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l

선택, 결정, 그리고 책임

주말에 TV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어벤져스 인피니티워를 상영하길래, 이미 두 번 봤지만, 또 봤다. 슈퍼히어로물 치곤 이야기가 꽤 복잡해서 세 번째 보니까 또 새로운 것들이 보여서 여전히 재미있게 보긴 했는데, 이 중 오늘 글과 관련된 건 닥터스트레인지의 5번째 스톤이다. 타노스가 아이언맨을 죽이려고 하자, 닥터스트레인지가 5번째 스톤(타임 스톤)을 넘겼고, 이 타임스톤으로 시간을 되돌려서 6번째 스톤까지 얻은 후에 지구를 파멸시킨다. 아이언맨이 닥터스트레인지한테 왜 스톤을 타노스에게 줬냐고 원망하니까, “There was no other way(=다른 방법이 없었어 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을 들으니까 얼마 전에, 내가 아는 분이 오랫동안 시도하던 일을 갑자기 중단했고, 내가 계속하지 왜 그랬냐고 물어보니,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 일이 생각났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 말을 너무나 자주 하고, 너무나 자주 듣는다. 이 분을 비롯해서 올해만 해도 이미 나는 이 말을 주위에서 너무 많이 들었다. 전에 나도 이 말을 습관처럼 하긴 했는데, 어느 순간 부터 의도적으로 잘 안 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누구나 다, 그 어떤 상황에서든, 엄밀히 말하면 선택의 여지는 있지만, 우리가 특정 선택을 한 것이다. 주로, 내 의지와는 반대의 선택을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라는 말을 하는걸 나는 자주 경험했다. 인피니티워에서 실은 닥터스트레인지는 미래를 봤기 때문에, 그리고 그나마 최선의 선택은 타노스한테 스톤을 주는거라서 그렇게 선택을 한 것이다. 선택의 폭은 좁았지만, 나름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이게 맞는 선택인지, 틀린 선택인지는, 시간만이 알려 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선택의 여지는 있었다.

모든 게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결정의 연속이고, 상황이 아무리 나빠도, 모든 결정에는 선택의 여지가 항상 있다. 쉬운 선택도 있고 어려운 선택도 있지만, 어쨌든 옵션은 있으니 신중하게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 오히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라고 하는 말은 책임을 회피하거나 좋은 게 좋은 거라는걸 합리화하기 위한 변명인 거 같다.

선택의 여지는 항상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선택의 폭은 좁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있었고, 나는 선택을 했고, 이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내가 진다.”라는 말을 했으면 좋겠다.

마켓플레이스 수수료

우리는 수요와 공급을 연결하고 매칭해주는 마켓플레이스 비즈니스에 많은 투자를 했고, 아직도 계속 이 분야의 회사를 많이 만나고 있다. 과거에 나는 마켓플레이스에 대한 글을 여러 번 쓴 적이 있는데, 이미 시장에 존재하고 있는 수요와 공급, 그리고 둘 사이에 존재하는 비효율성을 기술로 해결하는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잘하면 확장성에 있어서는 그 어떤 비즈니스도 따라올 수 없는 장점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마켓플레이스야말로 인터넷에 가장 최적화됐고, 인터넷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비즈니스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오프라인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수요와 공급을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건데, 인터넷만큼 이 비효율성을 잘 해결할 수 있는 인프라와 기술은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 수요와 공급은 거의 대부분 사람과 사람이고, 마켓플레이스는 오히려 인터넷을 이용해서 더 많은 사람을 플랫폼으로 흡입시키기 때문에, 사람을 기계로 대체하는 다른 인터넷 기반 비즈니스보단, 시장의 저항을 덜 받는 좋은 비즈니스라고 생각한다.

마켓플레이스를 운영하는 회사가 돈을 버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대부분 수수료 기반의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한다. 수요와 공급이 매칭돼서 거래가 일어나면, 거래되는 비용의 일정 부분을 수수료로 가져가는 게 가장 일반적인 수익모델이다. 우리 투자사 숨고와 같은 마켓플레이스는 거래 금액 기반의 수수료가 아니고, 공급자가 수요자와 매칭되기 위해서 보내는 견적당 과금을 하는, 소위 말하는 lead generation 수익 모델을 사용하고 있는데, 요샌 또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마켓플레이스들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고, 수수료와 lead gen 두 가지 방식을 적절히 혼합해서 돈을 버는 스타트업도 많다.

