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shake

블로깅의 습관화

내가 블로그를 처음 쓰기 시작한 건 2007년 4월이다. 그 이전에는 취미로 글을 쓴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006년도에 MBA 준비를 하면서 서점을 기웃거리다 보니, MBA 준비 과정에 대한 책들은 넘쳐흘렀지만 실제로 MBA를 시작하면 학교생활은 어떻고, 공부는 할 만한지, 그리고 어떤 걸 경험하고 배우는지에 대한 내용을 경험 위주로 서술한 책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당연히 MBA 준비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에 못지않게 MBA 과정 자체에 대한 궁금증을 갖는 학생이나 직장인들도 많다는 걸 내가 준비하면서 느꼈기 때문에, 그러면 내가 이런 책을 한 번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년간의 MBA 과정을 아주 생생하게 책으로 남기면 재미있지 않겠냐는 이 컨셉을 출판사들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상의를 해봤는데, 은근히 반응들이 좋아서 학교를 시작하기 전에 한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워튼에 입학을 했다.

일기 형태로 일주일에 2~3번은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이걸 2년 후에 편집해서 책 한 권으로 만드는 걸 목표로 글솜씨도 없었지만, 열심히 블로깅을 시작했다. 이때 내 블로그의 제목이 ‘Life At Wharton’이었다. 당시에는 수업, 학교 다니면서 만난 친구들, 워튼이라는 학교, 과외활동, 기혼자로서의 MBA 생활 등에 대한 내용을 위주로 글을 썼다.
솔직히 처음에는 너무 어색하고 힘들었다. 말로 할 수 있는 걸 글로 쓰려니 3배의 시간이 걸렸고, 글을 쓴 후에도 이걸 2번 정도는 더 검토하고 포스팅하다 보니 하루에 한두 시간은 여기에 할애해야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걸 꾸준히 하다 보니까 속도도 붙으면서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내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정리하고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습관이 몸에 배기 시작했다.

2008년 2월에 나는 뮤직쉐이크를 하기 위해서 학교를 그만두면서, MBA 과정에 대한 책 만드는 걸 포기하고 글쓰기를 중단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짧은 시간 동안 내 블로그를 열심히 구독하고 읽는 독자층이 생겼고, 담백한 글들이 재미있으니 꼭 MBA가 아니더라도 그냥 뭐라도 계속 블로깅을 했으면 좋겠다는 시장의 피드백들이 있어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블로그의 제목도 ‘Life Away From Wharton’으로 바꿨다. 하는 게 스타트업이라서 주로 이 분야와 관련된 글들을 쓰다 보니 ‘스타트업 바이블‘이라는 책까지 출간하게 되었고, 그 이후 쭉 ‘The Startup Bible’이라는 제목으로 이 블로그를 운영해왔다.

내가 이 분야에서 블로깅을 하면서 role model로 삼고 있는 두 분이 있는데 바로 YC의 Paul Graham과 USV의 Fred Wilson이다. 여전히 내 우상이고, 솔직히 내 경험이나 글솜씨는 이분들을 따라가려면 – 따라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한참 멀었다. 초기에는 나도 폴 그레이엄 같이 꽤 긴 글들을 비정기적으로 포스팅하다가, 한 3년 전부터는 프레드 윌슨과 같이 짧은 글들을 정기적으로 포스팅하면서 이제는 가능하면 월요일과 목요일, 일주일에 두 개의 글을 올린다. 참고로 프레드 윌슨은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 글을 쓰는데, 나도 한번 이렇게 해볼까 고민하다가 도저히 지속해서 못 할 거 같아서 포기했다.

나는 왜 글을 쓸까? 그냥 하루하루 사는 것도 바쁘고 힘든데, 왜 굳이 뭔가를 창작하는지에 대해서 나도 스스로 생각해 봤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중 나한테 의미 있는 건 다음과 같다.

