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B

Animoto 근황

2008년도에 미국에서 뮤직쉐이크를 할 때, 음악만큼 많은 사람이 몰입해서 보고 듣는 게 동영상이라는걸 알게 됐다 – 참고로, 요샌 숏폼 동영상이 대세라는 걸 어린 아이들도 모두 알지만, 당시만 해도 유튜브가 구글에 인수된 지 2년밖에 안 된 시점이고, 아직 PC에서 모바일로 플랫폼이 이전하기 전이였다. 그래서 뮤직쉐이크로 만든 음악을 가장 잘 홍보할 방법은 유튜브 동영상의 백그라운드 음악(=BGM: Background Music)으로 삽입하거나, 동영상을 제작하는 사용자들에게 우리가 만든 음악을 무료로 배포하는 전략이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시장에 어떤 동영상 제작 소프트웨어가 사용하기 쉽고, 대중적으로 인기 있을까 찾아보다가 Animoto라는 작은 스타트업을 알게 됐다. 이 서비스가 요샌 많이 진화했지만, 당시에는 정말 간단하게 사용자들의 사진을 올리고, 거기에 내가 가진 음악 또는 애니모토에서 제공하는 음악을 추가하면, 그 음악에 맞춰서 사진을 재미있게 동영상으로 제작해주는 제품이었다. 그땐 이게 너무 참신해서, 내가 우리 개 마일로 사진으로 동영상도 만들어서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다.

그 이후 숏폼 동영상이 대세가 되면서 비슷한 종류의 서비스가 엄청나게 많이 출시됐다. 내가 알기로는 한국에도 비슷한 제품이 여러 개 있는 거로 알고 있다. 나도 가끔 이런 회사를 만나면 항상 애니모토 이야기를 하는데, 회사가 워낙 오래됐지만,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대부분의 창업가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 애니모토라는 회사가 살아있고 서비스도 계속 제공하고 있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우연히 올 3월 애니모토 관련 기사를 읽었는데, 그냥 살아있는 정도가 아니라 굉장히 잘 살아있고, 아직도 잘 성장하고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기사를 직접 읽어보면 되는데, 요약하자면, 애니모토는 2007년 뉴욕에서 4명의 개발 백그라운드의 공동창업가가 그냥 재미로, 남들이 그전에 만들지 않았던 제품을 파트타임으로 만들면서 시작됐다. 참고로 2007년도에는 아이폰이 막 세상에 태어났고, 페이스북보다 마이스페이스라는 소셜미디어가 더 인기 있던 시대였고, 사진을 드래그앤드롭하면, 이 사진들을 클라우드에서 프레임 단위로 동영상으로 렌더링 할 수 있는 제품이 없던 시대였다. 그 누구도 이걸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애니모토 팀은 이걸 해보고 싶었다.

