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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tech 기자들은 어디에?

스페인의 청년 실업률은 56%다. 스페인 청년 2명 중 1명은 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한국의 청년실업도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현재 구직 중인 한국의 취업희망생들에게 내가 추천해 주고 싶은 유망 업종이 하나 있다. 바로 tech 전문 기자/편집자이다. 최근 들어 내가 매일같이 느끼고 있는 게 바로 한국에는 전문성을 가진 tech 기자가 없다는 점이다 (혹시 내가 몰라서 그럴지도 모르니 만약에 있다면 이름이랑 연락처를 좀 알려주세요).

우리는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Tech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전자신문이나 디지털타임스와 같은 IT 전문 신문 (내가 보기에 전문성은 별로 없지만), 조/중/동 메이저 신문의 IT 취재팀들 그리고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이 있는 블로터, 비석세스 (공시: Strong Ventures는 비석세스의 투자사이다), 벤처스퀘어, 플래텀과 같은 tech 블로그들이 매일같이 수십 개 ~ 수백 개의 tech 관련 기사들을 만들어서 발행한다. 문제는 이 많은 기사 중 정말 시간을 내서 읽을만한 기사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주로 미국의 tech 기사들을 먼저 읽고 한국의 매체를 접한다. 대부분 전날 미국의 기사들을 재탕한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미국의 매체)에 의하면….”으로 대부분 기사가 시작된다..

왜 한국에는 제대로 된 tech 기사들을 찾을 수가 없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제대로 된 tech 기자들이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tech 기자들이 없고, 이들이 쓰는 제대로 된 tech 기사들이 없는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1. 대부분의 기자는 한 분야만 파고들지 않는다. 대부분 2~3년을 주기로 한 기자가 문화부/정치부/사회부/IT부 등 뺑뺑이 돌려진다. 한 분야를 제대로 알려면 최소 5년에서 10년이라는 기간이 필요한데 이렇게 단기간 뺑뺑이를 돌면 아주 얄팍한 지식만 쌓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진정성이 있고 통찰력이 있는 기사가 나올 수 있을까.

2. 물리적인 거리 문제도 있다. 기사의 생명은 originality와 희소성인데 이런 내용의 기사를 쓰려면 정보력이 매우 중요하다. Tech의 메카인 실리콘 밸리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서울에서 이런 정보력을 확보하는 건 매우 힘들다. 하지만, 그나마 Facebook이나 Twitter와 같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열심히 노력하면 거의 실시간으로 정보력 확보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3. 영어를 잘 못한다. 창업가들한테도 영어는 골칫거리지만, tech 기자라면 영어는 더욱 중요하다. 위 2번 포인트에서 말했듯이 tech의 메카인 실리콘 밸리의 모든 소식은 영어인데 영어를 잘 못 하면 이해를 못 할뿐더러 오번역을 하기가 너무 쉽다. 외주 번역을 맡기면 그만큼 시간이 낭비되고 originality 또한 희석된다. (추가됨: 2014년 9월 13일)

4. 기자들이 게으르고 생각이 없다. 이게 가장 심각한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진득하게 앉아서 생각한 후에 자신만의 생각과 객관적인 data를 바탕으로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들을 써야 하는데 그냥 외국 기사들을 베끼는 데에만 집착하다 보니 수준 낮은 글들만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는 여러 tech 매체 중 TechCrunch를 가장 즐겨 읽고 좋아하는데 – AOL에 인수된 후에 quality가 많이 떨어졌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 대기업이나 정부의 눈치는 신경 쓰지 않는 기자들의 대담함과 진지하게 생각하고 data를 분석할 수 있는 통찰력이 맘에 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같은 내용에 대해서 (e.g. Facebook의 주가 하락) 미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신문 중 하나인 Wall Street Journal의 기사를 비교해서 읽어봐도 TechCrunch의 내용이 훨씬 더 깊은 통찰력과 조사/연구가 뒷받침되어 있는 거 같다.

