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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Coke의 교훈

Coca-Cola Company는 1985년도에 “New Coke”를 출시하였다. 잘 아시다시피 콜라는 굉장히 단순한 음료수이다. 물에 설탕이랑 색소를 적당히 섞어서 가스를 집어넣은 “탄산 설탕물”이다. (여담이지만 콜라 이야기만 나오면 1983년도에 그 당시 펩시 콜라의 중역이었던 John Sculley를 Apple의 사장으로 스카웃하기 위해서 스티브 잡스가 “나랑 같이 애플에서 세상을 바꾸겠습니까 아니면 평생 펩시에서 설탕 물을 팔래요?”라는 질문을 하였던게 생각난다. 존 스컬리는 이 말 한마디에 혹해서 애플로 넘어왔다). 본질은 설탕물이지만 코라 콜라는 단순한 음료수가 아니라 미국을 상징하는 가장 미국적인 음료수이기도 하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인의 자유정신과 개척자 정신이 이 설탕물에 내포되어 있다고들 하는데 그건 솔직히 잘 모르겠다. 특히 New Coke의 출시는 단순한 신제품의 launch를 넘은 미국 사회와 정치와도 밀접한 상관이 있는 대단히 상징적인 이벤트이기도 하였다. 코카 콜라를 안마시는 인구를 포함하여 코카 콜라가 미국인들의 (그리고 미국인들이 아닌 외국인들조차) 머리와 가슴에 이런 애국적인 이미지들을 형성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정말 대단한거 같다.

New Coke는 출시하기 전부터 엄청난 센세이션을 이르켰었고, 코카 콜라 중역들이 New Coke에 거는 기대는 대단하였다. 그럴수밖에 없던게 출시 전 사전 시장 조사에서 New Coke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기대 이상으로 좋았었기 때문이다. 눈을 가리고 다른 콜라와 New Coke를 비교하는 blind taste 테스트에서는 모든 소비자들이 New Coke가 펩시 콜라보다 맛이 좋았고 심지어는 Coca-Cola 보다도 맛이 좋다고 하였을 정도로 New Coke의 맛은 신선하였다. 하지만, 사전 테스트와 출시 초반의 판매호조와는 반대로 곧 New Coke에 반대하는 소비자 반대와 데모가 시작되었으며 소규모로 시작되었던 이러한 반대운동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면서 New Coke의 매출은 급격하게 추락하였다. 출시 몇일만에 New Coke는 코칼 콜라 최악의 실패작이 될 운명에 처한것이었다. 솔직히 나중에 이러한 이유들을 분석해보니 New Coke가 맛이 없어서 소비자들이 반대한게 아니라 신제품을 팔기 위해서 미국인들이 사랑하던 Coca-Cola 제품을 가판대에서 치워버림으로써 손상된 미국인들의 정서가 그 주된 이유였다. 어찌되었던간에 회사 절대절명의 위기 순간에 코카콜라의 경영진들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였던 행동을 취하였다. 수조원의 연구개발과 마케팅 비용을 투자해서 만든 신제품 New Coke 출시 77일만에 그들은 미국 전역의 New Coke를 회수하는 동시에 New Coke 브랜드를 죽였다. Yes, 말 그대로 죽여버렸고 그 이후로 다시는 New Coke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Coca-Cola Classic이라는 브랜드로 원래 콜라를 부활시켜서 다시 슈퍼마켓 가판대로 돌려놓았다. 당시 코카 콜라 대표이사였던 Donald Keough씨는 미국 전역 공중파 TV에 나와서 미국인들한테 미안하다고 사죄하였으며, 코카 콜라 경영진들이 큰 실수를 범했다고 순순히 인정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은 좋은 메시지를 전세계에 전달하였다.

“우리는 정말 바보같이 큰 실수를 저지렀습니다. 그렇지만, 코카 콜라 경영진들은 고객의 목소리를 무시할만큼 병신은 아닙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었고 Coca-Cola를 다시 부활시켰습니다.”

미국인들은 오리지날 코라콜라의 귀환을 대환영하였으며, 코카 콜라의 매출은 급등하여 그 해 기록갱신을 하였다. 그래서 몇몇 전문가들은 이 모든게 코카 콜라의 마케팅 전략이 아니었을까라는 의심도 하지만 설마 그정도로 극단적인 행동을 취했을까…

25년 전에 코카 콜라의 경영진과 대표이사가 자존심과 쪽팔림을 무릅쓰고 TV에 나와서 본인들의 실수를 인정하였던거는 가오 살리기 바쁜 super-ego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한박자 쉬면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살다보면 실수할 수 있다. 중요한거는 그때마다 스스로의 실수를 순순히 인정하는 것이다.”라는 좋은 교훈을 우리는 New Coke 마케팅 실패사건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 아쉬운 사실이지만 오늘날 기업인들, 그리고 특히 정치인들한테는 실수를 인정한다는건 거의 불가능하다는걸 우리는 현재와 과거의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트렌드는 더욱 더 확고하게 전세계 구석구석에 바이러스 처럼 번지고 있다. 실수를 인정하는게 그렇게 어려운것일까? 나도 살면서 실수를 많이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실수는 사람을 죽이거나, 인간성을 배신하는 그러한 도덕적인 실수를 말하는게 아니라 그냥 순간적인 miscalculation으로 인한 실수 (주로 비즈니스적인)를 뜻한다. 실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것이다. 어떠한 의도로 실수를 하였던간에 실수라는건 자신의 모자람과 그릇된 판단의 증거이자 산출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실수가 수만명의 직원들과 그 직원들 가족의 생계가 달려있는 회사의 중요한 전략에 관한것이라면, 아니면 더 나아가서 수천만명 국민들의 삶의 터전이 되고 있는 국가 운명에 대한것이라면 빨리 실수를 인정하고 해결책을 찾는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아직도 우리는 국민학생들도 이해할법한 이런 사실들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거 같다.

아직도 계속 이슈화가 되고 있는 도요타 자동차의 결함으로 인한 해프닝들과 (참고로 나도 피해자 중 한명이다. 얼마전에 렉서스 brake pad 교체하라는 안내장을 받은적이 있다) 일본 자동차 산업 사상 최악의 사태를 계속 follow 하면서 나는 도요타 자동차와 대표이사 Akio Toyoda씨한테 참으로 크게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이유로 인하였던간에, 그리고 그 결함의 크기에 상관없이 도요타 자동차의 안전불감증으로 인하여 문제가 발생한거는 기정사실이다. 특히 사람의 목숨과 직결되어 있는 자동차에서 이런 결함이 발생하였다면 그 회사의 대표이사와 경영진들이 가장 먼저 해야하는 일은 바로 그들을 믿고 제품을 사준 – 그것도 일이백원 하는 껌이 아닌 몇천만원씩 하는 고가의 자동차이다 – 고객들한테 미안하다는 사과를 해야하는 것이다. 도요타같이 세계적인 회사에서 본인들의 실수를 순수히 인정하는거는 회사의 이미지와 일본의 얼굴에 먹칠하는거와 같다고들 한다. 그렇지만 자존심 한번 죽이고, 가오 한번 죽이고 잘못을 인정하는게 과연 그토록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 언론에 떠밀려 마지못해 사건 발생 한참 후에 공중파를 통해서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면서 “스미마쎙~”하는 도요다 사장의 모습과 얼굴을 보니 그 얼굴에 토라도 해주고 싶었다.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나와 같은 사람은 이런 일들이 대기업의 PR과 매출에 얼만큼의 악영향을 끼치는지를 잘 이해 못해서 이런 발언을 한다고 욕해도 상관없다. 이건 분명히 아닌거 같다.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을 하는 순간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나 그 잘못을 받아들이는 소비자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자세를 취할 수 있는것이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 한화의 김승연 회장과 같은 기업인이나 이명박 대통령, 유인촌 장관과 같은 대한민국의 정치인들도 25년전 코카 콜라의 경영진이 취하였던 행동으로부터 많은것을 배울 수 있는 자세를 지금이라도 조금씩 만들수 있었으면 좋겠다.