약간 취미로 시작한 프로젝트였지만,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주변 가족과 친구들로 부터 약 7억 원 정도의 초기 펀딩을 받았다. 이 돈이면 1년 정도는 이 실험을 해 볼 수 있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모든게 미지수였다. 일단 이런 동영상 렌더링 제품을 누가 사용할지도 몰랐고, 이걸 만들어서 어떻게 마케팅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들이 1차 닷컴 버블이 터지면서 배운 점이 있었다면, 그냥 만들어 놓고 사용자만 엄청 모으면 뭔가 될 거라는 전략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었다. 수백 개의 스타트업이 이런 전략으로 제품을 만들고 돈을 쓰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에, 본인들이 자신 있게 만든 제품을 무조건 첫날부터 유료로 제공하자는 결정을 했고, 당시 과금체계는 동영상 하나당 3달러, 또는 무제한 동영상에 연간 30달러였다. 많진 않았지만, 놀랍게도 애니모토를 돈 내고 사용하는 고객들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한 회사가 지금까지 350억 원 정도의 펀딩을 받았고, 올해 예상매출이 400억 원 이상인 꽤 괜찮은 회사로 성장했다. 물론, 1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이 기사에 다 적혀있진 않지만, 그 길은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애니모토 기사를 보면서, 내가 흥미롭다고 생각했던 몇 가지 사실이다:
1/ 4명의 평범한 월급을 받던 사람들이 평범하지 않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창업했다.
2/ 일단 트래픽을 모은 후에 돈을 버는 전략을 버리고, 첫날부터 과금하는 과감한 전략을 택했다.
3/ 13년 동안 펀딩을 세 차례에 걸쳐 350억 원 이상 받았지만, 모든 펀딩은 2007년~2011년 사이에 받았다. 그 이후에는 한 푼도 투자받지 않았는데, 계속 수익이 나고 있다는 의미이다.
4/ 미친 성장은 없었다. 그냥 꾸준히 매해 성장했다.
5/ 100명의 직원이 있다. 대부분 뉴욕에 있고, 3분의 2가(=66명) 개발 또는 제품 관련 일을 하고 있다.
6/ B2B 비즈니스가 꽤 큰데, 전통적인(=목표매출이 할당된) 영업사원이 없다. 대부분 입소문과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홍보/판매하고 있다
7/ 매달 155만 명이 애니모토 사이트를 방문, 이 중 15만 명이 14일 무료 체험 신청, 이 중 7%인 10,500명이 일 년에 $250 정도를 내는 유료고객으로 전환된다. 매달 $2.6M의 ARR이 발생한다. SaaS 비즈니스의 특성을 고려하면, 매달 $1M 이상의 년간수익이 발생한다는 의미이다.
8/ Jason Hsiao 대표에 의하면, 올해 예상 매출이 $40M이고, 1년 후면 $50M이 될 거라고 한다.

이 기사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진 않지만, 아마도 인수 오퍼를 많이 받은 것 같다. 대표이사에 의하면 인수에는 큰 관심이 없다고 한다. 그냥 많은 돈이 필요 없고, 지금 하고 있는 게 좋아서 계속 좋은 제품 만들고 싶다고 하는데, 애니모토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자주 언급하는 메일침프가 생각났다. 그동안 펀딩 한 푼도 안 받고 연 매출 1조 원짜리 회사로 성장하면서 revenue funding을 하고 있는 메일침프만큼 재미있고, 매력적인 회사인 것 같고, 천천히 성장하지만, 언젠간 유니콘 중 유니콘인 ‘흑자 유니콘’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수천억 원 펀딩 소식과 출혈하는 유니콘 소식이 좀 지겨워질 때, 이런 알짜배기 회사 이야기를 접하면 뭔가 머리가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배울 점이 많은 회사인 것 같다.

B2C와 B2B

우린 작년부터 B2B 회사에도 꽤 활발하게 투자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투자는 B2C 제품을 만드는 회사에 했다. 꼭 어느 쪽이 더 좋은 비즈니스라고 하긴 어려운데, B2C 회사가 조금 더 이해하기 쉽고, 바이럴성이 더 강해서 B2B 회사보단 폭발적인 성장이 더 잘 일어나긴 한다. 하지만, 이런 성장을 위해서는 많은 투자금이 희생되어야 하고, 엄청난 마케팅 싸움 또한 동반되야한다. 이렇게 피튀기는 싸움을 해도 더 큰 경쟁사가 더 많은 돈을 갖고 나타나면, 시장을 빼앗길 수도 있기 때문에 특히 진입장벽이 높지 않은 제품에게는 스피드가 매우 중요하다. B2B 회사는 바이럴을 타는 건 쉽지 않지만, 한번 고객을 확보해놓으면 꾸준히 매출을 발생하는 장기적인 기업고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사업을 하다 보면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시 B2C 회사로 돌아오면, 어차피 똑같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기업고객한테도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대표들이 B2C와 B2B 사업을 동시에 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물건을 만들어서 인터넷으로 개인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D2C 비즈니스를 B2C로 시작했는데, 얼마 후에 기업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B2B 사업도 동시에 같이 하는 회사들이 우리 투자사 중에도 꽤 있는데, 이런 비즈니스를 관찰하면서 느낀 점이 몇 가지 있다.

