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회사라는 명성에 걸맞게 마이크로소프트의 조직은 매우 크고 복잡하다. 워낙 많은 제품을 다양한 시장에 공급하기 때문인데, 특히 마케팅은 다른 조직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vertical & horizontal 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각 제품을 담당하는 product marketing 조직 – 즉, Windows OS, Office, Windows Server, SQL Server 등 – 이 있는가 하면 모든 제품을 특정 시장에 마케팅하는 조직 –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Small and Medium Marketing, 대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Enterprise Marketing – 이 존재한다. 나는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하는 Mid Market Marketing Manager(M4)라는 업무를 담당하였는데 매우 challenging하고 회사의 매출과 직결된 중요한 포지션이기 때문에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하는 그런 직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조직을 분석하려면 제품별 숫자만을 봐야 하는 게 아니라, 특정 market 별 숫자 또한 자세히 분석을 해야 한다. Bill Gates 회장은 임원 미팅에서 항상 다음과 같은 질문을 경영진들에게 하였다. “내년에 우리가 더 성장하려면 Office나 SQL 서버와 같은 구체적인 vertical 시장에 더 투자 해야 할까요 아니면 특정 제품보다는 대기업, 교육, 공공 분야와 같은 전반적인 horizontal 시장에 집중해야 할까요?”
매우 재미있는 질문이다. 왜냐하면, 2008년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손을 뗀 후 340억 달러라는 막대한 기금과 대통령보다도 더 유명한 슈퍼파워를 이용해서 개발도상국의 질병 퇴치와 보건 개선에 앞장서고 있는 게이츠 회장이 바로 똑같은 질문을 세계 보건기구에 얼마 전에 물어보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아마비와 같은 개별 질병을 퇴치하는 데 집중해야 할까요? 아니면 전반적인 건강과 위생 개선책을 – 위생 상태 개선, 예방 접종 확산, 식수 정화 – 추구하는 게 맞을까요? 어떤 게 인류의 건강을 위한 제일 나은 방법일까요?”라는 질문이었다. 정답은 둘 다 해야 하는 게 맞다. 그리고 빌 게이츠 회장과 같은 자선사업가들의 돈을 무기로 세계 보건 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는 개발도상국의 어린이들을 불구로 만들고 있는 무서운 병 소아마비에 이러한 총체적인 접근방법을 적용해보기로 했다.
질병 퇴치를 하려면 특정 질병을 1대 1로 공격해야 한다는 과거의 방식과는 다른 총체적인 방법은 특정 질병을 퇴치하려면 전반적인 보건 시스템의 개선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이론을 토대로 하고 있다. 만약 이 방법이 성공한다면 앞으로 세계 보건 전략은 이러한 총체적 전략을 토대로 운영될 것이지만, 실패한다면 이러한 노력은 인류 보건 역사상 가장 비싼 수업료로 기억될 것이다. 소아마비 하나에만 이미 20년 동안 82억 달러라는 예산이 사용되었고 대부분의 기부자는 그동안 vertical 전략을 선호하였다. 즉, 일정 금액의 기부금을 가지고 특정 질병을 퇴치하는 데 집중하는걸 좋아했다. 이 전략이 성공한 사례가 바로 1979년도에 인류가 유일하게 완벽하게 퇴치할 수 있었던 수두 사례였다. 이와는 반대로 horizontal 전략은 조금은 모호한 접근 방법과 당장 수치화할 수 없는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며, 그 결과 또한 장기적으로 보고 접근을 해야 한다. 어떤 방법이 더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vertical 전략으로 시행된 소아마비 퇴치는 참담하게 실패했고, 빌 게이츠와 세계 보건 기구는 이번에는 vertical & horizontal 전략을 적용하는 모험을 해보기로 하였다.
2010년 초,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이자 세계 최고의 갑부인 빌 게이츠는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있는 세계 보건 기구(WHO)를 방문했다. WHO의 지하벙커에서 진행된 미팅에서 그가 접한 소식은 전 세계 질병을 퇴치하려는 그의 노력에 브레이크를 거는 나쁜 소식이었다. 바로 그가 8,500억 원이라는 거금을 가지고 퇴치하려고 하였던 소아마비 질병이 아프리카에서는 계속 번지고 있다는 비보였다. 작년 여름부터 고개를 들기 시작한 소아마비가 2010년 4월에는 19년 동안 소아마비 사례가 한 건도 발견되지 않았던 타지키스탄에서 재발하면서 소아마비를 이 세상에서 완전히 추방하려는 세계 보건 기구들의 노력에 큰 타격을 가하였다. 현재 소아마비를 퇴치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기관은 WHO, UNICEF, Rotary International과 US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과 같은 헤비급 단체이고, 빌 게이츠가 가장 많이 기부한 분야이기도 하다. 2009년도에 빌 게이츠는 소아마비가 가장 많이 발병하는 아프리카에 여러 번 방문하여 의사, 간호사, 자선단체 담당자 및 부족장들과의 회동을 통해서 이 병을 완전히 퇴치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서 논의를 한 적이 있다.