잘못을 인정한다고 모든 잘못이 용서받을 수 있는건 아니다. 그렇지만 잘못을 하고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를 속이고, 주위의 가족과 직원들과 고객을 속이는건 더더욱 용서받을 수 없다. 그러면 본인들은 잠이 잘 올까?

Life and Rejections

며칠 전에 김수로 씨가 나온 “공부의 신”이라는 드라마를 다 봤다. 일본 만화가 원작이라서 그런지 상당히 유치한 장면도 많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재미있게 봤다. 아마도 나도 한국의 수험생활을 경험하였고 나의 고3 경험을 계속 떠올리면서 그때 상황을 머릿속에 재연해서 더 재미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이 블로그를 보시는 모든 분은 아마도 인생의 한 시점에 대학 입학시험 (나랑 나이가 비슷한 분들은 학력고사를 보셨을 것이고, 더 어린 사람들은 수능을 봤을 거다)을 봤을 테고, 성적에 따라서 대학교를 갔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현재 학교에 다니고 있는 대학생들이나 대학원생들도 있을 것이다. 머리도 좋고 운도 좋아서 한 번에 원하는 학교에 가신 분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은 재수하거나 아니면 원하는 학교에는 못 들어가서 그냥 차선책으로 다른 학교에 가신 분들도 있을 거다.

실은 나도 그랬다. 나는 유럽에서 초등학교랑 중학교를 거의 다 마치고 중학교 3학년 끝날 무렵에 부모님을 따라서 다시 귀국했다. 일단 우리말도 서툴렀을뿐더러, 그 당시만 해도 한국의 중/고 수학의 난이도는 세계 최고였다 (지금도 다르지는 않다). 외국에서 매일 축구랑 테니스만 하던 내가 하루에 20시간씩 공부만 하는 한국 토종 학생들을 따라가는 건 불가능하였다. 그리고 솔직히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을 꼭 가야 하는지에 대한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에 나는 고 2까지만 해도 전교 200등 밖의 최하위 성적을 유지하였다. 그런데 어떤 계기를 통해서 대학을 꼭 가야겠다는 결심을 고2 말에 하였고 고등학교 3학년 1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서울대는 아니고 흑석동에 있는 중앙대학교에 입학하였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중앙대학교가 어디 있는지도 그때는 몰랐다. 서울대나 연세대에 가고 싶었고, 그냥 1년 재수를 해볼까도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그렇지만 1년 더 공부해서 성적을 확 올릴 자신도 없었고, 1년 동안 정신적/육체적으로 고생을 하는 거보다 좀 더 일찍 대학생활을 해서 뭔가 자신에게 변화를 빨리 주는 게 좋을 거 같아서 대학 입학 결정을 하였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서울대학교에 합격했다면 지금쯤 어떻게 인생이 바뀌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중앙대학교 졸업 후 내 인생은 나쁘게 풀리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 당시 재수를 할지 말지, 생각지도 않았던 학교에 입학할지 말지에 대해서 고민할 때는 정말 많이 괴로웠고 내 실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고 자신을 자책하였던 기억이 난다.

올가을 미국의 대학 신입생 수는 290만 명이 될거라고 한다. 합격 예상자 수가 290만명이면 불합격자 수는 그 이상일것인데 고3때는 대학 불합격 통지서만큼 stressful한 이벤트가 없는거 같다. 나도 그 나이때는 그랬었지만 가고 싶은 학교에서 뺀찌먹었다고 해서 너무 좌절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아는 유명한 억만장자들, 노벨 수상자들, 대학 총장들, 베스트셀러 작가들, 방송인들, 존경받는 비즈니스맨들 모두 다 인생의 한 시점에서는 이와 비슷한 불합격 경험을 가지고 있다. 워렌 버펫과 “Today” 쇼의 호스트 Meredith Vieira는 그렇게도 가고 싶었던 하버드 대학을 떨어졌기 때문에 오늘날의 워렌과 메레딧스를 있을수 있게 한 인생의 스승들을 예상치 못하였던 학교에서 만났다. 노벨 의학 수상자인 Harold Varmus는 하버드 의대에 2번이나 낙방하였고, 그 이후 군입대까지 권장받았다. 그는 차선책이었던 Columbia 의대에 진학하면서 스스로의 능력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스승들과 환경을 비로서 찾는데 성공하였다고 한다. 흔히 rejection이라고하는 대학입학불합격 통보는 상당히 흔한 현상이다. 하버드 대학교는 해마다 29,000명의 지원자들의 원서를 받지만 그 중 단지 7%만을 합격시키고 스탠포드 대학은 이보다 더 낮은 합격률을 보유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그 당시에는 하늘이 무너지고 인생이 끝날것만도 같았던 그 불합격 통지서로 인해서 전화위복이 된거 같습니다.”라고 버펫 회장은 말한다. “건강 악화를 제외하고는 인생에 있어서 일시적인 좌절은 오히려 장기적으로 연명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거 같네요. 일시적인 좌절은 말 그대로 일시적인 현상이지 영구적인 실패가 아니라는걸 일찌감치 깨닫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오히려 이런 일시적인 좌절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걸 배우게 된거 같습니다.” 버펫 회장은 19살때 경험하였던 하버드 대학교 불합격 통지는 인생에 있어서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본인이 하고 싶은 분야와 성향은 하버드 대학과 잘 맞지 않았다고 생각되지만 하여튼 그 당시에는 무조건 하버드 대학을 입학해야만 하는 인생의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시카고에서 진행되었던 하버드 대학 입학 인터뷰에서 불합격 통지를 받았을때는 상당히 괴로웠다고 한다. 그렇지만 하버드 대학말고 대안을 찾던 중 그가 평소 존경하던 두명의 투자자들인 Benjamin Graham과 David Dodd가 Columbia 경영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그는 늦었지만 컬럼비아 대학에 지원을해서 막판에 합격통지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아는 오마하의 현자이자 우리 시대 최고의 투자자인 워렌 버펫 회장의 투자철학의 기본이 되는 핵심 원리들이 바로 이 두명의 선생님들로부터 배운것이다. 하버드 대학의 rejection은 Columbia 대학한테도 큰 횡재를 가져왔다. 버펫회장의 가족은 2008년도에 컬럼비아 대학교에 Susan Thompson Buffett 재단을 통해서 1,200만 달러 이상을 기부하였다.

