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l

팀의 몸값이 회사의 밸류에이션이다

처음 창업하고, 창업한 지 얼마 안 돼서 딱히 수치가 있는 제품도 없고, 이전에 아무런 실패나 성공의 경험도 없고, 과거 직장 경력도 5년 미만인 창업팀의 밸류에이션은 어떻게 정하는 게 좋을까? 우리도 초기 투자를 주로 하니까 이런 팀을 자주 만나고, 이런 팀에 투자하게 되는 경우, 회사의 가치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을 자주 하게 된다. 얼마 전에도 이런 팀을 만났다. 이전 스타트업에서 3년 정도 일 한 공동 창업가 두 명이 힘을 합쳐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고, 아직 MVP 단계도 아니라고 생각되는 제품을 만들었고, 과거 스타트업에서 일 한 경험은 있지만, 본인들이 실제로 뭔가를 창업한 경험은 없었다. 하지만, 하고자 하는 비즈니스와 거의 동일한 모델이 미국에서 엄청나게 잘 성장하고, 투자도 많이 받았다는 걸 계속 나한테 영업하면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기업가치는 30억 원 ~ 50억 원이라고 은근슬쩍 주장했다.

솔직히 나는 창업가들이 원하는 밸류에이션에 대해서 이게 높다 낮다라는 이야기는 잘 안 한다. 밸류에이션이라는게 정말 고무줄 같은 거고, 나는 그 가격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 그 가치에 투자하겠다는 투자자가 시장에 있다면 그 밸류에이션이 맞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한두 번 만난 팀이고, 내가 잘 모르는 비즈니스라서, 밸류에이션에 대해서 내가 먼저 뭐라고 하진 않는다. 하지만, 창업가들이 자주 물어본다. “대표님은 이 밸류에이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면서. 그러면 나는 옳고 틀리고의 여부를 떠나서,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걸 말해주면서, 이건 정말 100% 내 생각이니까, 일단 시장에 그 밸류에이션을 받아들이는 투자자가 있는지 없는지 “쇼핑”을 좀 다녀보라고 한다.

위에서 말 한 창업가들도 나한테 계속 본인들이 생각하는 30억 ~ 50억 (물론, 본인들이 생각하고 원하는 건 50억 원이겠지) 밸류에이션이 내가 보기에 어떤지 의견을 굳이 듣고 싶다고 해서, 나는 이분들한테 내가 솔직하게 생각하는 밸류에이션은 3억 원이라고 했다. 좀 충격적이라는 표정이 눈에 확 들어왔는데, 내가 왜 이 회사가 3억 원짜리인지 설명을 좀 했다. 일단 특정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확보하기에는 두 명의 공동창업가의 직장경력이 너무 짧아서 새로 시작하는 비즈니스는 그냥 완전히 맨땅에서 헤딩하는 거와 똑같고, 실패했든 성공을 했든 과거에 창업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으면 이건 상당히 높게 평가될 텐데 그것도 이 회사는 아녔다. 그러면 나는 주로 이 두 명의 공동창업가의 몸값이 바로 회사의 현재 밸류에이션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보기에 두 분이 연봉을 많이 주는 직장에 가도 각각 최대 1.5억 원 이상은 못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 1년 연봉만을 기준으로 하냐면, 이 스타트업의 수명이 1년 이상이 안 될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3억 원이라는 회사의 밸류에이션이 나온다.

