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l

가상화폐거래소에 투자하는 정부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좀 너무한 거 같아서 몇 마디 적어야겠다. ‘투기 잡겠다더니…정부, 가상화폐 거래소에 수백억 투자’라는 기사가 내 탐라에 떠서 한 번 봤다. 이 기사를 그대로 요약하자면, 중기부, 연기금, 그리고 금융기관이 한국의 다양한 가상화폐 거래소에 수백억 원의 자금을 투자했고, 논란이 계속되자 홍종학 중기벤처부 장관은 “거래소의 불법적 행위가 적발되면 즉시 투자금을 회수하겠다”고 밝혔다는 내용이다.

벤처투자와 펀드의 구조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 이건 대한민국 사람의 95% 이상 – 이 기사를 읽으면 정말로 정부는 몹시 나쁘고, 이게 무슨 나라냐는 생각까지 할 것이다. 나도 몰랐다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이 분야를 잘 아는 사람으로서, 앞뒤 내용 다 자르고, 이런 식으로 기사를 쓰고, 제목을 이렇게 정한 거에 대해서는 화가 난다. 아마도 이 기사를 쓴 기자도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냥 대충 썼다고 믿고 싶다.

여기서 자세히 설명할 수도 없고, 설명하기도 싫지만, 간략하게 말하자면, 한국에는 백개 이상의 창투사(VC)가 있고, 이 중 절반 이상이 정부의 모태펀드를 받는 거로 알고 있다. 국민의 세금이 이렇게 다양한 펀드에 출자가 되면, 이 돈을 받은 창투사는 그동안의 노하우를 기반으로 매해 1,000개 이상의 벤처기업에 투자한다. 게임, 이커머스, 핀테크, 바이오, 제조 등 너무나 다양한 분야의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이 중 가상화폐 관련 회사도 있을 것이다.

우리도 중기부의 모태펀드를 받았지만, 이는 우리 전체 펀드의 일부이며, 정부의 돈이 일부인 우리 펀드의 매우 작은 일부를 국내 최초의 가상화폐거래소 코빗에 투자했다. 다른 가상화폐 거래소에 들어간 정부의 돈도 같은 식으로 투자가 된 것이다. 이는 벤처펀드의 너무나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방법으로 투자가 집행된 것인데, 이런 펀드의 구조와 투자 방법이 자세히 설명되지 않고, 단순하게 “세금 수백억 원을 정부가 벤처캐피털 펀드를 통해 가상화폐 거래소에 투자했다”라는 식으로 기사가 쓰였으니, 좀 황당하다. 이건 마치 내가 나이키에서 운동화를 구매했는데, 알고 보니 이 운동화가 미취학 아동을 불법 고용하는 동남아의 공장에서 제조돼서, 내가 미취학 아동 불법 고용을 장려했다고 하는 거와 비슷하다. 그리고 실은 이 구조와 내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야 하는 홍종학 장관이 뭔가 잘못되면 투자금을 즉시 회수하겠다고 하신 것도 좀 성급했다고 생각한다.

내용을 잘 알면서도 기자들이 일부러 이렇게 기사를 쓰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몰라서 이렇게 쓰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두 경우 다 문제가 심각한 거 같다. 이러니까, 그냥 영어공부 열심히 해서 한국 관련 기사도 해외언론을 통해 보는 사람이 내 주변에 많은 거 같다.

