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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urity Token 가이드

작년과 비교하면 확연하게 줄었지만, 요새도 코인과 토큰 발행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팀이 있다. 시장이 워낙 죽었고, 앞으로 암호화폐가 어떻게 규제될지 모르기 때문에, 다들 펀드레이징에 대한 고민도 많고, 비즈니스 방향에 대한 고민도 많고, 하여튼 골치가 아주 아플 것이다. 그래도 이 시장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믿고, 토큰 이코노미를 만들려고 한다면, 만들려고 하는 토큰이 security 토큰이 되지 않게 설계해야 할 것이다. 토큰이 증권(security)으로 분류되는 순간부터 증권법의 적용을 받게 되는데, 이러면 법의 규제를 받는 거래소에서만 거래될 수 있고, 특정 대상에게만 판매해야 하고, 토큰과 프로젝트에 대한 많은 정보를 공개하고 공시해야 한다. 실은, 증권에 적용되는 증권거래법은 암호화폐와 같은 오픈소스 프로젝트에는 말이 안되기 때문에, 가능하면 토큰을 설계할 때는 security token의 성격이 없게 해야 한다.

그럼 security 토큰의 성격은 어떤게 있을까? 여기서부터 상당히 모호해지고, 관련해서 다양한 논의가 현재 진행되는 거로 알고 있는데, 얼마 전에 Blockchain Association에서 이에 대한 꽤 명쾌한 글을 하나 올렸다. 일단 지금까지 공개된 내용에 의하면,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가 제시하는 프레임은, 어떤 토큰이나 그 네트워크가 비트코인 또는 이더리움보다 더 탈중앙화되어 있으면, 충분히 탈중앙화되어 있기 때문에 시큐리티 토큰으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2018년 6월 14일, SEC의 기업금융국장 William Hinman에 의하면). 계속 법이 새로 만들어지고, 이에 따른 규제도 새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 내용이 또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지만, 일단 현재로서는 내가 토큰을 설계하려고 하면, 스스로 물어볼 질문은, “이 토큰은 충분히 탈중앙화되어 있나?” 이다. 이 토큰의 네트워크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네트워크만큼 탈중앙화되어 있으면, 이 토큰은 ST로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증권법의 적용대상에서는 제외된다. 이 토큰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보다 덜 탈중앙화 되어 있으면(=더 중앙화), ST로 구분될 확률이 높다.

아직 한국은 이런 논의 자체도 없고, 규제를 만드는 분들이 중앙화/탈중앙화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지도 미지수이지만, 아마도 미국을 따라가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되면, 한국에서도 새로운 토큰을 만들면, 정부에서는 이 토큰의 탈중앙화 정도를 판단할 것이고,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만큼 탈중앙화되어 있으면, ST로 분류하지 않을 것이고, 반대로, 중앙화되어 있다고 판단되면, ST로 분류할 것이다.

여기서 미국 증권거래법이 생겨난 배경을 잠깐 설명하면 좋을 거 같다(미국증권거래법 설명은 위키피디아 참고). 증권을 발행하는 측과 증권에 투자해서 이익을 보려는 투자자 간의 정보의 비대칭을 해결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게 증권거래법이다. 내가 주주인 나이키의 예를 들어보자. 나이키의 창업자인 필나이트 회장과 마크파커 대표이사는 나이키에 대한 정보를 나 같은 투자자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 우리가 전혀 모르는 내부 정보를 다 알기 때문에 이들이 원한다면, 이런 내부정보를 기반으로 부당하게 나이키 주식 거래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나이키 회사의 미래와 실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이들이 나쁜 마음을 먹으면,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 주가를 조작할 수 있다. 즉, 나이키와 투자자 간의 네트워크는 나이키라는 회사와 그 회사의 내부자를 중심으로 중앙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나이키의 주식은 증권거래법의 적용을 받고, 나이키는 해마다 큰 비용을 지급하면서 회사의 많은 정보를 직접 또는 중개인을 통해서 공시해야 한다. 또한, 나이키 주식은 법의 규제를 받는 증권거래소에서만 사고팔 수 있다.