이런 이야기를 한국의 기자분들이나 미디어에 하면 모두 다 위에서 내가 말했던 이유나 다른 변명을 한다. 본인들도 실리콘 밸리에 있고, TechCrunch의 기자들과 같은 대우와 권위를 가질 수 있다면 높은 수준의 기사를 쓸 수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10년 이상 기자 생활을 하신 분들이 TechCrunch의 대학생 인턴 (19살)보다도 통찰력이 없고 형편없는 글들을 쓸까…

나도 글을 꽤 많이 쓰는 편이다. 물론 나는 직접 tech 업계에서 일하고 있고, 많은 정보를 현지에서 접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적합한 타이밍에 적절한 글들을 많이 쓴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기자’라는 명함을 가지고 글 쓰는 걸 밥벌이로 하는 분들이 취미로 글을 쓰는 나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기사를 쓰는 건 정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왜 그럴까?” , “다른 회사/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 ,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은?”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 하지도 않고 고민도 하지 않으니까 좋은 글보다는 인터뷰만 여기저기에 실리게 되는 것이다. 인터뷰가 나쁘다는 건 절대로 아니다. 하지만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거는 답변이 아니라 질문들인데 뭘 알아야지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지. “어떻게 회사를 시작하셨나요?” 뭐 이런 류의 식상한 질문으로 만들어진 인물 인터뷰는 솔직히 이제 질린다..

2012년 9월 4일 Mashable에 “Gangnam Style! The Anatomy of a Viral Sensation [INFOGRAPHIC]“이라는 기사를 Sam Laird라는 미국 기자가 썼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기반으로, 1. 다른 유투브 뮤직비디오와 비교 2. 한국이라는 나라 3. 강남이라는 지역 4. 싸이에 대해서 아주 간단하고 재미있게 비교한 내용이다. 그런데 이 기사를 미국 기자가 썼어야 했을까? 싸이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한국의 tech 기자들은 왜 이런 재미있고 통찰력 있는 비교 분석을 하지 못했을까?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모든 정보와 data는 그냥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그런 흔한 숫자들이다.
‘싸이 요새 잘나간다.’라는 생각만 하지 이런 식으로 분석을 해볼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다. 관심도 없고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공룡, 그리고 Windows 8

마이크로소프트가 이제는 뭐를 해도 절대 놀라지도 않고 관심도 갖지 않을거라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건만, 내일은 괜히 기대가 된다. 10월 26일은 Windows 8이 세상에 공개되는 날이다 (10월 25일 뉴욕에서 공식 launch 행사가 있다).

나도 Windows 8을 직접 사용해 보지는 못했다. 여러 사람들의 사용후기, 이번 주 부터 세게 보여주고 있는 TV 광고, 동영상, 스크린샷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아직 일하고 있는 옛 동료들을 통해서 들은 게 전부이다. 10명 중 9명으로 부터는 상당히 좋은 피드백을 들었고 나머지 한 명으로부터는 엄청나게 좋은 피드백을 들었다 (그 한명은 마이크로소프트 직원이다). 변화를 거부하는 공룡이라는 비판을 받는 마이크로소프트이지만 과거에 전혀 변화를 시도하지 않았던거는 아니다. Xbox, Zune, Office365, Microsoft Store 등과 같은 제품과 서비스들을 통해서 마이크로소프트도 많은 새로운 실험을 하긴 했다. 하지만 Windows 8은 과거 그 어떤 시도보다 훨씬 강도가 크고 그만큼 리스크도 큰 혁명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제품이다. 어떻게 보면 회사의 운명이 걸려있는 비싸고 위험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현재 Windows 운영 체제를 사용하고 있는 전세계 사용자 10억명에게 Windows 8은 단순한 업그레이드가 아닌 운영체제의 지각변동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작년 한해만 3억 3,600만대의 PC가 팔렸다고 한다. 감이 잘 안온다면 이건 1초마다 PC가 10대씩 팔린 꼴이다. 대부분의 PC는 개인보다는 변화를 엄청 싫어하는 기업고객들이 구매했는데 과연 이 보수적인 기업고객들이 완전히 바뀐 운영체제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새로운 운영체제로 10억명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면 마이크로소프트에게는 엄청난 기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조용히 풀을 잘 뜯어 먹고 있던 캐쉬카우를 스스로 죽여버리는 꼴이 될 것이다.