가장 큰 배움은, 일단 똑같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그대로 판매하더라도, B2C와 B2B는 결국엔 완전히 다른 비즈니스가 될 확률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즉, 회사가 웬만큼 커져서 인력과 돈이 많이 없으면, 되도록 이 둘 중 하나에만 집중하는 게 더 잘 성장하고, 결국엔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태생이 B2C인 비즈니스가, 같은 제품으로 B2B를 하게 되면 우리의 실질적인 고객은 – 즉, 우리한테 돈을 내고 물건을 사는 사람 – 우리 제품을 최종적으로 사용하게 되는 C(Consumer)가 아니라 B(Business)가 되는데, 이렇게 되면 사업이 완전히 달라진다. D2C 비즈니스를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 이커머스 플랫폼을 통해서 소비자에게 직접 물건을 판매하면, 최종 소비자들이 많이 있는 곳에서 집중적으로 마케팅을 하게 된다. 아마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 미디어에서 다양한 기법을 통해서 마케팅을 할 것이다. 또는, 많은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구글이나 네이버 같은 검색 엔진에서 SEO 등과 같은 기법을 통해서 마케팅하고, 이 잠재 고객이 우리 플랫폼을 방문하면, 이들의 데이터를 최대한 많이 확보해서 앞으로 계속 우리 물건을 더 많이 사고, 더 자주 살 수 있도록 모든 마케팅 역량을 집중할 것이다. 최대한 많은 개인들한테 우리 물건을 마케팅하고 이들이 더 많이 구매할 수 있게 하는 게 B2C 비즈니스의 목표다.

B2B로 전환을 하면 달라진다. 그냥 우리 물건을 대량으로 사입할 수 있는 기업에 우린 팔면 된다. 그 다음에 이 기업이 최종 소비자한테 어떻게 판매하는지는 우리와는 큰 상관이 없다. 우리는 이 기업에 돈을 받고, 이들이 우리의 고객이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B2C 비즈니스보단 더 간단한 것 같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일단 영업이라는걸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 전에 하던 갑과 을이 존재하는 그런 고전적인 영업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기업의 담당자를 만나서 우리 회사와 제품 설명을 해야 하고, 계속 판매를 하기 위한 영업 활동을 해야 한다. 실은 이렇게 해서 B2B 고객이 많이 생기면 회사 매출에는 도움이 되는데, 장기적으로 보면 이 B2B 고객들이 실제로 우리 물건을 판매하는 최종 소비자들에 대한 그 어떤 데이터도 우리가 확보할 수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요새같이 인터넷이 발달하여 있는데, 우리의 최종 소비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사는 곳은 어디인지, 연락처는 어떻게 되는지(이메일, 전화 등), 얼마나 자주 우리 제품을 구매하는지, 신용카드 정보 등과 같은 고객의 정보는 앞으로 우리가 이 분들한테 더 많은 물건을, 더 자주 판매할 수 있는 기회를 창출하는데 우리는 그냥 다른 기업에 물건만 팔면 되는 경우에는 이런 데이터를 확보하는 게 힘들다.

요샌 많이 좋아지고 있는데, 현금 흐름 면에서도 B2C 비즈니스가 B2B를 하다 보면 불리한 점이 가끔 있다. 제품의 최종 소비자 가격은 항상 같거나 거의 비슷해야 하는데, 우리가 고객에게 직접 판매하는 B2C 모델과는 달리 B2B로 판매를 하면, 우리 고객이 되는 기업이 중간에 가져가야 하는 마진도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우리한테 떨어지는 매출은 많게는 50% 이상 줄어들 수가 있다. D2C 비즈니스의 경우, 백화점에 입점하는 B2B 시도를 할 때 이런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백화점은 수수료의 명목으로 상당히 높은 할인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사몰에서 물건을 직접 고객에게 판매하면, 판매가 완료된 후에 바로 우리 계좌로 입금이 되는데, 기업들과 거래를 하다 보면, 심한 경우 90일 후에 결제해주는 곳도 있어서 장부상 매출은 잡히지만 실제 현금은 3개월 후에 들어오는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하는 경우도 나는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B2B 비즈니스가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약점도 있지만, 큰 기업이 우리 제품을 구매한다는건 우리한테는 상당히 좋은 브랜딩이 될 수도 있고, 그래도 한 번에 대량의 구매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어서 일시적으로는 매출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보면, B2C와 B2B를 모두 잡아야하는게 맞다. 결국, 이렇게 시장을 선점하면서 성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초반부터, 태생 자체는 B2C 비즈니스인데 B2B도 같이 하려고 하면, 처음에는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규모가 더 커질수록, consumer와 business는 완전히 다른 성격과 행동패턴을 가진 다른 고객이라는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 초반에는 선택과 집중을 잘 해야 한다.

