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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와 이야기할때 알면 도움되는 몇가지

창업가라면 VC들과의 만남은 항상 긴장되고 설렌다. 대부분 어렵게 잡았을 미팅일 확률이 크고, 바쁜 VC들과 친구 사귈게 아니라 지금 당장 또는 앞으로 언젠가는 투자를 받기 위한 목적으로 만나는거면 잘 계획하고 준비해야 한다. VC와 미팅할 때, 특히 첫 미팅 시 알고 가면 조금은 도움되는 몇가지 tip 이다.

1/기본적인 숙제 하기 – 내가 개인적으로 제일 싫어하는건데, 미팅하기 전에 가장 기본적인 숙제도 하지 않는 창업가들이다. 모든 VC들이 투자를 하지만 이들이 좋아하는 분야, 투자금액, 단계는 다르다. 동일한 자료를 가지고 모든 VC들에게 똑같은 피칭을 하는건 매우 어리석다. 구글이나 네이버에서 5분만 검색을 해보면 특정 VC의 성향을 알 수 있고, 웹사이트에서 포트폴리오 회사들을 자세히 보면 어떤 종류의 회사들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같은 제품을 보더라도 기술을 매우 중요시하는 VC 한테 서비스와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서만 강조를 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리 없다. 최소한의 숙제는 하자.

2/발표는 간소하게 – VC와의 첫번째 미팅은 대부분 짧다. 이 짧고 귀중한 시간 내내 창업자가 일방적으로 발표만 하고 미팅이 끝난다면 이건 미팅이 아니라 발표가 된다. 미팅 시간의 절반만 발표를 하고, 나머지 시간은 Q&A에 활용하는게 좋다. 그래야지만 투자자는 창업팀과 비즈니스에 대해서 더 잘 파악할 수 있고, 창업팀도 그 VC에 대해서 조금 더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자료는 10장 – 15장으로 무조건 간소하고 visual한 수치 위주로 만드는걸 권장한다.

3/물어보는 질문에 대답하기 – 많은 창업가들이 물어보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지 못한다. 못 하는건지, 안 하는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투자자가 “작년 매출이 얼마였나요?” 라고 물으면 작년 매출이 얼마였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매출이 없으면 “없습니다” , 매출이 있으면 “얼마입니다” 라고 대답하면 끝이다.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을 정확히 못 하면 창업가가 바보라고 생각할 것이고,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을 정확히 안 하면 뭔가 구리다고 생각할 것이다.

4/과장하지 말기 – 절대로 과장하지 말자.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해라. 한번 과장하기 시작하면 계속 과장해야하고, 이는 아주 비참한 거짓말로 끝날 수가 있다.

5/몰라도 된다 – 많은 창업가들이 “잘 모르겠습니다” 라는 말을 투자자에게 하면 자신을 자신감없고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착각한다. 실제로는 이 반대이다. 아직 시작도 제대로 하지 않은 사업에 대해서 모든걸 알 수가 없다. 당연히 생각해보지 않고 모르는게 많을 수 밖에 없다. 투자자들도 창업가들에게 물어보는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기대하는건 아니다. 모르겠다고 하는건 절대로 약점이 아니다. 그건 그냥 사실 그대로 이야기 하는 것이며, 투자자들은 창업가들이 모르는걸 안다고 하는거 보다는 그냥 있는 그대로 잘 모르겠다고 하는걸 선호한다(다른 분들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내 주변의 투자자들은 대부분 이렇다).

