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l

프리머니, 포스트머니

좀 뻔한 내용인데, 실은 내가 만나는 많은 창업가가 혼란스러워 하는 거 같아서 몇 자 적어본다. 투자 유치를 할 때 항상 나오는 개념인 pre-money valuation과 post-money valuation을 모르는 대표는 없을 것이다. 나는 대표들한테 투자자들과 항상 pre-money valuation을 기준으로 이야기하라고 한다.

100억 포스트 밸류에 10억을 모집하면, 정확히 표현하면 pre 90억 원에 10억을 모집하는 거다. 실은 이렇게만 보면, 어떻게 말해도 같다. 하지만, 10억을 투자받고 싶다고 해서, 항상 10억이 모이는 건 아니다. 대부분 목표하는 금액에 못 미치는 돈을 투자받고, 간혹 운 좋으면 목표 금액보다 더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포스트 밸류를 기준점으로 잡으면, 투자받는 금액에 따라서 회사의 프리머니 밸류에이션이 달라질 수가 있다.

포스트머니 밸류에이션만 생각하면서 투자유치를 하면, 위의 예에서는 이번 라운드가 끝나면 우리 회사는 100억 원짜리 회사가 되는 거다 – 투자받는 금액에 상관없이. 즉, 5억을 투자받아도 우리 회사의 포스트 밸류는 100억 원이고, 20억을 투자받아도 포스트 밸류는 100억 원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많은 창업가가 펀드레이징을 한다. 5억을 받았는데 포스트 밸류가 100억 원이면, 이 회사의 프리머니 밸류에이션은 95억 원이다. 즉, 투자받기 전 회사의 가치는 95억 원이니, 이게 우리 회사의 현재 가치인 셈이다. 20억 원을 받았는데 포스트 밸류가 100억 원이면, 이 회사의 프리머니 밸류에이션은 80억 원이다. 즉, 투자받기 전 회사의 가치는 80억 원인 셈이다. 같은 회사인데 투자받는 금액에 따라서 현재의 회사 가치가 이렇게 달라지는 건 이상하다.

이런 이유로 가능하면 항상 프리머니 밸류에이션을 기반으로 펀드레이징을 하는 게 나는 항상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나는 많은 창업가가 실은 이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는 질문을 하는데,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하다. 첫째는, 위에서 말 한대로 투자받는 금액에 따라서 회사의 포스트 밸류는 당연히 바뀌지만, 프리밸류는 바뀌면 안 된다. 이건 A라는 VC에게는 우리 회사의 현재 가치가 80억이라고 하고, B라는 VC 에게는 우리 회사의 현재 가치가 95억 원이라고 하는 것과 똑같다. 같은 회사인데. 둘째는, 포스트 밸류를 고정하면, 투자를 더 많이 받을수록 우리한테는 불리해진다. 프리머니를 – 즉, 현재 회사 가치 – 내가 스스로 깎아 내리기 때문이다.

Irreversibility

세상을 바꾸고, 기존 패러다임을 완전히 파괴(=disrupt)하는 비즈니스가 소위 말하는 유니콘 비즈니스로 성장할 확률이 매우 크다는 걸 우린 알고 있다. 이런 파괴적인 비즈니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내가 자주 예로 드는 게 우버와 넷플릭스다. 좀 식상한 이야기지만 우버는 택시를 한 대도 소유하지 않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택시회사다. 같은 맥락에서 넷플릭스는 극장을 하나도 소유하지 않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영화관이다. 이런 이유로 전 세계에 물리적인 스크린을 1,000개 이상 소유하고 있는 CJ CGV의 시총이 1조 원도 안 되는데, 넷플릭스의 시총이 160조 원 이상 되는 게 아닌가 싶다(2018년 10월 9일 기준).

어떤 비즈니스가 진정한 disruption을 가져올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런 비즈니스를 제대로 고르려면 어떤 성향을 보면 좋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은 VC가 끊임없이 한다. 나도 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데, 얼마 전에 씨티은행 Citi Ventures 총괄의 인터뷰를 보고 몇 가지 좋은 포인트를 얻을 수 있었다. 시티벤처스 총괄 Vanessa Colella에 의하면, 미래를 바꿀만한 기술에 대해서 사람들이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게 바로 이런 기술이 갑자기 나타난다고 생각하는 거라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갑자기 나타난 기술로 인해, 즉시, 그리고 하루아침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틀렸다고 경고한다. 세상 사람들이 봤을 때 세상을 바꾸는 기술이나 제품은 실제로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작은 변화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깊은’ 변화를 일으킨다고 그녀는 말한다. 단지, 그게 일반인의 눈에는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티 벤처스가 이런 미래형 기술을 찾을 때 두 가지를 보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하고(=accelerating)”, 절대로 “가역할 수 없는(=irreversible)” 성질을 찾는다고 한다. 이 말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예를 든 게 우버인데 이분이 우버를 몇 년 전 처음 이용했을 때, 아기가 있어서 양손이 꽉 차 있었는데, 일반 택시 같으면 아기를 잠깐 놓고, 가방을 열어서 지갑을 찾은 후에, 다시 카드나 현금을 빼야 하는데, 그 고생 없이 그냥 바로 택시에서 내릴 수 있었던 그 경험을 잊지 못했다고 한다. 이렇게 별거 아닌 거 같지만, 더 편한 경험을 한 사용자들은 절대로 그 전의 불편한 경험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으며 (=비가역성), 이런 경험이 쌓이면, 변화는 더욱더 가속화(=accelerating)되면서, 세상이 바뀐다는 게 이분 이야기의 핵심이다.