스트롱 협업

코비드19 이후에 비대면과 언택트가 키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우리 투자사 플링크의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API를 활용해서 비대면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구축하는 회사가 부쩍 늘어났다. 바로 전 포스팅이 플링크와 오누이의 스트롱한 협업 내용이었는데, 이렇게 우리 투자사들간의 자발적인 파트너십을 볼 때마다 우리가 정말 좋은 회사에 다양하게 투자하고 있다는 걸 새삼 느낄 수가 있다.

오누이 팀이 설탭을 출시 했을 때 회사의 규모는 5명 미만이었다. 개발인력이 있긴 했지만, 여러 명의 과외선생과 학생들이 동시에 접속해서, 끊김없는 과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large scale 커뮤니케이션 인프라를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때 플링크 팀과 이야기를 시작했고, 대규모 스케일을 감당할 수 있는 페이지콜 API를 활용해서 설탭을 짧은 기간안에 출시하고, 지금까지 문제없이 동시접속자들을 핸들링하면서 잘 성장하고 있다. 물론, 이런 커뮤니케이션 인프라를 만드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다. 개발력, 돈, 그리고 시간이 투입되면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만들 수야 있겠지만, 작은 회사에서는 선택과 집중이 매우 중요하다. 본인들이 잘 할 수 있는 일과 남들이 더 잘 할 수 있는 일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게 중요한데, 이게 잘 반영된 협업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사례는 이벤트 플랫폼 이벤터스와 플링크의 협업이다. 누구나 이벤트를 만들고, 참석자들을 초청할 수 있는 서비스 이벤터스도 코비드19의 직격탄을 맞은 회사 중 하나다. 행사의 거의 100%가 오프라인 모임과 이벤트였는데,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서 3월부턴 월 이벤트 수가 99% 이상 감소하면서 미래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이벤터스 경영진들은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웨비나(웹+세미나)를 테스트해보기로 했고, 이 또한 플링크의 페이지콜 API를 이용해서 만들었다. 미국은 온라인 세미나에 익숙하지만, 이 개념이 아직은 생소한 한국에서도 웨비나가 잘 되겠냐는 고민을 잠깐 하기도 했지만, 워낙 심각한 위기상황이라서 일단은 만들어 놓고 테스팅하자는 생각으로 아주 빠르게 웨비나 플랫폼을 구축하고 바로 테스팅을 시작했다. 다행히도 반응이 좋았고, 이젠 상당히 큰 규모의 웨비나도 거뜬하게 소화해내고 있다. 이 또한 이벤터스에서 자체적으로 만들려고 했다면, 돈과 시간이 훨씬 더 많이 투입됐을 것인데, 아주 좋은 협업 사례였던 것 같다.

플링크한테도 이런 협업은 매출 외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좋은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API를 잘 만들었지만, 실제로 서비스에 도입됐을 때는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대규모 확장성 문제는 없는지, 그리고 추가로 어떤 기능이 개발되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본인들도 경험이 없기 때문에 잘 인지하고 있지 못했지만, 오누이와 이벤터스와 같은 사용도가 높은 서비스의 척추 역할을 하면서 페이지콜 API도 상당히 많이 개선됐다. 특히 한 번에 300명 이상 접속하는 웨비나의 트래픽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서버를 비롯한 많은 부분이 최적화되어야 하는데, 이런 부분은 실제로 돌아가는 라이브 서비스에 적용되지 않으면, 얻기 힘든 값진 경험이었다.

