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내가 이런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동네 세탁소 사장님을 만났다. 양손 한가득 고객 세탁물을 수거해서 내려가고 있었는데 봉지나 가방도 없이 그냥 맨손, 가슴, 그리고 턱으로 빨랫감을 받치고 있었고, 빨래가 시야를 가려 1층 눌러달라고 나한테 부탁하더라.
“사장님 이러다가 빨래 길거리에 흘리면 큰일 나겠어요. 지금도 양말 떨어질려고해요”
“에이 안 흘려요. 이걸 20년 넘게 했는데요”
“…..”

세탁특공대랑 런드리고의 미래가 너무 밝다.

우리 아파트 정문 앞 상가 건물에 있는 세탁소를 이 자리에서 20년 넘게 하고 계신 사장님과 사모님은 정말 열심히 사신다. 아파트 모든 동호수를 매일 돌면서 세탁물을 배달하고, 또 수거하는 작업을 20년 넘게 하다 보니, 이젠 어디에 누가 살고, 그 집에는 어떤 옷을 입는지까지 다 알고 있다. 그것도 이 모든 게 어떤 데이터베이스에 입력되어 있는 게 아니라, 두 분 머리에 그대로 입력되어 있다. 그동안 비즈니스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거의 독점하다시피 이 동네의 모든 세탁을 담당했지만,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변화, 그리고 위의 엘리베이터 에피소드를 봤을 때, 이 동네 세탁소의 비즈니스도 앞으로 서서히 줄어들 것이고, 언젠가는 대체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꼭 세탁이 아니더라도, 이런 현상의 반복은 우리 주위에서 늘 일어나고, 비즈니스 역사를 보면, 항상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 올 초에 고인이 된 클레이튼 크레스텐슨 교수의 이노베이터스 딜레마와 파괴적 혁신 책 내용도 요약해보면, 시장의 1등 강자들이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항상 하던대로 비즈니스를 하다가, 아주 작고 하찮은 경쟁사의 출현을 못 보거나, 별로 신경 쓰지 않다가 결국엔 이들에게 시장을 빼앗기는 그런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시장이 충분히 크다면, 어느 곳에서나 그 시장의 일인자가 있다. 이 일인자는 아주 오랫동안 이 시장을 지배한, 역사가 100년이 넘는 대기업일 수도 있고, 이런 대기업을 1등에서 끌어내린 혁신적인 스타트업일 수도 있다. 어쨌든, 큰 시장에는 항상 도전받는 자가(=현재 1등) 있고, 도전하는 자가(=1등 외) 있다. 재미있는 건 이 순위가 계속 바뀐다는건데, 어떤 시장은 이 주기가 굉장히 길고, 어떤 시장은 짧다. 세탁소는 주기가 꽤 긴 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아파트 정문 앞의 세탁소는 거의 20년 동안 자기만의 비즈니스를 했다. 그동안 단골은 늘어났고, 이 분야의 혁신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하던 대로만 비즈니스를 해도 – 어쩔때는 과거보다 더 질이 떨어지는 서비스를 제공해도 – 고객은 계속 여기에 세탁물을 맡겼다. 내가 알기로는 국내 세탁시장의 규모는 3조 원~5조 원이다. 이런 큰 시장에서, 혁신과 발전이 없다는 걸 똑똑한 창업가들이 놓칠 리 없다. 1990년대 말에 세탁소의 프랜차이즈화를 통해서 세탁품질, 비용, 그리고 유통의 혁신을 추구하자는 비전하에 ‘크린토피아’라는 회사가 창업됐고, 현재 크린토피아는 대한민국 세탁 시장의 1등이 됐다. 당시에는 동네 세탁소가 도전받는 1등이었고, 크린토피아가 도전하는 자였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어느 순간에 크린토피아가 도전받는 1등이 됐다.

그런데 이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또 다른 플레이어들이 나타났다. 세탁특공대, 워시온, 리화이트, 런드리고 등의 모바일 세탁소 앱들이 몇 년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고, 동네세탁소와 크린토피아에 다시 도전하고 있다. 이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새로 등장한 모바일 세탁앱 중 하나가 시장의 1등을 먹을 것이고, 도전하는 자 – 도전받는 자의 구도는 또 바뀔 것이다. 그리고 이 현상은 반볼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현상을 보면 볼수록, 수많은 업체의 도전을 받으면서도, 계속 시장 1등 자리를 지킨다는건 정말 힘든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같은 회사들을 보면, 비슷한 플레이를 과거에 시도했던, 그리고 지금도 이 거대한 회사들을 이기기 위해서 도전하고 있는 수많은 신생 스타트업의 도전을 받으면서도 계속 시장의 1등을 지킨다는 건 경이롭기까지 하다. 물론, 언제나 이 구도는 바뀔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영원한 도전자도 없고, 영원히 도전받는 자도 이 시장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즈니스는 재미있고, 우리 같이 ‘도전하는 자’들에 투자하는 이 업 또한 매우 재미있다.