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동남아를 다녀왔는데, 우려했던 대로 글로벌 경기는 아직 바닥을 치지 않았고, 시간이 갈수록 계속 안 좋아지는 걸 몸소 체감하고 왔다. 올해 하반기에는 조금 좋아질 거로 생각했지만, 매크로 경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불안하고, 나보다 더 큰 자금을 관리하고, 거시 경제를 잘 아는 분들은 2024년 하반기가 돼야지 경기가 회복할 거로 예측하는 것 같았다. 실은 올해 초에 동남아에서 큰 투자자들과 만났을 땐, 이것보단 분위기는 좋았었는데, 그동안 상황은 많이 악화된 것 같다. 우리에게 돈을 주는 LP들도 자금을 모집하는 게 쉽지 않다면, 우리 또한 펀드를 만드는 게 만만치 않고, 결국엔 우리가 투자한 회사들, 그리고 투자할 스타트업은 투자받는 게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다.

실은 시장에 돈이 넘쳐흘러도 대부분 스타트업은 투자받는 게 어렵고, 어차피 투자받는 건 항상 어려웠는데 경기가 나빠진다고 얼마큼 더 어려워지겠느냐고 생각하는 창업가분들도 많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분들에게 내가 말해주고 싶은 건, 생각보다 훨씬 더 시장 상황이 안 좋고, 엄청나게 좋은 성장이나 가능성을 보이지 못한다면, 아예 투자받을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그 시간에 그냥 사업에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입해서 투자금으로 런웨이를 연장하지 말고, 자체적으로 오랫동안 살아남을 방법을 찾으라고 하고 싶다.

우리도 우리 투자사 대표님들에게 이렇게 강력하게 조언하고 있다. 런웨이가 12개월 이상 남았다면, 비용을 더 줄여서 이걸 18개월로 늘려보라고 하고 있고, 런웨이가 18개월 남았다면, 24개월로 만들라고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런웨이가 6개월~12개월 남은 회사들이 실은 요새 가장 힘들 것이다. 이 기간에 비즈니스 모델을 더 견고하게 만들고, 마케팅을 조금만 더 해서 필요한 고객군을 모집할 수 있으면 런웨이가 떨어질 때쯤 흑자 전환이 가능하고 이후에는 자생하면서 더 좋은 조건에 추가 투자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시장이 이렇게 불안한 상황에서 모든 예측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는다는 가정하에 사업하는 건 너무 무모하다. 그리고 앞으로는 좋은 성장이 예측되는 사업이지만, 현재의 모습은 그냥 나쁘지 않은 사업이기 때문에 지금 펀딩을 시도하면 조건과는 상관없이 투자 자체를 받을 수 있는 확률이 너무 낮아서 이런 대표들에겐 펀딩을 시도해 보자는 말도 잘 안 한다. 대신, 최대한 비용을 더 줄여서 일단은 마이너스가 나지 않는 비용구조를 만들어 보자고 권장한다.

어쨌든, 은행에 현금이 많든 적든, 모든 대표들은 비용을 절감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사업을 하는 대부분 스타트업의 비용은 인건비와 마케팅비라서 많은 대표들이 극적으로 사람을 해고하고 있고, 마케팅 비용을 줄이고 있다. 어떤 분들은 일주일 만에 인력의 절반을 내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많은 스타트업이 마케팅 비용을 줄이고, 극적인 경우에는 마케팅에 아예 돈을 안 쓰기도 한다. 이렇게 인력도 줄이고 마케팅도 안 하면, 회사의 비용은 줄겠지만 이에 따라 매출 또한 확 감소하는 게 정상일 텐데, 오히려 나는 요새 반대의 상황을 목격하고 있어서 자주 놀라고 있다.

우리 투자사 중 인원을 20명에서 4명으로 줄인 회사가 있다. 놀랍게도 이 회사는 20명일 때보다 더 많은 매출을 소화하고 있고, 비용은 극적으로 줄였기 때문에 몇 달째 연속 흑자 경영을 하고 있다. 통장 잔고 또한 늘어나고 있다. 어떤 투자사는 월 2,000만 원 이상 집행하던 마케팅 비용을 80% 이상 줄여서 350만 원의 마케팅 비용을 쓰고 있다. 신기하게도 이 회사의 매출도 거의 안 떨어졌지만, 비용은 확 떨어져서 현재 흑자로 사업이 운영되고 있다.

공장과 같은 오프라인 자산을 소유하면서 운영이 핵심인 비즈니스는 위에서 말 한 소프트웨어 사업들보다 훨씬 더 극적으로 비용을 줄이면서 비용 구조를 개선하는 사례도 우리 투자사와 다른 스타트업에서 볼 수 있다. 어떤 창업가들은 공장에서 아예 몇 달을 먹고 자면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구멍을 하나씩 다 점검하면서 마른 수건을 짜듯이 비용을 줄였다. 이게 재미있는 게, 그 구멍 하나만 보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런 구멍들이 운영 각 과정에서 정말 많이 보였고, 여기서 파악된 비효율을 모두 다 합쳐서 보니 어마어마한 비용 절감과 운영의 효율화를 추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절대로 줄일 수 없을 것 같던 비용을 확 줄이고, 창업 이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흑자 운영을 경험한 대표들은 새로운 긍정의 힘과 자신감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이는 다시 또 새로운 싸움을 하기 위한 용기가 된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비용이라는 수건을 짜야 한다. 마른 수건이라도 계속 쥐어짜다 보면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공간이 분명히 보일 것이다.

Let’s make it happen and live to fight another 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