6/조금 길게 봐라 – 정말로 대단한 창업가 또는 제품이 아니라면 한 번 만나고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길게는 수개월에 걸쳐서 여러번 만날 것이며, 이래도 투자가 성사되는 확률은 낮다. 그렇기 때문에 첫번째 미팅에서 너무 돈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는게 좋다. 오히려 투자 조건이나 돈 관련된 이야기는 투자자가 먼저 물어보면 꺼내지 먼저 이 주제를 꺼내지 않는게 좋다. 첫번째 미팅을 끝으로 보지 말고, 미팅을 한 번 더 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면 편하다. 첫번째 미팅에서 투자자의 관심을 유발해서 두번째 미팅에 대한 약속을 만들고, 두번째 미팅에서는 세번째 미팅에 대한 약속을 만드는걸 반복하다보면 최종 미팅까지 갈 것이고 잘 되면 이 후에 투자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7/투자자들도 질문을 받고 싶어한다 – 많은 창업가들이 VC와 미팅하면 발표하고 질문에 대해서 답하고 미팅을 끝낸다. 그런데 투자란 투자자와 창업가와의 결혼과도 같기 때문에 양쪽이 서로에 대해서 잘 알고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 어렵게 잡은 미팅이다. 최대한 이 미팅을 활용해야 한다. 창업자라면 이 투자자가 어떤 사람이고 나와 궁합이 맞는지 판단을 해야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질문을 많이 해야 한다. 나도 전에 창업팀과 미팅을 했는데, 나만 질문을 하고 미팅이 끝난적이 있다. 이들이 간 후에 나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아니, 이 사람들은 나에 대해서는 전혀 궁금하지 않나?”

따뜻한 소개

미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warm intro” 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말 그대로 해석해보면 “따뜻한 소개” 인데, cold call 이라는 말과 비교해가면서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갈거다.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을 소개받아야 하는데, 그 사람을 잘 아는 사람이 소개해주는걸 warm intro 라고 한다. 창업 열기가 후끈하고, 너도 나도 스타트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 시점에 VC들을 만나고싶어하는 창업가들이 엄청 많아졌다. 돈이 필요한 창업가들은 가능한 많은 VC를 만나고싶어하고, 이들에게 직접 연락하거나 모든 커넥션을 동원해서 소개를 받으려고 한다.

나도 매일 여러 개의 소개 이메일과 전화를 받는다. 한국과 미국에 있는 창업가들로부터 만나자는 요청을 직접 받거나, 아는 분들을 통해 소개를 받는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완전히 모르는 분들한테 오는 미팅 요청은 대부분 정중하게 거절하고, 소개를 통한 미팅요청도 내가 아주 잘 알거나 친한 분들이 소개해 준 사람들을 위주로 만난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물리적으로 몸이 하나라서 모든 사람들을 만날 수가 없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게 목적이 아닌 비즈니스 미팅이기 때문에 우리 사업에 도움이 되는 미팅만 선택하다 보니 여기서 절반 이상이 거절당한다. 다른 이유는 신뢰의 문제이다. 스타트업 하다 보면 불확실성과 모든 자원의 절대적인 ‘부족’ 과 매일 싸워야 한다. 투자자로서 이런 상황에서 이길 수 있는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하는 것도 힘든데 창업가의 신용도나 백그라운드 체크에 많은 시간을 소요해야 한다면 일을 하는 게 힘들다. Warm intro는 이 고민거리를 제거해 줄 수 있다. 내가 이미 잘 알고, 믿고, 어쩌면 과거에 공동투자를 해본 경험이 있는 친한 사람이 꼭 만나보라고 소개해주는 창업가면 없는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만나본다.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르는 분들의 미팅요청을 거절한다는 게 이 분들이 나한테 보낸 이메일을 아예 읽지 않거나, 아니면 사업내용을 보지 않는 건 아니다. 모두 다 보긴 본다. 단지,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 특히, 신뢰 부분 – 깊게 몰입해서 고민하거나 생각하지 않게 된다. 사람과 사람이 하는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이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실은 이 이야기를 왜 하냐면…..얼마전에 내가 어떤 분한테 만날 필요가 없을 거 같다고 하니까, “30분만 시간을 할애해 달라고 하는 건데, 너무 한 거 아니냐. 만나보지도 않고 어떻게 나와 내 비즈니스를 판단할 수 있다는 거냐.” 라는 답변을 하셔서 약간은 미안한 마음에 그 이유에 대해 몇 마디 적어봤다. 이분한테 내가 드리고 싶은 조언은 warm intro를 받던지, 아니면 조금 더 매력적인 비즈니스로 매력적인 소개 이메일을 쓰시라는 것이다.

