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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oft VC

VC들은 기본적으로 남의 돈을 관리해주는 사람들이다(물론, 자기 돈으로만 투자하는 부러운 VC도 있다). 그래서 실은 모든 걸 굉장히 냉정하고 냉철하게 보고,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 좋은 기술, 재미있는 기술, 좋은 팀에 투자를 하는 거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펀드 출자자분들한테 원금뿐만 아니라, 이보다 훨씬 더 높은 배수의 자금을 돌려줘야 할 책임이 있으므로, 결국에 “이 회사에 지금 100원을 투자하면, 이게 몇 년 후에는 얼마가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지, 왠지 ‘투자자’라는 말 자체가 굉장히 차갑고, 욕심 많고, 인간미 없고,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만 같은 이미지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내가 아는 어떤 투자자들은 정말로 이렇다. 실은, 나도 한때는 제대도 된 투자를 하려면, 감성적인 면은 철저히 배제하고, 이성으로만 모든 걸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펀드의 수익만을 생각하면, 잘하는 회사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상대적으로 못 하는 회사에는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 말고, 망할 거 같은 회사는 그냥 과감하게 버리는, 이른바 성공적인 선배 투자자들이 말하는 double down을 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우리도 이제 투자한 회사가 많아져서, 회사들을 크게 3가지로 분류할 수가 있다. 너무나 잘하고 있는 회사, 고생하고 있지만, 가능성이 보이는 회사, 그리고 고생하고 있고 망하는 게 거의 확실한 회사, 이렇게 나눌 수가 있다. 펀드의 수익률만 고려한다면, 잘하고 있는 회사에 더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가능성이 보이는 회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리고 – 이 회사들에는 정말 미안한 이야기지만 – 망할 회사들은 그냥 포기해야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 회사들은 대부분 잘 안될 게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펀드를 계속 만들어서, 투자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냉정한’ VC가 된다는 조언을 많이 들었는데, 나는 요새 오히려 이와는 반대 방향으로 가는 거 같다. 워낙 많은 창업가를 만나는데, 대부분 힘들어하고, 밖에서 내가 말은 안 하지만, 모두가 나름대로 감동적인 스토리들이 하나씩 있어서 그런지, 이런 분들과 이야기를 많이 할수록, 이성보다는 감성이 많이 발달하는 거 같다. 요새 나를 오랜만에 본 분들은 내가 많이 유해졌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아마도 여기에는 이런 배경이 있는 거 같다.

전에 Fred Wilson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VC 투자의 특성상 극소수의 잘 되는 회사가 펀드의 수익률을 좌지우지 하므로, 다수의 회사가 망해도, 이 망하는 회사는 펀드 수익률에는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그래서 이성적으로 판단을 해보면, VC 한테 이런 망하는 회사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이 망하는 회사들의 창업가와 가족한테 이 회사는 인생 그 자체이자 전부이다. VC의 수익률과는 눈곱만큼 상관 없을 수 있지만, 이들의 인생에는 큰 영향을 미치고, 훌륭한 VC이기 전에,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이런 회사들에 신경을 써야 한다. 한 배를 탔다는건 이런 의미인 거 같다. 다행인 건, 내가 아는 많은 VC가 투자자 이전에 훌륭한 인간들이라는 점이다.

생존과 밸류에이션

snail-graph-slow얼마 전에 구글캠퍼스 카페에서 정말 오랜만에 어떤 창업가를 만났다. 한 2년 만에 만났나? 내 기억으로는 당시에는 내가 큰 흥미를 갖지 않았던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같은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다. 전형적으로 조금 애매하다고 할 수 있는 비즈니스인데, 아예 돈을 못 버는 건 아니지만, 성장이 굉장히 더디고(또는, 거의 성장하지 않는다고 해도 될 듯), product/market fit을 찾는데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릴 수 있는 비즈니스라고 판단을 했다. 물론, 찾기 전에 돈이 떨어져서 회사가 망할 가능성도 높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2년 동안 회사는 잘 버틴 거 같다. 그것도 팀원이 외주나 정부 프로젝트를 한 것도 아니고, 계속 왔다 갔다는 했지만, 그래도 본업을 통해 간신히 먹고 살 정도의 매출을 만들면서 생존하고 있었다. 여기서 일단 대표이사에게는 정말 축하한다는 진심의 말을 전했다. 돈 없는 스타트업이 2년 동안 죽지 않고 살아남는 거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고, 매출을 만들고 있다는 것도 대단하기 때문이다. 이 분이 “우린 오랫동안 살아남았으니까 투자 받을 때 밸류에이션이 더 높아야 하지 않을까요?”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 말에 대해서 나중에 조금 생각을 해봤다.

