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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자산에 대한 생각 – 2021년 1월

2018년 초 이후부턴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분야에 관심을 껐던 많은 분들이 새해부터 나한테 비트코인 가격과 전망에 관해서 물어보는걸 보면 이 시장에 다시 한번 불이 붙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4만 달러를 잠깐 넘었다가 지금은 또 떨어지긴 했지만, 비트코인 3만 달러 시대는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앞으로 시장이 어떻게 될진 나는 전혀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인 건, 2017년도의 가격 폭등은 미디어와 투기가 만들었는데, 이번 불장에서는 이 둘의 영향이 많이 줄었다는 점이다. 그럼 도대체 가격이 왜 이렇게 많이 뛰었냐고 물어본다면, 많은 전문가가 팔려는 사람은 적은 데, 사려는 사람은 많은, 전형적인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이 현상을 조금 더 깊게 본다면, 대량으로 구매하고, 오랫동안 팔지 않고 그냥 보관하고 있는, 그리고 이렇게 보관할 수 있는 기관투자자들의 등장도 한몫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투자에 대해 적용되는 FUD(Fear, Uncertainty, Doubt)의 영향이 이번에도 가장 크게 작용하는 거라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비트코인 가격이 이렇게 올라가는 현상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블록체인과 크립토 분야의 회사에 다시 한번 많은 관심이 집중되는 건 여러모로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우린 2013년 코빗 투자를 시작으로 그동안 한 번도 이 분야를 등한시한 적이 없고, 많진 않지만, 꾸준히 회사들을 검토하고 블록체인 관련 창업가들을 만났다. 지금까지 우리가 투자한 한국과 미국의 직접적인 블록체인/크립토 관련 스타트업과 간접적으로 블록체인을 활용하는 서비스는 대략 10개 안팎이다. 암호화폐의 gateway 역할을 하는 거래소 고팍스, 비트코인 <-> 상품권 거래를 가능케 하는 디지털자산 거래소 비트로와 암호화폐로 이자수익을 벌 수 있는 디지털 자산 은행 샌드뱅크가 최근에 우리가 투자한 회사들이다. 이 밖에 송금이나 정품인증 등에 블록체인을 도입했거나,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 투자사도 있고, 하여튼 이 분야에서 계속 다양한 실험을 하는 재미있는 팀들이 많다.

이런 작은 실험과 노력이 계속 쌓이다 보면, 어느새 이 기술과 시장이 주류로 들어오는데, 이게 올해가 될진 잘 모르겠지만, 미국통화감독청의(OCC – Office of the Comptroller of the Currency) 스테이블코인 승인으로 시작한 2021년은 꽤 재미있는 한 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화이팅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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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Ntt8811 / 크라우드픽

우리가 투자한 회사 창업가, 그리고 만나는 창업가들 중 극히 일부만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만들지만, 성공하는 창업가와 실패하는 창업가 모두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투지와 의지는 엄청나다. 실은, 이 투지와 의지, 즉 우리가 말하는 “화이팅”이라는 게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구체적으로 정의하는 게 힘들다. 그래도 나는 제대로 된 창업가라면, 이들에게 제일 본받고 싶은 점 하나를 뽑으라고 하면 주저 없이 이 화이팅이라고 하고 싶다. 엄밀히 말하면 ‘화이팅 의지(=fighting spirit)’라서 화이팅은 콩글리시지만, 그냥 모두 다 이 말을 사용하기 때문에 여기선 화이팅이라고 하겠다.

창업과 시작 자체는 큰 화이팅을 필요로 한다. 요새 스타트업이라는 드라마가 – 나는 한편도 안 봤다 – 꽤 인기 있다고 들었고, 실제로 주변에 창업한 사람들이 한두 명 정도는 있어서 그런지, 이 창업이라는 걸 대수롭지 않게 보는 분들이 많다.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는 옵션을 버리고 내 사업을 시작한다는 게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강한 의지가 필요하고, 가슴은 떨리지만, 동시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가져오는, 어쩌면 인생 최고 난이도의 결정이라는 걸 대부분 잘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지저분하고 어려운 길을 가기로 한 선택 자체가 차원이 다른 화이팅이 필요한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동안 투자한 회사들과 때로는 멀리서, 때로는 가까이서 같이 일 한 경험을 통해서 내가 배운 건, 그 어떤 비즈니스도 예상했던 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창업 초기에 세운 가설 중 20% 정도만 맞아도 상당히 성공적인 예측을 했다고 할 정도로, 비즈니스는 미식축구공과 같아서 어디로 튈지는 그 누구도 모르고, 눈앞에서 어디로 튀는지 보이지만, 그걸 제시간에 손으로 잡는 게 쉽지가 않다. 실은, 많은 일반 사람들은 그냥 시작조차 못 했을 것이고, 시작했어도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사업이 진행되는 걸 보고 경험했다면, 그냥 여기서 백기를 들고 포기했을 것이다.

