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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숙이고 계속 전진

marching on한국 온 지 일주일도 안 되었지만, 그동안 스타트업들은 15개 이상 만났다. 대부분 초초기 또는 초기 스타트업들인데 시간이 갈수록 한국의 벤처기업들과 창업자들의 수준이 무섭게 좋아지고 있다는 걸 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것도 기울기가 완만하게 선형적으로 높아지는 게 아니라 곧 J 커브를 탈 정도로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물론이건 개인적인 생각과 느낌이다. 어떤 분들은 해마다 창업자들의 수준이 떨어져서 한국에는 투자할 회사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과의 만남도 더 재미있어지고 나도 과거보다 준비를 많이 하고 미팅을 한다. 예상치 못했던 좋은 질문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뀌지 않고 항상 아쉬운 부분이 있긴 있는데 그건 바로 ‘제품’에 대한 집중과 중요성 인식이다. 초기 스타트업이면 이제 대부분 아이디어를 제품화하는 단계인데 많은 창업팀의 관심이 너무 앞서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제품이 잘 만들어지고 사업이 성장하면 큰 투자도 받고, 마케팅도 하고, 제대로 된 비즈니스의 모습을 갖추기 위한 다양한 분야에 신경을 써야 한다. 하지만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초기 스타트업들은 ‘어른’들의 일에 당장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신경을 쓰면 안 된다. 이 단계의 스타트업들은 오로지 제품과 고객에 집중해야 하므로 그 외의 모든 건 집중을 방해하는 것이다(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 짙음으로 다른 분들은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투자자들은 초창기 회사들은 비전과 전략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한다. 어떤 분들은 한국 스타트업들이 마케팅의 중요성도 모르고, 마케팅을 잘 못 한다고 한다. 모두 다 맞는 말이지만 우리가 주로 보는 early stage 회사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들한테 중요한 건 오로지 제품과 고객이다.

얼마 전에 프라이머 워크숍에서 배치 8기 스타트업들 대상으로 투자에 관해서 이야기했는데 내가 가장 강조한 건 숫자와 수치였다. 솔직히 젊은 친구들이 창업한 초기 스타트업은 투자를 받음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다. 대부분 처음 창업하는 first time entrepreneur이기 때문에 과거 성공 경험이 없다. 대부분 직장 경험이 없거나 짧음으로 이 또한 일반적인 투자자의 눈에는 마이너스 요소이다. 제대로 된 제품이 없음으로 뭔가 보여줄 것도 변변치 않다. 그리고 돈이 없는 스타트업들이라서 투자자들의 눈에는 절박해 보이는데, 이는 투자 받는 데 걸림돌이 된다.

이런 회사들이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숫자’로 승부하는거다. 하지만, 이 숫자는 상대적이지 절대적이지 않다. 창업한 지 6개월 된 스타트업이 짧은 기간 동안 수억 원의 매출을 만들거나 수백만 명의 고객을 확보하길 기대하는 투자자들은 별로 없다. 다만, 이런 성장의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서비스 launch 한 지 한 달 만에 신규 사용자를 3명 확보했는데 이 숫자가 6개월 후에는 열 배인 30명이 되었다면 절대적인 수치는 작지만, 그 성장 폭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투자자가 물어보고 관심을 두는 건 왜 6개월 동안 사용자 수가 10배나 성장을 했는지, 더 성장할 수는 없었는지, 어떤 방법으로 이런 성장을 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성장할지, 6개월 동안 사용자 수를 10배 성장시키면서 어떤 걸 배웠는지, 뭐 이런 것들이다. 창업팀이 그동안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험하고, 경험하고, 배웠다면 이러한 구체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짧은 기간 동안 충분한 실험을 했다면 이러한 경험을 어느 정도 공식으로 정량화하는 게 가능할 텐데 이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예: “1,000만 원의 예산을 가지고 6개월 만에 신규 사용자 수를 30명으로 만들었으니 5,000만 원의 예산이 있으면 3개월 만에 신규 사용자 수를 500명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왜? 어떻게? 이미 이 팀은 다양한 실험을 하면서 경험을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초기 투자자들이 찾는 건 이러한 공식들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수치를 만들려면 초기 창업팀이 해야 하는 건 딱 한 가지다. 미국인들이 말하는 “Keep your head down, and keep marching on(머리 처박고, 계속 전진해라)”이다. 즉, 다른 거 전혀 신경 쓰지 말고 무조건 제품개발에만 집중하라는 말이다. 사업하다 보면 주위에 잡음이 많이 발생하는데 그때마다 머리 처박고 전진해야 한다.