가속화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자주 생각해봤지만, 비가역성이라는 성질은 잘 생각해보지 않았는 데 많이 동의한다. 내 주변에 있는 많은 서비스에 이 개념을 적용해봤다. 대부분 서비스는 이런 비가역성의 성격이 없었다. 즉, 기존 제품보단 좋긴 한데, 그렇다고 이 제품을 한 번 사용한다고 다시는 그 전의 제품으로 돌아갈 수 없는 그런 성격은 없었다. 즉, 대체 불가능한 서비스는 아닌 거 같다. 하지만, 몇 소수의 서비스는 이런 비가역성 성질이 충분히 있었다. 너무 편리해서 이 서비스가 없으면 안 되고, 그 이전으로는 절대로 돌아갈 수 없는 그런 특성이 있었다.

이런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유니콘이 될 진 조금 더 지켜보면 알 수 있을거 같다.

했다면

ATP 랭킹 23위인, 한국이 낳은 역사상 최고의 테니스 선수 정현이 부상이 잦아서 최근에 큰 대회에 출전하지 않거나, 출전해도 경기 내용이 영 신통치 않은 걸 많이 봤다. 안타깝긴 한데, 이에 대해서 많은 해설가가, “정현 선수가 부상만 당하지 않았어도 이 대회 8강까지 갔을 텐데요.” , “저 선수는 정현 선수한테 원래는 상대도 안 되는데, 부상 때문에 정현 선수가 졌네요.”라는 말들을 많이 하는 걸 들었다.

다 bullshit 같은 말이다. 물론, 정현 선수가 다치지 않았으면, 잘 쳤을 것이고, 메이저 대회 8강까지 갔을 수도 있고, 수많은 선수를 이겼을 수도 있다. 그런데 부상 때문에 본인의 기량을 다 발휘하지 못해서 졌고 탈락했다. 이게 현실이다. 이미 일어난 일이고, 다시 되돌릴 수 없으니, “그때 그 부상만 없었으면….” 이라는 변명은 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그냥, 앞으로 더 잘 해야 한다는 다짐으로 넘어가면 된다.

일하면서도 비슷한 말을 많이 듣는다. 그때 돈만 있었으면, 회사가 잘 돼서 지금쯤 엄청나게 성장 했을 거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에 사는 창업가들이 있다. 1년 전 아주 중요한 계약이 성사됐으면, 높은 밸류에이션에 투자를 받아서 현재 우리 보다 잘하고 있는 경쟁사보다 더 잘하고 있을텐데라는 생각을 1년 넘게 못 버리고 있는 창업가도 있다. 이와 같은 “~ 했다면” 생각은 상당히 쓸모없고, 미래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데, 나를 비롯한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이 항상 이런 생각을 하긴 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면, 정신적으로 상당히 피곤해지고, 앞으로 전진하는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미 일어난 일이라서, 아무리 곱씹어서 생각해봐도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걸 머리로는 누구나 다 아는데, 사람이 감정의 동물이라서 그런지 가슴으로는 계속 “아, 그때 그게 됐다면”이라는 생각을 쉽게 못 버리는 거 같다.

일어나지 않았고, 바뀌지 않을 과거에 대해서 평생 후회하는 변명의 삶을 살고 싶지 않으면, 그냥 잊어버리고, 생각을 놓아버리고, 전진해야 한다.

이유는 항상 있다

대표이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과 질문을 했을 것이다. “저 회사는 우리보다 매출도 작고, 문제를 푸는 방법도 새롭지 않은데, 왜 저렇게 사람들이 열광할까?”

우리 투자사 대표도 이런 분들이 가끔 있다. 본인은 30억 밸류에이션에도 거의 12개월 이상 투자를 못 받고 있는데, 비슷한 카테고리에 속한 경쟁사는 300억 밸류에이션에 투자를 너무 쉽게 받고, 매출도 우리보다 작은 거 같은데, VC들이 투자하지 못해서 난리인 걸 보면 정말 화도 나고 세상은 공평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나한테 그 이유를 물어본다.