약 8년 동안 꾸준히 블로깅을 해보니까 이제는 글 쓰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렸고, 아무리 바빠도 글을 쓰기 위한 시간을 만들다 보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대부분 투자자는 사람 만나는데 시간을 많이 사용한다. 내 일정도 보면 하루에 3~4개 미팅이 잡혀있으니, 일주일에 20명 이상을 만나는데, 이렇게 하다 보면 조용히 생각할 시간이 거의 없다. 실은 VC들이야말로 미래에 대해서 생각도 많이 하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하는데, 사람만 만나다 보니 이걸 잘 못 한다. 나는 글을 쓸 때 바쁜 마음을 내려놓고, 여유 있게 글 쓰는 내용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일주일에 2~3 시간이지만, 매우 생산적이고 정신적으로 보상받는 시간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글은 무조건 재미있어야 하고, 독자에게 새로운 상식을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글을 쓰려면 통찰력이 필요한데, 사람의 통찰력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다. 오랫동안 전문지식을 습득하고, 사물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자신을 훈련해야 한다. 블로깅은 나한테 이런 새로운 능력을 개발할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도구이다. 좋은 내용의 글을 쓰려면, 좋은 주제가 있어야 하는데, 좋은 주제는 항상 눈과 마음을 열어놓고 내 주변의 현상과 사물들을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 글을 꾸준히 쓰다 보니 관찰하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다는 건 말하지 않아도 너무 당연하다. 누구나 머릿속에는 좋은 생각들이 있고, 이걸 말로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생각을 정말로 내 것으로 만들고, 조금 더 나아가서 남들에게 잘 설명하려면 차분하게 글로 정리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거나 흐릿해지지만, 머릿속의 이 생각을 손끝으로 정리하고, 다시 한 번 종이 위의 내용을 읽으면서 머리에 입력시키면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최근 들어 내가 블로깅을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생겼는데, 나 스스로 좀 편해지기 위해서이다. 나는 다양한 질문을 꽤 많이 받는다. 주로 우리 투자사 대표님들이 가장 활발하게 질문을 하는데, 질문들을 받다 보면 비슷한 내용이 꽤 많다. 그러다 보면, 이메일을 검색해서 과거의 비슷한 질문에 대한 내 답변을 찾아서 카피 페이스트를 하는데, 언제부터인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관련 내용에 대한 블로그 포스팅을 한 후에, 그 링크만 보내주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하니까 시간을 꽤 많이 절약할 수 있다.

꾸준히 블로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솜씨도 늘고, 일관성이 습관화되었고, 사물을 여러 가지 각도에서 볼 수 있는 능력이 조금 생겼고, 나 자신과 스트롱벤처스를 위한 훌륭한 마케팅 채널을 하나 확보할 수 있었다. 10년 전만 해도 글을 전혀 못 쓰던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연습과 훈련을 통해서 이 정도까지 올 수 있다면, 누구나 다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꾸준한 훈련과 노력만 뒷받침된다면.

블로깅을 시작하는 건 모두에게 권장하고 싶다. 다만, 시작했으면 밥 먹고 똥 싸는 것처럼 꾸준히 해라.

글로벌 진출 – 첫 번째 사람

“글로벌 진출”

이 말 한국와서 정말 신물나게 들었다. 대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상대적으로 작은 한국 시장을 넘어서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는건 모든 한국 기업인들의 꿈이자 지상과제이다. 좋은 말이다. 당연히 글로벌 시장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가 투자한 회사들 중 한국 밖에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성격의 회사라면 다 글로벌 시장 진출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오늘은 글로벌 시장에 대해서 몇 자 적어보고 싶다. 참고로 내가 그나마 조금 알고 경험한 유일한 글로벌 시장은 북미 시장이기 때문에 이 내용들은 대부분 북미 시장에 국한되어 있다.

창업가들에게 왜 북미 시장으로 진출해야 하는지 물어보면 10명 중 9명은 미국 시장이 한국 시장보다 10배 이상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것은 10배 이상 큰 시장에서 비즈니스를 하는건 100배 이상 어렵다는 점이다. 북미 시장은 세계 최대의 시장임은 확실하지만 그만큼 미국 어렵다. 나도 뮤직쉐이크를 5년 정도 북미에서 운영하면서 매일 몸으로 경험했던건 바로 “미국 고객에게 뭔가를 파는건 너무너무 어렵다”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국 스타트업들은 북미 시장 진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 어떤 스타트업도 아직까지 글로벌 시장 진출에 성공하지 못 했다. 많은 꿈, 자신감, 허상과 자원을 가지고 미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모두 다 보란듯이 실패했다. 왜 그럴까?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할 수는 없을것 같지만 그래도 굳이 한가지를 꼽아 보라고 하면 바로 사람을 채용하지 못해서인 거 같다. 한국 스타트업들이 성공적인 미국 시장 진출을 하려면 사람을 잘 뽑아야 하는데, 삼성이나 LG와 같은 대기업들도 이걸 잘 못 하니 스타트업들한테는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실은 제대로 된 사람을 채용해야 하는건 너무나 당연한 말 같이 들리겠지만, 실은 그 누구도 하지 못하는 어려운 일이다.