Microsoft Windows는 25년 동안 동일한 디자인과 기본 컨셉을 유지했다. 파일들을 폴더에 보관하고 실제 사물과 비슷하게 디자인된 아이콘들을 기반으로 구성된 물리적인 책상을 따라만든 인터페이스는 Windows 1.0 이후 껍데기만 바뀌었을 뿐 기본 디자인과 컨셉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Windows 8은 이런 구시대의 디자인과 컨셉을 완전히 탈피하고 Metro라는 새로운 미니멀리스트 UI 개념을 도입했다.
물론, 누구나 다 변화에 발맞춰서 바뀌어야하고 빨리 변화는 tech 산업에 종사하는 회사라면 더욱 더 그렇다. 그렇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5백만 명의 사용자들을 보유하고 있는 2년된 스타트업이 아니다. 전세계 10억명의 유료 고객이 사용하고 있는 25년된 베스트셀러 제품 Windows를 만드는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회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Windows 8의 변신은 바로 전세계 computing 방법과 문화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영어로 흔히 말하는 ‘tectonic shift(지각변동)’를 컴퓨터 산업에 일으킬 수 있는 제품이 될 것이다.

뛰어난 engineering power만을 기반으로 소프트웨어를 공장같이 찍어내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갑자기 디자인과 UX에 올인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데에는 애플과 스티브 잡스의 공?이 크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대표이사 스티브 발머는 ‘design’의 철자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날 정도로 아름다움과 형태에 무관심하고 감이 없는 CEO다. 뭐, 딱 보면 그렇게 생겼다. 하지만, iPad 단일 제품의 매출이 Windows의 매출을 능가하고, iPhone 단일 제품의 매출이 마이크로소프트의 1년 전체 매출보다 커지는걸 보고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메트로 UI와 Windows 8이 탄생했다고 관계자들은 말을 한다. 하지만…애플이라는 강력한 경쟁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디자인 위주의 전략을 채택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단순히 애플을 배끼는 길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완전히 새로운 각도에서 디자인, 소프트웨어, UI, UX를 접근했고 뭔가 굉장히 참신하고 새로운 제품과 방법론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운영체제에 대한 시장과 고객의 반응은 어떨까? 나 역시 정말 궁금하다. 어쨌던간에 마이크로소프트한테 이번만큼은 존경을 표시하고 싶다. 지금 내 머리속에는 이미 육중한 몸의 절반이 늪에 빠진 한마리의 덩치 큰 공룡이 죽을 힘을 다해서 바둥거리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제살을 깍으면서 피똥싸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 아름다움이 메트로 UI를 통해서 승화되길 바란다.

과거 마이크로소프트 관련 글:
마이크로소프트의 역습
Microsoft – 이제는 어디로?
Microsoft – in deep shit?
Andreessen and Skype
Microsoft Store (마이크로소프트 벼룩시장)

변화에 대한 거부

인간은 천성적으로 변화를 싫어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comfort zone을 가지고 있고, 이 범위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마치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거 처럼 긴장하고, 불안감이 온몸을 감싸면서 몸은 방어태세로 들어간다. 그런 면에서 보면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을 스스로 차버리고 새로운 일들을 시도하는 창업가들은 약간 미친 사람들이다.

나는 벤처 관련된 일을 하면서 하루에도 몇번씩 내 comfort zone 밖으로 나가야 한다. 변화에 민감하고 스스로 변화하려고 항상 노력하지만 변화라는건 나한테도 쉬운게 아니다. 이 일을 하면서 내가 느낀건 바로 학력이 높고 더 많이 배운 사람들일수록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는 점이다. 더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자기만의 주관이 뚜렷하고 자신이 남들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본인의 생각과 다른걸 인정하지 않고 지금까지 투자한 시간과 돈, 그리고 자존심 때문에라도 불확실하고 새로운걸 시도해 보려고 하지 않는 경우를 나는 많이 봤다. 그 중 한 부류가 의사들이다 (참고로, 이 글은 의사들을 일반화 하려는건 절대 아니다. 그냥 내 개인적인 경험이다).

우리가 투자한 회사 중 하나인 The Good Ear Company의 첫번째  제품인 Better Hearing이 얼마전에 아이폰 앱으로 출시되었다. 이 앱은 TSC(Threshold Sound Conditioning)이라는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된 제품이며, 딱 한가지 기능이 있다: 우리의 청각 시스템에서(달팽이관) 가장 기능이 약한 부위(주파수)를 파악해서 그 부위를 향상시키는 기능이다. 그런데 그 방법이 약간 특이하다: 약물투입, 수술 또는 외부적으로 압력을 가하는 침해적인 방법이 아닌, 단순하게 소리를 사용해서 특정 부위를 자극하고 컨디셔닝하는 방법이다. 사용자는 그냥 이 소리를 특정 기간동안 지속적으로 듣기만 하면 청력이 좋아질 수 있다. 마치 우리가 규칙적으로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을 하면 없던 근육이 생기는거와 같이 귀를 ‘훈련’시키면 청력이 향상된다는 논리이다.

