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ral

정부는 고객이 아니다

최근에 만난 회사들과 이야기하면서 느낀 점들을 적으려 한다. 정부과제를 몇 번 수행하면서 매출도 좀 만들었고, 개발과제를 통해서 제품도 만든 회사들 이야기다. 나는 정부과제에 대해서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아서인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은 없었는데, 이런 정부 프로젝트에 선발되고 과제를 수주한 걸 너무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대표이사들이 많다는 걸 새롭게 배웠다.

이분들은 어마어마한 경쟁을 이기고 정부과제 수행 업체로 선정된 게 마치 회사의 기술력, 제품의 상품성, 그리고 시장에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그런데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애초부터 정부만을 대상으로 B2G 비즈니스를 하지 않는다면, 정부는 시장도 아니고 고객도 아니다. 정부과제를 선정하는 심사위원이나 위원회도 시장과 고객을 대표하지 않는다. 내 경험에 의하면 시장의 현실을 전혀 모르는 분들일 확률이 더 높다. 나도 자세히 조사를 해보지 않았지만, 정부과제를 통해서 개발된 산출물 중 시장에서 제대로 먹히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과연 존재하는지 생각해보면 없는 거 같다.

정부과제가 좋냐 안 좋냐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건 아니다. 정부과제는 좋을 수도 있고, 안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과제 수행 업체로 선정된 그 사실 자체로 우리 회사나 기술에 대해서 자만감을 느끼거나 시장에서의 성공을 확신하는 건 좋지 않다.

정부과제가 약보다는 독이 될 수 있다는 내 의견은 전에 한번 포스팅한 적이 있다.

가끔은 욕을 먹을 것이다

2주간의 휴가를 마치고 며칠 전에 복귀했다. 이번에는 쉬면서 책을 많이 읽을 계획이었지만, 두 권을 읽었다. 이 중 내가 공감했던 내용이 많았던 ‘The ONE Thing’ 이라는 책을 꽤 흥미롭게 읽었다. 내용이 특별히 새롭지는 않았고, 이미 여기저기서 주워들어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저자는 본인의 경험을 기반으로 정리를 잘 해주었다. 책의 핵심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지만, 정작 본인한테 가장 중요한 단 한 가지를 잘 파악해서 이와 관련된 것에만 집중해야지만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 수 있다는 내용이다. 모든 일에 있어서, “이 일이 나한테 가장 중요한 단 한 가지와 연관되어 있는가?”를 물어보고, 그렇지 않다면 과감하게 미루거나 하지 않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작가는 주장한다.

실은 요새 내가 살려고 하는 삶의 철학이 이 책의 내용과 상당히 비슷하다. 해야 할 일도 많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많은 우리의 인생이지만 안 그래도 짧은 인생을 가치 있게 살기 위해서는 나한테 중요한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 그리고 해야 하는 일만 해도 시간이 모자란 데 나를 비롯한 내 주변 너무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신 보다는 남을 위한, 그리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고 있는 거 같다. 실은 나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보다는 남을 위한 삶을 살아왔고, 어떤 일을 하면서 “이게 나한테 어떤 가치가 있지?”를 물어보기보다는 “이걸 하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또는 “이걸 하지 않으면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질문했던 거 같다. 그리고 진정 나한테 중요한 일과는 상관없고, 나한테 중요한 일을 해야 할 시간을 빼앗는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받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했던 거 같다.