내가 아는 마켓플레이스의 80% 이상이 거래 수수료 기반의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하고 있는데, 여기서 많은 창업가들이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마켓플레이스나 수요와 공급이 모두 원활하진 않다. 어떤 비즈니스는 공급이 훨씬 더 풍부하고, 어떤 비즈니스는 수요가 더 풍부하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성공적인 마켓플레이스는 수요와 공급 중 더 어려운 부분을 확보하는 나름의 공식이 있고, 이 공식을 계속 정교하게 만들면서, 수요와 공급의 밸런스를 잘 맞춘다. 그리고, 모두 다르지만, 내가 아는 대부분의 마켓플레이스는 수요보단 공급을 확보하는 게 훨씬 더 쉬운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이건 말이 되는 게, 마켓플레이스는 새로운 산업을 만들기 보단, 이미 존재하는 산업에서 효율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존재하고 있는 택시기사, 택배기사, 가사도우미, 부동산중개업자와 같은 공급자들을 플랫폼에 탑재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공급자 분들에게는, 이 마켓플레이스는 더 많은 고객을 만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채널 중 하나이기 때문에, “why not?” 이라는 생각으로 흔쾌히 온보딩을 한다. 하지만, 모든 마켓플레이스가 공급이 쉬운 건 아니다. 펫시터 중개 플랫폼인 우리 투자사 도그메이트의 경우, 수요는 많지만, 오히려 이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공급자가 턱없이 부족하다. 펫시터라는 산업 자체가 새롭고, 생명을 다루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제대로 교육을 받은 펫시터(=공급자)를 확보하는 게 엄청 어렵기 때문이다.

창업가들은 본인이 운영하는 마켓플레이스의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잘 이해해야하며, 더 확보하기 어려운 부분을 어떻게 하면 잘 확보하고, 이들이 우리 플랫폼에서 이탈하지 않게 하려면, 뭘 더 해야 하는지 항상 고민해야 하는데, 내가 아는 많은 분들이 수수료 체계부터 틀리게 잡고 있다. 대부분 그냥 전체 거래금액의 20% ~ 30%를 공급자 또는 사용자한테 일방적으로 과금하거나, 아니면 양쪽에 반반씩 과금하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이건 우리 마켓플레이스의 수요와 공급의 특성에 따라서 유연하게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급자를 확보하는 게 더 어려운 비즈니스라면, 공급자에게는 수수료를 아주 적게 과금하고, 확보하기 쉬운 수요자에게 수수료 대부분을 과금해야 한다. 반대로, 사용자를 확보하는 게 더 어려운 비즈니스라면, 사용자에게는 수수료를 적게 과금하고 확보하기 쉬운 공급자에게 수수료 대부분을 과금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간단한 논리인데, 많은 분들이 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의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우리가 비즈니스를 하는 시장에 공급자는 100명 밖에 없고, 사용자(=수요)가 1억 명 있는데, 거래금액의 20%를 공급자에게만 과금하면, 공급자의 이탈은 계속 발생할 것이고, 스케일을 절대로 만들지 못할 것이다. 이런 비즈니스는 공급자에게는 수수료를 아예 받지 말고, 오히려 사용자에게 더 많은 수수료를 지불하게 해야 한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마켓플레이스는 에어비앤비인데, 이 회사도 이런 수수료 정책을 잘 만들었다. 에어비앤비 플랫폼을 보면, 공급(=리스팅된 집)은 500만 정도이고, 수요(=게스트)는 1.5억 명 정도이다. 즉, 수요가 공급보다 압도적으로 더 많고, 에어비앤비의 사장 브라이언 체스키의 말을 들어보면 에어비앤비의 병목은 공급이라고 항상 강조한다. 공급이 부족한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수요자보단 공급자들에게 더 유리한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해야지만 공급자들이 떠나지 않고 계속 에어비앤비라는 플랫폼에 남아 있을 수 있고, 이 회사의 과금 정책에는 이게 매우 잘 반영되어 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서 숙소를 예약하면, 사용자는 전체 숙박 비용의 6-12%를 서비스 이용료로 지급해야 한다. 즉, 1박에 $100인 숙소를 10일 예약하면, 숙박비 $1,000 + 서비스 이용료 $60-$120이 수요자에게 과금된다. 하지만, 집주인인 공급자에게는 전체 숙박비 $1,000의 3%인 $30만 수수료로 과금이 된다. 이렇게 공급자에게 저렴한 수수료를 과금해야지만 항상 부족한 공급자들이 에어비앤비라는 플랫폼을 떠나지 않는다. 손님들은 이 수수료가 너무 과하다 싶어서 플랫폼을 떠나더라도 새로운 수요를 획득하는 건 어렵지 않기 때문에 사용자에게 대부분의 수수료를 부담하게 하는 거다.