Columbia 대학 총장 Lee Bolllinger도 하버드 대학교로부터 뺀찌를 먹었다. 이 쓰라린 경험을 통해서 그는 자신의 운명과 잠재력을 다른 사람이 결정하는게 아니라 스스로 찾아나아가야한다는 진리를 깨달았다고 한다. 교육의 기회가 적었던 시골에서 자랐던 Bollinger 총장은 자신보다 교육의 기회가 많은 친구들과 경쟁하려면 스스로 몇배 이상의 노력을 해야한다는걸 어릴적부터 깨달았으며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는 진리를 이미 몸으로 배웠다고 한다. 그는 하버드 대학의 리젝션 편지를 받은 후 장학금을 받고 Oregon 대학에 입학하여 하버드 대학에 진학한 동기들보다 더 열심히 인생을 살았고 졸업 후에는 Columbia Law School에서 법학을 공부하였다.

미국의 유명한 “Today” 쇼의 진행자 Meredith Vieira씨도 1971년도에 하버드 대학에 원서를 냈다가 불합격 통지를 받은 사람 중 한명이다. 그녀는 하버드에 못간거에 대해서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서 Tufts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신입생 기간 동안에는 주말마다 Tufts 대학에서 얼마 안 떨어진 하버드 대학 캠퍼스에 놀러가곤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녀는 Tufts에서 신문방송학의 대가를 만났고 그 교수를 통해서 방송분야로 입문을 하였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하버드대학에서 Meredith를 받아줬다면 아마도 우리는 오늘 이렇게 재미있는 “Today” 쇼를 즐기지 못할것이다.

유명한 앵커 Tom Brokaw 또한 하버드 대학 불합격 학생 중 한명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인생에서 실패라는걸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하버드 대학 불합격 통보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잘나가던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고 하고 그 이후로 술과 여자를 멀리하고 인생을 진지하게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버드 대학 리젝션은 큰 쇼크였지만 저를 정신차리게 만든 큰 계기였죠.”라고 Tom은 그당시를 회상하면서 말한다.

뉴욕의 Memorial Sloan-Kettering 암 센터 연구소장이자 노벨 의학 수상자인 Harold Varmus 박사 또한 2년 연속 하버드 의대로부터 퇴짜를 먹고 심각한 충격에 휩싸여있었다. 첫번재 불합격 통보를 받은 그는 너무나 가고 싶었던 학교였기 때문에 의대를 포기하고 대신 문학 수업 몇개를 수강해서 듣기까지 했지만 역시 문학에 재미를 붙이지는 못했다. 1년 뒤 그는 다시 하버드 의대에 지원하였으며 또다시 불합격을 하였다. 입학 인터뷰에서 하버드 의대 총장은 그의 태도와 생각이 유치하고 일정하지 못해서 입학을 허락할 수 없다는 말을 하였고 그로부터 의대에 지원하지 말고 그냥 군대나 가라는 치욕적인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하버드 의대와는 달리 Columbia 의대의 교수들은 Varmus 박사의 과학과 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관심을 높게 평가하였으며 입학을 허락하였다. Varmus 박사는 대학진학을 생각하고 있는 학생들한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한다. “내가 가고 싶은 학교보다는 나를 받아주는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세요. 물론 내가 가고 싶은 학교가 나를 받아주는 학교면 금상첨화죠.”

Northwestern Mutual 보험회사의 대표이사인 John Schlifske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미식축구 장학생으로 그렇게도 가고 싶었던 Yale 대학으로부터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그는 차선책으로 미네소타주에 있는 작은 Carleton College로 진학하였으며 거기서 생각지도 못하였던 우수한 교육을 받았고 Yale에 갔으면 만년 후보선수로 벤치에 앉아있어야하는 실력이었지만 Carleton에서는 항상 주전 선수로 미식 축구 경기를 하였다. “누군가 나를 원한다는 그 기분은 참으로 좋은 기분이죠. Carleton 대학이 나를 원하던 것처럼요.”라고 말을 한다. 이런 경험은 John의 아들한테까지 되물림 되었다. 2006년도에 John의 아들인 Dan이 가장 가고 싶었던 Duke 대학으로부터 리젝을 당했을때 그는 아들한테 다음과 같은 말을 해준다.”아들아, Duke 대학에서 No를 했다고 네가 갈 수 있는 다른 학교가 없다는건 아니지 않니. 너를 받아주고, 네가 좋은 교육을 받고, 4년을 즐길 수 있는 다른 학교에 가면 된단다.” Dan은 아버지의 충고를 받으들여서 Washington 대학에 진학하였으며 현재 너무너무 행복하게 학교를 잘 다니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 예시로, 나 또한 하버드 경영 대학원으로부터 rejection을 먹은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다. 2007년 가을 입학을 목표로 하버드, 스탠포드, 워튼, INSEAD, LBS 등등 최고의 비즈니스 스쿨들에 지원을 하였지만 내가 가고 싶었던 학교는 딱 하나였다. 바로 가문의 영광이라고 하는 Harvard Business School. 하버드 경영 대학원에 대해서는 수많은 루머와 근거없는 이야기들이 항간에 떠돌고 있다. 해마다 한국 학생들한테는 quota가 적게 주어진다니, 집안에 HBS 출신이 있어야만 입학한다니 또는 재벌집이나 정치인 자녀면 입학이 더 수월하다니…그런데 재수좋게도 나는 인터뷰 초청을 받았다. 평소 인터뷰라면 자신이 있었기에 드디어 나도 하버드 학생이 되는구나라고 혼자 좋아했었는데 아주 보기 좋게 ding 먹었을때는 역시나 대학입학때와 비슷하게 아주 기분이 좋지가 않았다. 그리고 차선책으로 나는 나머지 비즈니스 스쿨 중 워튼을 선택하였고 비록 졸업은 못해서 MBA 학위는 못 땄지만 UPenn에 간걸 매우 다행이자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어쩌면 내가 하버드 MBA에 갔다면 너무나 가고 싶었던 학교이기 때문에 졸업하는데 연연해서 지금쯤 이런 startup 생활보다는 월가에서 돈을 만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워튼에 갔기 때문에 공부보다는 이런저런 딴짓을 많이 해서 지금 LA에서 뮤직쉐이크를 운영하고 있는걸지도 모르는걸 보면 나도 하버드 떨어진게 잘된일? (ㅋㅋ 그건 아닌거 같고, 오히려 하버드 갔으면 더 잘됐겠지…)

위에 언급한 사람들이 모두 하버드 대학에 떨어졌기 때문에 잘되었다는 말을 하는건 논리의 비약이다. 오히려 하버드 대학에 진학을 했다면 이 사람들은 오히려 더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분명히 목표하였던 학교에 들어가지 못한게 인생에 있어서 큰 자극제가 되었음에는 분명한 사실들인거 같다. 생각해보면 나도 서울대와 연고대 진학한 친구들보다 네임브랜드가 떨어지는 중대를 졸업해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였던 면도 있는거 같으니까. 인생을 살다보면 성공보다는 실패를 더 많이 할 수 밖에 없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진리이다. 실패할때마다 그냥 좋은 경험했다하고 다시 일어서서 아무일 없었던것처럼 새로 시작하면 된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는가?

“Don’t let rejections control your life. To allow other people’s assessment of you to determine your own self-assessment is a very big mistake.”