실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남은 거 자체에 대해서는 정말로 높은 존경심을 표시하고 싶다. 회사의 객관적인 밸류에이션도 이런 점을 고려해보면, 높게 줄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밸류에이션에는 창업자와 창업팀의 자질도 참작되어야 하고, 이들의 끈기와 바퀴벌레 근성은 자질의 큰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오랫동안 죽지 않고, 시장에서 버틴 것만으로도 이 회사의 가치는 높아야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특히, 유니콘 성장에 익숙한 우리 같은 VC들을 설득하기에는 생존만으로는 힘들다. 높은 밸류에이션을 위해서는 ‘성장’이 필요하다. 실은 내가 아는 대부분의 미국 VC들은 “내가 아는 유니콘 기업 중, 창업 초기에 J 커브를 그리면서 미친 성장을 하지 않았던 스타트업은 없었다”라는 말을 하는데, 이 글 초반에 언급한 회사는 이 논리로는 절대로 큰 회사가 될 수 없고,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오랜 시간 동안 살아만 남았고, 성장이 없거나, 또는 굉장히 더디게 성장을(=수평선) 하는 회사는 오히려 낮은 밸류에이션을 받을 확률이 더 높다.

나도 투자자이다. 그리고, 나도 유니콘 회사에 투자하고 싶지만, 큰 VC와는 조금은 다르게 본다. 일단, 한 분야에서 아주 오랫동안 같은 비즈니스를 하면서 살아남는 창업가들을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한다. 이미 이 포스팅을 통해서 밝혔듯이, 한 분야만 10년 이상 파고들어 가서 연구하고 고민한 창업가들은 남이 보지 못한 통찰력을 가진다는 걸 나는 믿는다. 하지만, 꾸준한 성장은 있어야 한다. 성장이 없는 버티기는, 살아 있지만, 서서히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J 커브는 아니더라도, 오래 버틴 만큼 남보다 뭔가를 알고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성장이 있어야지만, 밸류에이션에 대해서 이야기라도 할 수 있다. 그 성장은 1%도 좋고, 10%도 좋다.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성장이 가능하다면.

그냥 생존하는거와, 더디지만 꾸준히 성장하는 거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이미지 출처 = BetaNews>

끝없는 달리기

keep_running_by_phat7-d9mbo4x이제는 고인이 된 인텔 창업자 앤드루 그로브 관련 책은 개인적으로 모두 즐겨 읽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Only the Paranoid Survive(편집증 환자만이 살아남는다)’이다. 이 책에서 그로브는 비즈니스가 살아남으려면, 좋든 안 좋든 계속 변화해야 하는데, 이 변화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편집증 환자같이 항상 모든 걸 의심하고, 경계하고, 조바심 내야 한다는 걸 강조한다. 물론, 여기서 편집증은 좋은 의미로 사용된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능력 있는 대표이사들은 이런 편집증 환자의 기질을 갖고 사업을 한다.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사업이 잘 안 되면 말할 것도 없이 위기의식을 갖고 열심히 일하지만, 사업이 너무 잘 될 때에도 힘들 때와 마찬가지로 위기의식과 조바심으로 무장하고 미친 듯이 달린다. 실은, 내 주변에는 사업이 정점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내일 망할 거 같은 자세로 긴장하면서 비즈니스 하시는 분들이 있다. 이들은 통장에 현금이 넘쳐 흐르지만, 곧 자금이 소진될듯한 자세로 투자자들한테 절실하게 피칭하고, 매출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곧 고객이 떠날 거 같은 자세로 영업하고, 아직 발생하지 않은 위기에 대한 시나리오를 만들면서, 이런 위기에 대비할 계획을 만들고 있다.

우리 속담에 건강도 건강할 때 챙겨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건 기업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거 같다. 회사가 잘 될 때 정신 바짝 차리고, 모든 걸 A부터 Z까지 하나씩 다시 짚으면서 기초를 탄탄히 하고,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지 계속 점검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뭔가 적신호가 잡히면, 제대로 된 방향으로 다시 갈 수 있게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갑자기 매출이 급격하게 떨어지거나, 고객들이 우르르 떠나가기 시작하면, 이때 잘못된 걸 고치려면 이미 늦었다. 모든 질병은 예방이 최고이고, 그다음이 조기 치료인데,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예방과 조기 치료가 가능하게 하려면, 사업이 가장 잘 될 때 내일 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지면서 일해야 한다.