마켓플레이스를 운영하는 창업가라면, 본인의 비즈니스를 잘 분석하고,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과금체계에 이걸 잘 반영해야 한다. 안 그러면, 항상 한 쪽이 부족해서 돈을 벌지 못 하는 비즈니스를 운영하게 될 것이다.

Moderate Venture Markets

얼마 전에 TechCrunch에서 “Moderate Sized Market(적당한 크기의 시장)”에 대한 재미있는 기사를 읽었다. 스타트업 펀딩 규모나 빈도의 관점에서 보면, 미국, 특히 실리콘밸리와 같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고, 투자받는 규모도 어마무시한 벤처허브들이 있고, 이와 반대로 펀딩 딜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벤처사막이 있다. 그리고 이 중간 어딘가에, 엄청나진 않지만, 그래도 계속, 꾸준히, 적당한 규모의 펀딩이 일어나는 곳이 있는데, 이런 곳을 적당한 규모의 벤처시장이라고 한다.

동일한 개념을 국가에 적용하면, 1년에 1조 원 ~ 3조 원 사이의 펀딩이 일어나는 나라를 moderate sized market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시아의 인도네시아, 한국, 홍콩, 남미의 브라질, 콜롬비아, 유럽의 스페인, 스웨덴, 네덜란드, 스위스, 그리고 호주, 이렇게 10개 국가가 여기에 속한다. 실은, 모든 펀딩이 공개적으로 발표되는 건 아니다. 우리도 지난 12개월 동안 30개가 넘는 투자를 했지만, 이 중 공개적으로 발표된 딜은 5개도 안 되기 때문에, 테크크런치에서 분석한 내용이 완벽할 순 없지만, 다양한 데이터를 오랫동안 수집하고 분석해왔기 때문에, 이 중간 규모 벤처 시장에서의 큰 트렌드는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한 거 같다.

일단, 이 시장의 벤처펀딩의 특징은, 기복이 심하다는 것이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 전체펀딩규모가 연 300% 성장하거나, 100% 감소하면, 투자자들이 난리가 날 텐데, 이 적당한 규모의 시장에서 펀딩이 년 50% 이상 성장하거나 감소하는 건 흔한 일이다. 그 이유는, 소수의 메가딜이 다수의 작은 딜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의 유니콘 고젝이 2018년에 $2.4B 투자를 받았는데, 그 해 인도네시아의 전체 펀딩은 $3.88B 였다. 그 다음 해2019년도는 이런 메가딜이 없었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의 전체 펀딩은 $1.01B로 74% 대폭 하락했다. 미국에서 수치가 이렇게 크게 감소하면, 경기가 안 좋거나, 또는 투자환경이 급격하게 나빠진 게 그 이유일 텐데, 인도네시아의 경우는 다른 딜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큰 딜이 시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남미 콜롬비아도 마찬가지다. 2019년에 소프트뱅크가 콜롬비아의 쿠팡인 Rappi에 $1B을 투자했고, 이로 인해서 이 나라의 전체 펀딩이 급상승했는데, 아마도 올 해 Rappi가 다시 대규모 투자를 받지 않거나, 또는 다른 유니콘 회사가 등장하지 않으면, 콜롬비아의 펀딩은 급하락할 것이다.

한국의 데이터는 약간 의심스럽긴 하지만, 이 10개 국가 중 가장 변화폭이 작다(2018 | $1.97B에서 2019 | $2.13B로, 8% 증가). 그래도 소수의 대형 딜이 전체 펀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패턴은 비슷한 거 같다. 2018년 펀딩의 대부분은 쿠팡이 받은 투자일거 같고, 2019년은 위메프나 토스의 대규모 투자이지 않을까 싶다.

또 한가지 괄목할만한 트렌드는 이 시장의 펀딩이 성장하는 이유는, 딜 당 펀딩규모가 커져서이지, 딜의 개수가 증가해서는 아니다. 10개 국가 중 절반 이상의 펀딩이 년 50% 이상 성장했다고 하지만, 펀딩된 스타트업의 숫자를 보면 변화가 거의 없다. 한국을 비롯한 다른 9개국의 VC가 그들이 좋아하는 회사에 더욱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지, 더 많은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미국의 스타트업은 2019년도에 총 $100B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는데, 여기서 조사한 10개국 전체 펀딩을 합쳐도 $12B이 안 되는 걸 보면, 년간 1조 원 ~ 3조 원 펀딩하는 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아직 충분히 있다는 게 이 기사의 결론인 거 같다.