별거 아닌거 같지만 ‘한번 나빠진 청력은 개선될 수 없다’라는 이론을 기반으로 힘든 의과대학 공부를 한 의사들 – 특히, 이비인후과 – 은 납득하기 어려운 이론이다. 우리가 이 이론과 기술에 대해서 많은 의사들과 이야기를 해봤지만 거의 모두 부정적인 피드백과 사기가 아닌가라는 의심을 했다. 그리고 거기서 대화는 끝난다. 어떤 이론을 기반으로 개발된 기술인지 그리고 이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어디있는지…전혀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이 기술이 사실이라면 본인들의 밥그릇이 없어지거나 작아지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가장 신경을 써야하는 환자들의 안정과 편리함은 안중에도 없다. 궁극적으로는 청력을 손상시키는 비싼 보청기를 팔고, 살을 찢는 달팽이관 이식 수술을 해야지만 의사, 의료 기기, 보청기 회사들이 모두 다 안정적으로 잘먹고 잘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이 더 오픈 마인드로 변화와 새로움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 더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Better Hearing의 경우, 과연 이 기술이 널리 사용된다고 이비인후과 의사들이 없어질까? 아니다. 오히려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더 생산적이고, 환자들에게 더 도움이 되는 일에 그만큼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내 의견에 대한 반대 의견도 충분히 많다. 가장 흔한건 바로 “의학적으로 100% 입증되지 않은 기술을 환자에게 적용할 수 없다” 이다. 절대로 틀린 말은 아니다. 실은 이걸 증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현재 스탠포드 대학 병원과 임상실험을 진행 중이다(이미 한국에서 중앙대학교 부속 병원과 삼성의료원과 진행한 임상 실험 결과가 있지만 외국의 임상실험 결과를 잘 믿지 않는 미국 의사들을 위해서 다시 하고 있다). 실험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올 수도 있다.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이며, 이렇게 되면 우리 입지는 불리해질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안타깝게 생각하는건 오히려 새로운걸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하는 의사들과 같이 배운 사람들의 폐쇄된 자세와 태도이다.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 의학 기술과 이론만 바뀌지 말란 법이 있을까? 내가 학교에서 배운거와 다르다고, 또는 내 밥그릇이 위기에 처한다고 변화를 거부하고 다른 의견들에 대해 귀를 막으면 그 사람은 물론 이 세상에는 발전이란게 없을 것이다.

신 경제의 슈퍼스타들 – 개발자와 디자이너

제품이 후져도 영업력 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시대가 있었다. 아마도 우리 아버지 세대였던거 같다. 그때는 무조건 영업과 마케팅 능력만 있으면 돈을 벌 수 있었던 때였던거 같다. 영업/마케팅 인력이 회사를 먹여살렸기 때문에 이들이 회사에서 가장 인정받고 몸값도 높았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실리콘 밸리의 새로운 슈퍼스타들은 영업 이사도 마케팅 이사도 아닌 개발자와 디자이너다.

The Engineer
Strong Ventures의 웹 사이트에는 ‘창업팀에 개발자가 없는 스타트업이라면 정중히 거절합니다. 스트롱 벤처스는 직접 제품을 만들 수 있는 팀만을 지원합니다.’라고 써놨다. 우리와는 다른 레벨인 Y 콤비네이터가 투자하는 모든 스타트업은 개발자 출신의 공동 창업자가 있던지, 창업 구성원 모두가 개발자 출신이다. Y 콤비네이터가 소액 투자해서 최근에 가장 주목받는 서비스가 에어비앤비와 드롭박스인데, 두 스타트업 모두 개발자가 창업팀의 주를 이루고 있다.

언젠가 어떤 젊은 친구가 좋은 아이디어를 들고 찾아왔다. 그런데 그는 프로그래밍 능력이 없었고 개발자 공동 창업자도 없었다. 우리는 투자할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창업팀에 개발자가 없다는 점이라고 지적하면서. 우리는 왜 아이디어에 투자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가끔 ‘백만불 짜리 아이디어’라는 말을 하는데 이건 정말 말도 안되는 모순이다. 아이디어는 실제 제품화가 되어서 형체를 갖기 전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쓰레기일 뿐이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개발자’이다. 그런 개발자가 없는 팀에 투자하는건 돈 낭비이다.

