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관련 이커머스 하는 창업가들이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이거 쿠팡이나 마켓컬리가 하면 우린 그냥 망하는 거 아닌가요?”이다. 당연히 쿠팡이나 마켓컬리가 할 수 있고, 돈도 더 많고 사람도 더 많기 때문에 이 두 회사가 맘먹고 뭔가 시작하면 상당히 무서운 상대가 될 수 있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와 이 전문가의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수직적 마켓플레이스(vertical marketplace)를 시작하는 창업가들이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숨고와 같은 앱에도 이 동일한 카테고리가 있는데, 후발주자로서 경쟁할 수 있겠어요?”이고, 특정 분야에서 중고거래 서비스를 시작하는 창업가들이 많이 받는 질문은, “당근마켓같이 폭풍성장하고 있는 중고거래 서비스가 있는데, 이게 되겠어요? 당근마켓 들어가 보면 비슷한 게 이미 있는데요.”이다.
실은, 다 너무 당연한 질문이고, 이제 갓 시작한 스타트업이 이미 product market fit을 찾았고, 이 fit을 더욱더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서 투자도 많이 받았고, 좋은 인재도 많이 채용한 쿠팡, 숨고, 당근마켓과 같은 회사를 이기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쉽지 않은 거와 못 하는 거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나는 아무리 이미 존재하고 있는 시장의 강자가 있어도, 이들보다 더 잘 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숨고나 당근마켓은 전형적인 수평적 마켓플레이스다. 숨고는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공급자와 이들의 서비스를 필요로하는 수요자를 연결해주는 플랫폼이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웬만한 분야의 서비스를 모두 다 제공한다. 지금 숨고에 들어가 보면 각종 레슨, 홈/리빙, 이벤트, 비즈니스, 디자인/개발, 건강/미용, 알바 등과 같은 카테고리가 있는데, 결국 모든 분야에서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해주는 수평적 마켓플레이스다. 당근마켓도 비슷하다. 지역기반이지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물건들을 사고팔 수 있다. 즉, 세상의 모든 제품을 공급자와 수요자가 중고거래할 수 있는 수평적 마켓플레이스다. 두 플랫폼 모두 수평적으로 모든 걸 다루기 때문에, 커버하는 분야가 광범위하고, 이렇게 광범위 하므로, 겹치는 분야에서 사업을 하면 이 글 초반에 언급했던 그런 질문들을 많이 하는 것이다.
수평적 마켓플레이스는 모든 분야의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해주기 때문에, 볼륨의 싸움에서는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면, 약점 또한 많은데, 대표적인 약점이 전문성의 부재이다. 즉, 너무 많은 분야에 있는, 너무 많은 사용자를 수용하다 보니, 각 분야의 특성을 고려한 마켓플레이스를 만들기보단, 한 번에 모든 산업/시장/공급자/수요자를 만족시키기 위한 보편적인 마켓플레이스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즉, 수평적 마켓플레이스에 존재하는 모든 수직마켓에 하나의 통일된 공식을 적용하는 게 이들의 비즈니스이다. (내가 직접 해보진 않았지만)예를들면, 숨고에서 반려견 산책해 줄 사람을 구하면, 숨고의 일반 프로세스를 따라서, 펫시터들이 견적을 보내고, 내가 견적을 수용하면 둘이 날짜와 시간 등의 세부사항을 채팅으로 조율한 후에 공급자가 수요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숨고의 다른 카테고리를 사용해도 공급과 수요를 매칭하는 프로세스는 동일하다.
그런데, 펫시터만을 매칭해주는 도그메이트라는 수직적 마켓플레이스가 있다. 도그메이트를 사용해보면,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해주는 프로세스가 훨씬 더 정교하고 전문적이라는걸 알 수 있다. 개가 몇 살인지, 어떤 종인지, 대형견인지 소형견인지, 사람과 잘 어울리는지, 다른 개들과 잘 어울리는지 등등 기본적으로 나한테 가족 같은 반려견을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맡길 때 최대한 사고가 안 나고, 서로의 경험이 유쾌할 수 있도록, 상당히 전문적으로 매칭 프로세스를 설계했다. 또한, 펫시터들이 반려견을 산책시키거나 돌봐주면서 주인에게 정기적으로 사진과 동영상, 그리고 반려일지까지 공유하게 하는 아주 세심한 프로세스가 플랫폼에 녹아 있다. 반려견돌봄이라는 특정 버티컬에서 요구되는 이런 중요한 전문성이 도그메이트라는 수직적 마켓플레이스에 녹아들어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숨고와 같이 큰 수평적 마켓플레이스가 존재해도, 도그메이트와 같은 전문적인 수직적 마켓플레이스가 잘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당근마켓도 비슷하다. 당근마켓을 보면 중고명품을 사고파는 공급자와 수요자들이 상당히 많다. 그런데 수천만 원짜리 명품시계를 사고파는 프로세스가, 1,000원 짜리 잡화 사고파는 프로세스랑 동일하다. 위의 숨고와 같이 모든 분야에 하나의 통일된 프로세스를 적용하는 수평적 마켓플레이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새 많이 생기고 있는 중고명품 앱들을 보면, 고가의 명품을 안심하고 사고팔 수 있게 최적의 프로세스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해준다. 예를 들면, 직접 명품을 수거하거나, 진품 여부를 검증해주거나, 또는 위탁 판매해주거나 하는, 모든 걸 다 거래하는 수평적 마켓플레이스가 절대로 구현하지 못하는 수직적 마켓만을 위한 플랫폼 경험을 제공한다.
시장 규모가 작은 수직적 마켓도 있겠지만, 여기서 언급한 반려동물 돌봄 또는 중고명품과 같은 시장은 어마어마하게 큰 시장이다. 그래서 수평적 마켓플레이스와 수직적 마켓플레이스 사이에 존재하는 균열을 – 그리고 수평적 마켓플레이스가 수평적으로 더 확장할수록 이 균열은 커지고, 균열이 클수록 기회는 커진다 – 잘 활용하면 좁지만 아주 깊은 시장에서 큰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다.
*완전공시: 숨고, 당근마켓, 도그메이트는 스트롱 투자사입니다.
<이미지 출처 = 크라우드픽>
익명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궁금한 점은 마켓플레이스는 B2B의 한 형태로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 기업인 경우가 아닌가 합니다. 숨고나 당근마켓, 도그메이트가 B2B라고 볼 수 있는지요…
Kihong Bae
안녕하세요. 마켓플레이스는 B2B도 있지만, 말씀하신 숨고나 당근마켓 모두 B2C 마켓플레이스 입니다. 수요와 공급이 존재하면 모두 마켓플레이스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 글 참고하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https://www.thestartupbible.com/2019/04/10-factors-of-a-good-digital-marketplace-such-as-uber.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