앞으로 더욱더 다양한 분야에 투자하면서, 이런 스트롱 회사들간의 협업이 더 자주 일어나면서 서로의 서비스가 더욱더 견고해졌으면 한다.

가장 큰 재택근무 실험

Fast Company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 30명에게 코로나바이러스가 어떤 영구적인 변화를 가져올지, 그리고 이후에는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에 대해서 물어봤다. 답변을 정리한 기사를 꽤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중 내가 동의했던 의견 몇 가지를 공유하고 싶다. 인터뷰한 분들은 유명한 VC, 스타트업의 대표, 그리고 연구원들인데, 앞으로 몇 주가 걸릴지, 몇 달이 걸릴지, 또는 몇 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가 더는 큰 관심 시가 아닐 때,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이 되었을지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정리한 내용이다. 한가지 고려해야 하는 건, 인터뷰한 사람 대부분 본인 회사, 제품, 그리고 직업의 관점에서 유리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30명의 의견을 8개의 주제로 분류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1/ 새로운 norm이 된 재택근무
2/ 디지털 변화의 가속화
3/ 교육의 가상화
4/ 헬스케어의 변화
5/ 주춤하는 벤처캐피탈
6/ 대중교통의 개인교통화
7/ 제조 공급망의 변화
8/ 변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 코멘트 몇 개를 그냥 특정 순서없이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재택근무” 실험이 시작됐고,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 실험의 효과는 즉각적으로 인터넷 트래픽 패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2/ 전 세계가 일하고, 공부하고, 교육받는 방법이 바뀌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중국의 근무자들이 서서히 사무실로 다시 돌아가고 있지만, Microsoft Teams와 같은 재택근무 솔루션의 사용량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3/ Zoom이 “기업”에서 “소비자”로 루비콘강을 건넜다. 우리 가족 5살 꼬마부터 75살 할아버지까지 줌을 사용하고 있다. 이건 대단하다.
4/ 재택근무를 통해서 많은 임원이 물리적인 사무실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있다. 많은 조직이 비싼 지역의 큰 사무실을 줄일 것이고, 더 작은 본사와 원격 사무실로 옮길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어떤 회사는 본사를 클라우드 기반으로 옮기고 100% 재택근무를 시행할지도 모른다.
5/ 그동안 도시를 떠나서 일하고 싶었지만, 본사와 사무실의 압박 때문에 그렇게 못 하던 인력이 이 기회를 이용해 지방으로 이동해 원격근무 할 것이다. 그러면서 실리콘밸리와 같은 테크허브의 의존도가 낮아질 것이고, 지방 도시가 발전할 것이다.
6/ 코로나바이러스는 디지털 변화의 촉진제 역할을 하고 있다. 더 놀라운 점은 이 변화를 그동안 죽어라 반대하던 반대세력과 저항이 갑자기 증발하고 있다.
7/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가 엄청난 트라우마와 슬픔을 경험했기 때문에, 정신건강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의료산업에서 정신건강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커질 것이다.
8/ 유니콘과 펀딩 규모와 같은 정량적인 부분에 집중하던 투자자들이 이젠 팀, 문화, 수익성 등과 같은 정성적인 부분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9/ “FOMO(Fear Of Missing Out)” 때문에 투자하게 되는 관행이 많이 줄어들 것이다.
10/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유지하면서,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연구될 것이다. 특히, 대중교통이 발달한 곳에서는 버스나 지하철 대신, 공유 자전거, 공유 스쿠터 등과 같은 개인교통 수단이 주목받을 것이다.
11/ 저렴한 인건비 때문에 외국의 공장에만 의존하는 중앙집중형 제조방식은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재앙에 무방비 상태다. 앞으로는 인건비가 비싸도, 자국과 외국의 공급망을 유연하게 혼합하고, 사람에 의존하기 보단 기계와 소프트웨어에 의존하는 제조방식을 선호할 것이다.
12/ 매출의 대부분을 물리적인 상점과 오프라인 트래픽에만 의존하던 소매업자들은 다른 매출원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식당은 이제 방문손님보단 배달에 의존할 것이고, 가게는 매장판매보단 이커머스에 의존할 것이다.