나도 가끔, 굳이 저런 강박관념을 가지면서 사업을 해야 할까 하는 질문을 하지만,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는, 너무나 빨리 변하는 분야라서, 스타트업에 발을 담갔다면 이런 끝나지 않는 달리기 시합을 계속 해야 한다. 안 그러면 그 순간 모든 게 끝난다.

<이미지 출처 = DeviantArt>

1만 시간과 연쇄 창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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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안젤라 덕워스 교수의 ‘Grit’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유명한 책이라서 다들 많이 읽어봤을 거 같은데,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타고난 지능이나 재능이 아니라, 후천적인 노력과 끈기라는 게 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나도 이 책의 내용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책에서도 언급되었지만, 그릿의 내용은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아웃라이어에서 글래드웰은 ‘1만 시간의 법칙’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하는데, 특정 분야에서 남들보다 더 잘하고, 이 분야의 대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같은 일을 1만 시간 동안 연습해야 한다는 법칙이다. 한 분야에서 제1인자가 된 학자, 작가 또는 운동선수는 대부분 1만 시간 동안 같은 연구, 집필, 또는 운동을 반복적으로 한 사람인데, 이는 10년 동안 매주 20시간씩 같은 일을 반복하는 거랑 같다. 즉, 성공은 타고난 게 아니라 꾸준한 노력과 반복을 통해서 달성하는 것이라는 의미이고, 이는 ‘그릿’의 시사점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미국의 이커머스 회사 Jet.com이 월마트에 약 3.5조 원에 인수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Jet은 이커머스 분야에서 꽤 유명한 Marc Lore가 창업한 스타트업인데, 창업 초기의 후광에 비해서 비용구조가 너무 좋지 않아서 비즈니스가 잘 안되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월마트가 이 회사를 조 단위 금액을 쓰면서 인수했을까? 바로 창업가 Marc를 영입하기 위해서였다는 게 업계의 소문이다. 아마존 때문에 큰 타격을 입고 있고, 더는 온라인 비즈니스를 이대로 둘 수 없다고 판단한 월마트는 마크를 영입하기 위해서 그의 회사를 통째로 인수해버렸고, 인수 후 마크를 Walmart eCommerce의 대표이사로 승진시켰다. 참고로 마크는 Jet을 창업하기 전에 Diapers.com과 Soap.com과 같은 이커머스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Quidsi를 창업해서 아마존에 약 6,000억 원에 매각한 경력이 있다.

월마트의 Jet 인수는 실은 한국 비즈니스 정서로 보면 약간 이해하기 힘든 딜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주위에도 그냥 이커머스를 잘 이해하는 사람을 채용하면 되지, 굳이 3조 원 이상의 돈을 주고 회사를 인수할 필요가 있었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분이 많은데, 위에서 말한 1만 시간의 법칙과 그릿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살짝 이해가 간다. 마크 로레와 그의 친구 비닛 바라라가 Quidsi를 창업한 게 2005년이다. 즉, 그는 10년 이상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동안 이커머스에 대해서만 생각했고, 이를 시간으로 환산하면 1만 시간이 훨씬 넘는다. 1만 시간 이상을 한 분야만 파고들면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고민하고, 연구하고, 실험하고, 뭔가를 만들었다. 이렇게 하면서 그는 이커머스의 달인이 되었고, 이 분야에 관해서는 남이 보지 못하는 걸 볼 수 있게 되었고, 남이 얻지 못하는 통찰력을 얻게 되었다. 마크는 물론 좋은 학교를 나왔고, 머리도 좋은 창업가지만, 그의 이커머스 성공신화는 타고난 게 아니라 끊임없는 투지와(=그릿) 1만 시간의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런 이커머스의 달인을 데려오기 위해서 월마트가 3조 원을 투자한 건데, 앞으로 월마트 이커머스가 어떻게 변할지 매우 궁금하다.

마크 정도로 성공하지는 않았지만, 내 주변에는 같은 분야에서 계속 비즈니스를 하는 연쇄 창업가들이 몇 명 있다. 실은 많은 전문가가 첫 번째 exit은 운이 강하게 작용하지만, 그 이후의 exit은 실력이라는 말을 한다. 아마도 이 실력은 10년 이상의 그릿과 1만 시간의 노력의 산출물인 거 같다. 한 분야에 대해서 오랫동안 파고들다 보면, 10년이라는 시간이 금방 지나가고,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거 같다. 한 분야에서 계속 창업하는 연쇄 창업가들을 보면서, “아직도 저 분야에서 할 게 또 있나?”라는 질문을 하지만, 대가들은 한 분야를 파고 들어가면 갈수록 남들이 보지 못하는 기회를 포착하게 된다.