<이미지 출처 = http://artsonline.monash.edu.au/news-events/monash-university-commemorates-the-great-war-centenary/>

대기업들의 디셀러레이터들

롯데그룹이 1,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고 ‘롯데 액셀러레이터’를 launch 한다는 기사를 어제 접했다. 신동빈 회장이 개인 재산까지 출자하고 롯데 임원들과 함께 직접 스타트업들을 멘토링하고 3년 간 1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을 육성하겠다고 발표까지 했다.

본인 돈을 써서 액셀러레이터를 만들겠다는거에 대해서는 내가 뭐라 할 수는 없지만 대기업에서 자체적으로 펀드를 만들고 스타트업을 육성하겠다고 거창하게 발표할때마다 나는 굉장히 회의적이다. 도대체 이 분들은 액셀러레이터가 뭐하는건지 알고는 있을까? 내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할때 롯데그룹 임원분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만났던 그런 분들이 스타트업들을 육성하는건 정말로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라서 웃음까지 나올 정도다. 액셀러레이터(=accelerator)는 말 그대로 스타트업들이 도움없이 자체적으로 일하는거보다 더 빨리 결과를 만들고 성장할 수 있도록 ‘가속’ 해주는걸 목표로 하는 기관들이다. 요샌 돈 좀 있고, 공간 좀 있으면, 너도 나도 스타트업을 보육하겠다고 하는데 액셀러레이터는 단순히 벤처기업을 보육하는게 아니라 3 – 6개월의 과정을 마치면 당장 눈에 보일 수 있는 가시적인 성과를 – 매출, 유저, 펀딩 등 – 만들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일반적으로 1 – 2년 동안 죽어라 일해야지 달성할 수 있는 지표들을 훨씬 더 빨리 만들 수 있도록 비즈니스 전반적인 분야에서 공동창업자 만큼 열심히 일하고 도움을 줘야하는데 이건 그냥 대기업의 돈이랑 대기업에서의 짬밥만 가지고 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이 단계 회사들의 성장을 가속화 시키려면 모든 촛점은 제품에 맞추어져야 한다. 대표적인 액셀러레이터 Y Combinator 졸업 스타트업들의 제품을 보면 아이디어도 좋지만, 짧은 기간동안 이렇게 완성도가 높은 제품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런데 국내 대기업이 만든 액셀러레이터 담당자들이 제품에 대한 이해도가 어느정도 될지는 정말 미지수이다. 그리고 수 많은 국내/해외 제품이나 모바일 앱 중 이 분들이 제대로 사용해본게 몇 개 정도가 될까? (좋은 제품을 만드려면 유사한 제품 또는 경쟁 제품들을 잘 알아야 한다. 제품을 잘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많이 사용하는 것이다. 해외 제품을 잘 사용하려면 영어도 좀 해야한다). 솔직히 롯데그룹이 운영할 액셀러레이터는 은수저 액셀러레이터이다. 1,000억원을 가지고 시작한다. 분명히 공간도 멋지게 만들 것이다. 스타트업들은 롯데 계열사들의 막강한 지원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그냥 혼자 차고에서 시작하는 창업가들보다 여러 면에서 유리할 수 있을거 같지만, 가속을 위해서 진정으로 중요한 고객이 필요로 하는 ‘제품 만들기’ 는 어떻게 할지 정말 궁금하다.

전에 내가 왜 대기업의 사내 벤처기업은 성공하기 힘든지에 대해서 쓴 적이 있다. 이 내용은 대기업의 액셀러레이터에도 적용된다. 담당자들은 절박함이 없다. 스타트업들이 가속하지 못해도 월급은 나오고 먹고 사는데 지장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액셀러레이터들은 다르다. 스타트업들이 앞으로 못 나가면 액셀러레이터의 운명도 동시에 끝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오늘은 여기서 그만.

대기업들이 액셀러레이터를 운영하는 이유가 자사의 비즈니스에 전략적인 도움이 되는 스타트업들을 육성하기 위함이라면, 내가 이들에게 권장하고 싶은 건 그냥 널려있는 좋은 스타트업들을 인수하는 전략이다. 우리 나라에도 그리고 미국에도 좋은 스타트업들 많고 롯데그룹에 전략적인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업체들이 엄청 많다. 이 스타트업들에 투자하거나 인수를 해서 좋은 인력과 서비스를 확보하면 되는데 굳이 액셀러레이터를 만들어서 맨땅에서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이유가 뭘까? 굳이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과정에 참여하고 싶으면 이미 이를 업으로 잘 하고 있는 좋은 액셀러레이터나 시드 펀드에 출자를 하는게 훨씬 더 효율적이고 결과를 빨리 만들 수 있는 방법이다.

그렇다고 내가 롯데나 다른 대기업들에 억감정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롯데그룹의 액셀러레이터도 잘되서 좋은 스타트업들을 많이 발굴하고 투자하고 육성 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하지만 이게 성장을 가속화하는 액셀러레이터가 아니라 오히려 둔화 시키는 디셀러레이터가 될 거 같다는 우려가 계속 생긴다.

