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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하는 창업팀(그리고 미국 투자유치)

maxresdefault그동안 영어관련 포스팅을 몇 번 썼다.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핵심은 “스타트업을 하려면 업무와 상관없이 무조건 영어를 해야한다” 이다. 내가 올리는 포스팅들이 주로 그렇듯이 영어관련 글들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도 반반이다. 완전 동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 너 영어 잘한다” 라는 태도로 완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영어관련 포스팅은 잘 안하려고 하는데 오늘 하나만 더 해야겠다.

스트롱벤처스는 미국에 본사를 둔 미국펀드이지만 주 투자 대상은 한국의 스타트업들이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역사가 매우 짧은 마이크로 VC 이며, 아직 어디가서 자랑할만한 실적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다 – 아직은. 그래도 나름 몇 개의 exit이 있었고, 우리가 투자한 후 더 높은 가치에 후속 투자도 받고, 나름 성공의 궤도를 향해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들이 몇 개 있다. 나랑 John이 나름 잘 하는건 – 그렇다고 우리가 제일 잘 하는건 아니다 – 한국과 미국의 문화를 잘 알고, 양쪽에서 비즈니스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가 풍부하기 때문에 한국 스타트업들에게 글로벌 시각을 조금이나마 주입시켜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투자사들과 미국의 더 큰 투자자들을 연결시켜 줄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하고, 한국보다는 미국시장에서 의미있는 비즈니스라면 가장 마찰없이 미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다양한 전략을 모색한다.

특히, 투자의 경우 우리는 소액 투자를 주로 하기 때문에 좋은 미국 VC나 엔젤투자자들과 공동투자 기회를 만들거나, 아니면 우리 다음 후속투자에 미국 VC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스타트업과 미국 VC들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에서 아무리 회사가 가능성이 높고 좋은 팀이 있더라고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하면 상당히 힘들어진다.

내 경험에 의하면, 일단 회사 소개 자료에서부터 이 문제는 시작된다. 우리가 좋은 회사에 투자했고, 이 회사의 가능성이 확실히 보인다면 우리랑 친하고 규모가 있는 미국 VC 한테 소개를 해야하는데 창업팀이 간단한 영문자료도 만들 수 없다면 소개조차 하기 힘들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영문자료는 아주 유창한 영어로 만든 자료이다. 오타, 틀린문법 또는 콩글리쉬가 하나라도 있으면 안 된다. 그런데 영어를 잘하는 인력이 없는 대부분의 한국 스타트업에서 만드는 영어 자료를 보면 웃음과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자료량이 많지 않다면 초기 투자자로서 내가 직접 자료를 손보고 수정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도 참 짜증나고 귀찮은 작업이지만, 모두 다 잘 되자고 하는거니 어쩔수 없이 한다.

그런데 그래도 문제가 많다. 간단한 소개 자료를 전달해서 미국 투자자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을 해도, 이 투자자는 회사와 팀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어한다. 그러면서 이메일이나 call을 통해서 이런저런 추가 질문을 하고 싶은데 창업팀이나 회사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직원 중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 없다면 이게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자료를 내가 직접 손 본거와 같이 내가 call에 참석해서 통역을 해줄 수도 있지만 투자자는 투자자일뿐, 투자사에 대해서 속속들이 모르기 때문에 구체적인 답변이나 설명을 제공할 수가 없다.

스타트업 대표이사나 창업팀이 영어를 잘하면? 모든게 너무너무 쉬워진다. 나는 그냥 이메일로 미국 VC를 소개해주면 그 이후에는 둘이 알아서 모든걸 진행하고 나는 그냥 옆에서 거들어 주는 역할만 하면 된다. 미국 투자자의 입장에서도 엄청나게 잘 나가는 회사가 아닌 이상, 굳이 영어가 안되는 회사에 투자해서 향 후 커뮤니케이션 문제 때문에 골치 아파해야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한국 시장을 대상으로만 비즈니스를 하는 스타트업이라도 – 그런데 요새 이런 스타트업은 별로 없다 – 내가 항상 영어 잘하는 창업팀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왜냐하면, 가끔씩 기투자자로서 스타트업과 한 배를 탄 나마저 위에서 언급한 어려움과 복잡성 때문에 나랑 친한 미국 VC 소개 자체를 망설여하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아무리 영어를 못 해도 회사의 숫자가 엄청나면 전혀 문제없다. 사용자 수나 매출이 엄청나면 투자자들은 위에서 말한 언어 문제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투자하는 대부분의 회사들은 상당히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숫자들이 성장가능성을 보여주는 정도이지 한번에 투자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그래서 미국 VC들의 초기 관심은 끌지만, 실제 딜을 성사시키려면 여러번의 미팅을 통한 설득과 설명작업이 필요하다. 여기서 창업팀이 영어를 못하면 이 대화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영어관련 과거 포스팅:
영어가 그렇게 중요한가? YES
Do You Speak English? – Part 2
Do You Speak English? – Part 1

