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친한 분들은 잘 알 텐데, 나는 테니스를 매우 좋아한다. 실은 어릴 적 내 꿈은 테니스 선수였다(아직도 꿈은 가지고 있다). 테니스가 전통적으로 강한 스페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어릴 적부터 테니스 훈련을 체계적으로 받았지만, 어느 순간 키가 더 크지 않아서 이제는 취미로만 치고 있다. 얼마 전에 끝난 메이저 대회 중 하나인 프랑스 오픈을 보면서 느낀 점들이 있어서 몇 자 적어본다.
과거에 마이클 창이라는 중국계 미국 테니스 선수가 있었다. 175cm 라는 단신이었지만 1989년도 프랑스 오픈을 17살의 나이에 우승한 위대한 챔피언이다. 이 선수는 솔직히 그렇다 할 무기가 없었다. 단신이기 때문에 폭발적인 서브도 없었고, 포핸드와 백핸드도 특별하게 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좋은 체력과 빠른 발이 있었고 머리가 좋아서 테니스를 영리하게 쳤다. 서양인들에 비해서 체격 조건이 뒤처진 나 같은 동양인들은 마이클 창을 보면서 큰 용기를 얻었다. 키가 작고 파워풀한 스윙이 없어도 끈질기고 발 빠르게 공을 치다 보면 이길 수 있다는걸 그가 증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테니스 게임과 선수들은 계속 발전을 했다. 선수들의 체격 조건은 더 좋아졌고, 코트의 재질도 발전했고, 라켓과 공 같은 장비도 비약적인 발전을 해서 선수들은 자신들의 능력과 체력을 극대화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이클 창은 이제 나이가 들어서 은퇴를 했지만, 그가 전성기 때의 실력 발휘를 한다고 해도 이제는 현재의 테니스에서는 더 이상 우승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하고 열심히 친다고 해도 테니스라는 게임 자체가 업그레이드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평균 신장, 체격, 그리고 체력적인 면에서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모든 선수들이 월등해졌다. 이런 새로운 판에서는 마이클 창과 같은 선수는 더 이상 경쟁 조차 할 수 없게 된다.
분야만 다르지만 스타트업도 마찬가지이다. 5년 전만 해도 ‘MVP’ 라는 보호막 아래에서 제품의 껍데기만 대충 만들고 기본적인 기능만 구현하면 매출도 조금 만들 수 있고 운 좋으면 투자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테니스의 게임이 비약적인 발전을 했듯이 스타트업과 창업자들의 수준은 그동안 엄청나게 업그레이드 되었다. 이제는 ‘MVP’ 라는 우산으로 제품의 불완전함을 정당화 할 수가 없다. 제품의 수준 자체가 높아졌고, 내가 최근에 본 MVP들은 왠만한 중견기업에서 만드는 제품에 비교해도 손상이 없을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물론 이런 수준높은 베타 제품들을 가능케 하는건 그동안 같이 비약적인 발전을 한 소프트웨어, API, 하드웨어 등이 있기 때문이다.
갈수록 수준이 높아지는 창업팀들이 만든 완성도가 높은 제품들과 경쟁하려면 이들보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만큼 좋은 제품의 기준이 높아졌고, 유저확보와 매출발생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요새 시작하는 팀들은 더욱 더 고민하고, 더욱 더 잘 만들어서 완제품과도 비슷한 베타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해도 매일 매일 전세계에서 생성되는 수 천개의 새로운 제품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미지 출처 = http://www.princetennis.com/inside-prince/history/1989/>
저도 테니스를 좋아해서 인지 쏙쏙 이해가 됩니다 ㅎㅎㅎ MVP가 최신 경향으로 알고 있었는데 실제 서비스를 해보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혹시 LA 근처에 오시면 우리 테니스 클럽에서 한번 치시고 교제 시간도 가지고 싶네요. 팔로스버디스쪽에 있습니다.
아…팔로스버디스…그립네요…이제 한국으로 귀국해서 LA 얼마나 자주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나중에 기회가 되면 들릴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