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l

상호존중 커뮤니티

벤처 업계에서 일한다면 누구나 다 실리콘밸리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실리콘밸리를 동경한다. 나도 미국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한국에서 생활하다 보니, 실리콘밸리와 Bay Area 지역에 대한 이야기 중 근거 없는 ‘소문’도 한국에는 은근히 많이 떠도는 거 같다. 나도 이젠 미국을 떠난 지 1년이 넘어서, 내가 감이 없어진 것도 있겠지만, ‘실리콘밸리는 ~카더라’라고 말하고 다니는 분이 너무 많다.

그래도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실리콘밸리의 창업자 커뮤니티에서는, 서로서로 돕는다. 그것도, 상대방한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서로를 돕는다. 실은 이건 한국도 마찬가지이고, 전 세계 그 어떤 스타트업 커뮤니티를 봐도, “내가 저 사람을 도와주면, 나중에 나도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남을 도와주는 사람은 없는 거 같다. 그냥, 같은 커뮤니티에 있고, 같이 고생하고, 같이 성장을 하니까, 선의의 동료의식에서 우러러 나오는 그런 행동인 거 같다. 제 한 몸 편하자고, 남을 등쳐먹을 궁리만 하는 현대 사회에서, 이런 훌륭한 분들이 모여있는 곳은 스타트업 커뮤니티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커뮤니티의 또 다른 특징은, 나이나 경험에 상관없이 서로를 같은 동료로서 진심으로 존중해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창업가의 학벌이나 나이를 따지지 않고 투자하지만, 일반적으로 젊은 분들이 더 많이 창업하기 때문에, 스트롱 투자사 대표들은 대부분 젊다. 우리 투자사 중 학생들이 창업한 회사도 있는데, 20대 초반 대표이사도 있다. 20대 초반이면, 내 나이의 거의 절반이고, 일반 대기업이었으면 상사들이 반말하면서 온갖 잡일이나 시키는 신참이다. 그런데 나는 이들을 동등한 기업인으로 대하고, 반말이 아닌 “대표님” 하면서, 의미 있는 비즈니스 이야기를 한다. 아니, 어떨 땐 나랑 동등한 게 아니라, 나보다 훨씬 더 다양한 지식과 특정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는 창업가다.

나는 이런 커뮤니티가 좋고, 이 분야에서 일하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 어떤 산업에서 43살의 투자자와 그의 나이 절반도 되지 않은 21살의 벤처기업 대표가 서로를 존중하면서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겠는가? 스타트업 커뮤니티 말고는 없다.

끝없는 달리기

keep_running_by_phat7-d9mbo4x이제는 고인이 된 인텔 창업자 앤드루 그로브 관련 책은 개인적으로 모두 즐겨 읽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Only the Paranoid Survive(편집증 환자만이 살아남는다)’이다. 이 책에서 그로브는 비즈니스가 살아남으려면, 좋든 안 좋든 계속 변화해야 하는데, 이 변화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편집증 환자같이 항상 모든 걸 의심하고, 경계하고, 조바심 내야 한다는 걸 강조한다. 물론, 여기서 편집증은 좋은 의미로 사용된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능력 있는 대표이사들은 이런 편집증 환자의 기질을 갖고 사업을 한다.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사업이 잘 안 되면 말할 것도 없이 위기의식을 갖고 열심히 일하지만, 사업이 너무 잘 될 때에도 힘들 때와 마찬가지로 위기의식과 조바심으로 무장하고 미친 듯이 달린다. 실은, 내 주변에는 사업이 정점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내일 망할 거 같은 자세로 긴장하면서 비즈니스 하시는 분들이 있다. 이들은 통장에 현금이 넘쳐 흐르지만, 곧 자금이 소진될듯한 자세로 투자자들한테 절실하게 피칭하고, 매출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곧 고객이 떠날 거 같은 자세로 영업하고, 아직 발생하지 않은 위기에 대한 시나리오를 만들면서, 이런 위기에 대비할 계획을 만들고 있다.

우리 속담에 건강도 건강할 때 챙겨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건 기업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거 같다. 회사가 잘 될 때 정신 바짝 차리고, 모든 걸 A부터 Z까지 하나씩 다시 짚으면서 기초를 탄탄히 하고,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지 계속 점검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뭔가 적신호가 잡히면, 제대로 된 방향으로 다시 갈 수 있게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갑자기 매출이 급격하게 떨어지거나, 고객들이 우르르 떠나가기 시작하면, 이때 잘못된 걸 고치려면 이미 늦었다. 모든 질병은 예방이 최고이고, 그다음이 조기 치료인데,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예방과 조기 치료가 가능하게 하려면, 사업이 가장 잘 될 때 내일 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지면서 일해야 한다.

