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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누굴 아는지 난 관심 없다

6a00d834516b3c69e2015437f86d20970c-500wi나는 말이 너무 많은 사람이 싫다. 1시간짜리 미팅을 하면 어떤 사람들은 1시간 내내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상대방 이야기는 듣지도 않는다. 이런 사람들이랑 만나면 굉장히 피곤하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저 누구 알아요”로 모든 대화를 진행하는 사람들이다.

누구나 다 이런 사람들이 한두 명은 주변에 있을 텐데, 이상하게 나는 이런 사람들을 최근에 많이 만난 거 같다. 나도 꽤 바쁜 사람이라서 나랑 미팅하려면 그래도 며칠 전에는 약속을 잡아야 한다. 이렇게 어렵게 나랑 약속을 잡은 분을 얼마 전에 우리 사무실에서 한 시간 가량 만났다. 그런데 나한테 스스로와 현재 하는 비즈니스에 대해서 한 시간 동안 설명을 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이 분은 자기가 아는 사람들 이름만 줄줄이 읊다가 미팅을 끝냈다. 뭐, 들어보면 굉장히 유명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을 아는것 같고, 그중 나도 한번 만나보고 싶은 분들 이름도 있었지만, 솔직히 나는 이 분이 아는 사람들보다는 이 분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자신이 어떤 길을 지금까지 걸어왔고, 왜 이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나한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매우 궁금했었다. 하지만 만나자마자 누가 옛날 직장 동료였고, 지금 이 분야에서 굉장히 유명한 분이 대학교 동아리 선배고, 같은 아파트에 상장한 인터넷 기업의 부사장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미팅의 절반을 이런 ‘이름 들먹이기(name dropping)’ 하는데 허비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이런 사람들은 항상 있는데, 역시나 땅도 좁고 바닥이 좁은 한국이 더 심한 거 같다. 특히 내가 누구냐 보다는 내가 누굴 아는 게 더 중요한 한국의 ‘보여주기’ 문화는 이런 현상을 심화시키는 거 같다. 정작 본인은 아무것도 이루어 놓은 게 없는데 누군가 유명한 사람을 알고 있으면 마치 자신이 그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요새 너무 많다. 그리고 돈 많고 유명한 사람들을 잘 안다고 하면, 그 사람이 마치 대단한 것처럼 취급해주는 사회 분위기도 여기에 한몫을 한다. 정작 본인은 내세울 게 없고, 내실 없고 껍데기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이렇다는 걸 자주 경험한다.

그런데 어차피 내가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 업계 분들이라서 이들이 안다고 주장하는 많은 분을 나도 안다. “나는 그분을 아는데, 그분은 날 모르죠”가 아니라 그래도 서로 알고 지내는 그런 관계이다. 이 중 정말 친한 분들도 있고, 행사 같은 곳에서 정기적으로 보는 분들도 있지만 나는 내가 누굴 안다는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괜히 말했다가 그 사람을 소개해달라고 하면, 안 그래도 바쁜 사람들한테 누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누굴 안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항상 의심이 간다. 정말로 아는 것인지, 아니면 명함 한 번 교환한 것인지.

나는 당신한테 관심이 있지, 당신이 누굴 알던 관심 없습니다. 당신이 아는 남들에 대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지 말고, 당신 스스로에 대해서 그렇게 자랑할 수 있도록 내실을 다지세요.

<이미지 출처 = https://asheathersworldturns.wordpress.com/2015/03/13/name-dropper/>

우리 회사와 남의 회사

그 어떤 것도 공식화할 수 없는 게 ‘투자’라는 게임인 거 같다.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창업가를 선택하는 기준도 항상 다르고, 지금 검토하는 게 잘 될 만한 비즈니스인지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라는 것도 없다. 나도 자주 말하지만, 이 일을 하면 할수록 어떤 창업가들이 좋은 창업가인지, 그리고 어떤 비즈니스가 성공할 비즈니스인지에 대한 판단이 더욱 힘들어진다. 이런 거시적인 부분에서의 판단도 힘들고, 실제 미시적인 디테일로 들어가면 공식화할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회사의 밸류에이션이다. 창업한 지 1년도 안 된, 직장 경험이 없는 젊은 팀이 만든 매출이 없는 회사는 과연 얼마짜리 회사일까?