이와 반대로, 금의 예를 들어보자. 금의 가격과 정보는 상당히 탈중앙화되어 있다. 모든 사람이 금에 대한 시장 정보를 거의 비슷한 수준에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위의 나이키의 예와 같이 특정인이 금의 가격을 조작하는 게 쉽지 않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도 비슷하게 탈중앙화되어 있다 – 물론, pump and dump와 같은 위험은 존재한다.

즉, 새로 만드는 토큰 네트워크가 소수의 내부자한테 의존하고, 이들이 조종 가능하다면, 이 네트워크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보다 덜 탈중앙화(=더 중앙화)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러면, 이 토큰은 security 토큰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고, 증권거래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오픈소스 프로젝트라도 법으로 요구되는 많은 정보를 공시해야 하며,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특정 거래소에서만 거래되어야 할 것이다.

이 ‘탈중앙화 정도’에 대한 정량적 내용은 아직 없지만, Blockchain Association에서 Hinman 가이드에 대한 꽤 자세한 기능적 분석을 도표로 정리하긴 했다. 물론, 이 내용은 계속 논의되면서 수정될 것이다.

믿음

새해라는 게 나한테는 이제 큰 의미가 없다. 죽을 때까지 시간은 그냥 가고, 이 시간을 우리가 임의로 나누고 정량화 한 게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한테는 연말이랑 새해는 그냥 조금 쉴 수 있는 연휴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런데도, 새해가 되면 그냥 마음속으로는 몇 가지 다짐을 하곤 한다. 더 어릴 적에는 거창한 새해 결심을 세우고, 이걸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제는 그냥 “재미있게 살자” , “매일 실수를 더 많이 하자” , “착한 사람이 되자” , “나를 믿자” 같은 간단하고, 뻔하고, 일반적인 다짐을 한다. 실은 이런 결심과 생각은 한 5년 전부터 변하지 않고 똑같았던 거 같은데, 올해는 “믿음”에 조금 더 집중해보려고 한다.

작년에 나랑 스트롱한테는 나쁘고 실망스러운 일도 많았지만, 이 보다는 좋은 일이 더 많았던 거 같다. 그리고 좋은 일이 더 많았던 가장 큰 이유는 쉽지 않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나 자신을 굳게 믿고, 내가 특정 일을 할 수 있냐 없냐보다는, 내가 이걸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게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던 거 같다(구체적인 내용은 나열하지 않겠다). 실은, 이렇게 나를 믿고 일을 진행해도 객관적인 결과는 좋지 않았던 경우도 많았지만, 내가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가졌던 믿음 때문에 이 좋지 않은 결과도 잘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거 같다.

이런 경험을 해서 그런지, 가능하면 나는 투자할 때도 이런 창업가들한테 더 끌린다. 시장, 기술, 규제, 자본 등의 리스크가 너무나 명확한 어려운 비즈니스지만, 이걸 본인이 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 실제로, 할 수 있다 없다를 떠나서 – 그런 창업가들이 잘하면 크게 성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런 특성을 찾기 위해서 노력한다. 물론, 이 사람의 속마음까지는 내가 볼 수 없지만, 이 창업가가 지금까지 보여준 행동과 판단, 그리고 이 행동과 판단에 이 사람이 과거에 했던 결정들이 가미되면, 이런 패턴이 조금은 보이는 거 같다. 특히, 투자자가 파운더와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면, 이런 패턴을 더 잘 볼 수 있는 거 같다.

나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있으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자신감이 생긴다. 그리고 이 자신감이 있으면, 나에 대한 믿음이 한층 더 강화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실은 이건 보는 사람에 따라서 자신감일 수도 있고, 어리석음일 수도 있지만, 어려운 일을 해야 하는 장본인한테는 자신감이나 어리석음이나 다 비슷한 긍정적인 작용을 하므로 상관없다. 그리고 이런 스스로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생기면, 어느 순간부터 남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관해서 관심이 없어지고, 이런 거에 대해서는 절연되기 때문에 더욱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는 확률이 커지는 거 같다.

