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발팀을 항상 강조해왔다. 우리가 주로 투자하는 분야가 소위 말하는 consumer internet 분야이다 보니, 남의 제품을 소싱해서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이커머스 플랫폼, 직접 제품을 만들어서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D2C, 그리고 수요와 공급을 연결해주는 온디맨드(=O2O) 비즈니스에 상당히 많이 투자한다. 쉽게 말하면, 생활밀착형 서비스들에 스트롱의 돈을 대부분 투자한다. 실은 이런 기업들이 겉으로는 기술이 없고, 그냥 인터넷으로 물건 팔고, 인터넷으로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단순한 서비스를 만드는 것 처럼 보이지만, 잘 되는 서비스들은 눈으로 보이는 것들 뒤에, 보이지 않는 곳에 상당한 기술이 구현되어 있다. 특히, 이런 생활밀착형 서비스들은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사용하고, 많은 정보가 왔다 갔다 하므로, 확장성과 자동화 관련 첨단 기술이 도입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좋은 개발팀을 항상 중요하게 생각했고, 과거에는 그 어떤 비즈니스를 하든, 개발력이 없는 팀은 절대로 투자하지 않았다. 실은 지금도 기본적인 방향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 방법은 조금은 바뀌었다. 참고로, 이 이야기는 여기서 말하는 이커머스나 온디맨드와 같은 컨슈머 인터넷 비즈니스에 해당한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돈도 없고 자원도 없는 스타트업이 소위 말하는 product-market fit을 찾기 전에는 가능하면 돈을 쓰지 않고 lean 하게 가야 한다. 이에 대한 중요성은 과거에도 항상 강조됐지만,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과 투자금으로 기업가치를 올려놓고 그 기업가치를 정당화하지 못하는 유니콘들 때문에, 요새 와서 이 “린”이 더욱더 강조되고 있다. 그런데 개발을 모르는 창업자가 물건이 시장에서 판매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돈과 시간을 들여 개발팀을 꾸리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 돈 낭비다. 그건, 나중에 어느 정도 컨셉이 증명되면 해도 된다. 이럴 경우, 발 빠른 창업가들은 간단하게 구글폼으로 설문조사를 하거나, 간략하게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선주문을 받아본다. 돈도 안 들고, 시간도 별로 안 드는 방법이다. 조금 더 시간을 들인다면 – 그리고 이 방법도 돈은 거의 안 든다 – 와디즈나 텀블벅과 같은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을 활용해서 과연 본인이 생각하는 비즈니스가 시장에서 반응이 있을지 테스팅을 해본다. 수요와 공급을 연결해주는 마켓플레이스를 만들고자 하면, 어떤 창업가들은 수요와 공급을 수작업으로 연결하는 거로 시작한다. 내가 아는 많은 대표들은 본인들이 직접 발품 팔면서, 전화로 시작했다. 사용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마치 규모가 꽤 있는 회사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면서.

이건 우선순위와도 겹치는 내용인데, 뭔가를 판매하는 이커머스 회사라면, 세련된 이커머스 플랫폼 보단, 판매하는 제품이 이 회사의 핵심 상품이다. 이 비즈니스의 가능성을 시장에서 조금이라도 입증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작업은 바로 고객이 이 회사의 핵심 상품인 제품을 좋아하고, 돈을 내고 구매하냐이기 때문에, 일단 모든 자원을 좋은 제품을 만들고 소싱하는데 집중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이게 어느 정도 증명이 된 후에 이커머스 플랫폼을 만들어도 늦지 않다. 어떤 분들은 이 반대의 전략으로 움직이는데, 이건 lean 한 방법은 아니고, 시작하기도 힘들다.

또 다른 이유는, 요새는 헤비한 개발력이 없어도, 스스로 공부를 좀 하면 간단한 플랫폼을 직접 만들 수 있는 DIY 제품들이 상당히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이커머스 분야에서 이런 툴들이 가장 많이 제공되고 있는데, 카페24, 고도몰, 그리고 미국이라면 Shopify와 같은 이커머스 사이트를 쉽게 만들 수 있는 템플릿을 제공하는 기업들이 계속 생기고 있고, 네이버 스토어팜이나 카카오톡 스토어를 활용하면 웬만한 규모의 비즈니스까지는 처리가 가능하다. 본인이 다 만들지 않아도 제품 판매, 결제, 그리고 배송까지 처리해주는 제품이 요샌 많이 있고, 과거와는 달리 이런 개별 모듈과 기능 자체가 큰 비즈니스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창업가들이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고 있어서, 제품 완성도도 상당히 높다.

우리 스트롱 대표들을 포함, 내가 아는 많은 창업가들이 요샌 이런 방법으로 창업해서 꽤 괜찮은 규모의 비즈니스를 만들어가고 있다. 실은 개발력이 있어도, 쉽고 저렴한 방법으로 컨셉을 테스트하고, 이게 어느 정도 시장에서 통할 것 같은 확신을 얻으면, 이미 시장에서 제공되고 있는 제품을 lean하게 구현해서 빨리 성장하는 회사들이 오히려 더 잘 하는 것 같다. 물론, 쿠팡과 같은 큰 회사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제품과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는 좋은 개발력이 필수이다. 고도몰이나 카페 24와 같은 플랫폼으로 시작했다가, 짧은 시간에 규모가 너무 커져 버린 비즈니스들의 플랫폼 성장통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뭔가 빨리 만들어서 시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각각의 필요에 따라서 세밀하게 커스터마이징을 하거나, 원하는 세련된 기능을 구현하는 게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시점에 완전히 자체 플랫폼으로 마이그레이션 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고, 이런 결정 자체를 하기 위해서는 개발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요새 나한테 모든 스타트업이 개발력이 필요하냐고 물어본다면, 소프트웨어가 회사의 업이라면 당연히 필요하지만, 위에서 말 한 이커머스/D2C/온디맨드 비즈니스라면 개발력이 있으면 훨씬 좋지만, 그렇다고 개발력이 없다고 시작하지 못하거나, 또는 우리가 절대로 투자하지 않겠다는 입장은 아니다. 하지만, 결국 어느 시점이 오면 개발력은 필수다. 우리가 필요한걸 그때그때 직접 in-house에서 만들 수 있는 건 회사가 날개를 달고 날 수 있는 능력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에 있어서 돈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시간이 가장 중요한 자원이기 때문에 이 시간을 아낄 수 있는 개발력은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