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텀블버그 Instant Transfer

우리 투자사 텀블버그에는 재미있는 프로젝트들이 많다. 나도 ‘중학교 3학년 학생의 거대한 로켓‘ 을 시작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후원했는데 최근에는 ‘일러스트북 : <케찹 머스타드 와사비>‘ 와 ‘맥주 일러스트 북 <맥주도감>‘ 을 후원했다. 이 캠페인들은 솔직히 수십억원의 펀딩이 필요한 대형 규모의 프로젝트들은 아니지만,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렇기 때문에 텀블버그가 이 분들의 작은 꿈을 실현하기 위한 최적의 플랫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전에 텀블버그 개발팀이 굉장히 큰 성과를 이루었는데 바로 Instant Transfer 기능의 개발과 완성이다. 이를 통해서 이제는 펀딩 마감 즉시 진행자의 통장에 돈이 찍히는 경험을 구현할 수 있었는데, 현재 프로젝트 진행자들의 반응이 상당히 좋다.

Photo Oct 14, 6 43 29 PM

그동안 프로젝트 마감 후 돈이 들어오기 까지는 3주라는 시간이 걸렸는데, 이 기간을 하루로 단축하면서 결제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했다고 보면 된다.

실은 텀블버그 외에도 다른 많은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 존재하고 각자 나름대로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어떤 업체들은 영업력을 강조하고, 다른 업체들은 크라우드펀딩은 마케팅의 싸움이라고 한다. 하지만, 텀블버그는 그동안 꾸준히 기술력을 강조했었고, 이러한 회사의 철학과 비전이 Instant Transfer와 같이 겉으로 봤을때 화려하거나 요란하지는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좋은 기능으로 구현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문제가 많고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온라인 결제 부분에서 큰 성과를 거둔 텀블버그 팀이 자랑스럽다.

Review를 통한 불공평 해소

얼마 전에 택시를 타고 강남에서 서울역까지 넘어갈 일이 있었다. 서울에서 좋지 않은 택시경험을 많이 했지만 이건 최악이었다. 좌석벨트 미착용은 이제 나한테는 오히려 정상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데, 이 기사분은 운전 자체가 저질이었다. 초급가속, 초급정지, 멀미가 날 정도의 끼여들기는 정말 지옥같아서 한 마디 했지만 역시 돌아오는 건 침묵과 더 거친 보복성 운전이었다. 운전을 업으로 하는, 운전을 가장 잘 해야하는 택시 기사분의 수준미달 운전실력에 화가 났다. 도대체 이럴땐 어디에 하소연하고 아까운 내 돈은 어디서 보상받을 수 있을까?

제대로 된 평가(=review)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나마 카카오택시는 별점이라도 줄 수 있지만, 이 또한 많이 부족하다. 별점 2개와 별점 3개의 차이는 상당히 애매하다. 만약에 승객들이 택시기사를 고를 수 있다면, 단순 별점을 가지고 좋은 기사인지 아닌지 판단하긴 힘들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했으면, 돈을 낸 손님은 서비스에 대한 자세하고 공정한 평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하는데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서비스들은 이런 평가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현재 사용되고 있는 일부 평가시스템들이 완벽하지는 않다. 영혼없는 – 주로 리워드를 노린 – 평가도 많고, 알바생들을 고용해서 평가를 왜곡시키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내가 돈을 내고 택시를 타는 손님이라고 나만 택시기사를 평가하는 건 공평하지 못하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분들도 손님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손님이나 서비스 제공자나 서로에 대한 평가를 전혀 못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현실이 많은 옵션 중 특정 서비스를 선택하고 이에 대해서 돈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손님에게 더 불리하게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얼마전에 투자한 홈케어 O2O 서비스 닥터하우스도 이와 비슷한 평가시스템을 도입할 것이다. 집수리는 택시보다 훨씬 더 비싸고 규모가 크다. 또한, 택시같이 한번 타고 끝나는게 아니라 이사가기 전까지는 수리한 집에서 온 가족이 계속 살아야 하기 때문에 삶의 질과도 직결된다(뭐, 택시승차는 삶의 질 뿐만 아니라 ‘삶’ 자체가 왔다갔다 하긴한다). 그런데 막상 공사를 맡긴 업체나 기술자가 일을 엉망으로 해놓고 “원래 그 공사는 그렇게 하는거예요” 라면서 나 몰라라 하면 문제가 커진다. 이런 업체나 기술자는 다시는 이 바닥에서 일을 못 하게 해야하며,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이 바로 제대로 된 평가 시스템이다.