만약에 이 두 분이 직접 창업한 경험이 있다면, 그리고 진짜로 회사를 만들고, 사람을 고용하고, 제품을 만들고, 고객을 만들었다면, 그 규모와는 상관없이, 그리고 결과가 성공이든 실패든, 나는 훨씬 더 높은 밸류에이션을 줬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값진 경험은 대한민국 인구의 5%도 해보지 못하는거라서 그 경험 자체가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성공이나 실패 경험이 전혀 없다면, 창업가들의 몸값이 높을 수가 없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 창업가들한테 내가 준 조언은 다음과 같다. 어차피 내가 말한 3억 원이라는 밸류에이션은 맘에 들지 않고, 이 밸류에이션에 그 어떤 금액을 투자받더라도 희석이 너무 심하니까, 오히려 그런 걸 방지하게 위해서 우리가 회사의 밸류에이션을 인위적으로 조금 높여서 5억 원에 투자하는 옵션이 하나 있고, 아니면 지금 투자를 받지 말고, 어떻게든 버티면서 제품을 만들고 출시해서, 이 제품을 시장이 원한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초기 수치를 갖고 훨씬 더 높은 밸류에이션에 투자를 받는 옵션이 있다고 했다. 전자의 경우, 일단 희석이 많이 되고, 투자금이 많진 않지만, 조금이라도 돈을 투자받는다는 장점이 있고, 후자의 경우, 지금은 배고프지만, 수치를 조금이라도 만들 수 있다면, 훨씬 더 높은 밸류에이션에 괜찮은 투자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팀은 그래서 후자의 옵션을 선택했고, 나는 가끔 업데이트를 달라고 했다.

아무것도 없는데 가끔 터무니없이 자신의 몸값과 회사의 밸류에이션을 높게 평가하는 팀이 있는데, 다른 투자자는 모르겠지만 나는 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회사의 가치를 생각하니, 참고하면 좋을 거 같다.

조정하며 성장하기

4대 메이저 테니스대회 중 하나인 윔블던이 얼마 전에 끝났다. 테니스 대회야 항상 재미있지만, 이번 윔블던은 내가 좋아하는 로저 페더러 선수가 준결승에서 라파엘 나달을 이겼고, 노박 조코비치와 결승에서 5시간 접전 후에 비록 지긴했지만, 잊지 못할 경기를 펼쳐줘서 정말 행복했다.

로저 페더러선수를 내가 좋아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곧 40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큰 부상 없이 꾸준히 세계 최강의 테니스 실력을 구사한다는 점이 대단한 거 같다. 나도 테니스를 오래 쳤고, 단순 취미가 아니라 정말 serious 하게 테니스를 친 경험에 비춰보면, 페더러만 한 선수는 앞으로 나오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선수는 능력도 타고났지만, 주변 환경에 굉장히 잘 적응하면서, 내/외부 환경이 변할 때마다 스스로 조정하는 능력이 뛰어난 거 같다. 내부 환경의 변화란 바로 페더러 선수의 생체시계를 말한다. 나이가 들면서 운동능력이 떨어지고, 인지능력도 떨어지는데, 40대의 선수가 아직도 20대의 몸으로 하던 방식으로 테니스를 치면 당연히 몸에 무리가 가고 부상으로 고생할 텐데, 페더러는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떨어지고, 유연성이 떨어지면서, 여기에 맞춰서 힘으로 치기보단 최대한 부드럽게 몸의 회전을 이용하고, 체력 안배를 잘하면서 자신의 테니스 스타일을 조정하고 있다. 외부 환경의 변화란 장비가 더 좋아지고, 더 무시무시한 경쟁자의 출현이다. 테니스 라켓은 더 가벼워지고, 볼은 빨라지기 때문에, 옛날 장비에 길든 몸 또한 새로운 장비와 기술에 조정을 해야지만 부상을 방지하면서, 출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또한, 신인 테니스 선수의 나이는 계속 더 어려지고 체력은 강해지기 때문에, 페더러같이 나이 든 선수는 힘과 스피드보단 경험과 노련미로 승부하는 쪽으로 스타일을 조정해야 한다.

내가 잘 아는 분야라서 테니스를 예로 들었지만, 다른 운동도 크게 다르지 않은 거 같다. 그리고 비즈니스와 투자도 이런 점이 적용될 수 있을 거 같다. 얼마 전에 나보다 투자 경험이 훨씬 더 많은 VC 선배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좋은 투자를 오랫동안 잘하기 위해서는 쓸 근육과 안 쓸 근육을 잘 구분하고, 힘을 써야 할 때랑 힘을 빼야 할 때를 잘 판별해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좋은 투자와 나쁜 투자를 반복하고 – 주로 나쁜 투자를 더 많이 한다 – 투자 경험이 쌓이면서, 회사와 창업가를 판단하는 기준 또한 계속 조정돼야 하는데, 내부와 외부의 환경 변화에 따라서 자신을 조정하지 못하면 좋은 투자를 계속할 수가 없다.