-Lee Bollinger, Columbia University President who was once rejected by Harvard University

AdMob과 워튼의 슈퍼스타 Omar Hamoui

때는 2005년도. 워튼 스쿨 MBA 학생이었던 Omar Hamoui는 필라델피아 UPenn 캠퍼스의 끝자락에 있는 학생용 기숙사/아파트에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 fotochatter라는 모바일 사진 공유 사이트를 창업하기 위해서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열심히 컴퓨터에 매달려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대략적인 서비스의 뼈대는 만들었는데 역시 가장 큰 어려움은 마케팅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갓 시작한 서비스를 어떻게 미래의 고객들한테 알리는가가 가장 큰 숙제였다. 그것도 이건 인터넷 서비스가 아니라 모바일 서비스였다. 모바일서비스를 온라인 상에서 광고하는건 약간 실용적이지 못할뿐더러 엄청나게 비싼 방법이었다.

MBA 수업에서 배운 pricing 방법들을 사용해서 대략적인 계산을 해보니 온라인 광고를 하면 모바일 유저 한명을 등록시키는데 드는 비용은 무려 $30이라는 숫자가 나왔다. 돈도 없고 방법도 효과적이지 못하고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을 그는 했다. 그대신 그 당시만 해도 생소하고 이제 걸음마 단계인 모바일 웹 광고 시장 쪽으로 Omar는 눈을 돌렸다. 모바일 웹 광고 비용은 1센트 CPC (Cost Per Click – 유저들이 모바일 웹 브라우저에서 광고를 한번 클릭할때마다 fotochatter와 같은 광고주가 내야하는 비용) 밖에 안했고 초기 테스트 결과는 훨씬 효과적이었다. 광고를 클릭하는 유저 중 10%가 fotochatter 서비스에 등록을 하였고, 그 결과로 인해서 순수 온라인 광고와 비교해 봤을때 유저 한명을 등록시키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30에서 10 센트로 드라마틱하게 절감되었다. 그는 이러한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앞으로 다가올 모바일 광고 시장의 가능성을 몸소 경험할 수 있었고,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를 발견하였다는걸 직감적으로 알게 되었다.

2006년도 1월 Omar는 나랑 비슷하게 (아 근데 결과는 비슷하지가 않다 ㅋㅋ) 워튼 MBA 프로그램을 중퇴하고 AdMob이라는 모바일 광고 플랫폼 서비스를 창업하였다. AdMob은 우리가 잘 아는 구글의 광고 플랫폼이자 cash cow인 애드센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AdMob은 구글 애드센스가 웹에서 정평한 온라인 광고를 모바일 영역에 적용하는 서비스이다. 광고주들은 돈을 내고, 퍼블리셔들은 그 광고를 본인들의 모바일 사이트나 아이폰 앱과 같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 집어넣어서 유저들에게 노출을 시키는거다. 유저들이 광고를 클릭하거나 서비스에 등록할때마다 퍼블리셔들과 AdMob은 광고주들이 지불한 광고비용을 나누어 먹는 그러한 기본적인 시스템이다.

창업 후 5년을 fast forward 해보자. 2009년 말에 구글은 AdMob을 무려 7억5천만 달러에 (한화로 약 9,000억원) 인수한다는 발표를 하였다. 참고로 구글의 AdMob인수 가격은 지금까지 구글이 인수하였던 벤처기업 중 3번째로 비싼 가격표이다. 첫번째는 31억 달러의 DoubleClick이고 두번째는 16억 달러의 유튜브이다. 또한, 이 deal은 여러 사람들에게 참으로 많은걸 시사하였다. 일단 불경기로 인해서 침채되어 있던 전체 tech 시장의 M&A가 다시 한번 활발해지고 있다는걸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신호탄의 역할을 하였다. AdMob은 비상장 회사라서 정확한 매출이나 재무재표는 공개되지 않지만 전문가들은 년매출이 대략 4천5백만 ~ 6천만 달러라고 추정하고 있다. 구글의 인수가격인 7억5천만 달러는 AdMob 매출의 약 16.7배인데 이러한 배수는 2005년 M&A 황금기때나 볼수있던 그러한 multiple이다. 배고픈 entrepreneur들한테도 너무나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IPO 시장이 말라가고 있는 지금 구글이나 마이크로스프트한테 회사를 파는건 모든 벤처인들의 로망인데 이 시장이 아직은 죽지 않았다는걸 의미하기도 한다. 모바일/온라인 광고 시장 또한 구글의 AdMob 인수로 인해서 오랜만에 활기가 돌고있다. 2009년도는 온/오프라인 광고의 암흑기였지만 구글의 AdMob 인수 소식은 다시 광고 시장이 살아나고 있다는 건강한 신호였기 때문이다. 참고로, 구글한테 질세라, 이 발표 이후 Apple은 Quattro Wireless라는 다른 모바일 광고 네트워크를 2억 7천 5백만 달러에 인수하였다. 특히 나한테는 이 소식이 단순히 큰 deal이라는걸 넘어서 개인적으로 많은걸 느낄 수 있도록 해준 뉴스였다. 워튼이라는 동문 네트워크를 통해서 Omar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아주 친한거는 아니다) 내 주위에 있는 학교 선배가 이런 대박을 맞았다는게 자랑스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당연히 부럽기도 하였다. 어떻게 보면 나도 Omar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학교를 중퇴하고 스타트업을 하고 있는데 과연 이런 대박을 나도 맞을 수 있을지는 상당히 의구심이 들지만 어찌되었던간에 명문 MBA를 그만 둔게 주위에서 손가락질 하는거와 같이 그렇게 병신같은 선택은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쯤 하게하는 그런 계기가 되었다.

AdMob과 모바일 광고에 대해서 조금 더 dive in을 해보자. “저는 그 당시 모바일쪽에서 뭔가를 하려고 했던 수많은 벤처인 중 한명이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핸드폰 제조업체나 캐리어랑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니까 모바일 쪽으로는 그 어떤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는게 이 바닥 현실이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짜증이 나서 그러면 내가 직접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AdMob을 창업하였습니다.”라고 Omar는 AdMob의 초라하였던 시작을 회상한다. AdMob은 현재 15,000개 이상의 모바일 웹사이트들을 통해서 매달 100억개의 배너와 텍스트 광고를 서비스하고 있다. 코카콜라, P&G, 아디다스와 나이키 등이 주 고객 리스트에 포함된다. 곧 구글의 식구가 될 AdMob과 (현재 미국 정부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구글은 둘이 합쳐서 이제 미국의 모바일 광고 시장의 21%를 점유하게 된다. 2위는 AdMob의 경쟁업체인 Millennial Media인데 12%를 차지하고, 그 다음으로는 야후가 10%이고 마이크로소프트가 8%를 차지하고 있다.