회사가 어느 정도 굴러가서 현금흐름이 명확하고, 미래의 현금흐름이 예측 가능해지면 DCF(=Discounted Cash Flow)와 같은 기업금융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방법으로 이 회사의 가치를 산정할 수 있다. 내가 만난 스타트업 중 이런 방법을 사용해서 회사의 밸류에이션을 정하는 회사들이 더러 있다. 물론, 내가 봤을때는 말이 안 되는 수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밸류에이션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앞으로 5년 동안 너무 극적으로 성장하는 그림을 그리는 이런 창업가들한테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권장하거나, 어떻게 이런 성장을 할 수 있는지 나를 조금 더 설득해달라고 부탁한다. 며칠 뒤에 다시 만나보거나 이메일로 연락해보면 어떤 창업가들은 조금은 더 수긍이 가능한 밸류에이션을 말한다. 하지만, 어떤 창업가들은 기존 밸류에이션을 끝까지 고수하면서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들을 제시한다.

이럴 때 가장 많이 듣는 건, “우리가 속한 분야에서 지금 가장 잘하고 있는 회사가 창업 후 초기 5년 동안 매년 200% 성장했습니다.” , “저희랑 비슷한 회사의 창업 2년 후의 밸류에이션이 이 정도였는데, 우리는 후발주자이니 더 잘할 수 있습니다.” 등과 같은 말인데, 항상 남의 회사와 비교를 해서 우리의 밸류에이션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실은 이런 방법을 CCA(=Comparable Company Analysis)라고 한다. 가치를 매기기 힘든 스타트업의 경우 비슷한 산업군의 기업 또는 유사한 비즈니스모델을 가진 기업을 벤치마킹해서 밸류에이션을 정하는 방법인데 나는 이 방법으로 스타트업의 밸류에이션을 정하는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창업가도 전에 만난 기억이 난다. 새로운 개념의 소셜미디어를 만든다고 주장하는 분인데 – 실은 전혀 새로운 개념은 아니지만, 여기서는 넘어가기로 한다 – 과거 창업 경험도 없고, 제대로 된 팀도 없는 상태였다. 제품도 개발 중이라서 뭔가를 보고 판단하기가 상당히 모호한 단계였는데 이 분이 스스로 부여한 밸류에이션은 80억이었다. 왜 80억이냐고 물어보니까, “우리 비즈니스와 페이스북이 비슷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페이스북이 창업 초창기에 받았던 밸류에이션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랑 마크 저커버그랑 능력 면에서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뭐, 좀 기가 차고 웃음도 났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분이라서 이야기는 좀 하고 미팅을 끝냈다. 참고로 이 비즈니스에 우리는 투자하지 않았고, 그 이후에 관련 소식이 안 들리는 거 보면 사업을 제대로 시작도 못 한 거 같다.

페이스북은 페이스북이고, 우리 회사는 우리 회사이다. 즉, 남이 받은 밸류에이션은 그 회사의 밸류에이션이고 우리 회사의 밸류에이션은 우리 회사의 밸류에이션이다. 아무리 비슷한 분야, 비슷한 단계, 비슷한 비즈니스 같지만, 조금만 더 깊게 들어가 보면 비슷한 점 보다는 다른 점들이 훨씬 더 많다. 그러므로 남의 밸류에이션을 보면서 우리 회사의 밸류에이션을 산정하는 건 시간 낭비이자 부질없는 짓이다.