I don’t know

해마다 정확한 통계를 내봐야겠다고 하면서 잘 못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내가 일 년에 만나는 창업가/회사와의 미팅 횟수에 대한 통계이다. 미팅할 때마다 카운트를 하는 게 가장 정확한 방법인데, 어느 순간 이걸 깜박한다. 작년도 정확한 카운트를 하진 않았는데, 깊게 생각하지 않고 대략 세어보면, 나는 한 400~500개 회사와 미팅을 한 것 같다. 즉, 매우 많은 사람을 만났고,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러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내가 창업가들한테 가장 듣고 싶었지만, 가장 듣지 못 했던 말 중 하나가 바로 “잘 모르겠네요(I don’t know)” 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기를 싫어한다. 남한테 항상 본인은 강하고, 일 잘하고, 모든 걸 다 안다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은 습성이 있다. 나도 다르지 않기 때문에, 잘 안다. 특히, 창업가들은 자존감도 세고, 자존심도 세고, 일반 사람들보단 능력도 뛰어나기 때문에 자신의 약점이나 무지함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걸 정말 싫어한다. 그리고, 나 같은 투자자한테는 돈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창업가의 나약함이 드러나고, 이러면 투자자들이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나약한 창업가는 투자자들이 싫어한다. 안 그래도 힘든 스타트업 인생인데, 나약한 창업가는 절대로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만들 수 없다. 그런데 실은 “잘 모르겠네요”는 나약함의 상징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용기 있고, 자신 있고, 강한 사람이 오히려 솔직하고 당당하게 자신이 모르는 거에 대해서는 “I don’t know”라는 말을 할 수 있다. 나는 창업가들과 미팅할 때 내가 물어보는 모든 질문에 대한 정답을 가진 분들을 오히려 경계한다. 이런 창업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을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아마도 무지를 인정하면 불이익을 당할 거라고 많은 사람이 생각하고, 이런 성향은 비즈니스 세계에서 더욱더 두드러진다고 한다. 실은 나도 과거에는 모르는걸 아는 척 한 적이 상당히 많고, 요새도 가끔 그러기도 하지만, 남이 아무리 “저 인간은 투자한다면서 그런 것도 몰라?”라는 생각을 하더라도, 모르면 무조건 모른다고 인정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실은, 모르는 걸 안다고 거짓말하면 그때는 남도 속이고, 자기 자신도 일시적으로 속으면서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정말 좋지 않은 결과가 만들어 진다. 모르는 걸 아는 척 하면, 내가 더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스스로 제한하고, 언젠가는 상대방이 내가 거짓말 한 걸 알게 되기 때문에 신뢰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우리 개 마일로가 많이 아파서 얼마 전에 큰 수술을 했다. 강남에서 가장 크고, 비싸고, 잘 한다고 소문난 동물병원에서 수술을 했는데, 수술 후 수의사로부터 수술경과와 마일로 몸 상태에 대해서 자세히 들을 수 있게 상담을 했다. 그런데 뭔가 잘 모르고, 내가 물어보는 대답에 대한 만족할 만한 답변을 계속 주지 못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이후에 우리는 동물병원을 바꿨는데, 어떤 조사에 의하면 의사들이야 말로 자기 자신과 환자들에게 무지를 고백하는 것에 대해서 가장 불편함을 느낀다고 한다. 의사들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자신의 능력과 권위, 그리고 전문성에 위협이 된다고 느낀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만약에 이 수의사가 나한테 솔직하게 잘 모르겠다고 했다면, 나는 오히려 계속 같은 동물병원에 다니지 않았을까 싶다.

영어에서 말하기 가장 어려운 세 단어는 “I love you”가 아니다. 실은 그 세 단어는 “I don’t know”라고 한다. 그만큼 자신의 무지를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건 힘들고, 어떤 사람들한테는 고층 건물에서 뛰어 내릴 때 보다 더 큰 공포심을 갖게 하는 거라고 한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배우려면, 가장 중요한 건, 배워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하는데, 그 인정의 시작은 “잘 모르겠습니다” 이다.

