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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식, 책임감, 그리고 기업문화

며칠 전에 유명한 대만 만두집 분점에서 밥을 먹었다. 본사 직영인지 프랜차이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대만 1호점에서 그렇게 맛있게 먹고, 한국 1호점(아마도 명동)에서도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맛 보다는 수준이 떨어졌다. 그리고 먹다보니 종이 깔개의 큰 오타가 눈에 들어왔다. 영업시간을 표시하는데 OPEN이 아니라 OPNE 라고 적혀 있었다. 솔직히 그냥 동네 분식집이었으면 넘어갔을텐데, 이렇게 전세계인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글로벌 외식업체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치명적인 실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계산하면서 매니저를 찾았는데, 마침 안 계시다고 해서 카운터 직원한테 조심스럽게 말을 해줬다. “이 식당에 오는 손님들은 역사와 전통있는 대만식 만두를 먹으러 오는 분들인데, 가게의 역사나 브랜드에 어울리지 않는 치명적인 오타(=OPNE) 같습니다. 외국 손님들도 여기 많이 오는거 같은데 좀 고쳐야 하지 않을까요.”

솔직히 나는 이 직원이 내 말을 굉장히 고맙게 받아들여서 바로 조치를 취할 줄 알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굉장한 무관심과 냉담, 그리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라고 말하는듯한 무표정이었다. 그래고 영혼없는 한마디, “네, 죄송합니다~” 하면서 영수증을 줬다. 이 분이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알바생인지, 아니면 회사에 관심이 없는 정규직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참으로 안타까웠다. 주위 친구들한테 물어보면 원래 그렇고, 본사도 아니고 식당에서 일하는 애들한테 뭘 기대하냐고 하지만, 현재 이 시점에 본인이 몸담고 있는 조직이자 회사인데 아무리 일이 재미없고 회사가 싫어도 이런 자세는 나로써는 좀 이해하기가 힘들다. 어쩌면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와 내가 만나는 수십개, 수백개의 회사들은 이렇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만나는 스타트업들은 이 식당을 운영하는 기업처럼 돈도 없고, 직원들도 없고, 복지나 혜택도 좋지 않다. 아니, 대부분의 회사들은 복지나 혜택같은건 아예 없고, 월급도 제대로 못 준다. 하지만, 여기서 일하는 직원들은 위의 종업원과는 완전히 다르다. 엄청난 책임감과 주인의식으로 무장되어 있고, 어떤 이들은 회사 지분을 전혀 안 가지고 있어서 주인은 아니지만, 마치 자기 회사처럼 일을 한다.

그렇다고 이게 반드시 개인의 문제라고 몰아붙일 수는 없을거 같다. 책임감이나 주인의식이 없는 직원들이 많은 회사들을 보면 오너와 경영진들도 비슷하다. 기업문화는 밑에서 위로 퍼질수도 있지만,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게 더 쉽기 때문이다. 전에 내가 Red Bull 북미지사를 방문한 후에 깊은 감명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 회사의 사장이나 경영진들의 기업사랑은 세계 1등이다. 위에서 말한 만두집의 종업원과 이야기하는 동안 나를 호통치던 Red Bull의 리셉셔니스트가 계속 생각났다. 전세계에 1만명 이상의 직원이 있고, 전세계인들이 즐겨 먹는 제품을 만드는 이런 글로벌 기업도 좋은 기업문화를 유지할 수 있다면 분명히 다른 회사들도 이렇게 할 수 있고, 조직 피라미드 말단에 있는 직원이나 알바생들도 회사에 대한 애착과 책임감을 갖게 할 수 있다.

학생들이나 직장 초년생들한테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누구나 다 창업을 할 수 있는것도 아니고, 창업을 해야만 하는건 아니다. 물론, 나는 창업을 권장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대기업에 취직해서 더 잘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남의 회사에 취직을 해도 이 회사가 마치 자기 회사라고 생각하고 일하다보면 10년 – 15년 후에는 사장이 될 수 있다고 난 생각한다. 주위를 보면 정말로 이렇게 된 분들이 있고 누구나 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일이나 인생에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전. 그 짜릿함과 감동.