끝까지 이런 방식을 고수하는 전자상거래 하시는 분과 대화하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대표님, 요새 이커머스 시장이 전반적으로 좋지가 않습니다. 저희도 투자를 좀 했는데, 이커머스가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많은 투자자들이 깨닫고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요새 전반적으로 이 분야 회사들의 밸류에이션이 하향조정되는 추세이거든요.”
그런데, 비슷한 분야의 회사들의 대한 밸류에이션을 주야장천 주장하시던 분이 한다는 말이 “아, 우리 회사는 조금 달라요. 이커머스 방식도 다르고, 비즈니스 모델도 다르기 때문에 그런 프레임을 적용하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였다.

남의 회사랑 우리 회사는 다르다.

본질에 대해서

골프를 안 치는 분들도 리우 올림픽에서 박인비 선수가 달성한 커리어 골든슬램에(=4개의 메이저 대회를 ‘그랜드슬램’이라 하는데, 이 4개 대회를 모두 우승하고, 올림픽까지 우승하면 골든슬램 달성이라고 한다) 대해서는 이제는 귀가 아플 정도로 많이 들었을 것이다. 골프를 좀 치는 사람들이라면 이게 얼마나 달성하기 힘든 기록인지는 잘 알 것이다. 엄청난 역사를 새로 쓴 박인비 선수, 박세리 감독 그리고 한국 여자 골퍼들한테 진심으로 존경심을 보낸다.

나는 개인적으로 박인비 선수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박인비 선수의 스윙은 ‘폼’을 꽤 중요하게 생각하는 골프라는 게임에서 봤을 때,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정석 폼은 아니다. 백스윙도 연결성이 부족하고, 체중 이동도 어딘가 조금 어색해 보이고, 눈으로 봤을 때 뭔가 시원해지지 않아서 그런지 내가 즐겨 보는 선수는 아니다(운동 선수 치고는 체중이 과한 것도 한몫을 한다). 실은 많은 골퍼들이 박인비 선수의 스윙을 보고 다들 한마디씩은 하면서 뭔가 좀 이상하다고 지적하는 걸 나도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지적질은 거기서 멈춘다. 왜냐하면, 골프는 작은 공을 막대기로 쳐서 남들보다 더 적은 타수로 구멍에 집어넣는 게임이고, 폼이 좋든 나쁘든 더 낮은 점수로 18홀을 끝내면 장땡이기 때문이다. 이 맥락에서 봤을 때 박인비 선수만큼 이 게임을 잘하는 사람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박인비 선수가 리디아 고를 제치고 아주 가뿐하게 금메달 따는 걸 보고 앞으로 더는 이 선수의 스윙에 대한 지적질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비즈니스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들을 볼 수 있다. 경험의 유무를 떠나서, 우리 모두에게는 겉만 보면 절대로 안 될 거 같은 비즈니스들의 고정관념들이 나름 머릿속에 박혀있다. 논리적이지 못한 사장, 학벌이 없는 창업가, 왠지 이상한 비즈니스 모델 등….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게 아니다. 비즈니스의 본질은 이런 껍데기가 아니라 이 회사가 얼마나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고객을 확보하고, 이 고객들이 기꺼이 돈을 쓰게 만드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박인비 선수와는 완전히 반대의 선수들도 있다. 외모는 화려하고 스윙도 FM인 골퍼들도 많은데, 막상 가장 중요한 수치인 점수가 별로다. 아무리 폼이 좋고 스윙이 좋아도 골프라는 게임에서는 점수가 높으면 우승하지 못한다. 이런 비즈니스들도 많다. 엄청난 경력과 학벌의 창업팀이 수십억 원의 펀딩을 받은 사례들이 우리 주변에도 꽤 있다. TV나 지하철역에 비싼 광고를 집행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비즈니스의 성공에 대해서 확신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비즈니스의 본질 자체가 부실하기 짝이 없는 경우가 많다.