제대로 만든 평가 시스템은 바이어와 셀러에게 동등한 권리를 줄 수 있는 공평성을 시장에 제공할 수 있다. 물론, 좋은 시스템을 바이어와 셀러가 좋은 의도로 잘 사용해야 한다.

[리블로그] 서명을 작대기로 바꿔야 하나?

2주 한국 출장 후 이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 인천공항에서 3시간 정도를 보내면서 면세점 2군데, 던킨도너츠와 잠바쥬스에서 물건을 구매했다. 신용카드를 5번 긁었고, 서명을 4번 했는데 이 중 4번 다 내 full 서명을 하지 못 했다. 고객서명을 하라고 해서 진지하고 열심히 서명하는데 카운터 직원이 중간에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한 번은 카운터 직원이 아주 친절하게 내 서명을 대신 해줬다. 이번에는 동그라미가 아니라, 작대기 하나로.

너무나 대조적이다. 얼마전에 예스24.com 에서 책 2권 구매를 시도했는데 고객의 안전과 금융 보안을 위한 불필요한 각종 플러그인들과 누더기같은 프로세스 때문에 포기했는데, 상점에서 물리적으로 신용카드로 구매하고 서명함에 있어서는 사람들의 태도와 프로세스가 이렇게 허술한게 이해가 잘 안간다.

관련해서 이미 과거에 글을 쓴 적이 있다. 나는 물건을 구매하고 신용카드 서명을 하기전에 항상 “제 서명이 좀 길거든요. 다 할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라고 말을 했는데 이젠 귀찮고 입이 아파서 포기할 시점이 온 거 같다. 이제 한국에서만 사용할 서명을 하나 새로 만들어야 할거 같고, 내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과 똑같이 작대기 하나로 바꿔야할거 같다.

[과거글: 동그라미 서명]

최근 3년간 한국에 여러 번 출장 다니면서 의아하기도 하고 짜증도 났던 신용카드 서명 관련된 이야기다. 과거에는 실제 신용카드 전표에 펜으로 서명을 했지만 이제는 모두 기계로 바뀌면서 스타일러스 펜으로 기기의 화면에 서명을 한다. 그런데 미국과 약간 다름점이 있다면 미국의 경우 서명을 한 후에 누르는 ‘확인’ 버튼이 서명을 하는 기기에 있어서 신용카드 소비자가 누르게 되어 있지만 한국의 경우 서명하는 기기에 ‘확인’ 버튼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일부러 봤는데, 내가 갔던 식당이나 가게는 거의 이랬다). 대신 이 ‘확인’은 카운터에 있는 분이 알아서 누르게 되어 있다.

난 서명이 좀 길고 복잡해서 그냥 대충 동그라미나 줄 한두게 긎는 사람들보다는 서명하는데 훨씬 더 오래 걸린다. 그런데 서명을 끝내지도 않았는데 카운터에서 그냥 ‘확인’을 눌러버려서 반쪽짜리 서명으로 신용카드가 결제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솔직히 이건 엄밀히 말하면 불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신용카드 주인이 서명을 하지 않았는데 – 카드사용을 승인하지 않은거랑 동일 – 가게에서 승인을 해버리는거랑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막말로 내가 나중에 이 가게에 와서 이거 내 서명이랑 다르고, 내가 서명한게 아니라고 따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몇몇 가게 주인들한테는 이렇게 따져봤는데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는 커녕 다들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면서 “손님 서명이 너무 길어요 ㅎ”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분명히 신용카드 뒷면을 보면 카드주인이 서명하는 란이 있다. 그리고 이 밑에 보면 “이 카드는 상기란에 서명된 회원만이 사용할 수 있으며, 타인에게 양도, 대여할 수 없습니다.”라고 적혀있다. 미국은 신용카드로 물건을 사면 카드 뒷면의 서명과 실제 서명을 비교해보는 경우도 종종 있고, 신분증도 보여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한국의 경우 이런 적은 한번도 없었다.