전에도 내가 몇 번 말했던 거 같은데, 나는 나이가 들면서 밀레니얼들의 감을 따라가는데 계속 뒤처지고 있다. 분명히 과거의 기준으로 봤을 때는 잘 될 리가 없는 서비스인데, 내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결과가 나오는 걸 보면서, 이런 시대의 변화에 맞춰 스스로 조정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어서 그동안 내가 배우고 경험했던 걸 계속 미세하게 조정하는 노력을 하는데, 이게 참 쉽지 않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게 바뀌듯이, 나 자신도 이 변화에 발맞춰서 계속 조정해야 한다.

습관의 노예

한국에서는 거의 지명도가 없는 다니엘 스틸이라는 작가가 있다. 그런데 이분은 현존하는 작가 중 가장 많은 책을 판 작가이고, 출판 역사 전체를 따져봐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파워 작가다. 지금까지 179권의 책을 썼는데, 43개의 언어로 번역됐고, 이 중 22개는 TV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70세가 넘었지만, 아직도 일 년에 7개의 책을 출판하고 있고, 하루에 20시간씩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나도 고등학교/대학교 때 다니엘 스틸의 소설을 좀 읽었는데, 요샌 소설을 거의 안 읽어서, 이분이 작품 활동을 활발히 안 하는 줄 알았는데, 얼마 전에 읽은 기사에 의하면,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더욱더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스틸 선생에 대한 재미있는 내용이 많은 기사이지만, 이분이 계속 좋은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글 쓰는 습관 때문인 거 같다. 본인을 스스로 “습관의 노예(=creature of habit)”라고 할 정도로, 수십 년 동안 같은 습관을 반복하고 있는데, 아침으로 토스트 한 조각과 아이스 커피 한잔을 먹고 있고, 오전 8시 반부터 무조건 사무실에서 집필을 시작하고, 오후에는 초콜릿을 먹으면서 글을 계속 쓰는 게 대표적이다. 또한, 그녀는 기분이 좋든 나쁘든, 몸이 아프든 건강하든,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해가 떠 있든, 죽었든 살았든, 무조건 책상에 앉아서 일을 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내가 아는 많은 예술인이나 작가들은 작품 활동을 불규칙적으로 하는데 – 가령, 영감이 떠오르면 72시간을 밤샘 작업하고, 영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며칠 쉬고 – 이 분은 50년 이상을 매일 ‘출첵’하고, 타자기 앞에서 글을 쓰는 게 본인의 장수 비결이라고 한다. 영화감독 우디 앨런도 비슷한 철학을 갖고 있는데, “하루에 3~5시간만 일하면 능률이 훨씬 더 오릅니다. 저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타자기 앞에 앉아 있어야 생산성이 높아져요.”라는 말을 한 걸 보면, 자신의 분야에서 잘 하는 사람 중, 다니엘 스틸과 우디 앨런과 같이 항상 같은 루틴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또다른 부류가 있는거 같다.

나는 스틸과 앨런 과에 속한다. 나도 뭔가를 계속 동일하게 반복하고, 습관화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블로그도 이런 습관의 결과물이고, 12년째 같은 습관으로 이 블로그를 유지하고 있다. 주중에는 자는 시간도 일정하고,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도 일정하다. 아침에 매일 운동하는 걸 습관화 했고, 확인만 하고 간단히 답해야 하는 이메일을 처리하고, 조금 더 시간을 투자해서 생각해야 하는 일을 처리하고, 미팅 일정 잡기 등, 업무와 관련된 일정을 소화하는 방식도 습관화해서, 항상 같은 루틴을 따른다. 이게 꼭 생산적이라고는 말할 순 없지만, 그래도 이런 습관에서 벗어나면 내 리듬이 깨지고, 깨진 리듬을 다시 복원하려면, 시간과 집중력이 배로 들기 때문에, 나는 기꺼이 이런 습관의 노예가 되는 걸 선호한다.