<이미지 출처 = YouTube>

기술이 주도하는 파괴와 혁신

한 2달 전에 Fred Wilson의 ‘What VC Can Learn From Private Equity(VC가 사모펀드로부터 배울 수 있는 점들)‘ 라는 블로그를 읽었다. 깊게 들어가 보면 완전히 다르지만, 겉에서 보면 VC도 사모펀드라는 큰 그룹에 속해있기 때문에 분명히 VC 산업이 사모펀드로부터 배울 수 있는 점들은 많고 이 글은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 그런데 내가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Fred가 지적한 VC와 사모펀드의 차이점들이다:

1/ 사모펀드는 회사의 다수 지분을 확보해서 경영에 관여한다. 벤처캐피탈은 소수 지분에 투자한다.
2/ 다수지분을 확보하기 때문에 사모펀드는 투자손실이 발생하면 안 된다. 벤처캐피탈은 (불확실성에 투자하기 때문에) 투자손실이 (어떻게 보면) 당연한 비즈니스이다.
3/ 사모펀드는 금융공학을 통해서 가치를 창출한다. 벤처캐피탈은 기술이 주도하는 파괴와 혁신, 그리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기회를 통해서 가치를 창출한다.

다 동의하지만 3번이 가장 와 닿는다. 아마도 벤처캐피탈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 그리고 앞으로 가야할 길을 간단명료하게 잘 설명해주는 포인트이다. “사모펀드는 금융공학을 통해서 가치를 창출한다”는 “사모펀드는 돈 따먹기” 정도로 간단하게 해석할 수 있는데 이와는 다르게 벤처캐피탈은 단순히 돈을 주고 몇 년 후에 몇 배 이상의 수익을 바라는 비즈니스는 아니다. 기술과 엔지니어들이 중심이 되는 파괴력을 가진 비즈니스, 그리고 이로 인해 새로 창출되는 엄청난 기회들에 투자를 하고, 많은 경우 창업팀과 함께 일하면서 비즈니스를 만들어간다.

실은 나도 이런 말을 하지만 위에서 말한 벤처캐피탈의 모습은 점점 더 이상이 되어가고 있는거 같다. 현실적으로는 벤처캐피탈이 돈 따먹기 놀이로 변질되고 있는거 같아서 조금 안타깝고, 혹시나 나도 이런 생각만을 하면서 투자를 하는건 아닌지 조심스럽게 반성도 해본다. 요새 시장에서 벤처캐피탈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들이 들려서 그냥 몇 자 적어봤다.

The Anti-network

관계 형성의 중요성‘이라는 글을 비롯해서 여러 번 강조하지만, 일의 종류를 떠나서 ‘관계’는 너무나 중요하다. 특히 창업가나 투자자 커뮤니티와 같이 좁고 서로가 서로한테 항상 평판을 확인하는 분야에서 관계와 네트워크는 두말할 필요 없이 중요하다. 아니, 어쩌면 이게 전부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투자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이 얼마 전에 한국의 네이버와 실리콘밸리의 DCM으로부터 시리즈 A 투자를 성공적으로 유치했다(우리도 다시 같이 참여를 했다). 모든 투자가 그렇지만 실제 계약을 마무리하기 전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많은 우여곡절이 있는데 텀블벅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기존 투자자였던 우리와 새로 들어오는 투자자인 DCM/네이버와 상당히 많은 communication이 오고 갔었다. 네이버와 DCM 담당자들과 나는 개인적으로 이미 알고 있었고 꽤 친분이 두터웠는데, 특히 DCM 일본사무소의 파트너 Osuke Honda와는 거의 7년 동안 알고 지냈다. 오늘은 이 관계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해보고 싶다.