내가 전에 블로깅 했던 샤크 탱크 일화도 똑같다. 잘 나가는 투자자들이 “저게 과연 될까?” , “내 경험에 의하면 저런 아줌마들은 사업 성공 방정식에 들어갈 자리가 없는데” , “말하는거나, 생긴 거나, 사고하는 게 스타트업을 잘 할 것 같지는 않은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모두 다 한마디씩 지적을 했다. 나도 이 방송을 보면서 이들과 똑같은 생각을 했으니까. 하지만, 비즈니스는 결국 고객들을 확보하고 매출을 만들면 이길 수 있는 간단한 게임이고, 이 게임에서 이 아줌마 CEO는 월등하게 잘하고 있었다.

샤도우 복싱에 대한 과거 글도 비슷한 맥락이다. 화려한 샤도우 복싱이랑 링에서의 실전은 완전히 다르다. 복싱의 본질은 상대방을 제대로 쳐서 쓰러뜨리는 거다. 외모와 자세가 아무리 둔해 보이고, 투박해 보여도 펀치를 잘 날려서 쓰러뜨리고 이기면 이 게임에서 이기는 것이다.

우리는 껍데기를 꿰뚫어서 그 안에 들어있는 본질을 파악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본질 외의 나머지 모든 것들은 잡음이다.

답은 항상 가까이 있다

스트롱 투자사를 포함, 많은 스타트업을 만나면 자신의 비즈니스 보다 남의 비즈니스에 더 신경을 쓰고 관심을 두는 대표이사들이 은근히 많다. 잘 팔고 있는 제품의 가격을 갑자기 낮추거나, 고객들이 유용하게 사용하는 서비스의 방향을 갑자기 바꾸는 회사들이 있어서 그 이유를 물어보면 거의 100% 경쟁사들 때문이라고 한다. 경쟁사가 제품을 훨씬 더 싸게 판매하기 시작해서 우리도 가격을 그만큼 낮추었고, 경쟁사가 갑자기 B2C 제품을 출시해서 B2B 비즈니스를 잘하고 있었지만, 우리도 B2C로 전략을 수정했다고 한다.

이런 분들과 이야기 하다 보면 아쉬울 때가 많다.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내 비즈니스, 내 고객들, 내 직원들 생각만 해도 잘 될까 말까 한데 사장의 초점이 우리 내부가 아니라 외부의 경쟁사에 집중되어 있으면 결과는 솔직히 안 봐도 뻔하다. 이렇게 하다 보면 내 비즈니스를, 내가 원하는 사람들과 내가 원하는 페이스에, 내가 타겟하는 고객군을 대상으로 전개하는 게 아니라 남의 비즈니스가 내 비즈니스를 결정하기 때문에 방향성을 잃을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 우리가 다른 회사들보다 더 높은 가격에 좋은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면, 그리고 기꺼이 이런 제품을 구매할 의향이 있는 고객군이 존재한다면, 우리 경쟁사들이 저가정책을 구사해도 굳이 우리가 가격을 이만큼 내릴 필요가 있을까?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명확하고, 장기적인 비전이 있다면, 경쟁사들이 우리와 다른 전략을 구사해도 우리는 그냥 우리만의 방향을 추구하면 된다. 남들이 하는 건 그들의 전략이다. 우리는 우리만의 전략이 있는데 왜 경쟁사들이 하는 모든 것을 따라 하는지 가끔은 이해가 안 간다.

이런 내 생각을 일반화해서 모든 창업가에게 적용 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잘 실행하고 성장하는 좋은 팀들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이렇게 자기 고객을 챙기기 전에 경쟁사의 동향만을 관찰하는 창업가들은 문제가 발생하면 그 해결책을 항상 외부에서 찾으려고 한다. 회사의 매출이 지속해서 감소하고 있다면, 경쟁사만 신경 쓰는 대표이사는 그 원인을 다른 경쟁사들의 저가정책에서 찾으려고 한다. 경쟁사가 가격을 후려쳐서 우리 고객들이 다른 회사에서 돈을 쓴다는 논리이다. 실은 이렇게 생각하는 게 제일 쉽고 속 편하다. 그리고 피상적으로는 이게 원인일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아마도 내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 회사의 제품에 문제가 있거나, 서비스의 경쟁력이 떨어지거나, 또는 고객관리가 미흡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리고 근본적인 해결책은 우리의 고객과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시장과 소통을 해야지 찾을 수 있다. 경쟁사를 맹목적으로 따라 하는 그 순간, 우리는 그냥 남의 비즈니스를 따라 하는 스타트업이 되는 것이다.