솔직히 아직 전체 광고시장에서 모바일 광고가 차지하고 있는 portion은 상당히 작다. 2009년도 미국의 모바일 광고 시장의 크기는 4억 1천 6백만 달러였는데, 이는 온라인 광고 시장에서 소비된 240억 달러에 비하면 매우 보잘것없는 금액이다. 그렇지만 Omar의 주장은 앞으로 모바일이야말로 가장 성장 가능성이 높은 미디어 플랫폼이며, 지금부터 모바일 광고를 하는 업체들은 앞으로 몇년 후면 타 경쟁사들보다 시장에서 훨씬 더 경쟁력있는 위치를 확보할 수 있을거라고 한다. 모바일 광고와 기존의 광고 매체를 – 신문, 라디오, TV 그리고 심지어는 인터넷까지 – 차별화하는 가장 으뜸 요소는 바로 모바일 광고의 reach와 relevance이다. ITU (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에 의하면 세계에는 약 46억명의 핸드폰 사용자들이 있으며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핸드폰의 숫자는 전세계 TV 보유 숫자보다 3배나 많고, 데스크탑과 랩탑 PC수를 합친것 보다 5배나 더 많다고 한다. TV와 PC와는 달리 핸드폰은 우리 몸에 거의 24시간 붙어 있다. 식당에 식사하러 가거나, 백화점에 쇼핑하러 갈때, 심지어는 화장실에 큰일보러 갈때 PC는 가져가지 않지만 핸드폰은 손안에 항상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적시적소에서 광고주들은 소비자들한테 relevant한 광고를 핸드폰을 통해서 밀어 (push) 줄 수가 있다. 즉, 내가 강남 압구정동의 스타벅스 앞을 지나갈때 나의 위치를 핸드폰의 GPS 시스템을 통해서 파악한 후 현재 스타벅스에서 진행하고 있는 커피 할인 행사 내용을 핸드폰 화면을 통해서 보여줄 수 있다. 물론, 그전에 핸드폰에서 내가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이나 이메일등을 통해서 내가 커피를 즐겨 마신다는 성향을 이미 파악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time and location relevant한 광고를 밀어 줄 수 있는것이다. 즉, 구글이 선두하였던 쿠키와 사용자 행동을 기반으로 하는 적절한 온라인 광고에 “실시간 위치”라는 아주 파워풀한 차원을 추가한 것이 모바일 광고의 힘이지 무한 가능성이다.

특히 2007년도 아이폰의 출시는 이러한 모바일 광고 시장의 tipping point가 되었다. 또한, AdMob이 구글의 관심을 끌기 시작할 수 있었던 계기의 발판을 마련해주었던 순간이기도 하였다. 애플이 소개한 App Store와 특별한 조건이나 인맥이 없던 그 누구나 사용해서 앱을 개발할 수 있었던 SDK는 몇년 후인 지금 생각해도 모바일 웹과 우리가 모바일 기기와 컨텐츠를 사용하는 방법을 영영 바꾸어 놓은 일생 일대의 사건이었던거 같다. Launch한지 18개월도 안되어서 App Store에는 10만개의 아이폰 앱이 있었고 아이폰 유저들은 이러한 유/무료 앱들을 20억번이나 다운로드를 했다. Omar는 이런 하늘이 주신 평생 한번 올까말까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008년 7월달에 App Store가 소개되었는데 그 이후 몇 주 안되어서 AdMob은 전세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아이폰 3G 광고 마켓플레이스를 출시하였고 그 결과로 2009년도 말 AdMob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서 아이폰 앱과 아이폰 브라우저들에서 노출된 광고 횟수는 자그마치 25억번 이었다. “아이폰 앱 전용 모바일 광고 포맷을 그때 저희가 처음으로 만들었는데 다들 긴가민가 했었던거 같아요. 그때까지만해도 모바일쪽으로 시도하였던 모든 새로운 initiative들이 실패하였기 때문에 AdMob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던 사람들이 거의 없었어요.”라고 Omar는 그 당시 분위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AdMob은 코카콜라와 나이키와 같은 대형 브랜드들이 소비자들한테 24시간 모바일 웹을 통해서 광고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하지만, 뮤직쉐이크와도 같은 코딱지만한 벤처기업들이 모바일 분야의 노력을 현금화할 수 있는 효과적인 플랫폼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작은 회사들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서 이걸 가지고 딱히 매출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지만 AdMob을 이용하면 손쉽게 모바일 광고 매출을 생성할 수 있다. 실제로 AdMob 의 고객 중에 Fortune 500대 기업은 절반도 안된다. 나머지 반은 거의 다 뮤직쉐이크와 같은 작은 개발사들이다. 현재 AdMob은 160개국에서 모바일 광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나라의 소비자들을 reach할 수 있는것도 놀랍지만, AdMob이 또 하나 잘하는거는 바로 방대하고 분석적인 데이타를 모든 publisher들한테 제공을 한다는 것이다. 하루에 어느 나라에서, 어떤 모바일 브라우저를 통해서, 어떤 연령층의 고객들이, 어떤 광고를 몇번 클릭했는가 등등…그전에는 전혀 볼수조차 없었던 이러한 알짜배기 고객정보를 작은 개발사들한테 제공을 해준다. 돈없고 힘없는 작은 회사들이 겪는 바로 이런 에로사항들이 Omar가 5년 전에 본인이 직접 느꼈던 불편함이었고, 용감한 entrepreneur라면 누구나 다 그렇듯이 그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직접 AdMob을 창업한것이다. 그것도 2007년 8월부터 2008년 1월까지 내가 5개월 동안 거의 매일 왔다갔다하던 UPenn의 캠퍼스에서 말이다.

구글의 AdMob 인수 소식은 모바일 광고 시장이 이제 곧 커지기 시작할거라는 신호탄이자, 모바일 광고 시장은 온라인 광고 시장과는 확실하게 차별화될거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미 Google AdSense for Mobile 서비스를 개발해서 서비스하고 있던 구글의 엔지니어들조차 AdMob이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동안 만든 모바일 광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실패하였고, 더 이상 스스로 in-house에서 모바일 광고 솔루션을 만들기에는 기회의 창과 시간이 많지 않다는걸 느낀 구글은 AdMob을 사버린 것이다. 워튼 동문들한테 듣기로는 이제 워튼의 모든 entrepreneurship 관련 수업 자료에는 Omar Hamoui와 AdMob의 영웅담이 실려져 있고, 창업을 꿈꾸고 있는 모든 미래의 워튼 MBA들한테 Omar는 영웅으로 등극을 하였다고 한다. AdMob의 대박난 exit 소식을 통해서 나도 다시 한번 스스로를 돌아보고 재정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학교를 다니다가 나랑 똑같이 중퇴한 선배가 이렇게 잘된게 마치 내 일인 마냥 기쁘다.

AdMob 소식을 계기로 워튼 학생들도 창업을 좀 많이 했으면 좋겠다. 워튼은 솔직히 학교의 명성에 비해서 – Financial Times는 워튼을 9년 연속 No.1 business school 랭킹을 부여하였지만, MBA를 해본 사람들은 워튼은 2위나 3위인걸 누구나 다 안다. HBS가 부동의 No.1이고 2위를 가지고 스탠포드와 워튼이 항상 경쟁을 하는거 같다 – entrepreneurship이 너무 저조한 학교이다. 유명한 펀드매니저나 월가의 큰손들 중에는 워튼 출신들이 상당히 많이 있지만 워튼 출신의 인터넷 entrepreneur를 꼽아보라고 하면 딱히 생각나는 이름이 없었던게 정말 아쉬웠는데 이제는 Omar Hamoui라고 당당하게 말을 할수가 있어서 기쁘다 (내가 아는 워튼 출신의 또다른 쓸만한 창업자는 JibJab의 Gregg Spiridellis이지만, 아직 JibJab은 exit을 하지 못했다). 아 쓰바…나도 너무 늙기전에 워튼 entrepreneurship 수업 자료에 이름 한번 올라가보자 (“MBA를 중퇴하면 안되는걸 증명하는 대표적인 실패 케이스”로?? ㅋㅋ)

그래서 나도 빨리 분발해서 잘하자는 의미로 Entrepreneur 잡지에 실린 Omar Hamoui 사진을 얼굴에 대고 사진을 찍어봤다. Omar와 AdMob의 운빨과 정기를 팍팍 빨아들여보자. 옷도 워튼 Cohort D 티셔츠다.