문화 차이인가? 뭐, 그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신용카드를 도둑맞았다고 생각해보자. 도둑놈이 내 신용카드를 막 긁고 다니면서 내 서명이 아닌 다른 서명을 하는데 그 누구도 이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이건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금융사기와 신용카드 정보유출 관련 사고 소식이 계속 들려오는 요새는.

더 재미있는 건, 어떤 커피샾에서 계산하면서 내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카운터 알바생이 나 대신 그냥 다음과 같이 지가 서명하고 내 신용카드 승인을 해준 경우가 있었다. 뭐라 하니까 “원래 다 그렇게 해요”라는 성의없는 답변만 돌아왔고 그 알바생은 그날 나한테 험한 말 좀 들었다.

signature

이런건 원래 엄밀히 말하면 불법이 아닌가? 내가 너무 까칠한건가? 이런 생각을 아무도 해보지 않은건지 좀 궁금하다.

Mission Impossible – 인터넷 결제

한국의 온라인 결제시스템과 프로세스가 얼마나 불편하고 뒤떨어져 있는지에 대해서는 내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이 블로그를 읽는 분들은 잘 알 것이다. 관련해서 이미 과거에 몇 번 글을 쓴적이 있다:
나의 불편했던 eBook 구매 경험
누구를 위한 공공사이트인가?

그런데 이 깨진 시스템을 내가 단시간 내에 직접 고칠 수 있는게 아닌걸 나도 잘 알기 때문에 불평해도 소용없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어디서 하소연 할 곳도 없기 때문에 여기서 불평을 한 번 더 해야겠다.

내 책 ‘스타트업 바이블‘을 읽고 싶어하는 분들이 있어서 몇 권 주문하기 위해서 예스24에 들어갔다. Chrome으로는 시도할 생각도 안 했지만 Firefox는 되지 않을까 싶어서 yes24.com에서 책을 선택하고 결제를 진행하려고 하니 사은품 구매 페이지가 나타났다.

1-FireFox 사은품

사은품 선택 페이지(이후로는 진행이 안 됨)

그런데 뭘 눌러도 그 다음 결제 페이지로 넘어가지 않았다. 전에는 매우 분노했겠지만, 워낙 익숙해진 상황이라서 – 이런 익숙함이 참 무섭다 – 더 이상 시도하지 않고 그냥 닫고 인터넷익스플로러를 실행했다. 로그인하고, 책 선택하고, 결제 진행하기 전까지는 큰 문제없이 잘 진행되었다(너무나 당연한 거지만 한국 사이트에서 뭔가를 구매하려고하면 항상 불안하다). 일단 일반 신용카드를 선택하고 결제를 진행했다. 이젠 너무나 익숙한 다양한 엑티브X 플러그인들 다 설치하고 신용카드(하나카드, 구 외환카드) 결제를 선택했는데 다음과 같은 하나은행 안심클릭 팝업창이 떴다.

2-일반신용카드-모비페이

일반신용카드 – 모비페이 안심클릭

일단 창 안의 내용이 짤려서 제대로 보이지가 않았다. 짜증이 팍 났다. 창 크기 조절도 안되고 그 안의 내용을 최소화 할 수도 없어서 내용 자체를 읽을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냥 일반결제를 하려고 했지만, 일반결제 부분이 짤려서 어쩔 수 없이 ‘모비페이’ 라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리고 잠시 PC를 떠나서 아이폰으로 모비페이 앱을 설치하고 회원가입을 했는데, 내가 사용하는 카드를 이 앱에 등록하는 절차가 굉장히 만만치 않았다. 이런저런 시행착오와 PC와 아이폰을 왔다갔다 하면서 한 15분 동안 모비페이 앱을 셋업 했다. 이 시점에서 이미 내 인내심의 절반 이상을 사용해버렸다. 그리고 PC로 다시 와서 결제 프로세스를 계속 진행했는데 역시 이 팝업창의 내용도 짤려있어서 결제코드가 잘 안보였다.