사진 2015. 11. 20. 오후 3 23 48지난 주에 대전에 내려가서 몇 몇 스타트업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연구개발이 많이 활성화 된 지역이라서 그런지 제조, 특허, 그리고 하드웨어에 focus된 회사들이 많았다. 솔직히 내가 잘 알거나 많이 투자하는 분야가 아니라서 그런지 비즈니스 설명을 들어도 100% 이해할 수는 없었고 너무 어려운 내용이라서 조금은 지루하기도 했다. 그런데 내 눈길을 끄는 한 회사가 있었다. 아니, 회사가 아니라 대표이사님이 내 눈길을 끌었다고 하는게 맞다.

1953년 생. 올해 나이 63세. 나보다 20년을 더 많이 사신, 우리 아버지 같은 분이 무대에 올라와서 잔뜩 긴장하시면서 발표를 했다. 내가 전혀 모르는 분야인 ‘고온 압력 트랜스미터’를 국내에서 생산하겠다는 비즈니스였다. 회사나 대표님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지만, 화학공학 박사이시고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30년 넘게 연구원 생활을 하신 후 늦게 창업하신 분이다. 본인이 평생 공부하고 종사하던 분야에서 30년 동안 느끼신 점들이 있어서 창업을 결심했고 용감하게 그 ‘첫번째 발걸음‘ 을 내디딘 이 분의 발표를 들으면서 내내 뭔가 짠 했다.

솔직히 이 분의 자료나, 발표나, 자세는 내가 주로 만나는 젊고 세련된 청산유수 창업가들과는 많이 달랐다(여기서 내가 사용한 단어는 “달랐다” 이지, “떨어졌다”나 “모자랐다”가 아니라는 점). 하지만 마치 켄터키후라이드치킨을 65세의 나이에 창업한 샌더스씨를 만났다는 느낌을 나는 받았고, 이 분 한테 물어봤다.

“사장님, 연구원 생활 30년 하셨으면 이제 큰 걱정없이 노후를 편안하게 사실 수 있는데 굳이 지금 이걸 시작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그리고 왜 조금 더 일찍 시작하시지 않았나요?”

“제가 30년 이상 연구하면서 이 부품을 해외에서 비싼 가격에 수입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더 좋고 저렴한 제품을 만들 수 있구요, 이건 반드시 누군가 한국에서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저는 제가 그걸 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그리고 이걸 더 일찍 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천성이 엔지니어다 보니 연구가 너무 재미있어서 연구에 푹 빠져서 살다가 이렇게 뒤늦게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전에 내가 로켓을 만들어서 발사하는 중학생 정재협 학생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다. 정재협 학생과 이 나이드신 대표님의 이미지가 계속 머리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우리나라에 이런 분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우리 같은 사람이 이런 분들을 많이 도와줘야 한다는 다짐도 한번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살면서 ‘도전’ 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오늘처럼 이 단어가 짜릿하고 감동적일때가 있었을까? 63세의 창업과 도전. 솔직히 내가 전혀 모르는 분야지만 개인적으로라도 도와드리고 싶다.

오늘도 많이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꼭 그 꿈이 현실이 되길 응원합니다.

돈이 남으면 안 되는 사업

지난 번에 쿠팡에 대해서 이야기 했는데, 말 나온김에 이번에도 쿠팡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에서 투자자들이나 창업가들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항상 쿠팡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이기도 하며, 최근에 해외로부터 대형 투자를 받으면서 많은 분들이 쿠팡의 미래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있는거 같다. 대부분 나한테 쿠팡은 앞으로 어떻게 될 거 같은지, 계속 적자인데 과연 돈을 버는 제대로 된 비즈니스로 성장할 수 있는지, 뭐 이런 류의 질문들을 한다.

남의 회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나도 전혀 모른다. 다만, 개인적으로 나한테 물어본다면 나는 쿠팡이 앞으로 최소 지금의 10배 이상으로 성장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이 회사가 돈을 벌고 수익을 내서 자립할 수 있을까? 지금은 돈을 출혈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돈을 벌 수 밖에 없는 비즈니스이자 구조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 분야에서 일하면 – 특히, 전자상거래와 같이 고객에게 뭔가를 판매하고 있는 업에 종사하고 있으면 – LTV(Life Time Value)와 CAC(Customer Acquisition Cost)를 모두 다 알고 있을거라 짐작한다. 전자상거래 회사들이 적자에 허덕이면서도 계속 돈을 쓰고 마케팅을 해서 고객을 확보하는데 집중하게 만드는, 어떻게 보면 모든 기업들의 가장 기본적이자 중요한 전략밑에 깔려 있는 개념들이다.