My Dream, Our Dreams

오마하의 현자 Warren Buffett에 대해서 는 내가 이 블로그를 통해서도 여러번 언급을 하였고 개인적으로도 많이 존경하는 투자자이자 entrepreneur이다. 워튼에서 한 학기만 더 했어도 Berkshire Hathaway를 방문해서 버펫 형님과 간담회를 통해서 이야기할 기회가 주어졌을텐데 아쉽게도 그전에 나는 학교를 그만 두었다. 워렌 버펫에 대해서는 참으로 많은 이야기와 뉴스거리를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의 자식들에 대한 기사는 삼성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씨 만큼은 자주 볼수가 없다. 아니, 버펫의 아들에 대한 소식은 언론을 통해서 전혀 접할수가 없다. 그런데 얼마전에 출간된 “Life is What You Make It”이라는 책은 버펫의 아들인 Peter Buffett씨가 쓴 수필 형식의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아버지인 오마하의 현자가 자식들 한테 물려준 유산에 대해서 언급을 한다. 매우 세련된 표현을 썼는데, 그는 19살이 되었을때 아버지가 하고 싶은걸 다 할 수 있을만큼의 유산을 물려주었지만 그렇다 고 일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영어 원문은 “enough to do anything, but not enough to do nothing”이다. 그 유산은 돈이 아니었고 시골의 작은 농장이었다. 당시 스탠포드 대학에 서 공부하고 있었던 대학생인 그는 농장을 팔고 그 돈으로 아버지 회사인 Berkshire Hathaway 주식을 샀다. 그리고 그는 이 주식을 팔아서 약 9만 달러를 현금으로 챙긴 후 학교를 중퇴한다. (당시 9만 달러였던 주식의 오늘날 가치는 참고로 7,200만 달러라고 한다. 하지만 피터는 후회하지 않는다 고 한다. 과연 그럴까?)

학교를 중퇴하고 피터는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가서 작은 음악 스튜디오를 차리고 거기서 본인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였다. 피아노도 쳤고, 작사도 하고 음악 관련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알바도 뛰고 무상으로도 일을 하곤 하였다. 큰 돈을 벌지는 못하였지만 다행히도 아버지가 주신 유산덕에 어렸을 적부터 꿈이었던 뮤지션이 되기 위해서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갔 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혹자는 이 기회가 우연을 가장한 워렌 버펫이 뒤에서 만들어준 기회라고 한다) 당시 설립된지 얼마 되지 않은 MTV라는 음악 채널과 작업을 시작 하였고 그는 MTV와 같이 성장하면서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벌면서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결국 에미상 수상의 영광을 얻는 유명한 작사/작곡 뮤지션으로써 명성을 쌓을 수가 있었다. “아마도 처음부터 먹고 살기 위해서 음악을 해야했다면 중간에 포기했을겁니다. 이런 면에서 저는 아버지가 저한테 주신 유산을 너무너무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그는 한다. 이재용씨는 아버지한테 이런 고마운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건희 회장은 아버지 이병철씨한테 이런 고마운 생각을 한번이라도 해봤을까?

워렌 버펫은 그의 아들한테 꿈을 쫓기 위해서는 충분하지만, 그렇지만 평생동안 놀면서 살기에는 부족한 만큼의 유산을 물려주었다. 여기서 나도 한번 생각을 해본다. 과연 우리 아버지가 갑부여서 (확실히 말을 하지만 나는 부잣집 에서 자라지 않았다) 나한테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을 만큼의 유산을 주셨다면 나는 무엇을 했을까? 나는 “regret:후회” 라는 말을 매우 싫어한다. 후회하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 항상 최선을 다하는 생활을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지금까지 살아왔던 짧은 삶을 뒤돌아 본다면 “아…그때는 이걸 한번 해볼걸” 이라는 후회는 가끔씩 한다. 나한테 피터 버펫과 같은 기회가 있었다면 프로 테니스 선수가 될 수 있는 길을 걸었을 거 같다. 국민학교때 처음으로 잡았던 테니스 라켓…나는 남들보다 테니스에 소질이 있었고 어렸지만 힘들고 고된 육체적 트레이닝을 즐기면서 운동을 하였다. 한국인 최초의 Grand Slammer – 테니스에는 Grand Slam이라는 4개의 메이저 대회가 있는데 열리는 순서대로 나열하면 호주 오픈, 프랑스 오픈, 윔블던 (대영 오픈)과 US 오픈이 있다 – 가 되고 싶었지만 신체적 조건의 열세 (나는 키가 작다)와 한국 부모들의 운동 선수에 대한 달갑지 않은 눈초리, 이러한 복합적인 요소들 때문에 일찌감치 포기를 하고 공부를 해서 일을 하는 방향으로 career path를 전환하였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능력있는 테니스 선수가 못 되었을 경우에 는 먹고 살 방법이 딱히 없다는 우려와 내 스스로의 운동선수의 자질에 대한 불신이었지만 요새도 가끔씩은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그때 정말로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프로 테니스 선수의 길을 걸었으면 내 인생이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다 시 태어나서 우리 아버지가 나한테 꿈을 쫓을 수 있을 만큼의 유산을 물려주신다면 꼭 한번 시도해보고 싶다.
테니스 선수.

SAS – The Best Company to Work For

sasFortune지에서 2010년도 “100 Best Companies to Work For“를 리스트를 얼마전에 발표하였다. 나는 이 리스트를 거의 10년 동안 보고 있는데 솔직히 그다지 자세히 보지는 않고 그냥 한번 훑어 보고 어떤 회사들이 상위 랭킹에 있는지만 본다. 그래야지 나중에 미국 사람들이랑 이야기할때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ㅎㅎ. 상위권의 회사들의 이름은 우리가 대부분 잘 알거나 한번 정도는 이름을 들어본 회사들이라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데 올해 리스트는 일부러 시간을 투자해서 면밀하게 보고 어떤 회사들이 과연 미국에서 제일 평이 좋은지, 그리고 왜 그렇게 평이 좋은지도 유심히 봤다. Top 10에 올라온 회사 중 4개 정도가 내가 잘 모르는 회사여서 자세히 봤던 이유도 있지만, 미국에서 일하기 가장 좋은 회사가 SAS라는 솔직히 이 리스트의 꼭대기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거 같지 않았던 회사라서 한 글짜도 빼지 않고 전체 내용을 다 읽었다.