“난 1만 가지 발차기를 한 번씩 연습한 상대는 두렵지 않다. 내가 두려워하는 건 단 한 가지 발차기만 1만 번 반복해 연습한 상대를 만나는 것이다.” -이소룡

지금은 너무 힘들지만, 죽지 않고, 쓰러지지 않고, 한 분야에서 10년 이상 버티다 보면, 내가 갑자기 앞서나가거나, 경쟁사들이 없어지는데, 이렇게 되면서 시장의 강자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미지 출처 = Pinterest>

내 탓

나는 학부 때 기계공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졸업은 다른 과로 했지만, 스탠포드 대학원 입학도 기계공학으로 했다. 그래서 스탠포드 기계과 동문이 많고, 이 중 많은 분이 한국의 대학에서 기계공학과 교수님으로 교편을 잡고 있다. 선배 중 한양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님이 계시는데, 이 분의 요청으로 얼마 전에 학생들한테 창업에 대해서 강연할 기회가 있었다. 끝나고 어떤 학생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미국에서 뮤직쉐이크라는 인터넷 비즈니스를 5년 동안 운영하셨는데, 지금 돌이켜보시면 잘 안 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에서 많은 생각이 요동쳤다. 이렇게 많은 회사에 투자했고, 투자사 대표들한테 마치 이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 듯이, 이래라저래라 훈수도 두고, 학생들 앞에서 잘난척하면서 강연까지 하는데, 왜 나는 내가 했던 비즈니스는 성공시키지 못했을까?

실은, 이 질문에 대해서 내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워튼을 중퇴하고 야심 차게 LA로 이사해서 거의 5년 동안 내가 생각할 수 있던 모든 걸 시도해봐서 후회는 없지만, 그래도 뮤직쉐이크를 더 잘 성장시키지 못한 건 마음이 아프다. 내가 이 비즈니스를 지금 다시 처음부터 한다면, 뭘 어떻게, 다르게 할 수 있을까? 다양한 상상을 하면서,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방법들을 떠올리면서, “다시 한다면 이건 이렇게 해야지”라고 다짐을 하곤 한다. 2008년 말 금융위기만 없었다면, 중간에 사업이 꺾이지 않아서, 뮤직쉐이크는 지금쯤 큰 사용자제작음악 서비스가 됐을 것이다. Flash 기술이 더 발전했다면, 웹 버전을 더 빨리 출시해서, 애플리케이션을 PC에 설치하는 걸 싫어하는 미국 사용자들이 그냥 bounce 돼서 떠나는 걸 속수무책 바라만 보고 있지 않았을 텐데. 미국과 한국, 양쪽에 팀을 운영하는 어려움을 미리 알았다면, 그냥 한쪽에만 집중했을 텐데. 비즈니스가 더 크고, 매출이 거의 100% 발생하는 미국 시장에 제대로 된 개발팀을 만들어서 사용자들의 목소리를 실시간으로 듣고 반영하면서 product iteration을 했으면, 진짜로 좋은 서비스를 만들었을 텐데. 음원 라이센싱에 대해서 잘 아는 인력을 초반에 채용했으면, 이 바닥에 대해서 공부하는데 1년이라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CAC와 LTV 개념을 더 빨리 배우고, 최적화할 방법을 더 많이 시도했으면, 마케팅을 더 잘 했을 텐데. 더 열심히 할 걸, 더 허리띠를 졸라맬걸, 더 많은 이메일을 쓸 걸, 더 많은 투자자를 만날 걸 등등….

실은, 위에서 언급한 것 하나하나에 모두 변명과 핑계를 갖다 붙일 수 있다. 나는 잘못한 거 하나도 없고, 경기, 파트너, 투자자, 기술 등 남 탓만 하면 내 속은 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뮤직쉐이크를 성장시키지 못한 이유는 100% 다 내가 잘 못 했기 때문이다. 모두 다 힘든 시기였고,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생각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지만, 이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내가 고전하고 있던 2008년~2012년, 이 기간 동안 대박 난 스타트업도 많다. 왜 이들은 잘 됐고, 우리는 못 했을까. 내가 잘 못 했기 때문이다.

위의 학생이 질문하고 한 3초 동안 이 모든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리고 그 학생한테 나는 “잘 안 된 이유는 간단하죠. 사업을 하고 있던 제가 잘 못 했기 때문이에요. 영어로 하면 ‘I fucked up’이죠.”라고 대답했다. 내 사업이나 인생이 잘 안 풀리면, 그건 부모님 탓도, 나라 탓도,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내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