아름다운 UX

App fatigue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넘쳐나는 앱 홍수 속에서 현대인들이 느끼는 ‘앱 피로도’이다. 나는 작년에 우리 투자사 앱을 제외한, 새로운 앱을 5개도 안 깔았다. 이 중 실제 회원가입을 한 앱은 2개밖에 안 된다. 솔직히 요샌 앱스토의 2백만 개 이상의 앱을(애플 앱스토) 상상만 해도 토할 거 같다. 그 정도로 앱 피로도가 심하다. 이제 웬만큼 잘 만들었고, 내가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앱이 아니면, 설치도 안 하고, 설치했는데 사용할 때 조금이라도 사용자 경험(UX)이 후지면, 바로 삭제해버린다. 왜냐하면, 훨씬 더 잘 만든, 비슷한 앱이 수십 개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나같이 극단적이진 않겠지만, 이게 현실이긴 하다. 지금 모바일 앱을 만드는 창업가라면, 정말로 아름다운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UX를 제공해야 한다. 이렇게 해도 성공할 확률은 5%도 안 되는데, 보기만 해도 짜증 나는 제품을 만들어서 시장에 출시하는 건 앱스토의 공간낭비이자 피로도 테러다. 나는 만나는 모든 팀들한테 이 ‘아름다운 제품’에 대해 많이 강조하지만, 이걸 제대로 이해하는 창업가는 많지 않은 거 같다. 내가 작년에 만난 대부분 팀은 그냥 “good enough” 제품을 만들어서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태도로 사업을 하는데 – 스트롱 투자사 포함 – 한 5년 전에는 통했을지도 모르지만, 이젠 아름다운 제품이 없으면 비즈니스로 성장할 수가 없다. 얼마 전에 사용하고 싶었던 한 제품이 가입과정에서 ‘닉네임’을 필수로 요구했는데, 나는 그냥 이 앱을 지워버렸다. 작은 키보드로 새로 가입하는 거 자체가 불편한데, 왜 굳이 닉네임을 필수로 요구할까? 만든 분들은 쿨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난 이해가 안 갔다.

2018년도는 더 어렵다. 과거에는 B2B 앱을 만들면 B2C같이 아주 예쁘고 쿨한 UX는 필요 없고, 그냥 기능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이 만연했던 거 같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젠 B2B 제품도 고객을 계속 확보하고, 확보된 고객을 락인 하려면, 반드시 아름다운 UX를 갖춰야 한다. 신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환경을 경험하기 때문에, 이들은 회사에서 사용하는 앱들도 회사 밖에서 사용하는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미디어 앱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사용하기 편하고, 보기 좋아야 한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어떤 B2B 스타트업의 UI/UX 담당자는 화면을 확대해서 픽셀 하나하나씩까지 맞춰 보는 습관이 있는데, 이 정도 장인 정신이 있어야지 일단 시작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대충 만들면 될 거라고 생각하는 팀이 있다면, 딱 그만큼만 대충 될 것이고, 초경쟁 사회에서 ‘대충’은 실패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ICO 실사

Photo 08-01-2018, 9 55 48 AM페이스북 탐라에서 Envion이라는 ICO 광고를 봤다. 회사 웹사이트도 보고 백서도 대략 읽어보니, 재생에너지를 잘 활용하여, 모바일 가상화폐 채굴을 위한 ‘Smart Decentralized Blockchain Infrastructure’를 제공하는 회사다. 조금 쉽게 설명을 하면, 값싼 태양열 또는 풍력 에너지를 사용하는 컨테이너 모듈 안에 장비를 설치해서 채굴하는 기술이다. 내가 한국에서 채굴하고 싶으면, Envion에서 만드는 컨테이너를(채굴 장비가 완비된) 구매하고, 한국에 도착하면, 나는 그냥 바닷가나 해가 많이 들어오는 곳에 컨테이너를 설치하고 바로 채굴을 시작하면 된다. 웹사이트에 의하면 ICO를 통해서 이미 500억 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하니, 내 안에서 FOMO가 요동을 쳤다.

실은, 백서를 나도 다 이해하진 못했지만, 꽤 솔깃한 아이디어인 거 같아서 조금 더 조사를 해봤다. 아직 새로운 기술이고, ICO 자체가 너무 새로운 개념이라서 특별한 내용은 없었지만, 가상화폐 관련 가십으로 가득 찬 Bitcointalk.org에 누군가 이 회사에 대해 다음과 같은 꽤 집요한 을 2017년 11월에 올렸다(문법이 많이 틀린 영어로 올린 내용 중, 중요한 부분만 그냥 한국어로 번역해본다):