워렌 버핏 바이블

아마존 책 분야에서 ‘Warren Buffett’으로 검색해보면 1,000권 이상의 결과가 나온다. 이만큼 워렌버핏은 많은 분께 연구대상이자 배울 점이 많은 비즈니스맨이다. 나도 버핏의 팬이고, 워렌버핏 관련 책을 꽤 많이 읽었다. 이번 설 연휴에 ‘워렌버핏 바이블(Warren Buffett on Business)’을 읽었는데, 그동안 내가 알던 내용을 다시 복습할 수 있었고, 새로운 내용을 배울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나는 이 블로그에 서평을 거의 안 쓰지만, 책 내용이 좋아서 몇 자 적어본다. 마지막으로 읽은 버핏 관련 책이 ‘워렌버핏의 주주서한’인데, 이 책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워렌버핏 바이블은 워렌버핏의 주주서한이 출간 된 이후의 주주서한이 정리되어 있고, 해마다 오마하에서 열리는 버크셔해서웨이의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현장에서 버핏과 파트너 찰리 멍거에게 던진 질문과 이에 대한 답변을 정리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더 재미있게 읽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부분은 “7장 | 버크셔의 기업 문화”와 “14장 | 학습과 삶의 지혜”인데 개인적으로 봤을 때 여기서 버핏의 명언들이 가장 많이 나온다. 버핏에 대한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일을 하는 방법과 일을 대하는 태도의 정석을 배울 수 있는 비즈니스 교과서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읽을수록 일 보다 오히려 인생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인생 바이블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두 부분에서 나오는, 누가 봐도 너무 당연하지만, 대부분 실천하지 못 하는, 그래서 너무나 좋아하는 문구들이다:

1/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람들에게 잘 어울리는 원칙’이 아니라 ‘원칙에 잘 어울리는 사람들’입니다.
2/ ‘우리가 어떤 사업을 하는가?’는 중요하지만, ‘우리가 어떤 사업을 거절하는가?’는 더 중요합니다.
3/ 우리가 완벽할 수는 없지만 완벽해지려고 노력할 수는 있습니다.
4/ 우리가 돈을 잃을 수는 있습니다. 심지어 많은 돈을 잃어도 됩니다. 그러나 평판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단 한치도 잃어서는 안 됩니다.
5/ “남들도 다 그렇게 해.” 이 말이 도덕적 판단을 평가할 때 나온 말이라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6/ 정당성이나 적법성 때문에 주저하는 일이 있으면 내게 전화해주세요. 그러나 그렇게 주저할 정도라면 경계선에 매우 근접했다는 뜻이므로 포기해야 합니다. 이럴 경우 그냥 경계선을 벗어났다고 생각하고 잊어버리세요.

버크셔해서웨이라는 기업은 너무나도 멋있고, 지금까지의 눈부신 실적이 이를 증명해준다.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부러워할 만한 요소를 너무 많이 갖고 있는 회사다. 하지만, 버크셔해서웨이보다 훨씬 멋있는 건 이 회사의 문화를 만든 워렌버핏과 그의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인생에 대한 철학이다. 경영인이든 비경영인이든 모든 사람이 배울 점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버크셔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어떤 주주가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다고 한다.
“버크셔해서웨이는 필요 이상의 자금을 보유 중이고, 주주들은 버핏 같은 억만장자가 아니므로, 이사회는 매년 상당액의 배당 지급을 검토한다.”

그래서 이 제안에 대해서 버크셔해서웨이 A주와 B주 주주들을 대상으로 투표가 진행됐는데, 투표의 98%가 이를 반대했단다. 즉, 본인들에게 배당 지급하지 말고, 그냥 모두 좋은 기업에 재투자하라는 의미다. 도대체 이 세상 어디에 이런 주주들이 또 있을까? 버크셔해서웨이이기에, 그리고 워렌 버핏이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워렌버핏이 항상 옳진 않았다. 기술회사와 기술주를 철저히 무시하고 배제하던 버핏도 아마존과 구글을 완전히 놓친 점을 공개적으로 후회했는데, 최근 들어 기술주를 보는 시각을 바꿨고, 작년에 아마존 주식을 꽤 많이 구매했다. 또한, 우리 같은 초기 벤처 투자자는 돈 잃을 위험을 감수하는 게 일상생활의 일부지만, 버핏은 돈을 벌려고 돈 잃을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라는 말을 자주 강조한다. VC 투자랑 버핏 투자는 많이 다르긴 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철학과 태도는 배울 점이 너무 많아서, 이 책은 모든 분들에게 강추한다.

과거 워렌버핏 관련 포스팅:
버핏의 기업지배구조
워렌 버핏처럼 하라
워렌 버핏의 조언과 스타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