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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의 가치

우리가 올해 투자한 회사 중 유아동복을 리세일(=중고위탁판매)하는 코너마켓이라는 스타트업이 있다. 미국에서는 엄청 커진 thredUP과 유사한 비즈니스다. 얼마 전에 코너마켓 새로 이사한 사무실에 갔다가 개인적으로 생각난 점이 있어서 몇 자 적어본다.

이 회사 김준모 대표님을 처음 만난 건 한 2년 전이다. 내가 벤처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는 프라이머에 지원했고, 그때 비즈니스는 자전거 관련 사업이었는데, 잘 안 될 것 같았고, 그냥 하다가 포기할 줄 알았다. 그런데 프라이머 그다음 배치에 다시 지원했다. 그게 코너마켓 모델이었는데, 이 비즈니스가 좋았다기 보단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사업을 하고 있고, 프라이머 탈락했지만 다시 지원해준 게 고맙기도 해서 또 인터뷰를 했다. 나는 미국의 thredUP 이라는 비즈니스를 알고 있었고, 이 시장이 한국도 엄청 클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직 이 팀은 준비가 되지 않은 거 같았고, 과연 이 비즈니스를 제대로 시작할 수 있는 온라인/오프라인 실행력이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비즈니스는 좋고, 시장도 좋고, 타이밍도 좋은데, 조금만 더 지켜보자라는 결정을 내렸고, 일단 프라이머 두 번째 도전도 탈락시켰다. 그런데 그다음 배치에 다시 지원했고, 이번에는 코너마켓 모델을 꽤 날카롭게 다듬었고, 긍정적인 초기 시장 피드백을 갖고 왔다. 프라이머 권도균 대표님과 이기하 파트너님과 그때 아마도 내부적으로 “비즈니스는 실력보단 의지가 중요한데, 이 팀의 의지는 좋은 거 같다. 그리고 3번씩 프라이머 지원했으면, 우리가 도와줘야 하는 게 아니냐”라는 이야기를 했던 거 같고 이번에는 선발했다.

그리고 나랑 한 3개월 정도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비즈니스도 다듬고, 여러 가지 기초 작업하는 걸 옆에서 나는 조금 도와줬다. 실은 이게 앞단에서 보면 이커머스지만, 뒷 단에서 보면 노가다가 많이 들어가는 사업이다. 옷을 수거해야 하고, 수거한 옷을 정리하고, 사이트에 올리고, 판매될 때마다 또 배송해야 하기 때문에, 전형적인 물류, unit economics와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힘든 비즈니스라서, 돈 없는 작은 스타트업이 하기에는 참 어렵다는 걸 이 비즈니스를 옆에서 보면서 나도 매일같이 느꼈다. 그래도 조금씩, 계속 발전이 있었다. 외형적인 매출도 조금씩 증가했지만, founder들이 비용과 물류에 대한 감을 조금씩 잡아갔고, 아주 작은 operation이었지만, 나름대로의 공식을 찾기 위해서 계속 실험하는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우리가 이 회사에 투자를 해야겠다고 결정한 계기는, 수거한 옷이 증가하면서, 작은 창고로 사용할 수 있는 새로 이사한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였던 거 같다. 중랑구 중화동, 1층에 닭강정집이 있고, 3층에 과격한 순복음 교회가 있는 허름한 건물의 4층이었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물류 과정을 최적화하기 위해서 나름 배치를 잘했고, 두 분의 남매 코파운더가 진흙탕에서(영어로는 shithole이라고도 한다) 구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몸으로 체험하면서 모든 걸 배워가고 있었다. 그때 나는 이런 프로세스를 자동화하고 더 크게 확장하면 어떤 모습이 될지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그림을 그렸고, 얼마 후에 스트롱에서 조금 투자를 했다.