SAS (발음은 ‘사~스’이다)는 Fortune이 Best Companies to Work For 리스트를 집계하였던 13년 동안 해마다 이 리스트에 올라갔었지만 1등은 올해가 처음인데 이 글을 읽으면서 갑자기 2008년도의 한 에피소드가 머리를 잠깐 스치고 지나갔다. 1999년도 스탠포드에서 같이 공부하였던 통계학과 출신 박사 친구가 있었는데 졸업후 대부분의 박사 친구들은 학계로 진출을 해서 교수가 되거나 연구원이 되었는데 이 친구는 그당시 모든 액션이 일어나고 있었던 실리콘 밸리에서 멀리 2,600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동부의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SAS라는 회사에 통계 연구원으로 취직을 했다. 그 당시만해도 SAS는 비즈니스 분석 툴 (business analytics)의 분야에서는 최강자였고, 나도 이 회사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고 어떤 회사인줄을 알고 있었기에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지만 실리콘 밸리에 난다 긴다 하는 벤처기업들이 엄청난 연봉과 스톡 옵션을 제공하면서 스탠포드 박사들을 채용해가고 있던 시기에 이 친구가 “시골바닥”인 노스 캐롤라이나도 간다는게 조금 놀라웠다. 이메일로 가끔씩 연락을 하면서 지내다가 2008년도 다시 스탠포드 대학 근처에서 이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아직도 SAS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고, 매우 행복해 보였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 전날 내가 구글에서 미팅한 내용과 구글의 직원 복지 제도에 대해서 존경심을 표시하면서 “뮤직쉐이크는 언제 구글같은 복지 시스템을 갖추나”라면서 부러워하니까 이 친구가 피식 웃으면서, “야 구글이 뭐 그렇게 대단하냐. SAS 복지 제도는 더 좋아.”라고 했는데 그 당시 속으로는 미친놈이라고 욕했지만 이제서야 그 이유를 알겠다.

SAS가 올해 포츈지가 선정한 Best Company to Work For인 이유는 바로 다른 회사들의 추종을 불허하는 우수한 직원 복지 제도때문이다. 나도 이걸 읽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직원들한테 투자를 많이 하는 회사가 있는지 의아해할 정도였는데, here is the full story:

SAS의 시작은 매우 미약했다. SAS는 1976년도에 (내가 2살때였다 ㅎㅎ) 현재 대표이사인 Jim Goodnight씨가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에서 친구들과 만들었던 그 당시만해도 생소하였던 분야인 비즈니스 분석을 하는 통계 소프트웨어의 이름이었다. 참고로 SAS는 Statistical Analysis System의 약자이다. SAS 소프트웨어의 잠재가능성을 일찌기 인식한 굿나잇씨는 학교에서 이 소프트웨어를 더 이상 발전시키는거는 의미가 없다는걸 깨닫고 직접 창업을 했으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들같다^^), 아직도 회사의 66% 정도를 소유하고 있다. 초기의 SAS 소프트웨어는 농부들이 농산물 수확을 증가시킬 수 있도록 과거의 기후나 농산물 data를 분석하는데 사용되었지만 오늘날 Fortune 500대 기업의 79%가 알게모르게 뒷단에서 SAS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가령, 옷을 제조하고 판매하는 Gap과 같은 회사들은 SAS 소프트웨어를 통해서 언제 얼마만큼 어떤 옷을 만들어서 어느 매장에 어느정도의 재고를 가지고 가야하는지를 예측한 후에 이 트렌드에 따라서 비즈니스를 한다. 제약업체들은 신약출시하기 전에 경험할 수 있는 시행착오를 SAS를 통해서 최소화할 수 있으며, 야구 구단주들은 각각의 야구 경기에 대해서 표를 얼마에 팔아야하는지까지도 예측을 어느정도 가능케 하는게 바로 SAS 소프트웨어의 강점이다. SAS의 2009년도 매출은 약 23억 달러였는데, 이 수치는 SAS를 세계에서 매출이 가장 큰 비상장 소프트웨어 회사로 만든다.

SAS의 평균 근무 년수는 10년이다; 300명 이상은 무려 25년 이상을 현재 같은 회사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데 하루가 멀다하고 직장을 옮기는 요새 젊은이들한테는 이해하기가 참으로 힘든 회사일것도 같다. 2009년도 퇴사율이 2%밖에 안되었는데, 미국 소프트웨어 산업의 평균 퇴사율은 참고로 22%이다. 직원 중 45%가 여성이며, 전체 직원의 평균 연령은 45살이다. 나도 주위에 좋은 회사들을 많이 봤고, 행복하게 일을 하는 직원들을 많이 알고 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도 그 중 하나이다) 이렇게 퇴사율이 낮고 직원들이 오래동안 한 회사에서 일을 하는 회사는 본적이 없는거 같다. 거의 우리나라의 “평생 직잡” 개념을 가지고 있는 미국 회사와도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더군다나 SAS의 연봉 수준은 미국의 평균 소프트웨어 산업의 연봉보다 낮으며 직원들한테 회사의 스톡옵션을 전혀 부여하지 않는데도 직원들이 집보다 직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 괜찮다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이 모든걸 가능하게 할 수 있었던건 창업자이자 대표이사인 짐 굿나잇씨의 직장에 대한 철학이 아닐까 싶다. 올해 67세인 굿나잇씨는 노스캐롤라이나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이다. 통계학 박사 학위 소지자이자, 한때는 대학 교수님까지 하였던 굿나잇씨는 언론에는 매우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다 (나도 이 기사를 읽기 전에는 누군지 전혀 몰랐으니까). 굿나잇씨는 상당한 실용주의자이기도하다. 집도 SAS 캠퍼스안에 있고, 35분이라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머리도 구내 이발소에서 깍는다. 미팅 도중에 더이상 미팅에서 얻을 수 있거나 배울 수 있는 새로운 사실이 없으면 그냥 자리를 박차고 나오기로 유명하기도 한 CEO이다. 그는 직원들에 대해서 종종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매일 밤 우리 직원들이 회사 정문을 통해서 퇴근을 합니다. 대표이사로서 내 임무는 퇴근한 직원들이 그 다음날 다른 회사의 정문이 아니라 우리 회사의 정문으로 다시 출근하도록 만드는거죠.”