1/ Envion이라는 회사는 2017년 10월 5일 스위스에 설립됐는데, 한 달 밖에 안 된 회사가 맞는지?
2/ 백서를 보면, Envion Technologies GmbH로부터 기술을 공급받는다는데, 이 회사에 대한 정보가 없다
3/ 팀원들의 링크드인 프로파일을 보니, 계정이 1주일 전에 생성되었다
4/ 대표이사는 신문기자인데, 2017년 10월에 채용되었고, 다른 팀원 모두 2017년 10월에 채용되었다
5/ 창업팀에 대한 이력이 전혀 없다
6/ 회사의 역사가 한 달인데, 어떻게 “아주 오랫동안” 이 기술을 연구했는지? 그리고 한 달 밖에 안 된 회사가 특허를 어떻게 허가받았는지?
7/ 텔레그램으로 연락을 해도 연락도 안 된다
8/ 동영상을 보면 일반 컨테이너에 색칠하고, 구멍을 뚫고, 선반에 비디오카드 몇 개 장착한 거 같은데, 도대체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지? 이 비디오 카드로 과연 161%의 배당이 가능한가?

나는 실은 이 회사에 대해서 잘 모르고, 조사도 안 해봤고, 이 채굴 컨테이너에 대해서도 전혀 모른다. 그리고 위의 질문내용의 사실여부도 확인해보지는 않았다. 실은, 별로 관심도 없다. 하지만, 힘들게 번 돈을 일확천금을 노리고 ICO에 투자하기로 했다면, 최소한 위의 분같이 나름대로 조사와 실사는 반드시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Envion이 엄청난 회사가 될 수도 있지만, 기본적인 내용이 구리다면(위의 질문 내용이 맞는다는 가정하에), 사기로 끝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뉴스를 보면 가상화폐와 비트코인은 마약과 범죄와 같은 ‘악’의 화신이라는 인상을 받기가 쉬운데, 잘 판단하고 구분했으면 좋겠다. 탐욕에 눈멀어 사기당한 사람들한테는 ‘악’이지만, 제대로 투자하고 활용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혁신’이 될 것이다.

The Startup Bible – 2017 정리

해마다 12월 마지막 주에는 한 해 동안 쓴 글들에 대해 정리를 하는 포스팅을 올렸는데, 연말을 인터넷 없이 보냈기 때문에 1월 첫째 주에 작년 정리를 해본다.

2017년에 난 107개의 포스팅을 올렸는데, 이는 3.4일에 한 번씩 블로깅을 한 셈이다. 107개의 포스팅을 읽기 위해서 The Startup Bible 블로그를 방문한 분은 총 277,476명이다. 월평균 23,123명이 방문을 한 셈이다.

2017년도에 가장 많이 읽힌 Top 10 글은 다음과 같다:

1/ ICO(Initial Coin Offering)와 코인경제
2017년 가장 핫했고, 앞으로도 up and down을 반복할 가상화폐와 ICO에 대한 관심이 그대로 반영되는 순위이다.

2/ 한국인들의 7가지 실수
7년이 넘었는데도 꾸준히 읽히는 all-time 베스트/스테디 글이다. 실은 글보다도 댓글들이 더 재미있고 자극적이고, 그냥 쌍욕 하는 댓글도 많은데, 모두 다 스팸처리를 했다.

3/ 남들 앞에서 말을 잘 할 수 있는 11가지 기술
여러 블로그와 카페에서 공유된 글인데, 대중 앞에서 말하거나 발표하는 건 항상 어려운 거 같다.

4/ Bitcoin vs. Ethereum
가상화폐의 양대산맥인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에 대한 글인데, 역시 가상화폐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5/ 비트코인 가격 앞으로 어떻게 될까?
2016년 9월 이 글을 쓸 때 비트코인 가격이 630달러였는데, 그동안 엄청난 일들이 일어났다.

6/ 스톡옵션 개론
아직도 많은 분이 실제 주식과 스톡옵션의 차이를 잘 모르는데, 이 글이 그나마 이 차이를 쉽게 설명하고 있으므로 많이 읽히지 않았나 싶다

7/ 운동선수들로부터 배우는 슬럼프 극복 방법
2017년은 좋은 한 해였지만, 스트레스, 불안, 우울은 이 일을 하면 항상 같이 손잡고 가야 하는 친구들인 거 같다.