투자자와 소통하기

투자자 – 투자사와의 관계를 많은 분이 결혼에 비유한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그만큼 어렵고, 복잡하고, 섬세하기 때문에 이렇게 비유하는 거 같은데, 나는 우리 투자사와 스트롱의 관계가 결혼 정도까진 아니고, 서로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명확한 비즈니스 관계가 더 맞다고 생각한다. 이런 각도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책임이자 의무 중 하나가 서로 잘 소통하기가 아닐까 싶다.

솔직히, 소통이라면 좀 애매하기도 하고 광범위한 뜻이 포함되는데, 창업가와 투자자 간의 소통 중, 가장 기본적이지만,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간과되기 쉬운 게 투자자에 대한 비즈니스 업데이트/보고인 거 같다. 우리도 많은 회사에 투자했고, 투자계약서에 투자사는 투자자에 대해서 정기적으로 비즈니스 업데이트를 제공하는 게 명시되어 있지만, 이걸 종교와 같이 잘 실행하는 대표도 있고, 아예 정기적인 업데이트는 안 하고, 특별한 일이 발생할때만 – 안타깝게도, 이 특별한 일이 주로 회사의 잔고가 거의 바닥났거나, 비즈니스가 급격하게 안 좋아지거나 하는 그런 나쁜 상황일때 – 연락을 하는 대표가 있다. 실은, 스타트업 운영하는 거 정말 어려운 일이고, 일만 해도 하루 24시간이 모자라지만, 나는 우리 대표님들한테 그래도 시간을 만들어서 투자자들한테 매달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투자자’는 단지 스트롱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그 회사에 조금이라도 투자를 한, 개인과 기관 모두를 의미한다.

기본적으로 투자를 받았으면, 회사에 돈을 제공한 투자자들에게는 이 돈이 어떻게 사용되고, 어떤 비즈니스 결과가 만들어지고 있는지 업데이트를 하는 건 계약서를 떠나서, 너무나 당연한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고 창업가의 업무 시간에 방해가 될 정도로 많은 양의 보고를 너무 자주 해달라고 하는 건 절대로 아니다. 어떤 대표나 한 달을 마감하면, 비즈니스를 정리하고, 한 달 동안의 수치를 트래킹하고, 잘한 점을 정리하고, 잘 못 한 점도 검토하고, 현재 은행에 얼마의 캐시가 남아 있는지 등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처음에는, 이게 좀 어색하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가 발생하겠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우리 비즈니스에 가장 중요한 KPI들이 나올 것이고, 매달 이 KPI를 모니터링하고 트래킹하면서 우리가 뭘 잘하고 있고, 뭐가 부족한지를 감이 아닌 객관적인 수치를 기반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내부적으로 정리하는 자료를 그냥 그대로 투자자들과 공유해주면 되지 않을까 싶다. 시간을 많이 투자해서, 막 이쁘고 formal 한 자료를 만들 필요도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 남을 위해서 만드는 게 아니라, 우리 비즈니스를 스스로 평가하고 검토하기 위해서 만드는 그 내용을 그냥 공유하면 된다. 어떤 회사는 굉장히 자세하고 분석적인 자료를 만들기도 하고, 이런 자료를 보면 대표이사가 비즈니스를 이렇게 자세히 모니터링하고 트래킹한다는 사실에 우리도 가끔 놀랄 때가 있지만, 대부분 그냥 이메일로 내용을 공유한다.