3-일반신용카드-모비페이

모비페이 짤린 결제코드창

자, 이제 다시 모비페이 앱으로 가서 긴가민가한 이 결제코드를 입력했다. 확인을 누르니 ‘결제비밀번호’ 또는 ‘공인인증서’로 결제를 진행하라고 하는데 아이폰에서 공인인증서로 뭔가를 할 상상만 해도 땀이 삐질삐질 나서 그냥 결제비밀번호를 선택했다.

Untitled

모비페이 결제비밀번호 vs. 공인인증서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어디에도 이게 어떤 비밀번호인지 설명을 안 해줘서 그냥 큰맘먹고 공인인증서로 진행해 보기로 했다 – 참고로 아이폰에서 공인인증서를 가지고 뭔가를 해보는 첫 시도였다. 그래서 어렵게 다시 PC를 통해서 외환은행 사이트에 들어갔고, 공인증서를 PC에서 스마트폰으로 내보내는 방법을 확인한 후에 정확하게 인증서 전송에 성공을 했다. 다시 모비페이앱을 통해서 공인인증서를 사용한 결제 진행을 해보니 전송이 잘 안되었다. 이 과정을 다시 반복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6-일반신용카드-모비페이

공인인증서 저장 계속 실패

결국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건 포기하고 다른 옵션인 계좌이체로 결제를 다시 시도해봤다.

7-계좌이체

계좌이체 서비스 창 내용도 다 짤려서 안 보인다

계좌이체할 외환은행을 선택하니까 또 무슨 플러그인을 설치하라고 해서 설치를 했는데, 계속 보안프로그램이 정상적으로 설치되지 않았다는 메시지가 떠서 계좌이체도 실패했다.

8-계좌이체

몇번을 설치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

결국 온라인 구매를 포기할까 하다가 마지막으로 가장 쉬워보이는 핸드폰 결제를 시도해봤다. 참고로 핸드폰 결제는 한국 핸드폰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9-핸드폰결제

핸드폰 결제 창도 짤려서 내용을 보기가 쉽지 않음

그런데 이 팝업창 역시 내용이 다 짤려서 도대체 어느 부분에 어떤 정보를 기입해야하는지가 상당히 난감했지만, 오기가 생겨서 거의 때려맞추는 수준으로 핸드폰 번호와 필요한 정보를 기입했다. 핸드폰으로 인증번호가 날라와서 그것만 기입하면 이제 고생 끝인줄 알았지만, 핸드폰 결제를 하려면 또 무슨 동의를 별도로 해야한다는 문제가 날라왔다.

10-핸드폰결제

마지막 희망인 핸드폰결제도 실패!

결국 나는 거의 한 시간을 PC, 아이폰, 그리고 액티브엑스와 사투를 벌였지만 완전히 졌다. 시간만 낭비하고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이게 무슨 대단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알아야 하고, 해킹을 해야하는 업무였으면 이해가 가지만 내가 내 돈 써가면서 책 2권을 사는데 이런 고생을 해야하나? SERIOUSLY? 정말 너무너무 짜증나는 경험이었고 예스24와 외환은행이 죽도록 미워졌다(물론, 이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은행은 계속 사용해야하니 어쩔 수 없지만, 나는 앞으로 예스24.com은 다시는 이용하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결제와 보안 관련 규정과 법을 만든 사람들, 이런 말도 안되는 규정을 통과 시킨 높으신 분들, 그리고 이걸 기술적으로 구현함에 있어서 실제 사용자 경험이나 소비자의 불편 따윈 전혀 고려하지 않은 업체들이 야속했던 하루다. 이 잘못된 시스템을 고치는데 내가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보고 있다. 아마존이라면 책 2권 결제하는데 30초 걸렸을 것이다.

결국 나는 반디앤루니스 코엑스점에 직접 가서 스타트업 바이블 2권을 구매했다.

정부과제로 먹고 사는 회사들

대한민국같이 나라가 앞장서서 스타트업들을 도와주고 생태계를 만드는데 이렇게 노력하는 나라는 별로 없다. 최근 몇 년 동안 괄목할만한 발전을 한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보면 나도 가끔 놀란다. 이 발전에 정부가 직, 간접적으로 많은 공헌을 한 걸 부정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부의 캠페인들이 모두 잘 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잘 안된 것들이 더 많고 그중 일부는 스타트업들을 오히려 죽이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중 대표적인 건 수도 없이 많이 생기는 정부과제 및 프로젝트들이다. 내 주위에 있는 스타트업 중 정부과제를 한두 개 하지 않은 업체가 별로 없을 정도로 많다.