한 5년 전부터인가? 나는 이렇게 살지 않기로 했다. 나한테 진짜로 중요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정말로 중요한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 일을 하는데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말만큼 쉽지는 않더라. 나같이 여러 이해관계자와 같이 일을 해야 하는 VC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부탁도 많이 받고, 또 부탁도 많이 해야 하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한 다는 건 굉장히 어렵고 위험한 발상이다. 특히 나는 아직도 이 세상을 내 맘대로 살 수 있을 만한 위치에 올라와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나한테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만 하면서 살고 싶고, 이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 인생의 우선순위에 밀리는 일은 일단 거절하거나 미루고, 나보다는 남을 위해 더 중요한 일이라면 웬만하면 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떤 분은 나한테 똑같은 부탁을 여러 번 하셨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고민도 하지 않고 너무 단호하게 거절한다. 미안하지만 이보다는 내가 당장 해야 할 일, 그리고 나한테 개인적으로 훨씬 더 중요한 일이 산더미같이 쌓여있기 때문이다. 우리 서울 사무실이 있는 구글캠퍼스에는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정말 많이 왔다 갔다 하는데, 구글캠퍼스 들렸으니 커피 한잔 하자는 분들이 정말 많다. 미안하지만 가능하면 거절을 한다. 이분들한테는 커피 한 잔이지만, 나는 이런 분들과 하루에 커피를 10잔 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면 나한테 정말 중요하고, 내가 정말로 해야 하는 일을 못 하게 된다. 나한테 정말 중요한 건 우리 투자사들과 같이 일하고 새로운 회사들을 발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위에서 말 한 분들을 내가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건 절대로 아니다. 개인적으로 친해지고 싶고, 모두 다 기쁘게 해주고 싶지만, 일단 나한테 중요한 일을 처리해서 나 자신을 먼저 기쁘게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실은 이렇게 나 자신만의 목표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이 초점만을 위해서 사는 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서 욕도 많이 먹는다. 어떤 분은 나를 다시는 보고 싶어 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나를 나쁜 놈이라고 평생 욕할지도 모른다. 뭐,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다 보면 다른 사람을 화나게 할 수도 있고, 욕을 먹을 수도 있다. 남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하다면 이런 게 걱정이 되겠지만, 이제 나는 그 단계는 지났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산다. 그리고 남한테 가끔 욕을 먹는 행동에 대해 나는 절대로 해명하지 않는다. 내 인생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굳이 남한테 허락받거나 정당화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할 수는 없다. 만약, 그런 인생을 살고 있거나, 그렇게 하려고 애를 쓴다면 기쁘게 해주지 못할 단 한 사람은 바로 당신 자신이고, 이렇게 인생을 산다면 정말로 가치 없는 삶이 될 것이다.

당신이 누굴 아는지 난 관심 없다

6a00d834516b3c69e2015437f86d20970c-500wi나는 말이 너무 많은 사람이 싫다. 1시간짜리 미팅을 하면 어떤 사람들은 1시간 내내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상대방 이야기는 듣지도 않는다. 이런 사람들이랑 만나면 굉장히 피곤하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저 누구 알아요”로 모든 대화를 진행하는 사람들이다.

누구나 다 이런 사람들이 한두 명은 주변에 있을 텐데, 이상하게 나는 이런 사람들을 최근에 많이 만난 거 같다. 나도 꽤 바쁜 사람이라서 나랑 미팅하려면 그래도 며칠 전에는 약속을 잡아야 한다. 이렇게 어렵게 나랑 약속을 잡은 분을 얼마 전에 우리 사무실에서 한 시간 가량 만났다. 그런데 나한테 스스로와 현재 하는 비즈니스에 대해서 한 시간 동안 설명을 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이 분은 자기가 아는 사람들 이름만 줄줄이 읊다가 미팅을 끝냈다. 뭐, 들어보면 굉장히 유명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을 아는것 같고, 그중 나도 한번 만나보고 싶은 분들 이름도 있었지만, 솔직히 나는 이 분이 아는 사람들보다는 이 분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자신이 어떤 길을 지금까지 걸어왔고, 왜 이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나한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매우 궁금했었다. 하지만 만나자마자 누가 옛날 직장 동료였고, 지금 이 분야에서 굉장히 유명한 분이 대학교 동아리 선배고, 같은 아파트에 상장한 인터넷 기업의 부사장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미팅의 절반을 이런 ‘이름 들먹이기(name dropping)’ 하는데 허비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이런 사람들은 항상 있는데, 역시나 땅도 좁고 바닥이 좁은 한국이 더 심한 거 같다. 특히 내가 누구냐 보다는 내가 누굴 아는 게 더 중요한 한국의 ‘보여주기’ 문화는 이런 현상을 심화시키는 거 같다. 정작 본인은 아무것도 이루어 놓은 게 없는데 누군가 유명한 사람을 알고 있으면 마치 자신이 그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요새 너무 많다. 그리고 돈 많고 유명한 사람들을 잘 안다고 하면, 그 사람이 마치 대단한 것처럼 취급해주는 사회 분위기도 여기에 한몫을 한다. 정작 본인은 내세울 게 없고, 내실 없고 껍데기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이렇다는 걸 자주 경험한다.

그런데 어차피 내가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 업계 분들이라서 이들이 안다고 주장하는 많은 분을 나도 안다. “나는 그분을 아는데, 그분은 날 모르죠”가 아니라 그래도 서로 알고 지내는 그런 관계이다. 이 중 정말 친한 분들도 있고, 행사 같은 곳에서 정기적으로 보는 분들도 있지만 나는 내가 누굴 안다는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괜히 말했다가 그 사람을 소개해달라고 하면, 안 그래도 바쁜 사람들한테 누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누굴 안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항상 의심이 간다. 정말로 아는 것인지, 아니면 명함 한 번 교환한 것인지.

나는 당신한테 관심이 있지, 당신이 누굴 알던 관심 없습니다. 당신이 아는 남들에 대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지 말고, 당신 스스로에 대해서 그렇게 자랑할 수 있도록 내실을 다지세요.