그런데 의지가 강한 사람들은 멈추지 않는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창업가는 사업을 하다가 힘에 부쳐서 도저히 못 하겠다면, 일단 잠깐 멈추지만, 얼마 후에 다시 시작한다. 어떤 분들은 꿈을 실현하기에는 본인의 지식이 너무 약하다는 걸 느끼는데,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학교 가서 지식을 연마하거나, 스스로 틈틈이 공부하고, 그리고 다시 시작한다. 많은 창업가가 초기에 생각했던 비즈니스에서 180도 피보팅을 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대단하다. 대부분 그냥 사업을 접고 포기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면, 이렇게 일보 전진할 때마다 이 보 후퇴하면 도대체 언제 성장할까 걱정하고 비웃지만, 내가 아는 창업가는 대부분 그런 거 별로 신경 안 쓴다. 그리고 솔직히 이런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다 보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고, 언젠간 전진하는 걸 나는 많이 봤다. 이분들은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 끈기, 그리고 의지가 필요하다는 걸 아는데, 이건 정말로 아는 사람들만 안다.

나는 이런 화이팅 의지가 항상 부럽고, 본받고 싶다.

다름의 힘

사진 2020. 11. 18. 오전 7 34 19

Together We are All Strong!

초등학교 친구 존이랑 스트롱벤처스를 2012년도에 창업했고, 이후 4년 정도는 우리 둘이서 회사와 펀드를 운용했다. 처음에는 펀드도 작았고, 투자한 회사도 몇 개 없었기 때문에 둘이 열심히 하면 어느 정도 운영이 가능했지만, 2016년도부터 우리도 사람을 조심스럽게 채용하기 시작했고, 이제 스트롱 팀이 어느덧 6명까지 커졌다. 그리고 그동안 너무 열심히 뛰기만 해서, 11월 초에 존이 한국에 나온 기회를 이용해서, 조금 숨도 쉬고, 주위도 보는 기회를 갖는 차원에서 스트롱 창립 이후 최초의 워크숍을 부산으로 갔다. 굉장히 알찬 1박 2일이었고, 그동안 우리가 왔던 길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고, 앞으로 갈 길은 어떨지에 대한 생산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다.

워크숍에서 각자의 성향을 파악해 볼 수 있는 간략한 MBTI 테스트를 했는데, 나는 오래전에 했던 거와는 다른 결과인 ISTJ가 나왔고, 내 파트너 존은 ENFP 성향이 나왔다. MBTI를 해보신 분들은 잘 알 텐데, ISTJ랑 ENFP는 4개의 각 항목(=알파벳)에서 완전히 극과 극으로 다른 성향을 나타낸다. 실은, 둘이 굉장히 다른 성향을 가졌다는 걸 그동안의 우정과 업무 경험으로 둘 다 매우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수치로 이걸 확인하니 참 신기하긴 했다. 이런 다른 성향 때문에 실은 스트롱 초반에는 둘이 엄청 싸웠다. 물론, 지금도 의견 차이가 크고, 많이 싸우기도 하지만, 워낙 오랫동안 같이 일하면서 서로에 대한 믿음이 쌓였기 때문에, 이 극과 극의 성향으로 인해 발생하는 다름은 내가 그동안 그 어떤 조직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상호보완적인 장점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다름의 힘을 내가 자주 경험하고 있는 또 다른 팀은 프라이머 파트너팀이다. 프라이머에는 여러 명의 훌륭한 파트너가 있는데, 주로 앞단에서 회사들과 교류하는 파트너는 권도균 대표님, 이기하 대표님,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이다. 우리 셋도 비슷하기보단, 다른 성향을 훨씬 더 많이 갖고 있다. 특정 회사나 창업가에 관해서 이야기 할 때마다 매번 느끼지만, 어떻게 같은 파트너십에서 이렇게 다른 의견이 나올 수 있겠냐는 생각을 할 정도로 각자의 생각과 의견이 다르다. 하지만, 그동안 오랫동안 호흡을 같이 맞춰왔고, 기본적으로 바탕에는 서로에 대한 믿음, 신뢰와 존경이 깔려있기 때문에, 이런 다름이 항상 프라이머의 장점으로 작용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이런걸 ‘다름의 힘’이라고 부른다. 일하면서, 서로 다름에서 나오는 힘은, 비슷하거나 같음에서 나오는 힘보다 훨씬 더 크다는걸 스트롱과 프라이머를 통해서 항상 느끼고 있어서, 우리도 투자할 때 창업멤버들의 다름을 많이 강조하고 있는 편이다. 물론, 아주 비슷한 성향이 있는 창업가들이 만든 회사가 잘 되는 경우도 많지만, 유니콘 가능성을 가진 회사는 항상 극과 극의 성향을 지닌 창업가들이 만든 회사일 확률이 더 높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하지만, 명심해야 하는 점은, 이 다름의 힘을 잘 다스리면서 이걸 장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과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름으로 인한 분열, 혼돈, 그리고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고,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면, 적정한 수준에서 합의 또한 볼 줄 알아야 한다. 이 다름으로 인해서 분열이 생기면, 이건 완전히 재난으로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