나는 2008년부터 약 4년 반 동안 미국에서 뮤직쉐이크를 운영했다. 특히 첫 2년 동안은 투자유치를 위해서 실리콘밸리와 LA의 VC들과 정말 많은 미팅을 했고 피칭할 기회가 있었는데, 아마도 거의 70번 이상 한 거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70번의 피칭 중 투자로 연결된 건 0건이다. 투자로 이어질 뻔 한 건 2건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DCM과 진행하던 투자건 이었다. 당시 DCM에서 뮤직쉐이크를 담당했던 심사역이 바로 지금은 파트너가 된 Osuke 였다. 같은 동양인이고 와튼 출신이라서 그런지(나는 졸업은 안 했지만) 처음부터 나한테 잘 대해줬는데, consumer 제품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음악에 대한 관심 때문에 Osuke는 우리를 내부적으로 많이 밀어줬다. 투자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진행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최종 투자 결정은 창투사의 파트너들이 하는 거지만 이 파트너들을 설득할 수 있는 내부 챔피언은 바로 투자를 직접 담당하고 실사를 하는 심사역이기 때문에 심사역한테 잘 보이는 건 중요하다. 뭐, 결국에는 투자가 성사되지 않았지만 이로 인해서 나는 Osuke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나도 이 친구가 믿을만하고 성실한 투자자라고 생각했지만, 아마도 이 친구도 내가 거짓말 안 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거 같다. 아주 좋게 헤어진 거로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우린 7년 후에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창업자-투자자가 아닌 같은 VC로 만나서 아주 좋은 회사에 공동투자를 했다. 참 재미있는 인연이다.

다른 69개 이상의 VC들과도 최대한 이렇게 헤어지려고 노력했다(그중에는 좋지 않게 끝난 경우도 있긴 있다. 내가 열 받아서 화를 버럭 내고 자리를 뜬 경우도 있는데 지금 굉장히 후회하고 있다). 그리고 7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나는 내가 당시 피칭했지만 거절당했던 대부분의 VC와 같이 – 창업가가 아니라 같은 투자자로서 – 투자할만한 스타트업과 공동투자 기회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우리와 같이 초기에 투자하는 마이크로 VC들에는 후속 투자가 매우 중요한데 과거에 나와 뮤직쉐이크를 거절했던 VC들이 스트롱벤처스의 훌륭한 후속 투자 네트워크가 되었다. 내가 거절당했기 때문에 네트워크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오히려 anti-network이라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이 분야에서 오래 일하려면 – 솔직히 짧게 일해도 – 네트워크는 너무나 중요하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거와 같이 나를 거절하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과의 anti-network도 상당히 중요하다.

젊음, 그리고 용맹

11265245_842532005782427_3523948992242029118_n올해 Masters 골프 대회는 21살의 청년 Jordan Spieth가 많은 사람들을 놀라고 기쁘게 하면서 압도적으로 우승했다. 그리고 골프 대회 중 상금이 가장 높은(100억원 이상) Players 대회는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26세의 청년 Rickie Fowler가 우승했다. 실은 조던과 리키의 골프 스타일은 상당히 다르고 성격도 많이 다른걸로 알고 있다. 이들의 골프 패션은 완전히 극과 극이다. 그래도 이 둘은 아주 중요한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젊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젊음’과 항상 동반되는게 있는데 ‘용맹’ 이라는 것이다. 이 두 젊은 골퍼들의 플레잉 스타일을 보면 용감하고 사납다. 안전하게 플레이 할수도 있지만, 이들은 남들과 같이 안전하게 치면 잘 해봤자 그들과 비슷하게 끝난다고 생각을 한다. 장애물이 있어도 극복하려고 치열하게 노력한다. 어렵지만 성공하면 남들이 5번 쳐서 par 할 걸 3번 쳐서 eagle 또는 4번으로 birdie를 해서 우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쉽지 않다. 하지만, 젊다는 거 자체가 이들에게는 무기이다. 이번에 안되면 다음에 또 시도하면 된다. 젊기 때문에 그만큼 시간도 많고 기회도 많다. 이런 젊은 골퍼들의 시원한 플레이를 보면, 터무니 없는 실수를 하고 점수가 형편없어도 보는 사람은 기분이 좋아진다. 젊고 용맹스러운거, 이거 굉장히 멋있다.