요새는 달라졌지만 5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한국 스타트업들이 미국 시장 진출할때는 미국 시장을 모르는 본사의 사장님이 직접 가거나 본사 인력으로 구성된 ‘별동부대’를 보냈다. 이 조직의 구성원들은 현지 근무경험이 있거나 영어실력이 있다기보다는 거의 본사에 오래 근무한 사람들인데 단지 본사에서 근무경험이 있기 때문에 비즈니스에 대해서 더 잘 안다고 생각을 하고, 이런 사람들이 처음에 미국 시장에서 판을 잘 깔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실패의 지름길이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걸 지난 5년 동안 경험한거 같다.

이제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은 북미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현지에서 사람을 채용하려고 한다(단, 창업팀이 미국에서 자랐고 공부했다면 직접 한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온, 아무도 모르는 스타트업에 조인할 제대로 된 미국인은 거의 없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많은 회사들이 좌절하고, 채용은 힘들고 시간은 없으니까 그냥 미국에서 공부했고 영어 좀 하는 한국인이나 교포들을 채용하는데 이렇게 해서 성공한 회사도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첫 번째 사람을 채용하지 못하면 미국 시장 진출을 접거나 제대로 된 사람을 찾기 전까지는 미루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이 사람이 중요하다.
이 첫 번째 사람을 뽑을때 고려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스킬은 바로 현지 산업의 네트워크 이다. 이 첫 번째 사람을 잘 뽑아 놓으면 미국 시장에서 시작을 잘 할 수 있다. 시작을 잘 하면 비즈니스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만들어 지는데, 본격적으로 성장을 하려면 더 많은, 더 좋은 현지 인력들이 필요하다. 두 번째 사람, 세 번째 사람, 그리고 이들로 구성된 top 실력의 핵심팀을 만들어야 한다. 이 첫 번째 사람을 잘 뽑아 놓으면 이 사람이 알아서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대부분의 핵심인력을 모두 단 시간 내에 채용할 수 있다.

이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네트워크가 약하면 비즈니스의 성장을 위한 추가 인력을 뽑는데 상당히 고생을 하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을 인터뷰하고, 불확실한 인터뷰 결과를 기반으로 사람을 뽑았는데 같이 일하다 보니 아니다 싶으면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 새로운 시장에서 빨리 움직여야하는 스타트업한테는 상당히 좋지 않다. 하지만 과거에 같이 일해본 경험이 있어서 실력있고 믿을만한 그런 사람들이 이 첫 번째 사람의 네트워크 안에 있다면 많은 것이 해결된다. 물론, 미국 시장에서 이런 네트워크가 있다는 건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일단 영어가 자유롭고, 미국에서 공부를 했고, 일을 했기 때문에 이 분야의 좋은 네트워크가 있다는 의미이다.

현실적으로 이제 갓 시작한 스타트업들이 북미시장에서 이런 인력들을 찾는다는건 정말 힘들다. 하지만 한국을 나가서 글로벌 시장에 제대로 진출하기를 원한다면 이런 좋은 네트워크를 보유한 인력, 즉 첫 번째 사람을 정말 잘 뽑아야 한다. 그러면 글로벌 진출의 90% 이상이 해결된 것이다.