굿나잇씨의 이러한 자세는 직원들을 위하는 인도주의적 정신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직원들한테 잘해주면 그만큼 더 생산성이 올라서 회사의 매출과 이익에 기여한다는 마키아벨리적인 사상에서 나오기도 한다. SAS의 평균 주간 업무 시간은 보통 35시간이다 (나도 일주일에 35시간만 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병가나 휴가를 관리하거나 감시하는 제도는 없다. 그냥 알아서 양심껏 쉬면 되는거고 아프면 상사한테 말해서 쉬면 되는 제도가 이 회사에는 아주 잘 자리를 잡았다. 솔직히 이런 개개인의 양심에 맡기는 제도는 우리나라에서는 잘 안통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조금만 풀어주면 시스템을 악용하려는 직장인들이 한국에는 너무 많은데 미국인들은 알아서 잘 자제하는게 참으로 신기하다. 9시 – 6시와 같은 특정 근무시간도 SAS에는 없다. 정문의 경비가 아니면 9시에 출근을 하던 11시에 출근을 하던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몇시에 출근을 하던간에 일단 출근을 하면 열심히 일을 하는건 기정 사실이니 그렇다고 인력담당자들은 말한다. SAS 직원들은 일단 SAS 캠퍼스 안에 들어오면 하루종일 나갈 필요가 전혀 없다고들 한다. 필요한 모든 시설이 회사 안에 위치해있기 때문이다. 600명의 유아들을 수용할 수 있는 2개의 유아놀이방이 있기 때문에 애기가 있는 가족들도 마음놓고 일할 수 있으며, 어린이들을 위한 summer camp 제도도 매우 잘 갖추어져있다. 그외에 구글이 가지고 있는 – 참고로 구글이 몇년전에 직원들을 위한 복지 시스템을 만들때 벤치마킹 했던 회사가 바로 SAS라고 한다. 구글은 SAS의 큰 고객 중 하나이기도 하다 – 모든 부수적인 서비스를 SAS는 다 가지고 있다. 드라이 크리닝 서비스, 자동차 정비소, 우체국, 작은 책방 및 책을 교환할 수 있는 시설, 명상을 위한 시설, 개인 회계사 서비스 심지어는 치열 교정소까지 갖추고 있다. 구글이 한때 구내 식당과 거기서 먹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음식 때문에 모든 이들의 부러움을 샀는데 – 아직까지 사고 있다 – SAS도 절대 구글에 뒤지지는 않는다. 싸게 밥을 먹을 수 있는 구내 식당이 3개가 있는데 매일 아침식사 500끼와 점심식사 2,300끼를 제공하며, 심지어는 퇴근하면서 갈때 가져갈 수 있는 테이크아웃까지 제공한다고 한다 하하. 그리고 식사 시간을 놓치거나, 중간 중간에 배가 고프면 다양한 간식을 제공하는 “부엌”들이 20개 이상의 건물에 위치하고 있다. 간식으로 매주 수요일은 M&M; 쵸코렛을 전직원들한테 제공하며, 금요일은 크리스피 크림 도우넛을 제공한다고 하니 누군들 마다하겠는가? 그리고, 이렇게 배를 채운후에는 칼로리를 소비할 수 있는 다양한 운동 프로그램과 그룹 스포츠 제도 또한 전사적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이렇게 잘 되어 있는 복지 제도 중에서도 SAS 직원들이 회사의 가장 큰 자랑거리로 꼽는거는 바로 SAS 캠퍼스의 중심부에 위치해있는 보건소이다. 솔직히 이 정도 규모면 병원이라고 해도 되는데 굳이 health-care center라고 하니 그냥 보건소라는 번역을 해야겠다.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는 SAS 보건소에는 4명의 의사, 10명의 간호사, 영양사, 실험실 연구원, 물리치료사와 정신과의사를 포함하여 56명의 직원이 있다. 여기서 심장 수술과 같은 복잡한 수술을 받지는 못하지만 대부분의 기본적인 치료는 모두 받을 수 있다. 독감 주사, 임신 테스트, 혈액 검사 등과 같은 기본적인 검진은 모두 무상으로 받을 수 있다. 사내 보건소를 갖추고 있는 회사들이 더러 있지만 이렇게 큰 스케일로 운영되는 보건소는 대부분 아니며, 더군다나 돈까지 한푼도 내지 않고 검사를 받을 수 있다니 정말로 좋은 deal인거 같다. 2009년도에 SAS 직원과 직원 가족들의 90%가 사내 보건소를 이용하였다고 하는데 물론 굿나잇 대표도 포함해서이다. 보건소의 년간 운영 비용은 450만 달러인데, 비싸 보이지만 사내 보건소를 운영함으로써 절감할 수 있는 비용은 이보다 큰 500만 달러라고 한다. 외부 병원에서 기다리면서 시간 낭비하거나, 쓸데없는 비용이 나가거나 하는게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서도 직원들에 대한 굿나잇 대표의 마키아벨리적인 사고방식이 엿보인다. 모든 미국인들이 미국의 의료보험 제도에 대해서 욕을 하지만 아마도 SAS 직원들은 입 다물고 가만히 있을거 같다는 생각 또한 하게 된다.

SAS의 직원 복지 제도를 보고 남들은 너무 직원들한테 돈을 낭비하는게 아니냐라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모든건 결과로 나타난다고 굿나잇 대표는 강조한다. 실제로 33년 동안 해마다 SAS의 매출은 성장을 하고 있으며, 회사가 돈을 더 벌수록 더욱 더 복지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 SAS는 현재 약 1조원 이상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SAS 캠퍼스를 확장하고 있으며, 매출의 약 20% 이상을 연구개발비로 재투자하고 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우리말이 있는데, 굿나잇 대표는 놀랍게도 이런 회사의 복지제도를 SAS가 매출 500억 밖에 안하던 1984년도부터 기획/계획을 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회사들은 매출 500억 정도 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더욱 더 직원들을 쥐어짜서 1조원의 매출을 만드려고 고민할텐데 이렇게 직원들 복지 생각을 하는 회사와 창업자가 있다니 다시 한번 놀라울따름이며 굿나잇 대표의 이러한 장기적인 안목이 부럽기까지도 하다. “행복한 소들이 맛있는 우유를 더 많이 만들죠.”라는 간단하면서도 직관적인 굿나잇 대표의 말이 내 머리속에서 계속 메아리를 친다…

굿나잇 대표는 노스 캐롤라이나 주지사로 나가도 될거 같다. 이미 이 지역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이며, 지역 경제에 가장 많은 기여를 하였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와 IT하면 실리콘 밸리와 미국 서부밖에 모르던 나같이 무식한 놈들한테 노스캐롤라이나에 본부를 두고 있는 이 회사의 문화는 매우 신선하였으며, Fortune지 4장에 걸쳐서 쓰여졌던 이 기사는 나의 “성장”만을 중요시하는 탱크주위만이 회사를 운영하는 최선의 방법은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대표이사가 있는 회사라면 굳이 실리콘 밸리가 아니라 시골인 노스캐롤라이나라도 한번 일해볼만할거 같다. 우리 나라도 서울이 아닌 지방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기업들도 이런 훌륭한 복지제도를 갖추고 있다면 지방으로 이주하는 사람들도 많이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싶다. 아니면 그래도 서울만을 고집할까?

재미있는 사실: SAS에서 간식으로 제공하는 M&M 쵸코렛의 년간 소비량은 22.5톤이라고 한다. 직원 한명당 평균 5키로그램의 M&M을 해마다 소비한다는 말이다. M&M 쵸코렛 22.5톤의 시장 가격은 약 $216,000지만, SAS는 이것마저 대량 할인을 받아서 $71,225에 구매를 한다고 하니 정말로 sweet한 deal인거 같다. 물론, SAS에서 일하는거 자체가 매우 달콤하다.

*올해는 466개의 기업이 이 리스트에 포함 신청을 하였으며, “The 100 Best Companies to Work For” 리스트는 샌프란시스코의 The Great Place to Work Institute에서 해마다 작성을 한다. 리스트 작성의 기준이 되는 항목들은 크게 2가지인데 각 회사들의 정책/문화와 회사 직원들의 피드백이다. 또한, 이 두가지 항목을 기반으로 4개의 분야에서 점수를 매기게 되는데 그 4가지 분야는 credibility (communication to employees), respect (opportunities and benefits), fairness (compensation, diversity), 그리고 pride/camaraderie (philanthropy, celebrations)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