내 나이 이제 40이 조금 넘었다. 버릇없게 나이 많이 먹었다는 말은 하지 않겠지만, 솔직히 요새 20대 초반 젊은이들 보면 참 부럽다. 물리적으로 피부도 탱탱하고 체력도 좋은게 부럽지만, 젊기 때문에 용맹할 수 있다는게 실은 너무 부럽다. 그동안 세월과 경험이 – 보잘것 없고, 더 경험 많은 분들이 보면 욕하겠지만 – 나를 나약하게 만들었고, 다시는 20대의 그 용맹함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beGLOBAL Seoul 2015는 작년보다 더 성황리에 마감했다. 스타트업 정신 “do more with less” 를 몸소 실천한 정현욱 대표/전진주 이사와 비석세스 팀한테 다시 한번 존경을 표시한다. 해마다 비글로벌 행사를 통해서 나도 많은걸 느끼고 배우는데 올해 내가 가장 많이 느낀건 바로 젊음과 용맹함이었다. 대부분의 스타트업 부스에는 나보다 15살 정도 어린 젊은 친구들이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었는데 이들의 태도에서는 용맹함이 느껴졌다. 돈 한 푼 못버는 회사 직원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무서울 정도의 열정을 가지고 소개하고 설명하는걸 보면서 정말 대단한 젊은이들이라는 생각을 이틀 내내 했다. 나도 바빴지만 중간 중간에 이층으로 올라가서 행사장의 부스들을 전체적으로 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용감함과 사나움이 만들어 내는 그 광경과 에너지가 정말 좋았다. 돈을 줘도 볼 수 없고 경험할 수 없는 소중함 그 자체였다.

실은 비글로벌 행사에서 본 젊은이들은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극소수이다. 한국의 20대 들은 방황하고 있다는 소식을 여기저기서 접할 수 있다. 취직도 안 되고, 인생은 더욱 더 힘들어 지고, 돈이 없어서 결혼도 못하는 젊은이들이 넘쳐 흐르는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그래서 그런지 비글로벌에서 본 젊은이들은 더욱 더 반가웠다. 어쩌면 경험이 없어서 용맹스러울지도 모른다. 어쩌면 무식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어쩌면 순박하고 순진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상관없다. 그냥 젊기 때문에 용맹스러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용맹함은 위대함을 만들 수 있다는걸 우리는 매일 경험하고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비글로벌 행사 참석하신 우리 아버지는 젊은 친구들이 너무 열심히 사는거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고 하셨다. 아마도 아버지도 내가 느낀 그러한 용맹함과 젊음이 부러우셨을거다.

내 나이 20대 초반때 우리 부모님이 시간만큼 소중한게 없고 젊음 만큼 부러운게 없다고 하셨다. 본인들한테 딱 한가지 소원이 주워진다면 “20대 초반으로 돌아가는 것” 이라고 하셨는데 당시에 나는 그게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복권 당첨이 되거나 때돈을 버는거와 같이 더 좋은 소원이 있을텐데 왜 굳이 젊어지려고 하시는지…..안 그래도 복잡한 청춘인데…..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 이제는 이해가 간다. 그리고 나이가 조금씩 더 들수록 더 공감할거 같다.

계속 이렇게 용맹스럽게, 그리고 열심히 사세요. 당신들이야 말로 애국자이고, 국가대표이고, 정치인들보다 더 멋진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고 있다는 걸 잊지 마시구요. 뭐, 굳이 거창하게 ‘나라’를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위해서 그렇게 살길. 왜냐하면 40대가 되면 그렇게 살지 않았던 자신이 굉장히 미워질것이기 때문에.