이후 처리해야 할 물량이 커지면서, 다시 한번 회사는 이사를 갔다. 돈을 아끼면서, 사람도 채용하고, 배송도 고려해서 경기도 남양주의 창고형 사무실로 이사 갔는데, 얼마 전에 내가 방문해서 찍은 사진 몇 개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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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창고에 들어가자마자 많이 놀랐다. 이젠 제법 옷이 많아져서 그럴듯한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사진 2019. 3. 6. 오후 8 02 43

사진 2019. 3. 6. 오후 8 03 40

그리고 원래는 단층이었던 창고를 김준모 대표가 직접 설계해서 – 과거에 설계를 좀 했었다 – 복층으로 만들었는데, 이 또한 운영의 최적화를 고려한 설계였다.

아직 갈 길이 너무너무 멀긴 하다. 앞으로 투자도 더 받아야 하고, 매출도 더 커져야 하고, 좋은 사람도 많이 채용해야 한다. 그래도 쉽지 않은 사업이다. 하지만, 누가 이미 만들어 놓은 회사에 들어가서, 이미 오랜 세월 동안 하던 일을 배운 팀이 아니고,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치열하게 경험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스스로 직접 만들었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좋다. 말 잘하는 사람도 멋있고, 말이 창출하는 가치가 있지만, 행동이 만드는 가치는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정말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좋을 딜을 위한 나쁜 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북미정상회담은 많은 사람이 원하는 결과로 끝나진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트남을 떠나면서 “나쁜 딜 보단, 노 딜이 낫다”는 너무나 딜메이커다운 말을 남겼는데, 실은 이 말은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그 누구도 나쁜 딜을 하고 싶어 하진 않고, 손해 보는 딜을 할 바에야 딜을 하지 않는 게 훨씬 좋다. 우리가 하는 벤처투자도 마찬가지다. 나쁜 투자를 해서 돈을 잃기보단 그냥 투자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여러모로 좋다.

그런데 벤처투자는 – 특히, 초기 투자는 – 이게 말처럼 쉽진 않다. VC들끼리 하는 농담 중 하나가, “모든 VC의 첫 번째 펀드는, 그리고 어쩌면 두 번째 펀드까지, 대부분 수업료다”인데, 그만큼 좋은 딜을 발굴하고 투자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내 짧은 경험에 비춰봐도, 벤처 투자를 시작하고 한 4년 정도 이 바닥에서 구르고, 실수하고, 나쁜 판단을 해야지만, 좋은 판단을 할 수 있는 기초체력이 만들어지는 게 정말 맞는 말인 거 같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대로 나쁜 딜 보단, 노 딜이 낫지만, 나쁜 딜을 많이 해야지만 좋은 딜을 할 수 있고, 노 딜만 하다 보면 좋은 딜은 절대로 못 한다. 왜 그럴까? 내가 다른 VC를 대변할 순 없지만, 크게 보면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생각은 우리같이 작은 초기 투자자한테 더 잘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일단 초기 투자의 성공은 확률과 운의 게임인 거 같다. 이제 유니콘이 된 회사에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돈을 제공한 투자자들과 사적인 자리에서 이야기를 해보면 – 공적인 자리에서는 본인들이 그 회사의 미래를 예측했고 창업가의 포텐을 첫 만남에서 알아봤다고 하는 개소리를 가끔 하기 때문에 – 그냥 느낌이 좋았고, 여기에 베팅했고, 그게 운이 좋아서 잘 풀렸다는 말을 가장 많이 한다. 우리 포트폴리오에는 아직 유니콘이 된 스타트업이 없지만, 잘 하는 회사를 보면 나한테도 이 확률과 운의 게임이 그대로 적용되었던 거 같다. 즉, 많이 투자해야지, 그중에서 확률적으로 잘 될만한 회사가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많이 투자해야 한다”는 그냥 돈을 막 뿌린다는 의미는 아니다. 경험과 통찰력과 네트워크로 만들어진 투자자의 능력이 어느 정도는 적용되어야 하는데, 이 능력이 만들어지려면 역시 많은 투자를 통해서 단맛 쓴맛 모두 경험을 해야한다. 여기에서 홈런왕 베이브 루스 이야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순 없을 거 같다. 많은 분이 베이브 루스가 홈런왕이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삼진도 많이 당했다는 건 잘 모르는 거 같다. 그만큼 배트를 많이 휘둘렀기 때문에 홈런도 확률적으로 많이 칠 수 있었던 거다.