CAC는 말 그대로 한 명의 신규 고객을 확보하는데 회사가 사용하는 비용이다. 페이스북 광고를 해보신 분들은 잘 알텐데, 돈을 써서 페이지 라이크 수를 올리는 광고 캠페인을 진행 해보면 한 개의 라이크를 확보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잘 산정된다. 이게 CAC 이다. 쿠팡의 예를 들어보자. 쿠팡이 TV 광고를 했는데, 여기에 쓴 돈이 1,000만원 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이 광고를 보고 그동안 쿠팡에서 한 번도 구매를 해보지 않은 고객 5명이 회원 가입을 하고 물건을 구매했다고 가정해보자. 간단하게 계산해 보면 CAC는 200만원이 된다(=1,000만원/5명의 신규 고객). 즉, 한 명의 신규 고객을 확보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200만원이라는 말이다.

그럼 이 200만원이 큰 돈인가 작은 돈인가? 신규 고객 한 명을 확보하는데 200만원 쓰는게 낭비인가 아니면 잘 하는건가? 여기서 LTV 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간단하게 말해보면, 200만원을 써서 확보한 고객이 앞으로 쿠팡에서 201만원 어치의 물건을 구매하면 1만원이 남고, 199만원만 사용하면 1만원이 까진다. 그러니까 여기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신규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 마케팅 비용을 책정할때, 이 고객이 앞으로 우리 회사에 평생 가져다 줄 가치를(=매출, 수익 등) 계산하고, 그 보다 낮게 마케팅 비용을 책정하는 것이다.

쿠팡 같은 업체들이 마케팅 비용을 엄청나게 집행해서 계속 적자가 발생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돈을 벌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다. 간편한 결제, 좋은 추천, 질 좋은 배송 등의 서비스로 한 번 확보한 고객을 계속 쿠팡의 고객으로 유지할 수 있다면 이 고객은 쿠팡에서 5년 – 10년 동안 물건을 구매할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렇게 5년 – 10년 동안 한 명의 고객이 쿠팡에서 얼만큼의 돈을 쓸까? 많이 쓰면 1,000만원도 쓸 수 있을거 같다. 즉, 이 고객의 Life Time Value는 1,000만원이다. 그렇다면 이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 집행한 초기 마케팅 비용 200만원은(=Customer Acquisition Cost) 그렇게 큰 돈이 아니다. 200만원 써서 1,000만원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론적으로는 한 명의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999만원의 마케팅 비용도 집행할 수 있다. 이렇게 해도 1만원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 비즈니스를 해보면 LTV와 CAC의 계산이 이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고려해야 할 너무나 다양한 요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개념은 크게 다르지는 않기 때문에 쿠팡이라는 회사가 엄청난 적자가 날 정도로 마케팅에 돈을 많이 쓴다고 해도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이 비용이 충실한 고객의 확보와 매출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분명히 돈을 벌 수 있는 비즈니스가 될 것이다.

한가지 더 첨언 하자면, 미국에서 전자상거래 유니콘 회사들에 투자한 큰 손 투자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규모가 작은데 이미 수익을 내고 있는 전자상거래 스타트업들을 이들은 오히려 좋아하지 않는다. 투자금과 버는 모든 돈을 다시 비즈니스에 재투자하고 신규 고객을 확보하는데 써야 한다는 이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러 적자가 날 정도로 ‘과소비’를 해야지만, 많은 고객을 확보하고 이들이 앞으로 회사에 큰 Life Time Value를 가져올 수 있다는걸 여러번 경험해봤기 때문인거 같다. 물론, 그렇게 오랫동안 적자 비즈니스를 하면서 돈을 벌기 전까지 망하지 않도록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투자를 계속 받아야 한다.

