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ESPN 관련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스포츠 TV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었고 30년 동안 케이블과 위성 TV 스포츠 분야를 폭발적으로 성장시킨 ESPN이 이제 유료 TV 시장이 성숙하면서 구독자 수와 매출의 성장 속도가 더디어지자 컨텐츠와 방송의 미래인 인터넷 스트리밍을 조심스럽게 실험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실은 이는 유독 ESPN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료 TV 시장이 직면한 생존과 관련된 중요한 이슈이다. 유료 TV는 아직도 엄청나게 수익성이 좋은 사업이며, 오늘 내일 당장 이 시장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유료 TV 구독자들은 TV를 보기 위해서 말도 안되게 비싼 요금을 – 내가 구독하는 DirectTV의 가장 저렴한 서비스가 매달 $60 이다 – 지불 할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거는 이 시장이 해마다 꽤 빠르게 수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ESPN만 해도 2011년 9월 – 2013년 9월 2년 동안 구독자 150만 명이 서비스 탈퇴를 했다 (참고로 ESPN의 총 유료 구독자 수는 거의 1억명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비싸지는 ESPN 구독료와 온라인 동영상에 대한 시장의 갈증으로 인해 이 탈퇴자 숫자는 계속 커질 것이다.

시청자의 취향과 시장의 방향이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바뀌고 있다는걸 ESPN이 모를리가 없다. ESPN도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고 이런 실험의 일환으로 럭비, 폴로 등 비인기 스포츠 경기를 무료로 시청할 수 있는 ESPN3라는 온라인 채널을 서비스 하고 있고, WatchESPN이라는 앱을 통해서 과거 운동 경기 동영상도 보여준다. 하지만, ESPN이 아주 과감하게 온라인 스트리밍 시장을 공략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렇게 함으로써 현재 회사의 캐쉬카우인 유료 TV 시장을 스스로 잠식(cannibalize)할 수 있는 두려움 때문이다. Full 온라인 서비스를 무료 또는 더 저렴한 가격에 제공했다가는 TV 고객들이 모두 탈퇴하고 온라인 서비스로 옮길게 예상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ESPN은 모기업 디즈니의 영업이익의 40%를 해마다 벌여 들인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조심스러운게 사실이다.

우리 주위에 이런 딜레마에 빠진 기업들을 종종 찾아 볼 수 있다. 고객과 시장이 빠르게 변하고 있고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빠르게 변해야 하는데 많은 경우 이 변화는 스스로의 잠식이 필요하다. 변화의 필요성은 느끼지만, 굳이 지금 잘되고 있는 비즈니스를 스스로 파괴하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가야하는건지 혼란스럽다.
넷플릭스의 Reed Hastings 사장도 2007년 – 2008년에 비슷한 고민을 했을거 같다. 우편으로 보내주는 DVD 대여 사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시장은 포화되었고, 시장은 DVD 플레이어를 버리고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인터넷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면 DVD 대여 구독 고객들이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로 옮겨 타면서 스스로의 시장과 비즈니스를 잠식시키는 결과가 발생할텐데 어떻게 해야할지 그는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넷플릭스는 자기 시장을 스스로 잠식하면서 불과 5-6년 만에 비즈니스 모델을 인터넷 스트리밍 구독으로 완전히 변신하는데 성공했다.
아마존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전자책 서비스를 시작하면 아마존이 스스로 개척했던 종이책 온라인 판매 비즈니스가 큰 타격을 받을텐데, 그래도 변하는 시장에 발 맞추기 위해서 과감한 베팅을 했고 이 결정 역시 옳은 결정이었던 거 같다.

리드 헤이스팅스와 제프 베이조스는 이 결정에 대해서 똑같은 말들을 한다:

“힘들게 개척해서 만든 비즈니스를 스스로 잡아먹는 건 고통스럽지만 남이 내 시장을 잠식하는거 보다는 내가 내 시장을 잠식하는게 훨씬 낫다는 판단을 했다.”

앞으로 가야할 미래가 빤히 보이는데 스스로 만들어 놓은 틀 안에 갇혀 있다면 이 틀을 빨리 깨야 한다. 남이 내 틀을 깨주는거 보다는 그냥 내가 내 틀을 깨는게 훨씬 속 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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