<이미지 출처 = https://asheathersworldturns.wordpress.com/2015/03/13/name-dropper/>

우리 회사와 남의 회사

그 어떤 것도 공식화할 수 없는 게 ‘투자’라는 게임인 거 같다.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창업가를 선택하는 기준도 항상 다르고, 지금 검토하는 게 잘 될 만한 비즈니스인지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라는 것도 없다. 나도 자주 말하지만, 이 일을 하면 할수록 어떤 창업가들이 좋은 창업가인지, 그리고 어떤 비즈니스가 성공할 비즈니스인지에 대한 판단이 더욱 힘들어진다. 이런 거시적인 부분에서의 판단도 힘들고, 실제 미시적인 디테일로 들어가면 공식화할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회사의 밸류에이션이다. 창업한 지 1년도 안 된, 직장 경험이 없는 젊은 팀이 만든 매출이 없는 회사는 과연 얼마짜리 회사일까?

회사가 어느 정도 굴러가서 현금흐름이 명확하고, 미래의 현금흐름이 예측 가능해지면 DCF(=Discounted Cash Flow)와 같은 기업금융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방법으로 이 회사의 가치를 산정할 수 있다. 내가 만난 스타트업 중 이런 방법을 사용해서 회사의 밸류에이션을 정하는 회사들이 더러 있다. 물론, 내가 봤을때는 말이 안 되는 수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밸류에이션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앞으로 5년 동안 너무 극적으로 성장하는 그림을 그리는 이런 창업가들한테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권장하거나, 어떻게 이런 성장을 할 수 있는지 나를 조금 더 설득해달라고 부탁한다. 며칠 뒤에 다시 만나보거나 이메일로 연락해보면 어떤 창업가들은 조금은 더 수긍이 가능한 밸류에이션을 말한다. 하지만, 어떤 창업가들은 기존 밸류에이션을 끝까지 고수하면서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들을 제시한다.

이럴 때 가장 많이 듣는 건, “우리가 속한 분야에서 지금 가장 잘하고 있는 회사가 창업 후 초기 5년 동안 매년 200% 성장했습니다.” , “저희랑 비슷한 회사의 창업 2년 후의 밸류에이션이 이 정도였는데, 우리는 후발주자이니 더 잘할 수 있습니다.” 등과 같은 말인데, 항상 남의 회사와 비교를 해서 우리의 밸류에이션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실은 이런 방법을 CCA(=Comparable Company Analysis)라고 한다. 가치를 매기기 힘든 스타트업의 경우 비슷한 산업군의 기업 또는 유사한 비즈니스모델을 가진 기업을 벤치마킹해서 밸류에이션을 정하는 방법인데 나는 이 방법으로 스타트업의 밸류에이션을 정하는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창업가도 전에 만난 기억이 난다. 새로운 개념의 소셜미디어를 만든다고 주장하는 분인데 – 실은 전혀 새로운 개념은 아니지만, 여기서는 넘어가기로 한다 – 과거 창업 경험도 없고, 제대로 된 팀도 없는 상태였다. 제품도 개발 중이라서 뭔가를 보고 판단하기가 상당히 모호한 단계였는데 이 분이 스스로 부여한 밸류에이션은 80억이었다. 왜 80억이냐고 물어보니까, “우리 비즈니스와 페이스북이 비슷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페이스북이 창업 초창기에 받았던 밸류에이션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랑 마크 저커버그랑 능력 면에서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뭐, 좀 기가 차고 웃음도 났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분이라서 이야기는 좀 하고 미팅을 끝냈다. 참고로 이 비즈니스에 우리는 투자하지 않았고, 그 이후에 관련 소식이 안 들리는 거 보면 사업을 제대로 시작도 못 한 거 같다.

페이스북은 페이스북이고, 우리 회사는 우리 회사이다. 즉, 남이 받은 밸류에이션은 그 회사의 밸류에이션이고 우리 회사의 밸류에이션은 우리 회사의 밸류에이션이다. 아무리 비슷한 분야, 비슷한 단계, 비슷한 비즈니스 같지만, 조금만 더 깊게 들어가 보면 비슷한 점 보다는 다른 점들이 훨씬 더 많다. 그러므로 남의 밸류에이션을 보면서 우리 회사의 밸류에이션을 산정하는 건 시간 낭비이자 부질없는 짓이다.

끝까지 이런 방식을 고수하는 전자상거래 하시는 분과 대화하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대표님, 요새 이커머스 시장이 전반적으로 좋지가 않습니다. 저희도 투자를 좀 했는데, 이커머스가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많은 투자자들이 깨닫고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요새 전반적으로 이 분야 회사들의 밸류에이션이 하향조정되는 추세이거든요.”
그런데, 비슷한 분야의 회사들의 대한 밸류에이션을 주야장천 주장하시던 분이 한다는 말이 “아, 우리 회사는 조금 달라요. 이커머스 방식도 다르고, 비즈니스 모델도 다르기 때문에 그런 프레임을 적용하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였다.