기억에 남는 회사

요새 예능프로 ‘복면가왕’을 즐겨 보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시간 날때마다 다시보기 기능으로 그동안 못 봤던 편들을 와이프랑 거의 다 봤다. 내가 즐겨 듣던 옛날 노래들을 많이 들을 수 있어서 좋고, 이젠 흐린기억속에만 존재하는 가수나 연예인들이 가면을 벗고 나타나면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다. 더 이상 TV에서 활동하지 않는 가수들 또는 오랜 공백을 깨고 다시 컴백을 준비하는 가수들이 가면을 벗으면서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는데 “저라는 가수는 모르셔도 됩니다. 하지만, 제 노래는 기억해 주시면 좋겠어요. ‘아 저런 노래가 있었지’ 정도만 기억해 주시면 죽을때까지 행복할 거예요” 인거 같다.

내 주변의 좋은 창업가들도 대부분 이 복면가수들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위대한 창업가로서 자신들의 이름을 널리 알리거나 기억에 남기기 위해서 인생을 살고 있다기 보다는, 시대를 초월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일 하고 있다. 내가 아는 이들은 분명히 후세에 사람들이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기 보다는 이들이 만들어 놓은 기업을 기억해주길 바랄것이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싶다. 솔직히 20년, 30년 후에 나는 뭘하고 있을지 또는 그때까지 스트롱벤처스가 살아 있을지 나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투자한 회사들이 잘 되서 그때까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면 좋겠다. 현재 우리 계획대로라면 20년 후에는 우리가 투자한 회사들이 400개가 넘을 것이다. 이 중 많은 회사들이 크게 성장해서 앞으로 스트롱벤처스나 배기홍은 기억하지 못해도, “아, 그런 좋은 회사에 투자한 VC 구나” 정도는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나도 기억해 주면 완전 땡큐다.

불필요한 욕심

스타트업 생태계가 발전할수록 과거에는 찾을수 없던 좋은 회사들이 더 많이 창업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경쟁 또한 치열해지고, 이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스타트업들이 과거에 비해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하고 있다. 우리는 펀드 자체가 크지 않고, 투자하는 시점도 초기여서 소액투자를 전문적으로 한다. 하지만 과거보다는 회사들이 더 많은 펀딩을 필요로 하는 트렌드에 발맞추기 위해서 최근에는 다른 투자자들과 공동투자를 한 사례가 많이 있다.

공동투자를 하는 이유는 스타트업한테 도움을 줄 수 있는 투자자들을 더 많이 참여시키기 위한 전략적인 면과 투자유치금액 자체가 너무 커서 공동부담하기 위한 정량적인 면이 있다. 전에 포스팅을 한 적이 있는데, 우리는 주로 투자한 회사들의 첫번째 투자자이다. 우리가 스타트업들을 발굴하고,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투자조건을 협의한 후에 다른 투자자들에게 회사를 소개하고 공동투자기회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최근에 공동투자를 여러번 하면서 우리가 먼저 발굴한 좋은 회사들을 다른 투자자들에게 소개함으로써 굳이 우리 지분율을 낮출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특히 우리가 소개한 공동투자자들이 우리보다 주로 많은 금액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더 많은 지분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때는 그냥 우리만 단독으로 좋은 조건에 투자해서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하고, 그 다음 라운드에 다른 투자자들을 더 높은 밸류에이션에 참여시킬까라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조금만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이건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불필요한 욕심이라는걸 깨닫는다. 우리가 투자할 수 있는 금액은 한정되어 있다. 몇 년 전에는 이 금액만 가지고도 꽤 오래 버티면서 제대로 된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이걸로 괜찮은 후속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위에서 말했듯이 경쟁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좋은 스타트업들이 더 많이 창업되고 있고, 이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더욱 더 좋은 제품이 필요하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 좋은 개발인력이 필요하고 과거보다 더 많은 펀딩이 필요하다.