좋은 취지로 시작된 정부과제들이 안타깝게도 많은 스타트업들한테는 마약과도 같은 존재가 된 거 같아서 좀 아쉽다. 일단 대부분 과제를 자세히 보면 상용화할 수 있는 기술이나 제품을 만들기보다는 유행을 따라가는 내용이 더 많다. 예를 들면, 핀테크나 IoT가 요새 유행처럼 번지고 있으니 정부도 이 분야에서 뭔가 해야 한다는 압박에 – 그리고 분명히 대통령이나 장관급 레벨에서 “요새 핀테크가 대세인 거 같은데 우리도 뭐 좀 합시다”와 비슷한 말을 회의에서 했을 거다 – 굉장히 모호한 주제의 과제들을 발표한다. 주제도 모호하지만, 담당자들도 이 분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그러므로 외부심사위원단을 만드는데, 주로 교수님이나 연구원들을 위주로 구성한다. 안타깝게도 이들도 시장에서 이런 기술들이 어떻게 구현되어 서민들이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만들어지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과제들은 엉뚱한 방향으로 포지셔닝 된다. 물론, 거창한 보고서를 작성하기에는 매우 좋다. 주제가 모호할수록 보고서는 거창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과제이기 때문에 솔직히 목에 걸면 목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 기술력 있는 스타트업들이면 웬만하면 과제에 회사를 끼워 맞춰서 지원이 가능할 거 같다. 과제선정을 하는 사람들도 잘 모르기 때문에 특정 과제와 상관없는 스타트업들이 선정되는 걸 자주 봤다.

나는 개인적으로 스타트업들한테 웬만하면 정부과제에 손을 대지 말라고 한다 – 회사가 정말로 돈이 없는데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면, 그리고 정부과제 외에는 정말로 대책이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부과제가 눈먼 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절대로 아니다. 일단 그 기간 동안 개발하는 제품이 회사의 비즈니스와는 전혀 상관이 없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리고 완전히 다른 걸 개발했기 때문에 과제 기간 동안의 경험이나 지식을 자산화하는 게 쉽지 않다. 더욱더 중요한 건 그만큼 본업에 충실해야 할 시간을 낭비한 셈이 된다. 정부과제를 하면서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들도 상당히 많다(간혹 이런 게 없는 운 좋은 과제들도 있다.).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 본업과는 전혀 상관없는 노가다를 할 바에야 그냥 다른 대기업에 취직하는 게 여러모로 봤을 때 좋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게 그런데 참 마약같다…..일단 자체 제품이 정상궤도에 오르기 전까지 살아남기 위해서 정부과제 하나만 하겠다고 시작한 게, 해보니까 법인통장에 돈이 들어오는 게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기분도 좋으니 하나만 더 하고, 두 개가 세 개가 되고 시간이 흐르다 보니 정부과제로만 먹고 사는 회사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간혹 본다. 그리고 본업과는 상관없는 정부과제 수행 전용인력을 채용하고, 여러 개를 하다 보니 정부과제 관련 문서 작업만 따로 하는 인력을 채용하고 – 주로 hwp 문서작업에 능숙한 – 식구가 늘다 보니 부담감이 늘어서 계속 사업을 유지하고,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부과제를 계속하게 된다.

솔직히 나는 정부과제를 별로 해보지 않았고 – 2000년도 초반에 한국의 B2B 벤처기업 자이오넥스에서 조금 해 봤다 – 최근에는 전혀 안 해서 정확한 건 잘 모른다. 위에서 말한 시나리오는 그냥 지금까지 만났던 정부과제로 먹고사는 회사들과 이야기한 내용을 기반으로 그려본 거다. 그리고 분명히 본업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정부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스타트업들도 있고, 충분히 자산화가 가능한 과제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정말 이야기하기 싫고, 만나기 싫은 회사들이 있다. “뭐, 정부과제 몇 개 더 하면서 버텨보죠.”라고 하는 스타트업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