텀블버그 Instant Transfer

우리 투자사 텀블버그에는 재미있는 프로젝트들이 많다. 나도 ‘중학교 3학년 학생의 거대한 로켓‘ 을 시작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후원했는데 최근에는 ‘일러스트북 : <케찹 머스타드 와사비>‘ 와 ‘맥주 일러스트 북 <맥주도감>‘ 을 후원했다. 이 캠페인들은 솔직히 수십억원의 펀딩이 필요한 대형 규모의 프로젝트들은 아니지만,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렇기 때문에 텀블버그가 이 분들의 작은 꿈을 실현하기 위한 최적의 플랫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전에 텀블버그 개발팀이 굉장히 큰 성과를 이루었는데 바로 Instant Transfer 기능의 개발과 완성이다. 이를 통해서 이제는 펀딩 마감 즉시 진행자의 통장에 돈이 찍히는 경험을 구현할 수 있었는데, 현재 프로젝트 진행자들의 반응이 상당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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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프로젝트 마감 후 돈이 들어오기 까지는 3주라는 시간이 걸렸는데, 이 기간을 하루로 단축하면서 결제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했다고 보면 된다.

실은 텀블버그 외에도 다른 많은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 존재하고 각자 나름대로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어떤 업체들은 영업력을 강조하고, 다른 업체들은 크라우드펀딩은 마케팅의 싸움이라고 한다. 하지만, 텀블버그는 그동안 꾸준히 기술력을 강조했었고, 이러한 회사의 철학과 비전이 Instant Transfer와 같이 겉으로 봤을때 화려하거나 요란하지는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좋은 기능으로 구현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문제가 많고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온라인 결제 부분에서 큰 성과를 거둔 텀블버그 팀이 자랑스럽다.

Review를 통한 불공평 해소

얼마 전에 택시를 타고 강남에서 서울역까지 넘어갈 일이 있었다. 서울에서 좋지 않은 택시경험을 많이 했지만 이건 최악이었다. 좌석벨트 미착용은 이제 나한테는 오히려 정상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데, 이 기사분은 운전 자체가 저질이었다. 초급가속, 초급정지, 멀미가 날 정도의 끼여들기는 정말 지옥같아서 한 마디 했지만 역시 돌아오는 건 침묵과 더 거친 보복성 운전이었다. 운전을 업으로 하는, 운전을 가장 잘 해야하는 택시 기사분의 수준미달 운전실력에 화가 났다. 도대체 이럴땐 어디에 하소연하고 아까운 내 돈은 어디서 보상받을 수 있을까?

제대로 된 평가(=review)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나마 카카오택시는 별점이라도 줄 수 있지만, 이 또한 많이 부족하다. 별점 2개와 별점 3개의 차이는 상당히 애매하다. 만약에 승객들이 택시기사를 고를 수 있다면, 단순 별점을 가지고 좋은 기사인지 아닌지 판단하긴 힘들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했으면, 돈을 낸 손님은 서비스에 대한 자세하고 공정한 평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하는데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서비스들은 이런 평가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현재 사용되고 있는 일부 평가시스템들이 완벽하지는 않다. 영혼없는 – 주로 리워드를 노린 – 평가도 많고, 알바생들을 고용해서 평가를 왜곡시키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내가 돈을 내고 택시를 타는 손님이라고 나만 택시기사를 평가하는 건 공평하지 못하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분들도 손님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손님이나 서비스 제공자나 서로에 대한 평가를 전혀 못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현실이 많은 옵션 중 특정 서비스를 선택하고 이에 대해서 돈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손님에게 더 불리하게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얼마전에 투자한 홈케어 O2O 서비스 닥터하우스도 이와 비슷한 평가시스템을 도입할 것이다. 집수리는 택시보다 훨씬 더 비싸고 규모가 크다. 또한, 택시같이 한번 타고 끝나는게 아니라 이사가기 전까지는 수리한 집에서 온 가족이 계속 살아야 하기 때문에 삶의 질과도 직결된다(뭐, 택시승차는 삶의 질 뿐만 아니라 ‘삶’ 자체가 왔다갔다 하긴한다). 그런데 막상 공사를 맡긴 업체나 기술자가 일을 엉망으로 해놓고 “원래 그 공사는 그렇게 하는거예요” 라면서 나 몰라라 하면 문제가 커진다. 이런 업체나 기술자는 다시는 이 바닥에서 일을 못 하게 해야하며,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이 바로 제대로 된 평가 시스템이다.