두 번째 이유는, 이렇게 나쁜 딜을 많이 하면서, 가끔 운이 좋으면 좋은 딜도 하고, 뭐 이러면서 죽지 않고 살아남으면, 이 살아남은 실적 자체가 고스란히 투자자의 평판이 된다. 위에서 초기 투자 성공은 운과 확률의 게임이라고 했는데, 이 확률을 높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좋은 창업가와 좋은 팀이 알아서 투자자를 찾아오게 만드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VC라도, 그리고 아무리 같은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했더라도, 모든 스타트업을 다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직접 모든 회사를 다 찾아다니면서 만날 수가 없다. 그러면, 본인이 좋은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좋은 딜이 나한테 수동적으로 오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서는 평판이 필요하다. 우리가 잘 아는 미국의 세쿼이아나 앤드리슨호로위츠와 같은 유명한 VC가 좋은 회사에 많이 투자할 수 있는 이유는 중 하나는 바로 좋은 창업가들이 VC의 평판을 믿고 먼저 연락하고 찾아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평판이라는 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시간이 걸린다. 아니,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린다. 이 긴 시간 동안 계속 투자를 꾸준히 해야 하는데,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나쁜 딜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만약, 나쁜 딜을 하지 않으려고, 전혀 투자하지 않으면, 펀드의 원금은 보존하겠지만, 투자자로서의 가치는 떨어지고 평판 자체가 아예 생기지 않는다. 나도 자주 하는 말이지만, VC 평판에 최악의 영향을 미치는 건 나쁜 투자를 많이 한 것보단, 아예 투자하지 않는 것이다. 투자를 아예 안 하면, 창업가 커뮤니티에서 잊히고, 이러다 보면 좋은 창업가들이 아예 찾아주지 않기 때문에 굿 딜을 하는 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나쁜 딜을 많이 해도, 투자를 계속하면, 그래도 딜들이 계속 들어오긴 한다. 물론, 여기서 옥석을 가리는 건 또 다른 이야기지만.

뭐, 결론은…투자는 참 어렵다는 이야기다. 나도 나쁜 딜은 하기 싫고, 나쁜 딜을 할 바에야 아예 딜을 하지 않고 싶지만, 이 다이나믹한 초기 투자 시장에서는 나쁜 딜은 좋은 딜을 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너무나도 존경하는 워렌 버핏이 자주 하는 말 중, “공이 지나갈 때마다 휘두르지 마라”라는 말이 있고 나도 이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알고 있지만, 초기 투자를 많이 할수록 이 말은 우리한테는 잘 안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팀이 회사 그 자체다

내 세대보다 어린 벤처인이라면 Khosla Ventures의 비노드 코슬라를 모르는 분들이 많이 있을거 같은데, 내가 기계공학을 포기하고 스타트업 분야로 뛰어들게 한 간접적인 영향을 지대하게 행사한 아주 고마운 분이다. 내가 1999년도 스탠포드 수업에서 처음 코슬라씨를 만나게 된 이야기는 여기에서 전에 한번 쓴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잘 안 알려져 있고, 최근에 내가 실리콘밸리 쪽으로 거의 안 가서 이 분의 소식을 못 듣다가, 얼마전에 Y Combinator의 샘 알트만 대표가 비노드 코슬라와 1대 1 인터뷰 하는 영상을 통해 반가운 얼굴을 오랜만에 볼 수 있었다. 많이 늙었지만, 광채가 나는 눈과, 아직도 강한 인도 억양으로 돌직구를 뿜는 모습은 참 반가웠고, 인상적이었다. 산전수전 다 경험했고, 여러 유니콘에 투자한 풍부한 경험을 가진 이 노신사가 항상 강조하는건 ‘사람’과 ‘팀’이다. 이 분야에 있다보면 워낙 능력있는 분들을 많이 만나고, 이 사람들의 주옥같은 명언을 많이 듣지만, 내가 99년도 스탠포드 유학시절 부터 지금까지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 관련 말들은 비노드 코슬라가 한 말이 많다. 대표적인 게, “대표이사는 시간의 80% 이상을 좋은 사람을 채용하는데 사용해야하고, 나머지 시간은 지금 있는 사람들이 회사에 남도록 하는데 사용해야한다”와 “당신이 지금 힘들게 채용해서 만드는 team이 바로 당신이 만들 회사 그 자체임을 잊지 말아라” 이다.