벤처기업의 최초 제품의 개발은 절대로 외주하면 안된다. 개발 외주는 영업으로 먹고사는 원청회사나 하는 하도급이다. 전세계 식당을 평가하는 Michelin Guide에서 별점 만점을 받는 음식점은 절대 공장 소스를 쓰지 않는다. 하물며 기술 기반의 인터넷 벤처가 자신의 혼과 생명인 제품 개발을 어떻게 외부인에게 맡기나? 외주업체는 그냥 돈 받은 만큼 일해서 제품을 넘기면 끝이다. 제품에 대한 사랑도 책임감도 없다. 나중에 잘못되도 상관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런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찮게 본다. 이미 우리나라 대학교에는 수년 동안 공대 지망생이 줄고 있고, 공대 학생마저 요새는 고시나 회계사 시험을 공부하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기계적으로 열심히 밤새서 일하는 비숙련 노동자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미국과는 너무나 다른 슬픈 현실이다. 언젠가 내가 유튜브와 트위터를 방문했을 때 매니저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우리 회사 최고 자산은 엔지니어죠”라고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페이스북은 제품보다는 우수한 개발 인력을 통째로 채용하려고 회사를 인수한다. 페이스북의 이런 도매금 인력 인수는 ‘acqhire’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인수를 의미하는 ‘acquire’와 채용을 의미하는 ‘hire’의 합성어다. 회사 자산 중에 사람이 제일 탐나서 회사를 인수하는 걸 의미한다. 물론 저커버그도 개발자 출신이다.

The Designer
유튜브의 공동 창업자 채드 헐리, 그루폰의 공동 창업자 앤드루 메이슨, 그리고 애플의 공동 창업자 고(故) 스티브 잡스의 공통점은 뭘까?

바로 기술이나 기능은 나중 문제라고 생각하는 ‘디자인’ 근본주의다. 특히 채드 헐리와 앤드루 메이슨은 디자이너 출신이다. 채드 헐리는 첫 직장 페이팔에서 회사 로고를 디자인했고, 앤드루 메이슨은 시카고에서 웹 디자인을 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인지 유튜브와 그루폰 사이트를 방문해보면 단순한 느낌이 들면서도 유용하다. 요란한 화장 없이 단정하고,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기능을 배열한 이런 디자인은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는다. 물론 소비자 가전제품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애플의 제품 디자인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오죽했으면 최근에 내가 만난 실리콘 밸리의 투자자들은 “일단 디자인이 좋으면 무조건 투자하겠다”고 할까?

웹 서비스의 – 특히 B2C – 생명은 사용자 인터페이스(UI)와 사용자 경험(UX)이다. 즉, 인간은 새 서비스를 볼 때 첫 느낌이 좋아야 서비스를 계속 사용하고 싶어한다. 아니면 바로 사이트를 떠난다. 아무리 기능이 좋고 유용한 서비스라도 ‘나쁜 디자인’ 안에 갇혀 있으면 사용자의 눈길도 못 받는다. 소개팅에서는 일단 상대 외모가 좋아야 호감이 간다. 첫인상이 나쁘면, 사람을 더 알고 싶은 흥미가 없어서 빨리 자리를 벗어나려고 꾀를 쓴다. 웹 서비스에서도 첫인상이 나쁘면 바로 웹 브라우저 탭을 닫아버린다. 디자인 무척 중요하다.

그러나 내가 아는 벤처는 대개 창업 단계에 디자이너를 들이지 않았다. 심지어 디자이너가 아예 없는 회사도 많다. 전에 개발자가 없는 창업팀은 시작 자체가 어렵다고 했다. 하나 더 말하면, 디자이너가 없는 창업팀은 시작은 해도 오래가기가 어렵다.

왜 창업팀에는 디자이너가 있어야 할까? 오랫동안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디자인을 컨설팅한 디자이너 펀드의 Enrique Allen은 이렇게 말한다:
-시장 경쟁이 심화하면서, 브랜드와 사용자 경험이 성공을 이끄는 필수 조건이 됐다. 제품의 기술은 둘째다.
-혁신의 핵심은 전면적인 협업이다. 디자인·기술·비즈니스 지식의 전면적인 융합은 제품의 수정과 반복을 더 빠르게 하고 제품을 더 정교하게 만든다.
-디자이너 출신 창업자는 단순히 시각적 능력뿐 아니라, 인간의 욕구와 겉으로 표출되지 않은 기회를 발견하는 독보적인 능력이 있다.

