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블로그에서 ‘개밥 먹기’에 대해서는 지난 18년 동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글을 썼는데, 그만큼 제품을 만드는 창업가들에겐 본인이 만든 제품을 1부터 100까지 직접 다 사용해 보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내가 만든 제품을 출시하기 전에 내가 하나씩 사용해 보고, 혹시 이상한 건 없는지, 치명적인 버그는 없는지, 이런 점들을 남이 발견하기 전에 먼저 발견하고, 매일 우리 제품을 사용하면서 조금씩 개선하는 작업은 창업가들이 절대로 소홀히 하면 안 되는 필수 작업이다.

사업을 하다 보면 챙겨야 할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특히, 요새 같이 어려운 시기엔 회사에 피 같은 자금이 고갈되지 않게 대표이사는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서 직원들 월급이 밀리지 않게 해야 하고,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게 여러 가지 동기 부여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이 외에도 신경 써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돌아버릴 지경이지만, 아무리 바빠도 대표를 비롯한 전 직원이 절대로 하루도 멈추면 안 되는 게 우리 제품 사용하기, 즉, 우리 개밥 먹기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우리가 고객을 위해서 만들고 있는 제품을 매일 실행하고, 매일 사용해야 한다. 혹시나 기능이 잘 못 되지 않았을까, 숨은 버그가 있지 않을까, 서버가 다운되지 않았을까 등, 하루 종일 우리 제품을 사용하면서 모니터링 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이 개밥 먹기는 너무나 당연한 스타트업의 첫 번째 법칙인데, 또 이만큼 잘 안 지켜지는 원칙도 없는 것 같다. 실은, 스트롱의 포트폴리오들도 이 비난을 피해 가기가 어렵다. 얼마나 본인들이 만드는 제품을 안 쓰면, 아주 심각한 에러가 발생한 것도 모르다가 나 같은 투자자가 그 제품을 사용하면서 한참 후에 발견한 오류를 제보해 주면, 그제야 “아, 그런가요?” 하면서 원인 파악을 시작해 본다. 새로운 기능이 출시됐다고 언론에 PR까지 때리면서, 막상 대표에게 그 기능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보면 본인도 잘 사용 안 해봤다면서 PM과 나를 연결해 준 경우도 있다.

소프트웨어 회사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밥 먹기’라는 용어를 처음 쓰기 시작했는데, 내가 마이크로소프트 다녔던 짧은 기간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오피스 제품을 담당하는 글로벌 부사장이 오피스 제품의 기능을 하나씩 데모하면서 청중의 질문에 모두 답변했던 기억이다. 그만큼 이분은 본인이 몸담고 있던 회사에서 만든 제품을 구석구석 다 사용하면서 개밥을 열심히 먹었다는 의미다. 실은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샅샅이 다 핥아먹었는데, 그때 정말 인상 깊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제품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대표와 그 회사의 모든 직원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 그 어떤 작가라도, 본인 책의 첫 번째 독자는 작가 그 자신이다. 작가가 쓴 책을 스스로 읽었는데 본인이 그 책이 맘에 안 든다면, 다른 독자는 말할 것도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만드는 제품의 첫 번째 고객은 이 제품을 만드는 우리 회사의 임직원들이다. 우리가 만든 제품을 우리도 사용해 보지 않았는데, 이걸 어떻게 자랑스럽게 고객에게 보여주고 심지어 돈을 받고 판매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만든 제품을 구석구석 꼼꼼히 사용해 보면, 분명히 만족스럽지 못한 것들이 있을 것이고, 수많은 버그를 발견할 것이다. 내가 만든 제품의 첫 번째 고객인 내가 수많은 버그를 발견한다면, 이 제품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만든 제품의 첫 번째 고객인 우리 회사 사람들도 우리 제품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우리조차 우리 제품을 사랑할 수가 없다.

이런 개 허접한 제품을 우린 어떻게 시장에 출시하고, 어떻게 주위 사람들에게 사라고 강요하겠는가? 절대로 이렇게 해선 안 되는데, 실은 너무나 많은 스타트업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매일 한다. 너무 많은 스타트업이 본인들도 제대로 사용해 보지 않은 거지 같은 제품을 출시한다. 그러면서 모두 다 대박 나는 유니콘을 꿈꾼다. 모두 다 꿈 깨시길.

에어비앤비의 공동창업가 Brian Chesky 대표가 요샌 어떻게 사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는 2022년까지 집 없이, 에어비앤비에서 여기저기 숙소를 예약하면서 1년 내내 살았다. 이 세상 모든 집을 살 수 있을 정도의 재산이 그에겐 있지만, 사장은 회사가 만드는 제품을 눈감고도 외울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철학 때문이다. 그가 항상 농담처럼 하던 말이 “저는 말 그대로 아직도 우리 사이트에서 살고 있습니다(I still live on the site).” 였는데, 에어비앤비 사장이 집이 없고 회사 웹사이트에서 살고 있다는 건 정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이보다 훨씬 더 작은 대부분의 한국 스타트업의 대표와 임직원들은 눈 감고도 본인들의 제품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UI와 UX를 거쳐서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줄줄 외워야 한다.

내가 만든 개밥의 첫 번째 고객은 나 자신이다. 내가 만든 개밥을 내가 맛없어서 못 먹는다면, 그 누구도 이걸 맛있게 먹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