The new kid on the block

backtothefuture나랑 동시대를 사셨던 분들은 1989년에 혜성처럼 등장한 5인조 보이밴드 New Kids on the Block을 기억할거다. 지금은 워낙 걸그룹과 보이밴드들이 많지만 당시만 해도 이 친구들의 등장은 충격적이었고 대중문화의 새로운 코드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NKOTB은 그룹이름처럼 동네골목에 새로 등장한 애들이었는데, 익숙치 않은 새로운 것들에 대한 거부감과 변하지 않으려는 관성 때문에 미국의 가요산업은 이들을 곱게만 보지는 않았다. 정통 음악 공부를 하지 않았다, 통상적인 가요계 입문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음악성이 부족하다 등 온갖 이유를 대면서 이들을 맹비난 했다. 하지만, 시장은 NKOTB의 편이었고 이들의 인기는 전세계 pop culture를 바꿔놓고 이후 수 많은 보이밴드들을 탄생시킨 ‘제대로 된’ 원조 보이밴드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서태지와 아이들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던거 같다. 처음 방송에 출현했을때 이들은 음악성은 물론, 패션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난을 받았지만, 시장은 이들을 선택했고 엄청난 문화혁명을 일으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NKOTB나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이후, 자기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 이들을 비난하고 연예계에서 쫓아내기 위해 노력한 부류가 있었는가 하면, 새로운 트렌드와 문화를 적극 수용하면서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 노력한 부류가 있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살아남은 건 후자이다.

요즘 나는 쿠팡을 좀 자세히 보고 있는데, 쿠팡이야말로 소매와 물류 시장의 new kid on the block 이다. 우리나라 택배업계의 역사는 거의 30년이 되어간다. 이 동안 택배업계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는데 이제 2년이 채 되지 않은 쿠팡의 로켓배송이 택배업계를 ‘아작’ 내고 있다. 아직 공식적인 데이터는 없지만 내 주변에서 로켓배송을 사용해본 소비자들의 반응은 굉장히 좋다. 물류업체도 아닌 쿠팡이 거의 30년 동안 택배를 업으로 하면서 노하우와 경험을 갈고닦은 닦았다고 생각하는 기존 업체들보다 더 잘하고 있다는 건 이들에게는 치명타이다.

그런데 택배업체들이 쿠팡에 대응하는 방법을 보면 뉴키즈온더블럭이 등장했을때 이들을 비난하던 기존 플레이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가장 중요한 소비자들의 입장과 의견은 신경쓰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비난하고 소송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쿠팡 죽이기에만 집중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하면 시간만 끌 뿐이지 결국엔 30년 동안 몸집을 불렸던 국내 택배업체들 중 절반 이상이 곧 망할거라고 생각한다.

나 같으면 쿠팡이 잘하는걸 철저히 벤치마킹해서 택배기사들의 외주비율을 줄이거나, 이들을 더 잘 교육하거나, 대우를 더 잘 해 준다거나, 뭐 이런 방향으로 개선책을 모색할텐데 그냥 자기 밥그릇을 안 빼앗기려고 바둥거리는걸 보면 좀 그렇다.

변화가 없던 조용한 골목에 갑자기 새로운 패션에 새로운 언어를 구사하는 멋쟁이가 나타나면 동네 모든 여자들이 이 친구한테 몰릴 것이다. 갑자기 여자친구를 빼앗긴 남자들 중 이 new kid를 욕하면서 까대는 친구들도 있겠지만, 이 친구를 잘 벤치마킹해서 새로운 문화와 트렌드를 자기것으로 만들어서 더 세련된 kid로 탈바꿈하는 남자들도 있을 것이다.

밥그릇은 분명히 중요하다. 하지만 새로운 경쟁자의(=new kid) 등장으로 기존 밥그릇이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세상이 오면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새로운 행동으로 몸을 변화시켜야 한다. 이건 택배업계 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적용된다.