제대로 만든 평가 시스템은 바이어와 셀러에게 동등한 권리를 줄 수 있는 공평성을 시장에 제공할 수 있다. 물론, 좋은 시스템을 바이어와 셀러가 좋은 의도로 잘 사용해야 한다.

[리블로그] 서명을 작대기로 바꿔야 하나?

2주 한국 출장 후 이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 인천공항에서 3시간 정도를 보내면서 면세점 2군데, 던킨도너츠와 잠바쥬스에서 물건을 구매했다. 신용카드를 5번 긁었고, 서명을 4번 했는데 이 중 4번 다 내 full 서명을 하지 못 했다. 고객서명을 하라고 해서 진지하고 열심히 서명하는데 카운터 직원이 중간에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한 번은 카운터 직원이 아주 친절하게 내 서명을 대신 해줬다. 이번에는 동그라미가 아니라, 작대기 하나로.

너무나 대조적이다. 얼마전에 예스24.com 에서 책 2권 구매를 시도했는데 고객의 안전과 금융 보안을 위한 불필요한 각종 플러그인들과 누더기같은 프로세스 때문에 포기했는데, 상점에서 물리적으로 신용카드로 구매하고 서명함에 있어서는 사람들의 태도와 프로세스가 이렇게 허술한게 이해가 잘 안간다.

관련해서 이미 과거에 글을 쓴 적이 있다. 나는 물건을 구매하고 신용카드 서명을 하기전에 항상 “제 서명이 좀 길거든요. 다 할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라고 말을 했는데 이젠 귀찮고 입이 아파서 포기할 시점이 온 거 같다. 이제 한국에서만 사용할 서명을 하나 새로 만들어야 할거 같고, 내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과 똑같이 작대기 하나로 바꿔야할거 같다.

[과거글: 동그라미 서명]

최근 3년간 한국에 여러 번 출장 다니면서 의아하기도 하고 짜증도 났던 신용카드 서명 관련된 이야기다. 과거에는 실제 신용카드 전표에 펜으로 서명을 했지만 이제는 모두 기계로 바뀌면서 스타일러스 펜으로 기기의 화면에 서명을 한다. 그런데 미국과 약간 다름점이 있다면 미국의 경우 서명을 한 후에 누르는 ‘확인’ 버튼이 서명을 하는 기기에 있어서 신용카드 소비자가 누르게 되어 있지만 한국의 경우 서명하는 기기에 ‘확인’ 버튼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일부러 봤는데, 내가 갔던 식당이나 가게는 거의 이랬다). 대신 이 ‘확인’은 카운터에 있는 분이 알아서 누르게 되어 있다.

난 서명이 좀 길고 복잡해서 그냥 대충 동그라미나 줄 한두게 긎는 사람들보다는 서명하는데 훨씬 더 오래 걸린다. 그런데 서명을 끝내지도 않았는데 카운터에서 그냥 ‘확인’을 눌러버려서 반쪽짜리 서명으로 신용카드가 결제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솔직히 이건 엄밀히 말하면 불법이라고 할 수도 있다. 신용카드 주인이 서명을 하지 않았는데 – 카드사용을 승인하지 않은거랑 동일 – 가게에서 승인을 해버리는거랑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막말로 내가 나중에 이 가게에 와서 이거 내 서명이랑 다르고, 내가 서명한게 아니라고 따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몇몇 가게 주인들한테는 이렇게 따져봤는데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는 커녕 다들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면서 “손님 서명이 너무 길어요 ㅎ”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분명히 신용카드 뒷면을 보면 카드주인이 서명하는 란이 있다. 그리고 이 밑에 보면 “이 카드는 상기란에 서명된 회원만이 사용할 수 있으며, 타인에게 양도, 대여할 수 없습니다.”라고 적혀있다. 미국은 신용카드로 물건을 사면 카드 뒷면의 서명과 실제 서명을 비교해보는 경우도 종종 있고, 신분증도 보여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한국의 경우 이런 적은 한번도 없었다.

문화 차이인가? 뭐, 그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신용카드를 도둑맞았다고 생각해보자. 도둑놈이 내 신용카드를 막 긁고 다니면서 내 서명이 아닌 다른 서명을 하는데 그 누구도 이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이건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금융사기와 신용카드 정보유출 관련 사고 소식이 계속 들려오는 요새는.

더 재미있는 건, 어떤 커피샾에서 계산하면서 내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카운터 알바생이 나 대신 그냥 다음과 같이 지가 서명하고 내 신용카드 승인을 해준 경우가 있었다. 뭐라 하니까 “원래 다 그렇게 해요”라는 성의없는 답변만 돌아왔고 그 알바생은 그날 나한테 험한 말 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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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건 원래 엄밀히 말하면 불법이 아닌가? 내가 너무 까칠한건가? 이런 생각을 아무도 해보지 않은건지 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