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적지만, 우리도 지금까지 몇 개의 엑싯을 경험한 적이 있다. 쿠팡 같이 IPO를 한 경우도 있지만, 더 큰 회사에 인수되거나 비슷한 규모의 회사와 합병하면서 M&A를 통해 엑싯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많지 않은 M&A를 통해서 내가 배운 게 하나 있다면, 좋은 엑싯을 위해서는 회사가 팔려야지, 팔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좋은 회사는 엑싯을 굳이 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사업만 잘하면, 누군가 연락이 와서 인수의 관심을 표시하리라는 것이다. 안 되는 회사를 억지로 다른 회사에 인수나 합병시키려고 하면 아예 안 되거나, 아주 안 좋은 조건에 딜이 성사된다.
그래서 나는 창업가를 만날 때, 이분이 회사를 시작하자마자 엑싯에 너무 꽂혀 있으면 매력도가 확 떨어진다. 이제 시작했고, 지금 매출 100만 원도 못 하는데, 사업에 집중하지 않고 3년 후에 회사를 네이버나 카카오에 얼마에 팔겠다는 생각만 한다면 이 회사는 금방 망하거나, 헐값에 팔릴 것이다. 반면에 엑싯은 크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아주 좋은 사업을 만들고, 매출을 만들고, 고객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창업가들은 언젠가는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회사가 먼저 연락이 와서 인수 의향을 밝힐 것이고, 이렇게 된다면 본인이 원하는 좋은 조건에 회사가 팔릴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 슈퍼앱을 만들겠다는 한 창업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M&A에 대한 내 배움이 떠올랐다. 이분의 목표는 그 분야에서 모든 걸 다 처리할 수 있고, 모든 걸 다 가능케 하는 슈퍼앱이었다. 창업 첫날부터 슈퍼앱에 대한 생각만 하고 있고, 회사의 모든 결정의 – 제품, 펀드레이징, 채용 – 기준이 되는 건 슈퍼앱이었다. 아직 제대로 기어다니지도 못하는데, 처음부터 하늘을 나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여기에만 꽂혀 있는 것이다. 이분의 슈퍼앱에 대한 야망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 듣자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내가 입을 열고 이 창업가에게 진심 어린 충고를 하나 했다. “대표님, 슈퍼앱은 그렇게 처음부터 만들겠다고 해서 만들기보단, 그냥 작은 기능을 하나씩 완벽하게 만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에요.” 슈퍼앱에 꽂혀서 한 번에 너무 많은 걸 동시에 만들다 보면, 결과는 뭐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C급의 저질 앱이다. 그냥 한 번에 하나씩, 천천히 만들지만, 그 하나하나를 완벽하게 만들다 보면, 복리의 힘이 작용하면서 결국엔 이게 슈퍼앱이 되는 것이다. 정작 본인은 이 제품이 슈퍼앱이 되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사례를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개의 슈퍼앱인 네이버와 카카오만 보더라도, 처음부터 슈퍼 앱을 만들겠다고 만든 게 아니다. 검색과 메신저라는 기능을 그 누구보다 뾰족하게 만든 후에, 그리고 다른 분야로 확장하더라도 기반이 되는 이 검색과 메신저 기능을 다른 경쟁사가 절대로 더 잘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후에, 그제야 다른 분야로 확장하면서 본인들도 모르게 슈퍼앱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사업을 시작했는데, 너무나 슈퍼앱에 꽂혀 있는 창업가들에겐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슈퍼 앱 이야기를 들은 후, 내게 아직도 에너지가 남아 있다면, 항상 비슷한 충고를 한다. 슈퍼앱은 만들고 싶다고 만드는 게 아니라, 작은 것들을 계속 반복하면서 고객들이 좋아하는 작은 기능과 제품을 잘 만들다 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그리고 창업가들이 우리 제품은 슈퍼앱이라고 떠드는 게 아니라, 고객들이 우리 제품은 슈퍼앱이라고 명명하면서 왕관을 씌워주는 거라고.
여태까지 저는 대부분 아니 거의 모두 대표님의 의견에 찬성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투자사 대표는 슈퍼앱에 대한 허상이라기 보다는 비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아닐까 했습니다. 혼자서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디테일에 대한 부분은 다른 동료가 취해야 할 일 아닐까 싶습니다. 비전과 디테일이 혼자만의 힘으로 진행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리더는 큰그림을 그리고 옆에서 그것을 현실화하는 동료가 있다면 그것이 더 현명하고 올바른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안녕하세요. 네, 슈퍼앱에 대한 비전일 수도 있고 허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글에서 쓴것처럼 매출 100만 원도 못 하는데 수 조 원의 회사를 만드는데에만 꽂혀 있다면 이건 저는 허상이라고 생각해요. 하나씩 차근차근 천천히 만들어가는게 제대로 된 사업을 가장 빨리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밌네요.
저는 배기홍 대표의 글에 절반도 찬성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시각을 보기 위해 계속 읽는 구독자이지만) 이 주장은 매우 지지합니다.
회사가 바라보는 곳은 ‘이상’이더라도, 대부분의 의사결정은 ‘생존’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요즘과 같은 시장에서는요.
“회사의 모든 결정의 – 제품, 펀드레이징, 채용 – 기준이 되는 건 슈퍼앱이었다.”
그래도 가끔은 찬성하신다는 말로 이해했습니다 🙂 고맙습니다!
제가 감사합니다.
어차피 스타트업은 과정에서 찬성표를 얻는게아니라, 마지막에 이뤄내는 영역이니까요. 다른 시각에서 받아들일 것을 챙기고, 결국에 해내는게 필수겠죠.
그런 의미에서 많이 도움받습니다. 제가 고마워요.
비슷한 예시로는 “플랫폼”이 생각나네요. 양 사이드의 유저를 모을 핵심이 없는데 무조건 플랫폼 만들어서 J커브 그린다는게 유행인 시절이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