해본 vs. 안 해본

미국이나 한국이나 우리 주변에는 입만 살아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특히나 일을 함에 있어서 정작 본인들은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남이 하는 일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훈수 두는 사람들이 많다. 전에 내가 ‘해보긴 해봤어?‘ 라는 글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자세히 적어봤는데 2009년도나 2016년도나 몸은 가만히 있으면서 입만 살아서 남을 평가하는데 인생을 바치는 인간들을 이번 달에도 너무 많이 만났다. 이들을 보고 있자면 마치 ’10대 섹스(=teenage sex)’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10대들의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남녀 불문하고 섹스 이야기를 꽤 많이 한다. 모든 10대들이 섹스 이야기를 하지만, 실제로 물어보면 섹스를 경험한 10대는 거의 없다. 하지만, 마치 누구나 다 해 본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

우리도 항상 talking 보다는 doing을 강조 하는데, 직접 해보는건 정말 중요하다. 아무리 글로 공부하고, 남들이 자세히 설명을 해 주어도 가장 빨리 배우는 방법은 직접 해보는 것 이다. 창업이 그 대표적인 케이스다. 아무리 창업에 대한 책을 많이 보고, 창업학과를 나오고, 친한 친구의 창업 경험을 들어도 내가 직접 해보면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한다. 그리고 내가 직접 뭔가를 해보면 몸이 그 경험을 기억하기 때문에 절대로 잊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경험들이 몸에 차곡차곡 쌓여야지만 일을 함에 있어서 정확한 본질과 핵심을 꿰뚫어 볼 수 있다.

해보는게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 이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 해봐야지만 비로소 해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2008년 뮤직쉐이크를 운영하면서 UCLA의 Spring Sing 이라는 음악 행사를 스폰서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기념품으로 우리는 행사에 오는 모든 학생들에게 CD를 하나씩 주기로 했다. 이 CD에는 뮤직쉐이크 프로그램 설치파일과 뮤직쉐이크로 만든 곡 중 가장 인기 있는 곡 10개가 담겨져 있었다. 그런데 CD를 너무 많이 구워서 행사 끝나고 보니 몇 백장의 재고가 남았다. 이걸 버릴까 하다가 회사 근처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무료배포를 시도했다. 솔직히 쪽 팔리기도 하고 미국 초등학생들한테 CD를 배포하는게 두렵기도 했지만 일단 해보기로 했다. 열심히 약 장수를 하고 있는데 누가 신고해서 온 경찰한테 두 번이나 잡혀갈뻔하고 포기를 했다. 그리고 결국 CD는 다 폐기처분했다.

그런데 이 짓을 한 번 해보고나니 길거리에 나가서 모르는 사람들한테 접근을 하고 우리 제품을 설명하는데에는 도사가 되었다. 거절을 당해도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또 다른 새로운 사람에게 우리 제품을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기까지 했다. “해보니까 별 거 아니네” 라는 경험을 몸이 익혔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스타트업 바이블에서도 자주 인용했던 루스벨트 대통령의 파리 소르본 대학 연설 내용 일부인데 여기서 한번 더 인용해 본다:

“중요한 것은 비평가들이 아니다. 공(功)은 실제 경기장에서 먼지와 땀 그리고 피에 뒤범벅되어 용맹스럽게 싸우는 자의 몫이다. 그는 실수하고 반복적으로 실패한다. 또, 가치 있는 이유를 위해 열정과 헌신으로 자신을 불태운다. 무엇보다 그는 마지막에 주어지는 위대한 승리와 패배를 알기에, 그것들을 전혀 모르는 차갑고 겁 많은 영혼들과 결코 함께하지 않는다.”

직접 해봐라. 그리고 해보지 않은 자들의 말은 듣지 말고 이들과 어울리지도 말아라.

PLAY like Nexon

사진 2016. 1. 19. 오전 7 48 48이 분야에서 일하면 얼마전에 출간된 신기주 기자의 ‘플레이’ 라는 책을 읽어 본 분들이 꽤 있을 것 같다. 한국을 대표하는 유니콘 회사 중 하나이자, ‘freemium’ 또는 ‘free to play’ 라는 개념을 게임에 세계 최초로 적용한 게임회사 넥슨의 이야기를 상당히 재미있게 쓴 책이다. 실은 나는 거의 4년 전부터 종이책을 읽지 않고 있었는데, 얼마전 부터 다시 종이책과 전자책을 병행하면서 읽기 시작했고 한국 돌아와서 완독한 첫 종이책이 플레이다.