나도 가끔, 굳이 저런 강박관념을 가지면서 사업을 해야 할까 하는 질문을 하지만,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약자도 없는, 너무나 빨리 변하는 분야라서, 스타트업에 발을 담갔다면 이런 끝나지 않는 달리기 시합을 계속 해야 한다. 안 그러면 그 순간 모든 게 끝난다.

<이미지 출처 = DeviantArt>

ZERO to ONE

너무나 유명한 피터 틸의 ‘제로 투 원‘을 얼마 전에 완독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는 조금 아쉬웠지만, 나름대로 생각을 많이 했던 내용이 있었다. 특히 피터가 말하는 모든 기업이 반드시 답해봐야 할 다음 일곱 가지 질문에 대해서는, 우리 투자사들을 생각하면서 스스로 많은 질문을 했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창업가라면, 한 번 정도는 생각해보면 좋을 듯:

1/ 기술 – 점진적 개선이 아닌 획기적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2/ 타이밍 – 이 사업을 시작하기에 지금이 적기인가?
3/ 독점 – 작은 시장에서 큰 점유율을 가지고 시작하는가?
4/ 사람 – 제대로 된 팀을 갖고 있는가?
5/ 유통 – 제품을 단지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판매할 방법을 갖고 있는가?
6/ 존속성 – 시장에서의 현재 위치를 향후 10년, 20년간 방어할 수 있는가?
7/ 숨겨진 비밀 –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독특한 기회를 포착했는가?

당장 제로 투 원은 힘들겠지만, 제로 투 제로 포인트 원이라도 하길.

외국어 표기법

국립국어원 외래어표기법에 의하면 San Jose 지명을 표시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산호세’랑 ‘새너제이’인데 코스타리카의 수도는 산호세라고 쓰고, 실리콘밸리의 도시는 새너제이라고 쓴다. 둘 다 알파벳 표기는 같고, 어차피 스페인어이기 때문에 원어나 영문 발음은 거의 동일하게 ‘산호세’ 이다. 많이 헷갈린다.

외국어라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거지만, 굳이 같은 단어를 이렇게 다르게 표시하고, 이 표기법에 어긋나면 공식적으로는 틀렸다고 하는 건 좀 구시대적인 발상 같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한글 표기법과 원어의 발음을 비교했을 때 차이가 너무 크게 나는 경우가 많아서, 이 부분은 다시 한번 전면 재검토를 하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도 한다. 얼마 전에 마케팅 관련 책을 읽었는데, 화려한 컬러와 스타일을 자랑하는 신개념 주방용품 Joseph Joseph사를 한글로 ‘조셉조셉’ 이라고 표기했지만, 같은 책에서 이 회사의 설립자 Anthony Joseph와 Richard Joseph는 ‘조지프’라고 표기한 걸 봤다. 국립국어원 외래어표기법을 찾아보니, 사람 이름 Joseph의 올바른 표기법은 조지프이지만, 미국 회사이니 회사 이름은 미국인들이 발음하는 조셉 조셉이라고 표기를 하는 게 맞는 거 같다. 같은 이름을 성경에서는 ‘요셉’이라고 표기하는 걸 봤다. 참 복잡하고, 이상하다.

사진 2017. 3. 16. 오후 1 09 01

시대에 따라 새로운 용어들이 많이 만들어지는데, 웹스터 사전도 이런 트렌드를 반영하기 위해서 해마다 개정판을 새로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말이 아닌 이상 외국어 표기법의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의 의견도 이해하지만, 이 가이드라인은 한번 만들어 놓고 평생 사용하기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서 계속 바꿔야 할 필요가 있을 거 같다.

큰 시장, 작은 시장

각자의 세세한 취향과 시각은 다르지만, 대부분 벤처투자자는 회사를 평가할 때 크게 팀, 시장, 기술을 보는 거 같다. 나도 처음 만나는 회사에 대해서는,
1/ 어떤 팀인가?
2/ 이 팀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시장 크기)
3/ 이 팀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지?
라는 큰 프레임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조금 더 깊게 파고 들어가 본다.