얼마전에 내가 좋은 창업가의 자질 중 하나가 바로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사람을 채용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했는데, 멀리서 찾지 않고 우리가 투자한 회사들만봐도 이 말이 너무나 맞다는걸 매일 느끼고 있다. 결국 million dollar 비즈니스와 billion dollar 비즈니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어떤 사람들이 이 회사를 이끌고, 이들 밑에 어떤 사람들이 일하고 있냐인거 같다. 잘 되는 회사를 방문했을때, 그 회사의 사람들한테 받는 에너지와 감동이 남다른데, 이걸 정량화해서 설명하긴 힘들지만, 그건 바로 이런 좋은 사람들이 외부로 풍기는 ‘아우라(에네르기파?)’ 때문인거 같다.

사람 이야기가 나오면 실리콘밸리에서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바로 채용의 제 1원칙은, 모든 매니저들이 자기보다 일 잘하고 똑똑한 부하직원을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사장은 자기보다 똑똑한 부사장을 채용해야하고, 부사장은 본인보다 더 똑똑한 이사를 뽑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구조로 가다보면, 회사에서 가장 일 잘하고 똑똑한 사람은 말단 직원이고, 가장 멍청하고 무능한 사람은 대표이사가 되어야 하는데, 뭐, 현실적으로는 이렇지 않지만, 이런 가이드라인을 지키면서 채용을 하면, 좋은 사람을 채용할 확률이 높다는 의미인거 같다(아이러니컬 한 건, 이 말을 유행시킨 사람은 이젠 “이렇게 회사를 경영하면 안되는 대표적인 예”가 되어 버린 에버노트의 필 리빈이다).

나는 큰 회사를 만들어 본 경험이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을 채용해 본 경험도 없어서 내가 채용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건 넌센스이긴 한데, 미친듯이 성장할 수 있는 스타트업을 만드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로 이들이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라는 점이다. 합리적인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이성적인 사람은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밖에 없다. 그게 이 단어의 정의이다. 하지만, 불가능을 가능케하고, 절대 할 수 없는걸 현실화하려면 합리적으로 행동해서도 안되고 이성적으로 행동해서도 안된다. 그렇게 하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결과밖에 만들 수 없는데, 미친 성장과 유니콘 회사는 합리와 이성의 영역 밖에 존재한다. 이렇게 비합리적으로 생각하고,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초고속 성장 스타트업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힘들게 채용하는 한사람 한사람이 모여서 team 되고, 이 팀이 결국엔 내가 만들 회사 그 자체가 된다는 말을 항상 명심하면서 사람을 채용하길 바란다. 결국, 비즈니스의 승패는 사람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Security Token 가이드