개발자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는 대체로 디자인이 대접을 못 받고 있다. 많은 CEO가 애플을 벤치마킹하면서 “우리 회사의 핵심은 디자인입니다”라고 말은 해도, 막상 행동은 반대다. 디자인 인력을 줄이고, 디자이너를 막 부린다. 디자이너는 많이 생각하고, 많이 그려보고, 많이 실험하는 게 생명인데 밤새워서 시키는일 하느라 바쁜게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의 일상인거 같다. 거의 막노동자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스티브 잡스는 많은 시사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디자인을 정통으로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디자인뿐만 아니라 사용자 경험까지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던 감수성이 예민한 창업자였다. 스티브 잡스처럼 기술이 인간과 친구가 되려면 어떤 형태를 갖추고 어떤 사용자 경험을 제공해야 하는지 이해하는 창업자야말로 기술의 세계와 사람의 세계 중심에서 두 세계를 적절하게 혼합할 수 있는 마법사다.

자동차 운전대를 디자인하는 디자이너와 자동차 전체와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할 수 있는 디자이너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오래가는 벤처를 하려면 둘 다 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창업팀에 필요하다.

역시 멋진 서비스는 그냥 나오지 않는다. 개발자가 없다면 스타트업을 시작할 수 없고, 디자이너가 없다면 스타트업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우리시대의 슈퍼스타인 개발자와 디자이너들과 어울려라, 그리고 잘 모셔라. 이 사람들이 없으면 창업해서 성공 못한다.

스타트업 바이블 2: 계명 10 – 개발자와 동업해라‘와 ‘계명 11 – 명품에는 명품 디자이너가 필요하다‘를 정리한 내용이다.

애플 vs. 삼성

애플과 삼성의 소송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솔직히 이 특허전쟁을 보면서 나는 개인적으로 실리콘 밸리가 조금 싫어졌고 ‘특허’에 대해서 구역질이 나기도 했다. 어쨌던간에 재미교포 Judy Koh 판사는 세기의 특허소송에서 애플의 손을 들어줬다. 물론, 삼성이 내야하는 벌금 1조원은 몇일이면 벌 수 있는 껌값일 것이다. 하지만, ‘삼성’이라는 브랜드는 큰 타격을 입었고 앞으로 신제품을 개발할때는 지금보다 더 신중하게 많은 요소들을 고려해야할 것이다.

한가지 재미있는 건…삼성이 소송에서 졌는데, 한국 언론만을 보면 삼성이 패소했다는게 아주 명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받은 인상은 그 어떤 한국 언론도 삼성이 애플을 배꼈기 때문에 소송에서 졌다고 아주 정확하고 투명하게 보도를 하지 않는거 같다. 오히려, 특허 소송에서 진 건 별게 아니고 삼성은 앞으로 전혀 문제없이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편파적인 미국 배심원들이 무조건 애플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에 억울하게 패소했다는 기사도 여러가지 버전이 있었던거 같다. 아직도 어떤 기사는 배심원들이 결정하기 전에 범했던 실수를 요모조모 분석하고 있다. 물론 내가 한국 언론을 모두 다 접한건 아니기 때문에 틀렸을 수도 있지만 내가 받은 느낌은 이랬다.

모든 재판이 그렇듯이 모두를 만족시키는 결과가 나올 수는 없다. 어쩌면 미국 배심원들이 실수를 했을 수도 있고, 이로 인해서 편파적인 판정이 나왔을 수도 있다. 그리고 삼성만 배꼈을까…애플도 여러 업체에서 이것저것 분명히 배낀 경험이 있을것이다.

하지만 – 그리고 이게 가장 중요하다 – 영어로는 “it is what it is”라고 하듯이 결과는 결과이다. 삼성은 애플한테 졌고 우리는 이 결과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 더 이상 이에 대해서는 왈가왈부 하지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만 모두 발전할 수 있다. 나는 이번 계기를 통해서 삼성이 제품 개발 프로세스에 originality와 creativity를 제대로 도입했으면 한다. 우리나라 언론에서 맨날 욕하는게 삼성이나 LG같은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원천기술을 훔친다는거 아니었나? 남의 기술이나 디자인을 배끼는걸 너무 쉽게 생각하는 삼성이 앞으로 이런 도둑질을 더 이상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