8/ 나의 힘들었던 영주권 경험
2016년에도 이 글은 8번째로 많이 읽힌 글인데,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트럼프 정부가 집권하면서 외국인이 영주권을 취득하는 과정이 더 험난해졌기 때문인 거 같다.

9/ 스톡옵션의 세금
6번의 스톡옵션 개론과 같이 많이 읽혔다.

10/ 블록체인과 마켓플레이스 – 중개인의 종말
가상화폐가 너무 ‘가즈아’ 해서 블록체인이 좀 묻혔지만, 블록체인이야말로 진정한 혁신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다.

이상 2017년에 가장 많이 읽힌 글 10개였다. 재미있는 건, 이 중 4개가 가상화폐와 블록체인 관련 글이다. 새해에도 이 주제에 대해서 꾸준히 글을 쓸 계획인데, 올해 말에도 비슷한 트렌드가 보일지 궁금하다.

Happy New Year!

에센스(본질)

내 나이 또래 중 ‘배가본드’라는 일본 만화를 아시는 분이 많을 거다. 슬램덩크로 유명한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또 다른 명작인데, 1582년~1645년 실존했던 일본의 전설적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의 일대기가 펼쳐지는 만화이다. 무사시는 29세가 되기 전 60번의 목숨을 건 싸움에서 승리한 이후, 방랑 생활을 하다가 말년에 ‘오륜서’라는 병법서를 썼다. 1643년도에 쓴 책이지만, 전 세계 사업가들이 즐겨 읽는 책이라고 알고 있는데,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무라이와 목숨을 걸고 경쟁하는 비즈니스맨 사이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공통점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인 거 같다.

나도 이 오륜서 관련 다른 책을 몇 권 읽어봤는데, 무사시가 강조하는 건 본질이다. 기교나 잔꾀를 부리면 한 두 번은 싸움에서 이길 수 있지만, 결국엔 남의 검에 베이기 때문에, 무사는 항상 본질을 추구해야 한다는 내용이 주가 되는 책이다. “검술의 진정한 도는 적과 싸워 이기는 것이요, 이것을 빼면 아무것도 있을 수 없다”라는 무사시의 명언은 실은 370년이 지난 오늘의 비즈니스 세계와 우리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명쾌한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투자도 나는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나한테 많은 분이 물어보는 게 요새 실리콘밸리의 투자 트렌드 또는 한국과 실리콘밸리 투자의 차이점인데,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고민을 많이 한다. 왜냐하면, 이분들이 생각하는 거와 같이 실리콘밸리와 한국의 투자 환경이나 트렌드가 그렇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투자는 솔직히 단순하다. 한국이든 실리콘밸리든 그냥 좋은 회사에 투자하는 게 성공적인 투자이기 때문에 무슨 투자 트렌드에 관해서 이야기하라고 하면 딱히 할 말은 없다. 물론, 그때마다 유행인 분야나 산업은 있지만, 결국 투자의 본질은 그냥 좋은 회사를 찾아서 돈을 투입하는 거다.

얼마 전에 이 기사를 읽었다. 내년에 1조 원 규모의 돈이 벤처시장에 풀리기 때문에, 벤처투자의 판이 커지고, VC 판도와 트렌드 자체가 바뀔 것이라는 내용이다.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판이 아무리 커져도, 투자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칼싸움의 본질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적이 나를 베기 전에 적을 베어 죽이는 것이다. 투자의 본질도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남들보다 빨리) 좋은 회사를 찾아서 투자하는 것이다.

좋은 회사는 시장에 돈이 풀리든 안 풀리든 좋은 투자를 받을 것이고, 후진 회사는 시장에 아무리 많은 돈이 흘러도 투자받지 못 할 것이다. 후진 제품을 만들면서 내년에 돈이 넘쳐흐르기 때문에 혹시나 투자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창업가들이 생각보다 많은데, 그런 꿈은 빨리 깨는 게 좋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VC들이 그렇게 멍청하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