우리가 단독으로 투자하면 더 많은 지분율을 확보해서 회사가 잘 되면 더 큰 돈을 벌 수 있는건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의 단독 투자금만으로 개발인력을 채용하고,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기에는 모자라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에는 공동투자자들과 함께 투자규모를 더 키우는게 모두를 위해 현명하다. 공동투자를 하면 내 지분율은 낮아지지만 회사가 살아남아서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확률은 훨씬 높아지기 때문이다.

내가 항상 강조하듯 1억원 짜리 회사의 지분 30%를 갖는거 보다 1,000억원짜리 회사의 3%를 갖는게 훨씬 더 좋다.

잘 부탁드립니다

8265590387_cefbec3838_b오랫동안 많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대화하던 회사와 얼마전에 투자계약을 마무리 했다. 투자 금액과는 상관없이 투자를 하는 회사와 투자를 받는 회사간에 계약을 한다는건 항상 어렵고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지난 2개월 동안 우리는 상당히 많은 한국과 미국의 스타트업들에 투자를 했는데, 양사가 계약서에 서명하고 창업가와 악수를 하면서 내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바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다.

계약하는 자리에 나와 같이 있던 어떤 분이 돈이 있는 투자자가 왜 피투자자한테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하는지 여쭤봤다. 오히려 돈을 받는 사람이 주는 사람한테 그 말을 해야하는게 아니냐는 말과 함께. 얼핏보면 이 말이 맞아 보인다 – 돈 받는 사람이 돈 주는 사람한테 고마워해야하고,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하는게. 하지만, 투자한 회사가 망하거나 또는 성공적으로 exit한 경험이 있는 투자자라면 잘 알 것이다. 투자계약을 하고 투자금 납입이 되는 그 순간부터는 투자자의 운명과 미래는 바로 창업가와 그의 팀에 달려있다는 걸.

현명한 투자자라면 돈 뿐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가치를 스타트업에 제공해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특정 비즈니스에 대한 지식이 많은 투자자는 전략이나 제품개발에 실질적인 피드백과 조언을 제공하고, 본인의 경험을 기반으로 스타트업의 시행착오를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 이 비즈니스를 잘 모르는 투자자들도 좋은 인맥을 소개해주고 자신들의 생각과 의견을 제공해 준다. 그런데 나는 잘 안다. 나같은 투자자들이 제공하는건 제 3자의 의견과 제안이며, 실제 결정은 우리가 투자한 회사의 대표이사와 창업팀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이들이 올바른 결정을 해야지만 우리도 잘 되고, 우리가 잘 되야지만 우리 펀드에 출자한 출자자분들도(=LP) 성공하기 때문에 이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건 스타트업들의 성공이다.

절대로 그렇지 않지만, 외부에서 볼때는 마치 우리같은 투자자는 ‘갑’이고 투자를 받는 창업가들은 ‘을’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실제는 그 반대이다). 아쉬운 건 돈을 필요로 하는 스타트업들이기 때문에 이들이 투자자들에게 잘 보여야한다고 생각하는 시각 때문인거 같다. 뭐, 그럴수도 있다. 하지만, 투자가 집행된 이후 투자자들의 미래는 그들이 투자한 스타트업한테 달려있다. 투자자들은 투자한 스타트업이라는 배에 탄 것이고, 이들은 험한 파도가 치는 거친 바다를 이 배의 선장과 그의 선원들이 잘 항해해서 무사히 육지까지 갈 수 있길 기도하는 수 밖에 없다. 가끔 선장한테 쓴소리도 하고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겠지만 결국 배를 모는건 선장과 그의 팀이다.

그래서 우리 투자사들에게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미지 출처 = http://forums.elderscrollsonline.com/en/discussion/156579/shooting-star/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