솔직히 비즈니스 역사를 공부해보면, 경쟁사 때문에 망한 회사들 보다 내부의 문제점들 때문에 망한 회사들이 더 많다. 남이 하면 더 잘 하는 거 같고, 남의 떡이 더 커 보이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왜 창업을 했고, 우리 비즈니스의 본질은 무엇인지 지속적으로 물어보고 고민해야 한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 회사의 문제이지, 경쟁사의 문제가 아니다. 경쟁사가 아니라 우리 회사 내부를 보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답은 항상 가까이 있다.

확실한 맺고 끊음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나는 맺고 끊음을 확실하게 하는 편이다. 미국에서는 이런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한국에서는 맺고 끊는걸 너무 칼 같이 하면 살아가는게 쉽지 않다는걸 많이 느낀다. 자신의 생각대로 소신있게 살기 보다는 남의 눈치만 죽어라 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보다는 “내가 이걸 하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이기 때문에 누군가 너무 확실하게 맺고 끊으면 조금 이상하고 불쾌하게 생각한다는걸 많이 느꼈다.

그래서 이런 맺고 끊는거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얼마전에 나한테 이에 대해서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일이 있었다. 좀 바쁘고 유명한 분과 연락해야하는 일이 생겨서 주위에 이 분을 아는 사람들을 찾아봤는데,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은 없고 한 다리 걸러서 이 분을 아는 사람을 소개 받았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바쁘시겠지만 꼭 소개를 부탁했고, 오늘 중으로 본인이 알아보겠다고 했다. 반나절이 지나도 연락이 없어서 (내가 급했기 때문에)다시 한번 연락을 해보니까 바빠서 아직 연락을 못 해봤다면서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바로 알아보겠다고 했다. 역시 그 다음날도 깜깜 무소식이라서 문자로 연락을 해보니까 계속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하다가 결국 연락이 두절됐다.

나중에 알아보니, 이 분도 자기가 친한 사람이 나를 소개해줬기 때문에 차마 거절은 못했고, 남한테 싫은 소리 하기도 싫고 좋은게 좋은거니까 도와주겠다고 해놓고 그냥 대충 뭉갰던거 같다. 실은 이런거 너무 싫은데, 혹시나 나도 다른 사람들한테 이렇게 하고 있지는 않았나 라는 생각을 했다. 거절하는게 괜히 껄끄러워서 승낙을 했지만, 막상 하려니까 귀찮거나 내 능력 밖의 일이라서 상대방은 애타게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무시하고 뭉개지는 않았는가? 안 그랬던거 같지만 혹시 나한테 그런 경험을 했다면 늦게나마 이 글을 통해서 사과드린다.

그래서 역시 확실하게 맺고 끊는게 나한테도 좋지만 남들한테도 훨씬 더 건강한 태도라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하기 싫거나, 할 수 없는 일이라면 남의 지위나 사정과는 상관없이 과감하게 끊어 버리는게 다른 사람이 더 이상의 미련을 갖지 않고 인생을 생산적으로 살 수 있게 해주는 지름길이다. 이와는 반대로 내가 해주겠다고 했으면 최선을 다해서 맺으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 그냥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태도를 취하면 서로를 위해서 좋을게 하나도 없다.

위에서 말했던 그 분이 나한테 애초부터 “그 사람을 알고 있지만, 바쁜 사람이라서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개를 못 해드리겠어요.” 라고 말을 했으면 나는 더 이상의 미련없이 다른 방법을 찾았을텐데 괜히 며칠 낭비를 했으니까 그 분은 나한테도 손해를 끼친것이다.

도와주기 싫으면 단칼에 거절하고, 도와주겠다고 했으면 진심을 갖고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