작년과 비교하면 확연하게 줄었지만, 요새도 코인과 토큰 발행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팀이 있다. 시장이 워낙 죽었고, 앞으로 암호화폐가 어떻게 규제될지 모르기 때문에, 다들 펀드레이징에 대한 고민도 많고, 비즈니스 방향에 대한 고민도 많고, 하여튼 골치가 아주 아플 것이다. 그래도 이 시장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믿고, 토큰 이코노미를 만들려고 한다면, 만들려고 하는 토큰이 security 토큰이 되지 않게 설계해야 할 것이다. 토큰이 증권(security)으로 분류되는 순간부터 증권법의 적용을 받게 되는데, 이러면 법의 규제를 받는 거래소에서만 거래될 수 있고, 특정 대상에게만 판매해야 하고, 토큰과 프로젝트에 대한 많은 정보를 공개하고 공시해야 한다. 실은, 증권에 적용되는 증권거래법은 암호화폐와 같은 오픈소스 프로젝트에는 말이 안되기 때문에, 가능하면 토큰을 설계할 때는 security token의 성격이 없게 해야 한다.

그럼 security 토큰의 성격은 어떤게 있을까? 여기서부터 상당히 모호해지고, 관련해서 다양한 논의가 현재 진행되는 거로 알고 있는데, 얼마 전에 Blockchain Association에서 이에 대한 꽤 명쾌한 글을 하나 올렸다. 일단 지금까지 공개된 내용에 의하면,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가 제시하는 프레임은, 어떤 토큰이나 그 네트워크가 비트코인 또는 이더리움보다 더 탈중앙화되어 있으면, 충분히 탈중앙화되어 있기 때문에 시큐리티 토큰으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2018년 6월 14일, SEC의 기업금융국장 William Hinman에 의하면). 계속 법이 새로 만들어지고, 이에 따른 규제도 새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 내용이 또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지만, 일단 현재로서는 내가 토큰을 설계하려고 하면, 스스로 물어볼 질문은, “이 토큰은 충분히 탈중앙화되어 있나?” 이다. 이 토큰의 네트워크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네트워크만큼 탈중앙화되어 있으면, 이 토큰은 ST로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증권법의 적용대상에서는 제외된다. 이 토큰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보다 덜 탈중앙화 되어 있으면(=더 중앙화), ST로 구분될 확률이 높다.

아직 한국은 이런 논의 자체도 없고, 규제를 만드는 분들이 중앙화/탈중앙화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지도 미지수이지만, 아마도 미국을 따라가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되면, 한국에서도 새로운 토큰을 만들면, 정부에서는 이 토큰의 탈중앙화 정도를 판단할 것이고,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만큼 탈중앙화되어 있으면, ST로 분류하지 않을 것이고, 반대로, 중앙화되어 있다고 판단되면, ST로 분류할 것이다.

여기서 미국 증권거래법이 생겨난 배경을 잠깐 설명하면 좋을 거 같다(미국증권거래법 설명은 위키피디아 참고). 증권을 발행하는 측과 증권에 투자해서 이익을 보려는 투자자 간의 정보의 비대칭을 해결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게 증권거래법이다. 내가 주주인 나이키의 예를 들어보자. 나이키의 창업자인 필나이트 회장과 마크파커 대표이사는 나이키에 대한 정보를 나 같은 투자자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 우리가 전혀 모르는 내부 정보를 다 알기 때문에 이들이 원한다면, 이런 내부정보를 기반으로 부당하게 나이키 주식 거래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나이키 회사의 미래와 실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이들이 나쁜 마음을 먹으면,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 주가를 조작할 수 있다. 즉, 나이키와 투자자 간의 네트워크는 나이키라는 회사와 그 회사의 내부자를 중심으로 중앙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나이키의 주식은 증권거래법의 적용을 받고, 나이키는 해마다 큰 비용을 지급하면서 회사의 많은 정보를 직접 또는 중개인을 통해서 공시해야 한다. 또한, 나이키 주식은 법의 규제를 받는 증권거래소에서만 사고팔 수 있다.

이와 반대로, 금의 예를 들어보자. 금의 가격과 정보는 상당히 탈중앙화되어 있다. 모든 사람이 금에 대한 시장 정보를 거의 비슷한 수준에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위의 나이키의 예와 같이 특정인이 금의 가격을 조작하는 게 쉽지 않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도 비슷하게 탈중앙화되어 있다 – 물론, pump and dump와 같은 위험은 존재한다.