오늘은 2번째 포인트인 ‘시장크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실은, 창업가나 투자자한테 시장 크기는 매우 중요하다. 제품이 아무리 좋아도, 전체 시장의 크기가 250억 원이면 우리 같은 투자자의 관심을 끌기는 힘들다. 아무리 좋은 비즈니스라도 시장의 100%를 가져가는 건 불가능하고, 30% 정도만 점유해도 선두주자가 될 수 있는데, 250억 원짜리 시장의 30%는 75억 원이다. 즉, 이 비즈니스가 아무리 잘 되도 75억 원 이상의 비즈니스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참고로, 한 시장의 30%를 점유하는 건 쉽지 않다. 창업자의 경우, 75억 원짜리 비즈니스를 운영하면 아주 행복하게 잘 먹고 잘살 수도 있지만, 우리같이 투자금의 큰 배수를 다시 회수해야 하는 VC는 이보다 더 빠르고 크게 성장하는 시장을 공략하는 비즈니스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나도 초기에는 이런 시장의 크기를 많이 따졌다. 요새 피칭 자료에서 많이 볼 수 있는 TAM(Total Addressable Market)이 1,000억 원 이하의 비즈니스는” 시장크기가 너무 작아요.”라는 얄미운 피드백으로 투자검토를 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내가 마치 유니콘 비즈니스에 투자경험이 있는 VC인 양 “그렇게 작은 시장에서 사업해서 얼마만큼 성장하겠어요?”라고 몰아붙인 적도 있다. 그럼 우리는 엄청나게 큰 시장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스타트업에만 투자했나? 그렇지 않다. 실은, 이와는 반대로, 남들이 보기엔 너무나 작은 시장에서 사업을 하는 비즈니스에도 꽤 많이 투자했는데, 그동안 이 시장 크기에 대한 내 생각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일단 조 단위 규모의 시장에 관해서 이야기해보자. 우리도 투자경험이 있는 사교육 시장, 음식 배달 시장, 부동산 시장 등이 여기에 속한다. 모두 다 몇십조 ~ 몇백조 원 규모의 큰 시장이고, 투자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 절대적인 시장규모에 군침을 흘리게 된다. 이 어마어마한 시장의 5%만 먹어도 엄청난 비즈니스로 성장할 수 있다는 중국 산수를(=”중국의 인구가 14억 명인데, 이 인구의 1%만 우리 고객으로 만들어도 1,400만 명이다”라는 비현실적인 시장 크기 산출 방법) 하게 된다. 그런데 조금 더 냉정하게 시장을 보면 – 특히, 투자한 후에 – 이 스타트업은 이미 존재하는 엄청난 시장의 일부를, 이미 그 시장에 오랫동안 포진해 있던 경쟁사와 우리와 비슷한 전략으로 최근에 진입한 신규 경쟁사들과 힘들게 싸워서 뺏어와야 하는 쉽지 않은 위치에 놓여있다는걸 알게 된다. 시장은 이미 존재하고, 엄청나게 크지만, 그 시장의 일부를 가지려면, 산전수전 다 겪은 온갖 경쟁을 이겨야 한다. 이거 진짜 쉽지 않다.

그럼 작은 시장에 관해서도 이야기해보자. 이 시장의 스타트업은, 위에서 말한 250억 원짜리 시장, 또는 이보다 더 작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시장으로 진입해서, 작은 시장을 더 키우거나, 또는 아예 없는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 투자자는 여기서 이 회사와의 대화를 멈춘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지만, 이런 비즈니스를 그냥 무시하고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경험 또한 여러 번 했다. 현재 시장은 상대적으로 작을 수도 있지만, 이 시장에서는 없으면 안 되는 서비스나 제품을 만들면서 시장 자체를 더 키우는 성공적인 비즈니스가 탄생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또한 쉽지 않다. 위에서 말한 이미 존재하는 시장을 공략하는 비즈니스와는 다르게, 없는 시장을 만들어야 하는 스타트업의 경우, 완전히 바닥부터 모든 걸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제품이 왜 필요한가?”라는 근본적인 고객과 시장의 욕구 자체를 맨땅에서 만들어야 하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이 또한 쉽지 않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시장이 크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고, 시장이 없다고 나쁜 게 아니다. 큰 시장일수록 그 일부를 점유하는 게 어려울 수 있고,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없는 시장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게 예상외로 수월할 수 있다. 결국, 나만 잘하면 시장의 크기도 내가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