할 수 있냐 없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이걸 할 수 있다고 믿는 그 믿음으로, 모두 힘찬 2019년을 시작하기 바란다.

성공을 위한 실패

투자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나이나 경험과는 상관없이 멋진 창업가, 사업가, 그리고 동료 투자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고, 1년 365일 이런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가 있는데, 이분들과 같이 어울리다 보면 직, 간접적으로 좋은 말을 참 많이 듣고 접한다.

내가 작년에 접했던 – 직접 들은게 아니라, 매체를 통해서 접했다 – 말 중 가능 마음에 와닿아서, 매일 아침 집을 나서면서 스스로 최소 하루에 한 번씩 되새겼던 말이 있다. “좋은 판단의 형성“이라는 글에서도 언급한,

“올바른 판단은 경험에서 나오고, 경험은 틀린 판단에서 나온다(good judgment comes from experience, which comes from bad judgment).”

라는 말이다.

이 말을 재미있게 해석해보면,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틀린 판단을 많이 해야 한다는 뜻이다. 조금 이상하게 들리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많이 틀려야지만, 앞으로 틀린 판단을 할 확률을 줄이고, 이렇게 하면 좋은 판단을 더 많이 할 수 있다는 게 이해가 간다. 즉, 더 짧은 시간 안에, 더 빨리, 더 많이 틀린 판단을 하는 사람이 더 좋은 판단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2018년 한 해 동안 나는 되도록 더 많이 틀릴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일부러 틀린 판단을 하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가능하면 짧은 시간 안에 많은 판단을 하려고 했고, 이렇게 하면서 어쩔 수 없이 확률적으로 더 많은 실수와, 틀린 판단을 했다. 틀린 판단을 많이 하니까, 정말로 위의 말처럼, 경험이 축적됐고, 축적된 경험은 더 나은 판단으로 이어지는 걸 경험했다. “오늘도 틀린 판단을 많이 해야지” 하면서 매일 집을 나서는 게 큰 도움이 되었던 거 같다.

작년 말에 아산나눔재단과 페이스북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인큐베이터 남산 랩 코리아 송년회에 갔다가, 이 말이 다시 한번 생각났다.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 수많은 실험을 하면서 경험을 축적하는 게 랩(=실험실)의 본질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여기 입주한 스타트업들이 수많은 실험과 틀린 판단을 통해 얻는 경험이 좋은 판단으로 이어져서, 모두 성공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2019년은 모두가 매일 매일 더 많이 실패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실패하다 보면, 경험이 쌓일 것이고, 경험이 쌓이면, 언젠가는 성공할 것이다. 나도 틀린 판단을 많이 하기 위해서 열심히 살 것이다.

입장료

우리는 주로 최초의 투자는 2억 원 정도를 한다. 이후, 금액은 크진 않지만, 몇 번 더 후속 투자를 하는 방식으로 투자를 한다. 실은 초기 투자금 1~2억 원은 요새는 큰돈은 아니다. 워낙 경쟁이 심해졌고, 인력이 비싸져서, 이 돈으로 뭔가 엄청난 제품을 만들거나, 초고속 성장을 하는 회사는 드물다. 실은, 이 돈으로 MVP도 못 만드는 회사도 많고, 이런저런 실험을 하면서 삽질만 하다가 자금을 다 소진하고, 후속 투자가 필요한 회사도 있다.