빌 게이츠 회장의 아프리카 방문 일정에는 나이지리아의 Sokoto라는 도시 족장과의 간담회가 잡혀 있었다. 아이패드로 책을 보는 세상에서 웬 족장이라고 묻겠지만, 아프리카에서는 각 마을의 족장들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2003년도에 북나이지리아의 이슬람 리더들은 소아마비 예방 접종을 하면 무슬림 여자들의 생식기능이 없어진다는 헛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퍼졌고 궁극적으로는 20개의 다른 개발도상 국가들에 퍼졌다고 WHO는 발표하였다. 전 세계 1,600건의 소아마비 케이스 중 과반수가 나이지리아에서 발병하였으며, 바로 Sokoto의 족장과 같은 사람들과 협심하여야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질병 퇴치 캠페인을 효과적으로 전개할 수가 있다. 하지만 이 족장 또한 소아마비만을 공략하는 vertical 전략에 대해서 강한 의문을 제기하였다. “다른 보건과 위생 문제들도 같이 검토가 되어야 합니다. 소아마비를 퇴치하려면 결핵, AIDS, 말라리아, 콜레라 등과 같은 질병들도 같이 총체적으로 퇴치해야 합니다.”라고 그는 빌 게이츠 회장한테 충고하였다.
30년 전 성공적인 수두 근절 이후 대부분의 질병 퇴치 프로그램들은 vertical 전략을 택하기 시작하였으며 소아마비 퇴치 캠페인 또한 이렇게 진행되었으며 초기에는 대성공이었다. Rotary 클럽의 기부금을 가지고 WHO가 진두지휘하였던 이 캠페인은 1988년 350,000건이나 발생하였던 소아마비 발병 수를 2000년도에는 1,000건 이하로 줄였으며 곧 수두와 같이 소아마비 또한 교과서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역사 속의 질병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모두가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소아마비는 오늘도 개발도상국에는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으며 발병 건수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Sokoto의 한 보건소를 빌 게이츠가 방문할 때 발생한 일이다; 한 아프리카 아이의 예방접종 기록표를 보면서 그는 “이 아이가 디프테리아 접종을 하였나요?”라고 물어보자 보건소 당국 직원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보건소에는 B형 간염 접종약도 없었고 황열병 접종액도 턱없이 모자랐다. 그런데 아이러니칼하게도 보건소 밖에서는 소아마비 퇴치 캠페인이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소아마비 퇴치 캠페인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어있었고, 소아마비 접종액도 부족함 없이 원활하게 공급되고 있었다. 그다음 날 나이지리아의 보건당국 국장인 Pate 박사는 이러한 아프리카의 현실에 대한 vertical vs. horizontal 전략의 필요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강조를 하였다. 그의 주장은 아무리 소아마비 발병률을 줄여도, 전반적인 위생과 보건 상태를 강화하지 못하면 이러한 노력은 도로아미타불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소아마비 또한 ‘교육’ , ‘질병 관리’ , ‘위생’ 등과 같이 아프리카가 해결해야 하는 큰 그림 중 하나일 뿐이지 소아마비 질병에 모든 돈과 자원을 투자하는 건 매우 현명하지 못한 전략이라고 지적하였다.
빌 게이츠는 이러한 vertical & horizontal 전략에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전 세계의 소아마비 발병 건수가 이제 거의 바닥인 이 시점에서 아프리카는 소아마비 퇴치에 모든 자원을 투자해야 하는 게 맞다고 반박하였다. 일단 시작한 거는 끝을 봐야 하며, 끝이 이렇게 가까운 시점에 중단하는 건 옳지 않으며 소아마비가 완전히 퇴치되면 그만큼 다른 질병과 전반적인 보건에 투자할 수 있는 예산이 풀릴 거라고 하였다. 막상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아프리카 순회를 마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의 머릿속은 매우 복잡했다. 이미 퇴치되었다고 믿고 있었던 소아마비가 다시 발병하면서 특정 질병만을 공략하는 vertical 전략의 효용성에 대한 의문을 스스로 하기 시작하였다.
2009년 8월에 WHO가 엄선한 질병 전문가들이 앙골라,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인도와 나이지리아에 파견되어서 소아마비 프로그램에 대한 전반적인 재평가를 하였다. 전문가들의 결론은 소아마비라는 질병 자체가 인간의 배설물과 오염된 물을 통해서 전염되는 병이기 때문에 종합적인 위생과 영양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다시 발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결론은 빌 게이츠를 비롯한 소아마비 퇴치에 앞장서왔던 많은 단체와 담당자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과연 vertical 소아마비 전략이 최상의 방법인지를 모두 다시 한번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10월에 Gates 재단은 UNICEF, 질병관리국과 로터리 재단이 포함된 소아마비 퇴치 운동 기부자들을 시애틀 본사로 긴급 소집하여서 전략회의를 열었으며 이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들은 곧 WHO의 새로운 전략에 반영될 것이다. 새로운 전략은 2012년 말까지 소아마비를 지구상에서 완전히 퇴치하는 야심 찬 목표를 설정하였으며 vertical 전략과 horizontal 전략을 적절하게 혼합한 형태의 캠페인을 전개하는 것이 큰 축이 될 것이다. 이 새로운 전략을 시험할 수 있는 좋은 testbed는 나이지리아가 될 것이다. 앞으로 3년 동안 나이지리아와 인접 국가들에서 소아마비가 퇴치되느냐에 따라서 vertical & horizontal 전략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앞으로 3년 동안 이 새로운 소아마비 퇴치 프로그램이 필요로 하는 예산은 대략 26억 달러인데 현재 게이츠 재단에서 할당한 예산은 12억 달러밖에 안 된다. 물론, 빌 게이츠한테 돈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원한다면 개인 재산을 더 투자해도 되고 안 된다면 다시 모집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빌 게이츠 회장이 세상을 더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려 하고, 이를 위해서 돈이 더 필요하다고 하면 많은 사람이 기꺼이 재산을 기부할 것으로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비영리 프로그램을 운영함에서도 영리조직의 경영 방법과 전략들이 적용된다는 게 참으로 재미있는 거 같고 빌 게이츠같이 이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계속 생겼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