이건 서평이 아니라서 책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쓰지는 않겠다. 궁금하신 분들은 일독을 권한다. 아마도 나한테 이 책이 더 흥미로웠던 이유는 아직도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이 꽤 많이 등장했고,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흥미롭게 관찰하던 회사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는 2008년 – 2012년 뮤직쉐이크 시절, 넥슨아메리카 사무실 안에서 작은 방을 얻어서 일을 했었고 본사는 아니지만 넥슨 미국 지사를 통해서 넥슨에 대해서 많은걸 보고 배웠다. 책에 등장하는 몇 인물들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분들인데 이렇게 치열하게 도전하면서 일을 하셨고, 이렇게 훌륭하신 분들인지는 책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지금 창업을 하셨거나 창업을 고려하시는 분들은 읽으면 느끼는게 많을거 같고, 스스로의 현 주소 및 앞으로의 방향을 재정비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나는 창업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분들이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이 분들한테는 꽤 큰 감동과 인생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시각을 충분히 제공해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타고난 사업가나 창업가들이 존재하는건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창업가들은 만들어 진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들 중 살면서 어느 시점에 인생의 방향을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는 사건을 통해서 창업을 결심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 같은 경우 스탠포드 대학원에서 Khosla Ventures의 비노드 코슬라의 강연을 들은게 내 커리어 인생을 바꾸게 한 계기가 되었다. 나는 ‘플레이’가 많은 젊은이들에게 이런 계기를 제공하는 책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이들이 인생을 조금은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봤으면 한다. 그리고 창업을 해서 수 조원의 돈을 벌고 유니콘 기업을 만들었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부자지도를 부를 대물림 받은 재벌들이 아닌 자수성가한 창업가들로 채워줬으면 한다.

플레이에는 맘에 드는 문구들이 많이 있는데,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김정주도, 정상원도, 송재경도, 서민도, 일이 이렇게 풀릴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직 20대였던 공학도들이 국가 인프라 전략을 앞서 읽고 시장의 흐름을 예측한 다음 거기에 걸맞은 상품을 먼저 준비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환란을 예측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들은 그저 남들보다 더 무모했고, 누군가 미래를 만들어주길 기다리는 대신 미래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 했을 뿐이다. 도전했고, 실패했다. 행운이 따라줬고, 불행도 따라왔다. 그리고 부활했다.”

작은 시작, 성장, 큰 그리움

34304_455758011000_414918_n한국와서 좋은 점은 우리가 투자한 회사들을 직접, 더 자주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있는 곳으로 대표이사님들을 오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우리가 투자한 팀들은 어떤 사무실에서 어떤 분위기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 매우 궁금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항상 사무실을 직접 방문하려고 노력한다.

간혹 “사무실이 너무 누추해서요” 라면서 굳이 밖에서 만나려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래도 나는 사무실 방문을 고집한다. 솔직히 말해서 사무실이 누추하긴 누추하다. 대부분 허름한 건물의 작은 방에서 대여섯명의 젊은 친구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래도 나는 이런 분위기가 너무 좋다. 그리고 이 분들한테 항상 말한다.

“이 사무실, 주위 환경, 가구들, 친밀함, 모두 잘 기억하세요. 그리고 이 순간을 즐기세요. 나중에 성공해서 더 큰 곳으로 이사가면 이 장소와 이 때가 가장 그리울 겁니다.”

진심이다. 내 직업 인생에서 가장 그리운 시점은 2008년 LA에서 뮤직쉐이크 북미사무소를 시작할때다. 넥슨에서 투자를 받은 우리는 비용절감을 위해서 넥슨아메리카의 작은 방 하나에서 시작했다. 뮤직쉐이크 founder 윤형식 사장님과 같이 낡은 밴을 몰고 이케아가서 산 책상과 의자를 오후 내내 조립하고, 그래도 뭔가 우리만의 사무실이 생겼다는 뿌듯함에 밤 늦게까지 ‘아라도’ 라는 코리아타운 일식집에서 술을 엄청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작은 사무실에서 우리 4명은 마치 세상을 다 삼킬 기세로 정말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일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그때보다 지금 내 삶은 조금은 더 편해졌다. 하지만 아직도 당시 그 분위기와 사무실, 그리고 그 시절이 매우 그립다. 단순히 ‘좋아함’을 넘어, 진심으로 내가 하는 일을 ‘사랑’ 했었기 때문이다.

우리 투자사를 포함해서 몇 몇 스타트업들을 방문하면 2008년 뮤직쉐이크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중에 이들이 잘 되어서 더 크고 쾌적한 환경에서 근무할 때, 이 작은 공간과 시작이 그리워 질 정도로 열심히 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Merry Christmas every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