*완전공시 – 우리는 쿠팡의 소액주주이다

<이미지출처 = http://giphy.com/gifs/back-to-the-future-guitar-amp-ahqXZjdmep0Zy>

머리 숙이고 계속 전진

marching on한국 온 지 일주일도 안 되었지만, 그동안 스타트업들은 15개 이상 만났다. 대부분 초초기 또는 초기 스타트업들인데 시간이 갈수록 한국의 벤처기업들과 창업자들의 수준이 무섭게 좋아지고 있다는 걸 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것도 기울기가 완만하게 선형적으로 높아지는 게 아니라 곧 J 커브를 탈 정도로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물론이건 개인적인 생각과 느낌이다. 어떤 분들은 해마다 창업자들의 수준이 떨어져서 한국에는 투자할 회사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과의 만남도 더 재미있어지고 나도 과거보다 준비를 많이 하고 미팅을 한다. 예상치 못했던 좋은 질문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뀌지 않고 항상 아쉬운 부분이 있긴 있는데 그건 바로 ‘제품’에 대한 집중과 중요성 인식이다. 초기 스타트업이면 이제 대부분 아이디어를 제품화하는 단계인데 많은 창업팀의 관심이 너무 앞서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제품이 잘 만들어지고 사업이 성장하면 큰 투자도 받고, 마케팅도 하고, 제대로 된 비즈니스의 모습을 갖추기 위한 다양한 분야에 신경을 써야 한다. 하지만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초기 스타트업들은 ‘어른’들의 일에 당장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신경을 쓰면 안 된다. 이 단계의 스타트업들은 오로지 제품과 고객에 집중해야 하므로 그 외의 모든 건 집중을 방해하는 것이다(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 짙음으로 다른 분들은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투자자들은 초창기 회사들은 비전과 전략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한다. 어떤 분들은 한국 스타트업들이 마케팅의 중요성도 모르고, 마케팅을 잘 못 한다고 한다. 모두 다 맞는 말이지만 우리가 주로 보는 early stage 회사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들한테 중요한 건 오로지 제품과 고객이다.

얼마 전에 프라이머 워크숍에서 배치 8기 스타트업들 대상으로 투자에 관해서 이야기했는데 내가 가장 강조한 건 숫자와 수치였다. 솔직히 젊은 친구들이 창업한 초기 스타트업은 투자를 받음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다. 대부분 처음 창업하는 first time entrepreneur이기 때문에 과거 성공 경험이 없다. 대부분 직장 경험이 없거나 짧음으로 이 또한 일반적인 투자자의 눈에는 마이너스 요소이다. 제대로 된 제품이 없음으로 뭔가 보여줄 것도 변변치 않다. 그리고 돈이 없는 스타트업들이라서 투자자들의 눈에는 절박해 보이는데, 이는 투자 받는 데 걸림돌이 된다.

이런 회사들이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숫자’로 승부하는거다. 하지만, 이 숫자는 상대적이지 절대적이지 않다. 창업한 지 6개월 된 스타트업이 짧은 기간 동안 수억 원의 매출을 만들거나 수백만 명의 고객을 확보하길 기대하는 투자자들은 별로 없다. 다만, 이런 성장의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서비스 launch 한 지 한 달 만에 신규 사용자를 3명 확보했는데 이 숫자가 6개월 후에는 열 배인 30명이 되었다면 절대적인 수치는 작지만, 그 성장 폭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투자자가 물어보고 관심을 두는 건 왜 6개월 동안 사용자 수가 10배나 성장을 했는지, 더 성장할 수는 없었는지, 어떤 방법으로 이런 성장을 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성장할지, 6개월 동안 사용자 수를 10배 성장시키면서 어떤 걸 배웠는지, 뭐 이런 것들이다. 창업팀이 그동안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험하고, 경험하고, 배웠다면 이러한 구체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짧은 기간 동안 충분한 실험을 했다면 이러한 경험을 어느 정도 공식으로 정량화하는 게 가능할 텐데 이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예: “1,000만 원의 예산을 가지고 6개월 만에 신규 사용자 수를 30명으로 만들었으니 5,000만 원의 예산이 있으면 3개월 만에 신규 사용자 수를 500명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왜? 어떻게? 이미 이 팀은 다양한 실험을 하면서 경험을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초기 투자자들이 찾는 건 이러한 공식들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수치를 만들려면 초기 창업팀이 해야 하는 건 딱 한 가지다. 미국인들이 말하는 “Keep your head down, and keep marching on(머리 처박고, 계속 전진해라)”이다. 즉, 다른 거 전혀 신경 쓰지 말고 무조건 제품개발에만 집중하라는 말이다. 사업하다 보면 주위에 잡음이 많이 발생하는데 그때마다 머리 처박고 전진해야 한다.

<이미지 출처 = http://artsonline.monash.edu.au/news-events/monash-university-commemorates-the-great-war-centen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