실은 나도 그 이유를 모른다. 그 회사가 밸류에이션이 얼마인지, 왜 투자를 받았는지, 왜 우리 투자사보다 인기가 많은지, 솔직히 말해서 나는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냥 우리가 그 회사보다 못하니까 투자를 못 받은 거니까 더 열심히 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하는데, 대부분의 대표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 거 같다. 그냥 막 억울하고, 세상은 불공평하고,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해서 좋은 서비스를 만들었는데, 이걸 다른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음에 상당히 분개하는걸 여러 번 봤다.

나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비즈니스를 하더라도, 어떤 회사는 큰 밸류에이션에 투자를 잘 받고, 어떤 회사는 낮은 밸류에이션이라도 투자를 못 받으면,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 경쟁사의 제품을 자세히 분석해 사용해보면, 우리가 미쳐 구현하지 못하고, 캣치하지 못 한, 고객들이 유용하게 생각하는 기능이 있는 경우가 있고, 정말 별거 아니지만, 아주 미세한 디테일이 큰 차이를 만들 수도 있다. 실은, 많은 대표이사가 이런 걸 잘 모르고, 인정하지 않는 경우를 나는 자주 봤다. 현재의 매출은 우리 회사가 더 많이 하지만, 비즈니스 모델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 회사는 경쟁사보다 스케일을 만들기 힘든 태생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투자받기가 힘든 경우도 있는데, 많은 대표가 우리도 투자만 받으면 그 정도는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본인이 느끼는 불공평과 불합리를 정당화한다.

어떤 회사는 정말로 우리 회사보다 매출, 성장, 인력 등이 한참 떨어지지만, 대표이사가 영업을 너무 잘하고, 펀드레이징을 잘한다. 그런데 이걸 가지고 불공평하다고 하면 안 된다. 후진 제품과 실적으로 투자를 잘 받는 것도 분명히 능력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른 회사가 우리보다 투자도 잘 받고, 남들이 더 알아주는 거에 대해서 전혀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분명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이유를 나만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그냥 우리나 잘하면 된다. 남 비판은 그만하자. 시장은 거짓말을 안 한다.

주체적 사고

장하준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이 담긴 책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 를 얼마 전에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장교수인지 다른 사람인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어떤 동양인 학생이 학교 과제에서, 본인의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데, 자기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보다는 이미 죽은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종합해오자, 담당 교수가 버럭 성을 냈다고 한다.
“니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써오라고 했지, 아담 스미스가 뭐라고 얘기했는지, 칼 마르크스가 뭐라고 얘기했는지가 무슨 상관이야!” 라면서.

이런 현상을 장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동양에서는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항상 “옛날에 맹자도 이런 얘기를 했고, 공자도 이런 얘기를 했고”라면서 고전을 인용해야 하고, 그렇게 과거의 권위를 끌어대야지만 자기가 뭔가를 한 것 같은 느낌을 대다수의 동양인들이 받는다고 한다. 이렇게 해야지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모두 수긍을 하는데, 이 현상을 동양과 서양에 대해서 매우 잘 아는 어떤 서양 교수가 “서양에서는 다 옛날에 한 얘기도 어떻게 하면 내가 새로 발명한 얘기처럼 하려고 하는데, 동양에서는 굉장히 새로운 얘기를 하면서도 옛날 사람들 이야기를 꼭 인용한다.”라고 정리했다고 한다.

나도 내가 하는 이야기를 조금 더 신빙성 있게 만들기 위해서, 나보다 훨씬 유명한 사람들의 말을 자주 인용하는데, 이걸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봤다. 실은, 오늘도 미팅하면서 “미국에도 혹시 비슷한 서비스가 있나요? 펀딩은 얼마 받았나요? 그 회사는 잘하고 있습니까?” 등의 질문을 했고, 처음 들었을 때는 별로였는데 미국에도 비슷한 서비스가 잘하고 있고, 투자를 엄청나게 받았다고 하니, 왠지 이 회사에 대한 관심이 급상승했다. 남이 어떻게 하든 상관없이 내 생각이 어떻고, 이 창업가가 이 비즈니스를 정말 잘하고 있냐가 핵심인데, 난 자꾸 내 생각보다는 남의 생각에 의존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한번 생각해봤다.

실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정말 복잡하다. 많은 것들과 많은 사람이 상호 작용을 하는 세상이고, 이런 세상에는 정답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고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 이런 의견을 모두 다 종합한 후에 혼자 생각을 해서 나만의 주체적인 답을 끌어내야 하는데, 실은 나도 그렇지 못하고 있는데 우리 투자사 대표들한테 스스로 생각하라고 강요하고 있진 않은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