<이미지 출처 = 비석세스 정현욱 대표 페이스북 페이지>

기업의 전략적 펀드 출자

우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벤처펀드는 남의 돈을 가지고 운영되는 투자도구이다. 수백 ~ 수천억 원 규모의 펀드라면 펀드운용사 또는 운용 매니저들이 이 정도 규모의 자금을 직접 조달할 능력이 대부분 없으므로 ‘출자자(펀드 투자자)’ 들로부터 자금을 유치하고, 이 자금을 다시 여러 스타트업들에 투자하고 집행한다. 출자자의 종류는 다양하다: 우리가 잘 아는 대기업들; 국민연금; 모태펀드(정부의 돈); 대학교(한국은 아직 활발하지 못하다); 돈 많은 개인 등이다.

출자자들의 펀드 출자 목적도 매우 다양하다. 개인 출자자들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출자하지만, 정부는 돈보다는 고용창출이나 자국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진출 등의 공공 목적 때문에 출자한다. 여기서는 대기업들의 출자 목적에 대해서 조금 말해보려고 한다. 우리도 대기업 투자담당자들에게서 많이 듣는 질문이다. “전 세계에서 우리 회사를 모르는 사람들이 없고, 우리도 내부적으로 투자팀이 있는데 굳이 외부 펀드에 출자할 필요가 있을까요?”

출자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대기업들이 우리와 같이 크고 작은 펀드에 출자하고, 이렇게 함으로써 여러 스타트업에 간접적으로 투자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다양한 스타트업 발굴: 많은 대기업 임원들과 투자 담당자들은 – 특히, 미국보다는 한국이 더 심하다 – 본인들이 모든 스타트업들을 발굴할 수 있고 알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현실은 이와는 정반대이다. 물론, 이미 유명해져서 언론에 많이 노출된 회사들은 누구나 다 알지만 아무리 네트워크가 좋고 잘나가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도 하루에도 수십 개씩 새로 생기는 모든 스타트업들을 전부 다 알 수는 없다. 그러므로 다양한 분양의 벤처펀드에 출자하면 어디에 어떤 스타트업들이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VC 들을 안테나와 같이 활용하는 전략인데 수십억 또는 수백억을 여러 개의 펀드에 출자하는 게, 나중에 전혀 모르고 있던 좋은 스타트업을 경쟁사에 빼앗김으로써 발생하는 시장에서의 경쟁력 약화와 이로 인한 금전적인 손실보다는 훨씬 더 저렴하고 좋은 전략이다.

-대기업을 싫어하는 스타트업에 투자: 뜻밖에 대기업들과 같이 일하거나 투자받는 부분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스타트업들이 많다. 특히, 자신감 있고 장래가 밝은 스타트업 중 대기업 담당자들이 찾아오면 만나주지도 않는 회사들도 많다. 대기업들에 대해 워낙 좋지 않은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고, 이런 좋은 스타트업들은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투자받을 수 있는 채널이 많기 때문이다. 벤처 펀드에 출자했다면, 대기업의 이름은 숨기면서 펀드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이런 좋은 회사들에 투자할 수가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스타트업들과의 관계를 만들 수 있고 이는 파트너쉽, 대기업의 직접 투자 또는 인수로 이어진다.

-기업 이미지를 손상할 수 있는 비즈니스에 투자: 대기업들은 언론의 눈치를 많이 봐야 한다. 툭하면 “대기업이 그런 것도 하냐” 하면서 여론을 몰아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온라인 도박 또는 마리화나 관련 비즈니스에 국내 유명 대기업이 투자하면 언론에서는 상당히 부정적으로 비칠게 뻔하다. 하지만, 도박이나 마리화나도 앞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비즈니스이며 실행만 잘하면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고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외부 벤처펀드에 출자하고, 그 펀드를 통해서 이런 비즈니스에 간접적으로 투자하면 된다. 그러면 기업 이미지 손상을 방지하면서 이런 비즈니스에 대해서 더 배울 수 있고 남들보다 한발 앞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물론, 순수 금전적인 보상을 목적으로 벤처 펀드에 출자하는 대기업들도 있지만 내가 아는 대기업들은 모두 위에서 나열한 전략적인 목적을 가지고 펀드에 출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