이런 월간 업데이트를 투자자들과 공유하면 좋은 또 다른 이유는, 그냥 커뮤니케이션의 빈도를 높이는 데 있다. 이 글의 초반에서 말했듯이,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되는 대표의 특징은, 비즈니스가 급격하게 안 좋아질 때, 다급하게 연락이 온다는 점이다. 주로, 회사 통장에 한 달 치 월급 밖에 남아 있지 않거나, 직원이 대부분 퇴사해서 회사에 인력이 몇 명 안 남았을 때이다. 6개월 만에 이렇게 갑자기 연락이 와서 회사에 돈이 급하니까 투자를 검토해달라고 하거나, 다른 투자자를 소개해달라고 하면, 우린 당연히 적극적으로 같이 고민하고 도와주지만,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해서 힘들 때가 많다. 일단 회사의 현황을 파악하는 데만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속해서 소통하면서 회사의 상황에 대해서 잘 공유를 했다면, 투자자들도 어느 정도 준비를 하고, 회사에 현금이 바닥나고 있다는 사실을 수개월 전부터 알고 있었다면 상황이 조금 더 쉽게 해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대표의 우선순위 넘버 원은 무조건 비즈니스, 제품, 그리고 고객이다. 이걸 소홀히 하면서 투자자들한테 보고하기 위해서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건 우리도 원치 않은 거다. 하지만, 비즈니스를 매달, 매주, 매일, 검토하고, 트래킹하고, 모니터링하는 것 또한 위의 비즈니스, 제품, 고객이라는 상위 개념에 포함되는 중요한 일이고, 이걸 그냥 그대로 공유해 달라는 게 내 포인트이다. 만약에 이런 걸 전혀 하지 않는다면, 그 회사는 문제가 있다. 나는 우리 투자사들한테 이런 정기 업데이트 공유를 부탁하면서, 항상 포함해 달라고 하는 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현재 회사에 남은 현금 상황이다. 이걸 공유해줘야지만 투자자들도 다음번 펀드레이징은 언제부터 또 해야 하는지 같이 준비할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회사가 투자자들한테 바라거나 부탁하고 싶은 내용이다. 이건, 좋은 엔지니어를 소개해달라는 부탁이 될 수도 있고, 다른 VC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런 정기적인 보고나 업데이트를 잘 안 한다고 우리랑 연락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언제든지 연락은 되고, 내가 만나서 비즈니스 상황 업데이트를 받고 싶으면, 연락하고 만나면 되지만, 우리가 워낙 투자사가 많다 보니까, 나야말로 꼭 만나야 하는 일이 아니라면 주로 이메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때문에 이런 이메일을 통한 정기적인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벤치마킹하기

한국에만 존재하는 서비스나 컨셉을 미국으로 가져가서, 더 큰 글로벌 시장을 상대로 사업을 하는 대단한 창업가도 요샌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우리 투자사 대표도 이런 분들이 있다. 그래도, 아직은 미국에서 먼저 생긴 제품이나 서비스가 잘 되는 걸 보고, 이 컨셉을 한국으로 가져와서 그대로 베끼거나 또는 한국 시장에 조금 더 맞게 로컬라이즈하고 화인튜닝해서 사업을 크게 하는 창업가들이 더 많은 거 같다. 아무래도, 기존에 없던 비즈니스 모델을 한국보단 미국 창업가들이 더 먼저 잘 만들고, 규제와 같은 이슈가 상대적으로 덜 하기 때문에, 더 많은 투자를 더 빨리 받아서, 빠른 속도로 스케일을 만들기 때문에 이런 비즈니스를 보고, “저거 한국에서도 하면 잘 될 거 같은데”라는 생각으로 한국에서 출시하는 경우가 많은 거 같다.