남의 회사랑 우리 회사는 다르다.

본질에 대해서

골프를 안 치는 분들도 리우 올림픽에서 박인비 선수가 달성한 커리어 골든슬램에(=4개의 메이저 대회를 ‘그랜드슬램’이라 하는데, 이 4개 대회를 모두 우승하고, 올림픽까지 우승하면 골든슬램 달성이라고 한다) 대해서는 이제는 귀가 아플 정도로 많이 들었을 것이다. 골프를 좀 치는 사람들이라면 이게 얼마나 달성하기 힘든 기록인지는 잘 알 것이다. 엄청난 역사를 새로 쓴 박인비 선수, 박세리 감독 그리고 한국 여자 골퍼들한테 진심으로 존경심을 보낸다.

나는 개인적으로 박인비 선수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박인비 선수의 스윙은 ‘폼’을 꽤 중요하게 생각하는 골프라는 게임에서 봤을 때,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정석 폼은 아니다. 백스윙도 연결성이 부족하고, 체중 이동도 어딘가 조금 어색해 보이고, 눈으로 봤을 때 뭔가 시원해지지 않아서 그런지 내가 즐겨 보는 선수는 아니다(운동 선수 치고는 체중이 과한 것도 한몫을 한다). 실은 많은 골퍼들이 박인비 선수의 스윙을 보고 다들 한마디씩은 하면서 뭔가 좀 이상하다고 지적하는 걸 나도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지적질은 거기서 멈춘다. 왜냐하면, 골프는 작은 공을 막대기로 쳐서 남들보다 더 적은 타수로 구멍에 집어넣는 게임이고, 폼이 좋든 나쁘든 더 낮은 점수로 18홀을 끝내면 장땡이기 때문이다. 이 맥락에서 봤을 때 박인비 선수만큼 이 게임을 잘하는 사람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박인비 선수가 리디아 고를 제치고 아주 가뿐하게 금메달 따는 걸 보고 앞으로 더는 이 선수의 스윙에 대한 지적질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비즈니스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들을 볼 수 있다. 경험의 유무를 떠나서, 우리 모두에게는 겉만 보면 절대로 안 될 거 같은 비즈니스들의 고정관념들이 나름 머릿속에 박혀있다. 논리적이지 못한 사장, 학벌이 없는 창업가, 왠지 이상한 비즈니스 모델 등….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게 아니다. 비즈니스의 본질은 이런 껍데기가 아니라 이 회사가 얼마나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고객을 확보하고, 이 고객들이 기꺼이 돈을 쓰게 만드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박인비 선수와는 완전히 반대의 선수들도 있다. 외모는 화려하고 스윙도 FM인 골퍼들도 많은데, 막상 가장 중요한 수치인 점수가 별로다. 아무리 폼이 좋고 스윙이 좋아도 골프라는 게임에서는 점수가 높으면 우승하지 못한다. 이런 비즈니스들도 많다. 엄청난 경력과 학벌의 창업팀이 수십억 원의 펀딩을 받은 사례들이 우리 주변에도 꽤 있다. TV나 지하철역에 비싼 광고를 집행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비즈니스의 성공에 대해서 확신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비즈니스의 본질 자체가 부실하기 짝이 없는 경우가 많다.

내가 전에 블로깅 했던 샤크 탱크 일화도 똑같다. 잘 나가는 투자자들이 “저게 과연 될까?” , “내 경험에 의하면 저런 아줌마들은 사업 성공 방정식에 들어갈 자리가 없는데” , “말하는거나, 생긴 거나, 사고하는 게 스타트업을 잘 할 것 같지는 않은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모두 다 한마디씩 지적을 했다. 나도 이 방송을 보면서 이들과 똑같은 생각을 했으니까. 하지만, 비즈니스는 결국 고객들을 확보하고 매출을 만들면 이길 수 있는 간단한 게임이고, 이 게임에서 이 아줌마 CEO는 월등하게 잘하고 있었다.

샤도우 복싱에 대한 과거 글도 비슷한 맥락이다. 화려한 샤도우 복싱이랑 링에서의 실전은 완전히 다르다. 복싱의 본질은 상대방을 제대로 쳐서 쓰러뜨리는 거다. 외모와 자세가 아무리 둔해 보이고, 투박해 보여도 펀치를 잘 날려서 쓰러뜨리고 이기면 이 게임에서 이기는 것이다.

우리는 껍데기를 꿰뚫어서 그 안에 들어있는 본질을 파악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본질 외의 나머지 모든 것들은 잡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