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창업가들에게 가끔 물어보는 질문이 있는데, “요새 잠을 잘 자지 못하게 하거나, 잠을 설치게 하는 고민들이 있다면 어떤 게 있나요?”이다. 영어로 하면 “What keeps you up at night?”인데 한국어로 번역하면 조금 어색하긴 하다. 내가 창업가들에게 항상 물어보는 게 아니라, 가끔 물어보는 이유는, 이 질문은 내가 첫 미팅이 아니라, 어느 정도 상대방을 안다고 생각할 정도로 만나 본 후에 물어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우리가 그동안 몇 개월 동안 대화를 하고 있던 우리의 잠재 투자자가 나한테 똑같은 질문을 했는데, 나는 이 질문을 그동안 창업가들에게 해 왔었지만, 정작 내 잠을 설치게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몇 분 생각을 했었다. 요샌 내가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나를 힘들게 하거나 괴롭히는 것들은 없지만, 현재 내 가장 큰 고민거리는 지금 만들고 있는 새로운 펀드를 빨리 끝내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의 경험을 보면, 펀드를 하나 새로 만드는 건 힘들고 지루하고 시간이 걸리는 것이지 불가능한 건 아니라서, 이번 펀드도 그냥 시간이 걸릴 뿐이지, 결국엔 다 만들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이건 실은 일시적인 고민이다.
조금 더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내가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밤잠을 설치는 걱정과 생각이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우리가 계속 초기 투자를 하면서 스트롱이라는 브랜드가 어떻게 하면 처음과 끝이 항상 같게, 계속 의미 있는 존재로 남을 수 있을까인데, 이걸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초기 투자자로서 계속해서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이다. 실은 영어로 말하는 게 제일 정확한데, “how do we continue to stay relevant?”이다. 너무 세상이 빨리 바뀌다 보니, 우리도 외부 변화에 맞춰서 빠르게 적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 뻔한 말이지만, 결국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건 변화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정신없는 변화 속에서도 우리가 항상 지켜야 할 원칙들이 있다. 이 또한 뻔한 말이지만, ‘원칙’이라는 말에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시대가 바뀌어도 몇 가지 변하지 않는 원칙, 그리고 그 원칙을 둘러싼, 계속 바뀌어야 하는 변수들, 이 것들을 제대로 구분해서, 원칙을 변수랑 착각하지 않으면서, 지금까지 우리를 존재하게 했던 것들을 계속 유지하는 고민. 이게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첫 번째 고민이다. 시장에서 의미와 영향력이 사라지면, 우리 같은 VC는 그냥 한 방에 훅 가는 것이라서 아주 심각한 고민이다.
두 번째는, 갈수록 늘어나는 남에 대한 신경과 관심을 끄고, 어떻게 하면 남이 아닌 나 자신에게 모든 생각을 집중할 수 있을까이다. 한국은 장점이 너무 많은 나라인데, 단점 또한 많다. 아마도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단점은 모두 다 남을 만족하기 위해서 살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남의 목소리, 남의 의견, 남의 시선에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이게 과해지면 본인의 목소리, 본인의 의견, 본인의 시선을 점점 잃어버리면서, 결국 내 인생을 불특정 다수의 남을 위해 살다가 죽게 되는데, 한국 사회가 이렇게 가고 있다는 느낌을 가끔 받는다. 틀린 결정을 하고 싶으면 다른 사람에게 의견을 물어보면 된다는 말도 있는데, 한국 사람들은 모두 다 이런 틀린 결정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본인의 생각보단, 항상 남의 의견이 더 중요하니까. 나는 틀린 결정을 하더라도, 남이 결정해서 내가 틀리기보단, 그냥 내가 결정해서 내가 틀리는 걸 선호한다. 그래서 나는 웬만하면 남이 아닌 나에게 모든 걸 집중하고 싶은데, 한국에서 투자하면서 이걸 지킨다는 게 그렇게 쉬운 건 아니다.
며칠 전에도 자기 전에 이 두 가지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잠을 약간 설쳤는데, 그래도 나쁜 고민이라기보단 좋은 고민이고, 뭔가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 내가 계속 신경 써야 하는 좋은 점이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생각의 꼬리를 잘라버리고 잠들었다.
남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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