이렇게 시작한 서비스를 설명할 때 주로 “우린 한국의 xyz(우버, 아마존, 위워크 등) 입니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이러면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을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투자자는 바로 이해하기 때문에 꽤 편하다. 나도 정확하게 세어 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만나는 회사의 50% 이상이 이렇게 미국에서 잘 되는 모델을 카피해서 한국에서 창업한 케이스가 아닐까 싶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았으면 하는 게, “카피”라고 하면 좀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다른 나라의 비즈니스를 베껴서 한국에서 하는 거에 대해서 나는 전혀 이상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미 남들이 잘 만들어 놓은 게 있으면, 우린 그 비즈니스를 잘 연구해서, 우리가 사는 시장에 맞게 출시하면 된다. 그만큼 시간도 절약하고, 비용도 절약하고, 무엇보다 이미 이 길을 걸어간 비즈니스가 잘 못 한거는 버리고, 잘 한 것만 참고하면 되는 이점이 있다.

그런데, “한국의 xyz” 또는 “한국형 xyz”를 만든다고 하는 창업가들한테 제품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을 하면 – 특히 UX와 서비스의 흐름 관련된 – 잘 모른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나는 이미 미국에서 이 제품을 유저로서 여러 번 사용해봤기 때문에, 서비스의 요모조모를 잘 알고 있는데, 이걸 만들겠다는 분들이 나보다 제품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게 이상해서 “혹시 이 서비스 직접 사용해봤나요?”라고 물어보면, 놀랍게도 많은 분이 직접 사용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어떤 분은 미국에 사는 친한 친구나 가족을 통해서 이런 서비스가 있는데 굉장히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이런 지인들을 통해서 서비스가 어떻게 작동되고 비즈니스 모델이 어떤지 간접적으로 접했다고 한다. 어떤 분들은 그냥 웹사이트만 몇 번 봤고, 또는 검색을 통해서 어떤 서비스인지 공부하고, 기사를 통해서 비즈니스 모델을 스터디했다고 한다.

이 중 한국에서는 아예 제공되지 않아서 사용조차 할 수 없는 서비스가 대부분이다. 미국 신용카드가 없어서 결제 부분을 경험하지 못한 분들도 있었고, 미국 주소가 없어서 직접 물건을 배송받아보지 못 한 분들도 있었다. 그리고 극소수이지만, 아주 쇼킹하게, 영어를 못해서 제품을 제대로 사용해보지 못한 분들도 있었다. 그런데, 나한테는 다 게으른 변명으로 들린다. 물론, 위에서 말한 이유로 한국에서 이런 서비스를 쉽게 사용하는 건 어렵지만, 이런 제품을 한국에서 만들겠다는 창업가들이 이미 우리보다 몇 발 앞서있는 비슷한 비즈니스를 A부터 Z까지 사용하고 경험하지 않는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제품도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이 iteration 했고, 투자도 많이 받았고, 유저도 압도적으로 많은 글로벌 서비스를 잘 벤치마킹하면, 그만큼 우린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어서 아주 빠른 follower가 될 수 있고, 이렇게 기본기를 탄탄하게 만든 후에 한국 시장에 맞게 로컬라이징 하면, 정말 많은 시간, 돈,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그리고 벤치마킹을 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확실하게 해야 한다. 겉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뼛속까지 깊게 들어가서 이 서비스는 왜 이런 프로세스를 만들었는지를 모두 경험하고 이해를 해야 한다. 회원 가입부터 결제, 그리고 만약에 이커머스라면, 실제 물건을 받는 과정, 그리고 반품과정까지,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다 테스트해봐야 한다. 내가 이커머스 이야기를 많이 하는 이유는, 배송이라는 오프라인 프로세스가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모든 걸 경험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전환율이 높은 이커머스 플랫폼의 경우,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는 과정, 몇 시간 안으로 장바구니 물건을 구매하지 않았을 때 사용자가 받는 이메일이나 문자 등과 같은 디테일은 그냥 남을 통해서 들어서는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거라서 직접 스스로 다 해봐야 한다.

내 주변에는, 본인들이 벤치마킹하는 미국 서비스를 제대로 사용해보기 위해서, 그리고 오롯이 이것만을 위해서 미국에서 두 달 동안 살다 온 창업가도 있다. 이분들같이, 필요하다면, 직접 미국까지 가서 경험해보길 권장한다. 그만큼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