위 12개 의견에 대해서 나는 100% 동의한다. 실은, 이런 변화는 훨씬 전에 일어났어야 하는 건데, 오히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변화가 가속화됐고, 실제로 실행되고 있는 현실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매출 총이익

다른 곳에서 읽은 좋은 글을 그대로 번역하는 경우가 요샌 거의 없는데, 얼마 전에 Fred Wilson이 올린 글이 너무 좋았고, 나도 비슷한 생각을 최근에 많이 했는데, 윌슨 씨가 너무 우아하고 통찰력있게 표현해서, 잠깐 소개하고, 일부 번역해서 공유해보고 싶다. “Not All Gross Margin Is The Same“이라는 글인데, 투자검토 할 때, 회사가 매출이 있다면, 대부분 VC가 확인하는 수치 중 하나인 매출 총이익에 대한 내용이다.

매출 총이익에 대한 아주 간단한 결론을 내리자면, 이익률이 높으면 좋고, 낮으면 좋지 않은 비즈니스라고 주로 생각한다. 그런데 이 글에서는 두 가지 예시를 들면서, 이런 일차원적인 사고방식에서 탈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네덜란드의 PG사 Adyen의 재무제표에 의하면 이 회사의 12개월 동안의 매출은 $2.65B이고, 매출원가는 $2.16B이다. 매출총이익이 약 $0.5B이니, 매출총이익률은 대략 19%이다.
다른 회사를 한 번 보자. Macy’s 백화점의 12개월 동안의 매출은 $25.3B이고, 매출원가는 $15.2B이다. 매출총이익이 약 $10B이니, 매출총이익률은 대략 40%이다. 메이시스 백화점의 매출총이익률은 Adyen의 거의 두 배 이상인 셈이다.

이걸 그냥 별 생각 없이, 겉만 봤을 때, 우리는 메이시스 백화점 이익률이 더 높으니까, 이 비즈니스가 더 수익성이 좋고, 더 좋은 비즈니스라는 결론을 내리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Adyen은 $2.16B의 매출원가를 그냥 다른 기업들에 넘겨주기만 하는데, 이걸 넘겨주면서 실제로 본인들이 하는 게 별로 없고, 본인들에게 비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메이시스의 경우 $15.2B의 매출원가에는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모든 제품과 관련된 구매비용, 재고비용, 그리고 매장비용 등이 포함된다. 즉, 메이시스의 매출원가에는 실제로 많은 운영비용과 운전자본이 포함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Adyen이 Macy’s보다 이익률은 낮지만, 훨씬 더 매력적이고 효율적인 비즈니스라고 할 수 있다.

실은, 나도 우리가 작년 12월에 페이플에 투자할때 이와 비슷한 맥락의 생각을 많이 했다. Adyen에 비교할 수 없지만, 페이플도 결제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API 비즈니스이고, 고객들의 전체 거래금액의 일정 부분을 수수료 매출로 잡는다. 매출총이익률을 따져보면, 엄청나게 낮지만, 그래도 매출원가가 페이플의 운영비용이나 운전자본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기 때문에, 좋은 비즈니스라고 생각했다. 이게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포커게임을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모여서 포커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사람은 소위 말하는 하우스피를 받는데, 그 퍼센트는 매우 낮다. 하지만, 큰 노력없이 받는 돈이다. 반면에, 포커를 대신 쳐주고, 번 돈의 50%를 받는 대리포커 비즈니스를 한다고 하면, 이익률은 높지만, 여기에 들어가는 시간, 에너지, 정신적/육체적 비용은 엄청나기 때문에, 오히려 이익률이 낮은 하우스피가 더 좋은 비즈니스일 수도 있다.

즉, 겉으로만 보면 이익률이 낮은 비즈니스지만, 조금 더 자세히 보면 상당히 이익률이 높은 비즈니스일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