나도 처음 투자를 시작할 때는, 1억 원 정도 투자하면 이 돈으로 엄청난 제품을 만들고, 막강한 매출과 사용자 수를 달성해서, 훨씬 큰 밸류에이션에 후속 투자를 받고, 곧바로 유니콘 회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다. 그런데 7년 동안 90개가 넘는 회사에 투자하면서, 내가 참 순진하고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는 걸 자주 경험하고 있다. 요새 나는 우리의 이 작은 초기 투자금은 일종의 입장료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설명해보면, 너무 초기 회사라서 제품과 비즈니스, 그리고 시장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좋은 대표와 팀이라서 자주 만나서 이야기하면서 이 팀과 개인적으로 더 친해지고, 알아가고 싶은 경우가 자주 있다. 한 두 번 정도는 내가 회사 사무실로 찾아가고, 팀이 우리 사무실로 찾아와서 한 두시간 정도 이야기 하는 건 괜찮지만, 투자도 하지 않으면서 계속 이 팀의 시간을 뺏는 건 서로한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정말로 이 팀을 내 곁에 조금 더 가까이 두면서, 회사에 대해서 배우고, 제품에 대해서 배우고, 팀에 대해서 배우고 싶다면, 그때 소액의 초기 투자를 한다.

이 투자금으로 회사가 비약적으로 성장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고, 실은 이게 모든 VC의 꿈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안 된다. 다만, 우리는 회사에 소액 투자를 해서 주주가 되었고, 이 팀은 우리의 돈을 받아서 우리와 가끔 만나서 비즈니스에 대한 업데이트와 시장에 대한 정보를 줘야 하는 어느 정도의 의무가 있기 때문에, 우리도 이분들한테 연락해서 조금은 귀찮게 하는 거에 대해서는, 투자를 전혀 하지 않았을 때 보단 덜 미안하다.

그래서 나는 소액의 초기 투자금은 이 회사를 더 알아가고, 회사의 성장을 가까이서 자세히 보기 위해 우리가 지급해야 하는 일종의 입장료라고 생각한다. 입장료는 말 그대로 어느 곳에 들어가기 위해 지급하는 돈이다. 클럽이라면, 입장료 내고 들어가서 또 돈 내고 술을 먹어야 하고, 놀이동산이라면, 입장료 내고 들어가서 놀이기구를 타려면 또 돈을 내야 하듯이, 초기 투자를 한 후에, 회사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후속 투자를 할 수 있다.

이 후속 투자를 할 때, 초기에 이미 투자했으면, 여러 가지 면에서 유리하다. 일단, 초기에 투자했기 때문에 후속 투자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pro-rata 권리), 이미 회사의 대표와 창업팀과 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에 혹시나 이런 권리를 확보하지 않았어도, 재투자를 할 수 있는 인간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회사 시작부터 비즈니스를 같이 봤고,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도 어느 정도 참여를 했고, 시장과 고객을 분석하는 과정도 옆에서 봤기 때문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팀, 제품, 시장의 장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 팀을 처음 보는 투자자의 관점에서는 회사의 성장이 더디고, 매출이 없고, 수치가 약하더라도, 오랜 시간 이 팀을 본 투자자는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더 자신 있게 재투자를 할 수 있다.

우리도 자주 경험하는데, 스트롱 투자사가 후속 투자가 필요할 때, 대부분의 VC가 관심 없어서 우리만 후속 투자를 하는 경우가 있다. 남들은 왜 이런 회사에 또 투자하냐고 의아해하지만, 위에서 말한, 단시간 안에는 파악할 수 없는 회사의 장점을 우리는 알고, 또 믿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예상대로 잘 되는 회사도 있지만, 잘 안 되는 회사가 훨씬 더 많다 🙂