즉, 새로 만드는 토큰 네트워크가 소수의 내부자한테 의존하고, 이들이 조종 가능하다면, 이 네트워크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보다 덜 탈중앙화(=더 중앙화)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러면, 이 토큰은 security 토큰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고, 증권거래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오픈소스 프로젝트라도 법으로 요구되는 많은 정보를 공시해야 하며,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특정 거래소에서만 거래되어야 할 것이다.

이 ‘탈중앙화 정도’에 대한 정량적 내용은 아직 없지만, Blockchain Association에서 Hinman 가이드에 대한 꽤 자세한 기능적 분석을 도표로 정리하긴 했다. 물론, 이 내용은 계속 논의되면서 수정될 것이다.

믿음

새해라는 게 나한테는 이제 큰 의미가 없다. 죽을 때까지 시간은 그냥 가고, 이 시간을 우리가 임의로 나누고 정량화 한 게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한테는 연말이랑 새해는 그냥 조금 쉴 수 있는 연휴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런데도, 새해가 되면 그냥 마음속으로는 몇 가지 다짐을 하곤 한다. 더 어릴 적에는 거창한 새해 결심을 세우고, 이걸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제는 그냥 “재미있게 살자” , “매일 실수를 더 많이 하자” , “착한 사람이 되자” , “나를 믿자” 같은 간단하고, 뻔하고, 일반적인 다짐을 한다. 실은 이런 결심과 생각은 한 5년 전부터 변하지 않고 똑같았던 거 같은데, 올해는 “믿음”에 조금 더 집중해보려고 한다.

작년에 나랑 스트롱한테는 나쁘고 실망스러운 일도 많았지만, 이 보다는 좋은 일이 더 많았던 거 같다. 그리고 좋은 일이 더 많았던 가장 큰 이유는 쉽지 않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나 자신을 굳게 믿고, 내가 특정 일을 할 수 있냐 없냐보다는, 내가 이걸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게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던 거 같다(구체적인 내용은 나열하지 않겠다). 실은, 이렇게 나를 믿고 일을 진행해도 객관적인 결과는 좋지 않았던 경우도 많았지만, 내가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가졌던 믿음 때문에 이 좋지 않은 결과도 잘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거 같다.

이런 경험을 해서 그런지, 가능하면 나는 투자할 때도 이런 창업가들한테 더 끌린다. 시장, 기술, 규제, 자본 등의 리스크가 너무나 명확한 어려운 비즈니스지만, 이걸 본인이 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 실제로, 할 수 있다 없다를 떠나서 – 그런 창업가들이 잘하면 크게 성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런 특성을 찾기 위해서 노력한다. 물론, 이 사람의 속마음까지는 내가 볼 수 없지만, 이 창업가가 지금까지 보여준 행동과 판단, 그리고 이 행동과 판단에 이 사람이 과거에 했던 결정들이 가미되면, 이런 패턴이 조금은 보이는 거 같다. 특히, 투자자가 파운더와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면, 이런 패턴을 더 잘 볼 수 있는 거 같다.

나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있으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자신감이 생긴다. 그리고 이 자신감이 있으면, 나에 대한 믿음이 한층 더 강화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실은 이건 보는 사람에 따라서 자신감일 수도 있고, 어리석음일 수도 있지만, 어려운 일을 해야 하는 장본인한테는 자신감이나 어리석음이나 다 비슷한 긍정적인 작용을 하므로 상관없다. 그리고 이런 스스로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생기면, 어느 순간부터 남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관해서 관심이 없어지고, 이런 거에 대해서는 절연되기 때문에 더욱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는 확률이 커지는 거 같다.

할 수 있냐 없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이걸 할 수 있다고 믿는 그 믿음으로, 모두 힘찬 2019년을 시작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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