정리하기

초기 벤처 투자는 홈런성 투자라는 말을 자주 한다. 나도 좀 해보니까, 이게 무슨 말인지 이제 잘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그리고 몇 개의 엑싯도 경험해보니, 초기 투자는 정말 아웃라이어에 투자해서 홈런을 치는 게임인 게 명확한 거 같다. 이를 비유할 때 전설적인 홈런왕 베이브루스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베이브루스는 워낙 배팅을 많이 해서 삼진도 엄청나게 먹었지만, 맞았다 하면 홈런도 그만큼 많이 쳤다. 이게 초기 투자를 가장 쉽고 직관적으로 설명하는 게 아닐까 싶다. 많이 투자하기 때문에, 많이 망하지만, 워낙 초기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중 잘 되는 회사는 엄청나게 잘 되는 거다.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그렇다고 베이브루스가 눈을 감고 배트를 휘두른 건 아니다. 항상 최선을 다해서, 본인의 경험과 힘을 잘 이용해서 배팅했듯이, 우리도 그냥 막 투자하는 건 아니다. 우리만의 철학과 경험을 기반으로 투자하는 거다. 단지, 다른 큰 VC보다 많은 회사에 투자할 뿐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많이 투자한 만큼, 많은 회사가 망한다. 실은 그때마다 내가 할 일이 더 많아진다. 전에 한번 비슷한 글을 올린 거 같은데, 솔직히 단순한 재무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작은 투자금을 집행한 초기 회사들이 망해도 우리 수익률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어차피 소수점 몇 자리기 때문에 펀드의 수익을 위해서는 이런 회사들은 그냥 과감하게 버리고, 잘하는 회사에 집중하는 게 기계적이고, 수학적이고, 냉정한 투자적 관점에서 올바른 일이다. 어차피 일이란게 다 그런 게 아닌가?

하지만, 내가 항상 강조하듯이 우리는 financial industry에 종사하기보단, construction industry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단순히 돈놀이를 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자기의 삶을 스스로 컨트롤하려고 하는 가슴뛰는 – 또는, 한때는 가슴 뛰었던 – 분들이 회사를 만드는 걸 도와주는 사람이다. 거의 100개 이상 투자한 펀드에서 한 개의 회사가 망하면, 펀드 수익률에는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그 회사를 만들기 전에 수많은 고민을 하고, 가족을 포함 주위 모든 사람한테 미친놈 소리 듣고, 엄청난 인생의 결단을 내린 그 창업가한테 이 조그마한 사업은 그분의 인생 전부이자 우주 전부이다. 어떤 경우에는 자식보다도 더 소중하고, 자식보다 더 몸과 마음을 다 바친 인생 최대의 걸작품이다.

이 작품이 망하면 – 어떻게 보면, 확률적으로는 너무 당연한 결과지만 – 이 분을 처음에 지원하고, 응원하고, 돈을 대줬던, 우리 같은 초기 투자자가 회사 정리 또한 같이 해주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실은 이 정리라는 게 좀 스트레스풀하고, 짜증 날 때가 많다. 내가 보기엔 더 해도 될 거 같은데 대표이사가 번아웃이 돼서 회사를 정리할 때는 내가 더 짜증이 나고 화가 난다. 내가 보기엔 적당한 금액에 회사를 파는 게 모두한테 좋을 거 같은데 그것마저 싫다고 할 때는 내가 더 짜증 나고 화난다. 폐업하고 회사 정리를 하다 보면, 내가 믿고 투자했던 분이 저렇게 고집이 세고, 융통성이 없고, 의지가 약한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할 때도 많다. 이럴 때도 짜증 나고 화가 난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내가 화내고 스트레스받을 필요가 없다. 아니,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내가 이런 심정이면, 모든 걸 바쳤던 사업을 정리하는 창업가의 마음은 얼마나 안 좋겠냐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해보면, 그냥 다시 옆에서 이분들을 잘 지원해주는 모드로 돌아간다. 그만큼 힘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고민 많이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스스로에게도 미안하고 창피할 것이다. 나는 이분들이 잘 정리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스타트업 경험을 기반으로 다시 멋진 도전을 했으면 한다. 그리고 사업이 실패한 거지, 인생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도 운이 좋다면, 이분들이 다시 창업 결심을 하고, 다시 스트롱한테 제일 먼저 돈 받으러 오겠지. 뭐, 다시 투자할지 안 할지는 그때 결정해야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